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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07 19:54
더 좋은 것13: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히 4:14-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64  

더 좋은 것13: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4:14-16)

종교개혁운동

중세유럽에서 개인들은 그리스도님의 대리자임을 주장하는 사제들로 인해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그것은 마치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성전을 예루살렘 한곳에만 두고, 사제들이 장악한 채 민족과 성별과 신분과 계급의 담, 곧 이방인의 뜰과 성전영내, 여인의 뜰과 이스라엘(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들)의 뜰, 이스라엘의 뜰과 제사장의 뜰을 담으로 분리, 또 성소와 지성소(법궤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대제사장만의 공간)를 휘장으로 분리함으로써 개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았던 것과 같다.

그리고 14-16세기의 문예부흥운동과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은 사제들로 인해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혔던 개인들에게 혹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대신한 교황과 사제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개인들에게 직접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운동이었다. 그것은 마치 성소의 휘장을 갈라놓은 그리스도님의 십자가 사건이 사제들에게 눌려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개인들에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10:19) 하였고,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4:16)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10:22) “새로운 살 길(10:20) 열어 주었던 것과 같다.

문예부흥운동과 종교개혁운동은, 지동설을 주장하여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전환을 마련한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에서 보듯이, 사제로 대표되던 종교에서 인권(기본권)과 이성과 과학이 강조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야기했다. 그로인한 부작용도 낳았다. 18세기에 이르러 초자연적인 기적들, 곧 계시, 기적, 예언,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등을 부정하는 계몽주의와 자연신론이 나왔고, 19세기에는 무신론과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크게 도전을 받게 되었다.

신앙부흥운동

18-19세기는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자유주의 이론가였던 존 로크(1632-1704), 공리주의를 표방한 제러미 벤담(1748-1832), 이에 반기를 든 임마누엘 칸트(1724-1804), 신의 죽음을 선포한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이에 반기를 든 <죄와 벌(1866)><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을 발표한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자유론>을 쓴 자유지상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등이 활동하였던 시대였다. 신의 죽음과 인간의 자유를 입에 올리던 무신론의 시대였다.

이 배도를 부분적으로 반전시킨 신앙부흥운동이 18-19세기에 북미에서 조지 휫필드와 조나단 에드워즈 등이 주도한 대각성운동이었다. 이 무렵 미국에서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신대륙의 개척과 맞물려 자유’(정교분리)유용(실용)을 화두로 한 천년왕국시대(후천년설)를 기대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이 전통에 매어 있었다면, 신대륙에는 모든 분야에서 자유가 물결치고 있었다. 동시대에 스톤-캠벨운동을 펼쳤던 선각자들은 기독교 본래의 순수성과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천년왕국시대를 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서 이 운동을 전령(Christian Messenger)으로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이 확신 속에서 천년왕국시대의 선구자(Millennial Harbinger)를 자임하면서 개혁운동, 곧 신약성서교회회복운동 또는 사도전통회복운동을 펼쳤다.

신앙운동은 대개가 신조주의, 신비주의, 경건주의, 합리주의 등으로 분열한다. 큰 틀에서 보면, 그리스도교는 예수님 사후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시작된 예슈아 메시아 운동이었으나 유대교인들이 이들을 나사렛당(노쯔림, Notzrim)이라 폄하하고 배척함으로써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오늘의 그리스도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로마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하였고, 외부의 박해와 내부의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신조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조직과 제도를 정비하였다. 이로 인해서 325년 니케아신조를 시작으로 각종 신조들이 생산되었고, 지역교회들의 목양자와 감독들이었던 장로들이 사제로 둔갑되어 계급화되었다(부제=집사, 사제=장로, 주교=담임사제, 대주교=교구장, 추기경, 교황 혹은 보제, 사제, 주교, 대주교, 총대주교). 313년 박해시대가 끝나고 392년 국가종교시대를 맞이한 그리스도교는 금욕과 고행을 통한 개인 경건과 신비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예배갱신운동

마찬가지로 16세기 종교개혁이후 개신교회들은 연합보다는 진리와 순수성에 경도되어 교파별로 신조(교리)들을 쏟아내면서 자기 울타리를 견고히 하였다. 그리고 그 반작용으로 17세기에 이르러 신비주의운동과 경건주의운동이 나타났다. 이와 거의 동시에 이성과 과학에 편향된 합리주의가 나타나 20세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교단들에서 성서관을 중심으로 근본주의(축자영감설), 복음주의(개념영감설), 진보주의(신앙고백설)로 분열하였다. 더불어서 개신교 예배는 16세기 종교개혁이후 가톨릭과 정교회의 전통적인 예배순서의 틀에서 서서히 벗어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주의 만찬이 빠진 기도회 성격의 예배로 전락하였다.

예루살렘성전 멸망이후 고착된 유대교기도회에 주의 만찬을 첨가하여 성전예배의 의미를 살린 것이 초기 그리스도교 예배였다. 그리고 주의 만찬에 신비(성체신학, 화체설)를 추가한 것이 가톨릭미사이고, 주의 만찬에서 그 신비를 빼버린 것이 개신교예배인데, 츠빙글리와 같은 개혁가들이 주의 만찬에서 신비(미신)만 뺀 것이 아니라, 매일 드리는 예배내용 그 자체였던 주의 만찬을 연 2-4회로 줄임으로써 개신교예배를 기도회, 경건회, 사경회, 부흥회로 추락시키는 오류를 범하였다. 따라서 1960년대 이후 많은 예배학자들이 잘못된 이 개신교전통을 바로 잡아야한다고 주장하여 왔고, 여러 교단들에서 또는 개개의 교회들에서 매주일 또는 매월 1회씩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거나 시도하고 있다.

기독교 본래의 순수성과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천년왕국시대를 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서 스톤-캠벨운동 곧 신약성서에 실린 옛 질서를 회복하려는 환원운동을 전령(Christian Messenger)으로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또 이 확신 속에서 자신들이 천년왕국시대의 선구자(Millennial Harbinger)를 자임하면서 개혁운동 곧 신약성서교회회복운동 또는 사도전통회복운동을 펼쳤던 환원운동가들은 이미 19세기 초부터 매주일 말씀의 예배와 함께 간소화된 주의 만찬 예배를 드리고 있다.

환원운동가들은 교회가 지난 과거에 추가했거나 변개한 전통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신약성서의 가르침과 전통을 본래대로(ad fontes) 실천하기로 작정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1311년에 시작된 약식세례를 침수세례로 되돌렸고, 신조를 신약성서말씀에 국한시켰으며, 교회의 구성원을 그리스도인혹은 제자, 이름을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또는 그리스도인의 교회’(Christian Church)로 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