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8-03-10 13:18
더 좋은 것14: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2)(히 5:1-1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47  

더 좋은 것14: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2)(5:1-14)

히브리서 저자의 두 번째 선포내용

히브리서는 선포(케뤼그마)와 교훈(디다케)을 반복하는 설교 형태의 논문이다. 1장부터 36절까지가 첫 번째 선포인데, 저자는 이곳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선포하였다. 특히 저자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였는데, 그분을 만유의 후사,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분,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분, 죄를 정결케 하시는 분, 그 어떤 선지자나 천사나 모세보다도 더 뛰어난 분이심을 선포하였다. 이어서 37절부터 413절까지에서 기나긴 노예생활 끝에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너 광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던 이집트 세대 히브리인들이 무슨 잘못 때문에 그들이 그토록 희망했던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씩이나 광야를 떠돌다가 죽어 끝내 안식을 얻지 못하고 황무한 땅에 묻히게 되었는가를 상기시켰다. 이집트 세대 히브리인들이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구세주 야훼 용사께 대한 믿음의 배신과 불순종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저자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조상 이집트 세대 히브리인들의 어리석은 불순종의 전철을 밟지 말고 영원한 하늘 가나안땅의 안식에 들어가도록 믿음의 행군을 멈추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414절부터 510절까지는 히브리서의 두 번째 선포(논문)인데, 저자는 여기서 예수님을 큰 대제사장으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선포는 첫 번째 선포만큼이나 유대인들이 받아드리기 어려운 파격적인 것이었다. 첫 번째 선포가 예수(예슈아)의 신성을 믿으라는 것이었는데, 두 번째 선포에서는 그가 큰 대제사장이신 것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님이 아론서열을 따라 지상 예루살렘성전을 섬긴 레위인 대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서열을 따라 영원한 하늘 예루살렘성전을 섬기는 대제사장이시다(5:6)고 선포하였다. 414-16절은 이 선포의 전반부로써 구약시대에 백성을 위해서 매년 속죄 제사를 드렸던 대제사장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곧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큰 대제사장이시다(4:14)고 선포하였다.

큰 대제사장”(The Great High Priest)

히브리서는 최우선적이고 일차적인 독자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레위출신도 아니고, 성전을 섬긴 일도 없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슈아가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고 대제사장이 된단 말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땅의 것과 하늘의 것,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불완전한 것과 완전한 것에 대해서 당대에 유행한 모형론을 통해서 설명하였다.

첫째, 땅의 것은 하늘의 것의 모형이고 그림자이다. 지상 예루살렘성전은 하늘 예루살렘성전의 모형이고 그림자이다.

둘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하늘 예루살렘성전의 영원한 큰 대제사장이시다.

셋째, 예수님의 대제사장직분은 아론서열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영원한 멜기세덱서열에 의한 것이다. 멜기세덱서열은 영원하고, 왕적이며, 변치 않는다. 반면에 아론서열의 제사장제도는 장차 나타날 더 좋은 것에 대한 그림자와 모형으로써 죄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큰 대제사장 예수님은,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죄가 없으시고”(4:15),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다”(7:26). 하나님은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셨고”(5:10),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셨으며”(6:20), 자신을 단 번에 드림으로써 백성의 죄를 없이 하셨고(9:26), 백성을 죄로부터 온전하게 구원하셨다(2:17). 그러므로 저가 저 (무식하고 미혹하고 연약에 싸여 있는 아론 서열의/5:2-3)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다고 말한다(7:27).

넷째,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2:7)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삼하 7:14)고 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 십자가고난을 받아 온전케 함으로써 구원의 창시자인 그리스도로 삼으셨고, 하늘로 올리시어 당신의 보좌우편에 앉히셨으며, 맏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하나님의 영광의 집에 들어가게 하신다(2:10).

다섯째, 하나님은 자기 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곧 하늘 예루살렘성전을 맡은 큰 대제사장으로 삼으셨다(3:6).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부활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시고, 이 예수님이 하늘 예루살렘성전의 큰 대제사장으로 계시니, 처음 믿을 때 그분께 고백한 신앙을 신실하게 지키자(4:14)고 외친다.

영원한 큰 대제사장

히브리서는 본래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을 위한 글이었다.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은 가족과 친지와 유대교공동체로부터 버림을 받고, 목숨까지 위협을 당했다. 점차 그들 마음속에 적잖은 회의와 자신들의 개종이 과연 그 같은 핍박을 감내할 만큼의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그들은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것은 마치 이집트 세대의 히브리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땅을 차지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약속만 믿고 이 끝없는 광야행군을 지속할 가치가 과연 있느냐는 의문에 빠졌던 것과 같다.

또 유대인들에게는 다른 민족에게는 없는 독특한 약속들이 있었다. 예루살렘성전 예배중심의 신정국가회복,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세계통합과 통치와 같은 희망(Ha-Tikvah)이 있었다. 저자가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언급한 이유가 바로 유대인들의 이런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같은 희망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슈아가 그리스도요 하늘 예루살렘성전의 큰 대제사장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영적 가르침에 반기를 들었다.

여기에는 가치문제가 있다. 영적 가치가 세속적 가치보다 과연 큰가? 세속적 가치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영적 가치가 과연 대단한가? 이 물음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은 분명했다. 땅의 것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하다. 하지만 하늘의 것은 영원하고 완전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궁극적인 약속들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땅의 것들일 수 없고, 영원하고 완전한 하늘의 것들이었다. 따라서 저자는 유대인들의 희망과 참 안식은 필연적으로 일시적이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는 성전예배중심의 신정국가나 지상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세계통합과 통치에 있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아 영원하고 흔들림 없는 견고한 하늘 가나안땅에 들어가 참 안식을 얻는데 있다고 설파한다. 또 저자는 이 같은 사실을 믿고 그리스도교에 개종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유대교로 회귀하려는 유대인들에게, 배움의 시간으로 보면 그 같은 동족을 말려야할 자들인데,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할 자들이 되었고, 갓난아이처럼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할 자들이 되었다며 탄식한다. 이 탄식이 어디 유대인들에게 국한된 것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