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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7 18:30
더 좋은 것17: 더 좋은 언약의 보증(2)(히 7:11-2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64  

더 좋은 것17: 더 좋은 언약의 보증(2)(히 7:11-28)

시편 110편의 해석(1)

히브리서 저자는 7장 11-28절을 시편 110편에 근거하여 설명하였다. 시편 110편의 내용은 이렇다.

야훼께서 내 주군(to my master)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야훼께서 주군의 권능의 홀을 시온에서부터 뻗쳐 주실 것이니, 주군께서는 원수들 가운데에서 다스리십시오. 주군께서 거룩한 산에서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시는 날에 주군의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고, 아침 동이 틀 때에 새벽이슬이 맺히듯이, 젊은이들이 주군께로 모여들 것입니다. 야훼께서 맹세하시기를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 계열을 따른 제사장이다.”고 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 것입니다. 주군의 오른쪽에 계신 야훼께서 그 분노의 날에 왕들을 치시고, 민족들을 심판하셔서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며 넓은 땅의 우두머리를 치실 것입니다. 야훼께서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머리를 치켜드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 41-44절에서 이 시편의 저자가 다윗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서 저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 구약성서의 성구들을 유대교인들이 이해한 문자적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고, 영적 예표적 모형적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교 랍비들은 신약성서 저자들이 구약성서의 구절들을 왜곡했거나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 유대교 출신의 유대인들이었던 신약성서 저자들이 구약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몰랐거나 오해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영적, 예표적, 모형적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이 의도적 해석에서 비롯되었다.

유대교 랍비들이 신약성서의 잘못된 구약성서 인용으로 꼽는 대표적인 구절이 시편 110편이다. 유대교 랍비들이 신약성서 저자들이 구약성서를 잘못 인용했거나 오해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들이 구약성서를 문자적으로만 읽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기 때문이며, 성령의 인성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성서는 유대민족사에 관련된 문자적 글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영적 예표적 모형적 의미로 읽어야할 이유가 없고, 성삼위일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으며, 오히려 삼위일체 신앙을 신성모독과 우상숭배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신약성서 저자들은 성령의 영감으로 된 구약성서는 문자적 의미 그 이상의 깊은 영적 예표적 모형적 의미가 담겼다고 믿고 해석함으로써 유대교라는 소수민족종교를 그리스도교라는 전 인류를 위한 종교로 발전시켰다.

시편 110편의 표제는 ‘미츠모르 레-다비드’(Mizmor l’David)이다. ‘미츠모르’(Mizmor)는 ‘노래’(a song)란 뜻이고, ‘레-다비드’(l’David)는 ’다윗의,’ ‘다윗에 의한,’ ‘다윗에 관한’이란 뜻이다. 따라서 ‘다윗의 시’란 표제는 ‘다윗의 노래’ 또는 ‘다윗에 관한 노래’란 뜻이 된다. 시편 110편은 다윗이 저술했으므로 ‘다윗의 노래’이고, 그 노래를 성전예배 때 레위인 성가대가 불렀으면 ‘다윗에 관한 노래’가 된다.

시편 110편의 해석(2)

그러므로 시편 110편 1절, “야훼께서 내 주군(to my master)께 말씀하시기를”에서 “내 주군”은 유대교 랍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차적으로 다윗 자신을 지칭한 것일 수 있다. 특히 레위인 성가대가 불렀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을 받은 다윗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지칭했을 수 있다. 이 후자를 장차 올 메시아라고 이해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만일 시편 110편이 다윗이 아닌 바벨론에 유배된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페르시아제국 초기나 그 이후에 고토에 돌아와 재건에 힘썼던 누군가에 의해서 쓰인 ’다윗에 관한 시‘라면, 다윗은 모세와 함께 장차 올 메시아의 선구자였으므로 “내 주군”은 장차 올 메시아(그리스도)를 희망한 노래였을 수 있다. 시편 110편 전체 내용이 역대기 이념적 메시아사상을 담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110편 4절, “야훼께서 맹세하시기를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 계열을 따른 제사장이다.’고 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 것입니다.”를 근거로 히브리서 7장 11절에서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또 12절에서 “제사장 직분이 변하면, 율법도 반드시 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야훼께서 맹세하시기를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 계열을 따른 제사장이다.’고 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 것입니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멜기세덱 계열은 아론 계열이 아니고, 성전봉사를 해본 일도 없으며, 심지어 야곱의 후손도 아니다. 그런데도 야훼께서는 멜기세덱 계열의 사제직을 인정하셨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 속하고, 성전봉사를 해본 일이 없지만, 이 멜기세덱 계열에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히브리서 저자는 16절에서 아론 계열의 법을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이라고 폄훼하였고, 멜기세덱 계열의 법을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라고 치켜세웠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 이유를 18-19절에서 “이전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지되었는데, 이는 율법이 아무 것도 완전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또 저자는 “그 대신에 더 좋은 희망이 주어졌고,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다가간다.”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20절 이하에서 그 더 좋은 희망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시편 110편의 해석(3)

히브리서 저자는 7장 21절에서 시편 110편의 “내 주군”(to my master)을 명백히 오실 자 메시아를 지칭한 것이고, 그 주군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야훼께서 맹세로 세우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22절에서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고 선언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7장 2-3절에서 멜기세덱을 의의 왕,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하였다. 이는 멜기세덱이 장차 올 메시아 곧 하나님의 아들의 예표란 뜻이다. 멜기세덱이 장차 올 자로 예언된 그리스도의 예표이므로, 그분의 대제사장 직책은 영원하여 퇴직이 없다고 하였다. 반면에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은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피조물이므로 그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고 늘 새로운 사람이 그 사제직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23절에서 말한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온전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25-28절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그분은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적합하니, 그분은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시고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로부터 떠나계시고 하늘보다 높아지신 분이시다. 그분은 다른 제사장처럼 먼저 자신의 죄를 위하여 그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희생 제물을 드리실 필요가 없으니, 그분께서 자신을 드려 이 일을 단번에 이루셨기 때문이다. 율법은 연약함을 지닌 사람들을 대제사장들로 세웠으나, 율법 후에 주어진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웠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7:22)이시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8:6)이시며, 더 좋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고 권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