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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5 12:28
더 좋은 것19: 이동성막(미쉬칸)(1)(히 9:1-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2  

더 좋은 것19: 이동성막(미쉬칸)(1)(9:1-10)

하나님 보좌방의 모형

히브리서 91-10절은 옛 언약에 따른 성막에 관한 말씀이다. 저자는 1절에서 옛 언약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이 있었고, 하늘 하나님의 성전의 예표이자 모형과 그림자인 이동성막이 있었다고 전한다. 2-7절은 이 지상 이동성막의 구조와 기물 및 예법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8-10절은 그 같은 성막과 성막구조와 기물 및 예법이 새 언약에 따른 새 질서 전까지만 잠정적으로 유효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든 것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율법이고, 다른 하나는 성막과 성전이었다. 율법(토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체결한 시내산 언약의 내용이다. 이 언약의 내용, 곧 하나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의 특권을 유지해갈 수 있었다.

성막(미쉬칸)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회중이 주둔한 중앙지역에 설치한 성소로써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과의 만남과 하나님의 치유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이 성막제조에 필요한 재료들과 지성소에 안치될 언약궤와 속죄소, 또 성소에 안치될 떡(진설병) 상과 등대(메노라) 제조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한 말씀들은 출애굽기에 실려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성막은 하늘보좌방의 모형이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담긴 증거궤라 불리는 언약궤가 있었고, 이 궤는 야훼가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상징하였다. 언약궤 상단의 덮개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속죄소(혹은 시은소, mercy seat)였다. 이 속죄소 양 끝에는 각각의 그룹천사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25:20)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5:22)고 하셨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속죄소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였다. 이 속죄소에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 초막절(추석, 티쉬레이 15) 축제 5일전인 대속죄일(Yom Kippur, 티쉬레이 10)에 들어가 자기 자신과 백성의 속죄를 위해 염소피를 뿌렸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

성막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다. 성막은 광야시대에 조립과 분리와 운반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든 이동식 미쉬칸 곧 하나님의 집이었다. 가나안 주거시대에는 솔로몬이 최초로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하였고, 바벨론에 망한 후에는 스룹바벨이 재건하였으며,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 대왕이 성전증축에 힘쓰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하루 세 번 오전 정오 오후에 바치던 성전제사가 중단 되었고, 주전 586년 이후 바벨론 유배기 때 시작된 회당기도회가 성전제사를 대신하게 되었다. 바벨론 유배이후 유대교인들은 하루 세 번 오전 오후 저녁에 회당에 모여 쉐모네 에스레이라 불리는 18개의 기도를 바쳤고, 주후 70년 이후부터는 19개의 기도를 바친다. 주목할 것은 성전이 예루살렘 시온에 단 하나만 허용되는 반면에 회당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1:12)마다에 성인 가장 열 명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지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초창기 예배의식과 예배당구조에 있어서 회당기도회 및 회당구조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유대민족 종교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계종교로 발전되었다. 그리스도교예배가 회당기도회와 크게 다른 점은 삼위일체 신앙고백과 주의 만찬의식이다. 유대교인들은 회당기도회 때 성전제사를 대신해서 이스라엘나라의 회복과 메시아의 오심을 기원하는 19개의 기도문들을 낭송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제사를 대신해서 주의 만찬의식을 거행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흠숭한다.

성막시대에는 하나님이 성막에 계신다는 표인 쉐키나’(구름기둥과 불기둥)가 성막위에 있었다. 쉐키나가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일상의 일을 중지하고 자기의 짐을 꾸린 후 쉐키나를 따라 나섰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려고 길을 떠나시기 때문이다쉐키나가 길을 떠나면 언약궤가 쉐키나의 뒤를 따랐고, 그 뒤를 백성이 따랐다. 쉐키나는 항상 사흘 길을 앞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였다. 그러다가 쉐키나가 어느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 그곳에 성막을 세우고, 성막 주위 사방에 각 지파 별로 진을 쳤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대와 같이 성막을 호위하며 그곳에서 쉐키나가 떠오를 때가지 진을 치고 거주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

집회와 속죄의 장소

성막은 회막’(meeting tent)이라고 불렸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란 뜻이다. 따라서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과 교제가 이뤄지는 곳이요, 만남의 장소였으며, 제사를 바치는 장소였다. 성막과 성전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상단 덮개에는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이 임하여계신 속죄소가 있었다. 따라서 성막과 성전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이었다. 예물을 들고 성막과 성전에로 나가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기 위함이었다.

성막과 성전은 속죄와 치유가 이뤄지는 백성을 위한 장소였다. 죄의 삯은 죽음이다. 죗값을 대신할 제물을 바치게 함으로써 백성의 죽음을 대신하게 했던 장소이다. 따라서 성막과 성전은 백성을 위한 신성한 장소요, 백성의 속죄와 치유를 위한 거룩한 장소였다. 죄와 제물을 함께 가져와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제물에 예배자의 죄를 전가시켜 희생시킴으로써 죄 사함을 받고 삶을 치유 받게 하는 곳이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성막과 성전을 대신하는 곳이 예배당이다. 유대교 회당이 여전히 성막과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상징적으로 유지하고 있고, 가톨릭과 같은 전통교회들이 여전히 성막과 성전의 개념을 유지하고 있지만, 개신교 예배당은 신성한 성막과 성전의 개념보다는 평범한 집회소의 개념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건물에 두지 아니하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에 두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혹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속에 임하여 계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느 곳이든지 간에 하나님이 임하여 계신 신성한 곳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교는 장소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더 큰 무게를 둔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없다면 예배당이라 할지라도 보통의 장소에 불과하다. 그러나 언약백성이 있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라면, 그곳이 아무리 비좁고 누추한 마구간과 같은 곳일지라도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신성한 장소요, 하나님과의 만남과 속죄와 치유가 이뤄지는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신성한 성소가 된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 되고 못되는 것, 하나님의 쉐키나의 인도하심이 있고 없고는 예배당의 크고 작음이나 장엄하고 누추한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이는 구성원들의 태도와 예배의 내용과 신실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