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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6 13:45
더 좋은 것20: 이동성막(미쉬칸)(2)(히 9:11-2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2  

더 좋은 것20: 이동성막(미쉬칸)(2)(9:11-22)

이동성막(미쉬칸)의 성격

히브리서 91-10절은 옛 언약에 따른 성막에 관한 말씀이다. 저자는 1절에서 옛 언약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이 있었고, 하늘 하나님의 성전의 예표이자 모형과 그림자인 이동성막이 있었다고 전한다. 2-7절은 이 지상 이동성막의 구조와 기물 및 예법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8-10절은 그 같은 성막과 구조와 기물 및 예법이 새 언약에 따른 새 질서 전까지만 잠정적으로 유효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2-5절에서 성막은 가운데 휘장을 중심으로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었는데, 성소에는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다고 하였고, 지성소 서편에는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다면서 성막의 내실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금향로의 위치는 지성소가 아닌 성소의 휘장 앞에 있었다. 만일 금향로가 지성소에 있었다면, 당번 제사장들이 향을 피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6절에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듯이, 제비뽑기에 당첨된 당번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 등대의 일곱 등잔들에 기름을 채우고 불을 끄거나 켜는 일, 떡상에 놓인 진설병을 일주일에 한 번씩 바꿔놓는 일, 향로에 향을 피우는 일 등을 했지만, 7절의 설명에서 보듯이, 대제사장이외에는 그조차도 대속죄일 하루를 빼고는 아무라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욤키푸르, 티쉬레이 10)에 지성소에 들어가는 이유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속죄소에 염소피를 뿌리기 위함이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8절에서 성령께서 보여주시는 바로는 성소가 그대로 있었을 때까지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열리지 못했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성소휘장이 가로막고 있을 때에는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4:16) 수 없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은혜의 보좌는 법궤 덮개 속죄소를 말한다. 또 저자는 9절에서 성막을 현재까지의 비유다고 말한다. 여기서 비유는 이동성막이 하늘 성전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막제도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10절에서는 유대교의 음식법, 그릇씻기법, 손씻기법 등에서 보듯이, 성막제도도 그 같은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고 하였다.

더 훌륭하고 완전한 장막

히브리서 저자가 성막제도를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다.”고 한 것은 그것이 이미 더 좋은 새 언약의 복음 곧 참되고 영원한 하늘의 것으로 바꿨다는 것을 말하고자한 것이다. 저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육체가 찢겨지시고 피를 흘리신 것은 사람들이 보좌 앞으로 나아가 속죄의 은혜를 입지 못하게 가로막는 성소휘장을 쪼갠 것과 같다고 말한다.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되었다”(10:19)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민족의 벽, 성별의 벽, 신분의 벽, 계급의 벽이 모두 무너졌다고 말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색깔에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길이 활짝 열렸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11-12절에서 예수님이 이처럼 이미 이루어진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분,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막, 곧 피조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에 들어가신 분,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뿌림으로써 인류에게 속죄 받을 길을 마련해주신 분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는 성막과 대제사장이 지상에 속한 것이 아닌 하늘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13-14절에서 모세의 율법과 규례대로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treyf)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kosher) 그들이 거룩하게(kadosh) 되는데,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친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만들어 죽음의 행실에서 벗어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히브리서 저자가 옛 언약인 율법과 규례에 의한 것보다 더 좋은 대제사장, 더 좋은 제물, 더 좋은 속죄의 길, 새 언약인 복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 언약의 중보자

옛 언약의 내용은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과 규례들이지만, 그 언약의 핵심은 가나안땅이다.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백성이 그 언약의 내용인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쌍방계약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지켜내지 못하였다. 아브라함이후 지금까지 대략 4천 년간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의 주권을 지켜낸 기간이 1천년을 넘지 못했고, 히브리서 기록 때까지 2천 년간 주권을 지켜낸 기간은 그 절반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15절에서 사람들이 무한하고 흔들림 없는 참 안식의 땅을 희망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써 그 자신의 보혈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게 하셨으며,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은혜로 그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라고 말했다.

히브리서 저자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지 그 이유를 16-22절에서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마치 유언이 유언한 자가 죽어야 유효하고, 효력을 발휘하듯이, 하나님과의 언약도 죽음이라는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형적 사례가 시내산 언약식인데, 이때도 피로써 세워졌다는 것이다.

옛 언약식은 출애굽기 24장에 실려 있다. 이때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는 의식이 있었다. 모세는 소들의 피를 받아 반은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린 다음에 기록한 언약서 곧 율법서를 백성에게 읽어주었고, 백성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고 응답하였다. 그러자 모세가 양푼에 담은 피를 백성에게 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 과정을 히브리서 저자는 출애굽기 12, 레위기 14, 민수기 19장에 실린 예법에 준하여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다”(19-21)고 설명하였다. 이로써 저자는 22절에서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해지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로 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지를 변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