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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0 17:00
더 좋은 것21: 이동성막(미쉬칸)(3)(히 9:23-2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08  

더 좋은 것21: 이동성막(미쉬칸)(3)(9:23-28)

새 언약

예레미야는 정권의 탄압의 속에서 남유다왕국의 멸망을 지켜봤던 눈물의 예언자였다.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요시야 왕이 자주권 확보를 위해 이집트 군대에 맞서다가 주전 609년 므깃도에서 전사하였고, 그로부터 23년만인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이 파괴되며 백성이 사로잡혀 바벨론에 유배되는 것을 목도한 인물이다. 이로 인해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선포하였는데, 이는 유다왕국의 패망에 따른 절망과 좌절을 극복할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새로운 종교를 내다본 것이었다.

예레미야는 예언서 3129-30절에서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고 선언하였는데, 이것은 표면적이고 전체적인 시내산 언약공동체에 던진 시한폭탄이었다. 표면적이고 전체적인 율법공동체에서 개인은 그 존재가치가 미미하였다. 개인은 공동체에 부속된 일개의 톱니바퀴에 불과하였다. 개인은 군단에 소속한 병사와 같고, 병사 개인의 책임은 군단 전체의 책임과 같았다. 따라서 유대인 개인의 행위에 대한 응보는 선한 일은 자손 천대까지 나쁜 일은 자손 삼대까지 간다고 했던 것이다. 이에 예레미야는 오는 시대는 새 언약에 따른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새로운 종교시대가 될 것을 선포하였다. 그 선포가 바로 예레미야서 3131-33절의 말씀이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까지의 언약이란 외형적인 돌에 새긴 것이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사람들 마음에 새겨지는 언약이다. 모세를 통해서 시내산에서 체결된 옛 언약은 돌의 깨짐과 함께 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각자의 마음속에 새겨지는 새 언약은 영원히 깨지지 않는다. 이 새 언약이 무엇인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드러났다.

야훼의 종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제사나 성전 또는 율법과 규례 등 외부적인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새 언약을 제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가 주창한 새 언약이 실현되는 것을 살아서 보지는 못하였다.

2이사야는 그 유명한 이사야 53편을 노래하였다. 5절에서 그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고 노래하였다. 여기서 제2이사야는 찔림과 상함과 징계를 받아 채찍에 맞은 야훼의 종곧 이스라엘로 인해서 허물과 죄악의 사함을 받고, 평화를 누리는 회복시대가 도래할 것을 노래하였다. 이뿐 아니라, 유배생활을 끝내고 살아남은 이스라엘은 열방의 빛 야훼의 종으로서 곧 개방될 구원시대에서 모든 육체가 야훼의 영광을 보게 할 것이라고 노래하였다. 국가의 존망이 위태롭던 시기에 활동한 하박국 예언자도 때가 되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2:14)고 노래하였다.

유대교인들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시대와 제2이사야가 예언한 야훼의 영광을 보게 될 구원시대는 아직까지 도래하지 않았고 곧 오실 모쉬아크에 의해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신약성서 저자들은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특히 그분의 십자가 수난을 통해서 이미 성취되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와 같은 신약성서 저자들은 야훼의 종또는 수난의 종을 이스라엘로 해석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라고 해석하였고, 그분의 피 뿌림으로써 새 언약이 체결되었다고 믿었다. 특히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것들이 더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저자가 말하는 더 좋은 것구원에 속한 것”(6:9)으로써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더 좋은 희망이다(7:19). 이 희망은 우리가 율법의 방법으로는 가망이 없던 하나님께로 나아가 생명을 얻을 길이 새롭게 열렸기 때문이다.

둘째, “더 좋은 언약이다(7:22). 모세가 중개한 옛 언약은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힘든 율법이지만, 예수님이 중개한 새 언약은 하나님께로 나아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복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구원에 속한 더 좋은 것들(1)

셋째, “더 아름다운 직분이다(8:6). 모세가 옛 언약식 때 중보자였던 것처럼, 예수님도 새 언약식의 중보자로 오셨는데, 예수님의 것이 모세의 것보다 더 아름다운 직분이기 때문이다.

넷째, “더 좋은 제물이다(9:23). 율법에 따른 제물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으로써 율법의 지시대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곧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더 좋은 부활이다(11:35). 참 안식은 지상 가나안땅에서 얻지 못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좋은 하늘 가나안땅에서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처럼 지상 가나안땅에 희망을 두지 않고, 부활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좋은 곳에서 안식하기를 희망하였다(11:40).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더 좋은 것들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924-28절에서 왜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신지, 왜 레위 계열의 제사장이 아니신지, 왜 지상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섬기지 않으셨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것들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실필요가 없었다. 지상 성소의 실체인 하늘 성소에 바로 들어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속죄소가 아닌 영화로우신 하나님 바로 그분 앞에 서실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신다(24).

둘째, 지상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은 매년 대속죄일 때마다 희생된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야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의 자기희생으로써 지상의 제사들을 완성시키셨다(25).

셋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자기를 희생시킨 단 한 번의 제사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26).

넷째,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승리, 곧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다.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이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날 이 최후심판을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다(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