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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2 07:00
더 좋은 것22: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신 예수님(1)(히 10:1-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3  

더 좋은 것22: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신 예수님(1)(10:1-18)

구원에 속한 더 좋은 것들(2)

세례 요한이 왜 그분은 흥하여야하고 나는 쇠하여야한다”(3:30)고 말했는가? 여기서 그분은예수님을 지칭한 것으로써 예수님은 그리스도교를 세우신 분이다. 따라서 그분은 흥하여야한다는 그분이 세우신 그리스도교가 흥하여야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은 세례 요한 자신을 지칭한 것으로써 신약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구약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이다. 따라서 나는 쇠하여야한다는 세례 요한의 쇠함과 더불어 유대교가 쇠하여야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세례 요한의 이 유명한 말은, 유대교 입장에서는 정말 터무니없는 말이겠지만,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는 정말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유언과도 같은 이 말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에 관련된 것들을 나쁘다거나 악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즐겨 쓴 더 좋은 것이란 말은 그냥 좋은 것과 비교해서 더욱 좋은 것이란 뜻이다. 저자의 이 비교는 총체적으로 더 좋다가 아니라 최소한 구원에 속한 것에서 더 좋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약의 것들이 구원에 속한 것에서 한층 더 큰 보물로 새로 부각된 것이라면, 구약의 것들은 구원에 속한 것에서 이전시대에 일시적으로 좋은 것에 불과하였다. 여기서 구약의 것들이 좋은 것이었다는 뜻은 흠이 없거나 완전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것들에 비교해서 탁월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전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타나면 이전에 좋았던 것이라도 더 이상 이전 것을 고집하지 않게 되듯이 새 것으로 인해서 옛 것은 자연스럽게 폐기되고 만다. 이것은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와 한국 최초의 신학자 최병헌(崔炳憲, 1858-1927) 목사가 지적한 것과도 일치된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 4편 문명의 쇠퇴>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일시적인 자아를 우상화하는 가장 유명한 역사적 사례는 신약성경에 폭로된 유대인의 과오이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시리아 문명의 요람기에 시작하여 예언자 시대가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스라엘과 유대의 백성은 일신교의 종교사상에 도달함으로써, 그 주위에 사는 시리아 사회의 다른 민족들보다 단연 뛰어나게 되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정신적 보물을 강하게 의식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당연하였으나, 그 정신적 성장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단계이기는 하였지만, 하나의 과도적인 단계에 불과한 것을 우상화하는 과오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은 확실히 무상(無上)의 정신적 통찰력을 타고난 민족이었지만,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진리를 발견한 후에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절반진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들은 유일한 참신을 이스라엘이 발견한 것은 이스라엘 자체가 신()의 선민임을 계시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절반 진리는, 그들이 가까스로 도달한 일시적인 정신적 탁월성을 신이 자기들에게 영원한 성스런 약속으로써 부여한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과오에 빠지게 하였던 것이다. 그 천부의 재능을 어리석게도 땅에 숨겨둠으로써 그것을 활용할 줄 몰랐던 그들은 신()이 나사렛 예수의 강림을 통하여 자기들에게 제공한 한층 더 큰 보물을 거절하였던 것이다.

구원에 속한 더 좋은 것들(3)

한국 그리스도교 초기 신학자였던 최병헌(崔炳憲, 1858-1927) 목사의 저술 가운데 셩산유람긔”(聖山遊覽記)란 글이 있다. 이 글에는 명산인 성산(聖山) 영대(靈臺)에 유교의 선비인 진도(眞道)와 불교의 도승 원각(圓覺)과 도교의 선사 백운(白雲) 그리고 그리스도인 신천옹(信天翁) 등이 모여 사흘간 펼친 토론 내용을 이야기체로 기록하고 있다. 최병헌 목사는 신천옹(信天翁)이 유교에 내세론(來世論)이 없음을 지적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여름 벌네는 겨울의 어름을 말할 수 없고 우물 안의 개고리는 하늘이 적다 하나니 이는 정()히 선생을 가르쳐 말한 것이다... 공자가 비록 하나님이 내신 성인(聖人)이긴 하나 날도와 죽는 것(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십자가의 도리)을 아지 못하심이 변고가 아니어늘 왜 신의 말을 믿지 않는가(<신학월보> 229-231).

또 신천옹(信天翁)이 불교에 유신관(有神觀)이 없음을 지적하는 글에서는 천지만유(天地萬有)를 창조하신 주재외(主宰外)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함은 실()로 불가사의로다”(<만종일련(萬宗一?)> 39. 하나의 진리 곧 그리스도교를 통해서 여러 종교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음을 논한 책)고 하였고, 원각대사(圓覺大師)를 향해서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대사는 이왕에 불교를 숭상하기로 천당지옥이 있음을 믿거니와 능히 불교의 허무함을 버리고 예수교의 진실함을 좃치리가... 소식채죽(疏食菜粥, 거친 음식과 풀죽)과 고량옥식(膏粮玉食, 기름지고 맛난 음식)이 다같이 음식이로되 귀천(貴賤)과 미악(美惡)이 있나니 옥식(玉食)을 만나지 못하여서는 초식(草食)을 먹으려니와 옥식(玉食)을 보고도 의심하며 먹지 아니하면 실로 어리석은 사람의 지혜 없는 일이라(<신학월보> 230쪽 이하).

유대교의 역사적 사명과 의미가 없지 아니하나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후에는 그 위치가 마치 밤의 달과 낮의 해처럼 바뀌게 되었다. 밤에는 달이 빛 구실을 하지만, 해가 나타난 낮에는 달이 빛을 잃듯이, 곡식이 있을 때에는 초식을 하지 않듯이, 신형에 밀려 구형이 사라지듯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님으로 믿는 것이 그와 같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이다.

구원에 속한 더 좋은 것들(4)

히브리서 101-18절은 71절부터 시작된 예수님에 관한 세 번째 선포에 해당된다. 저자는 101-4절에서 율법은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이지 실체가 아니다. 해마다 대속죄일에 반복되는 희생제사로써는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하게 할 수 없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5-9절에서는 시편 406-8(칠십인역)을 인용하여 율법을 따라 드리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하나님은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려고 세상에 내려오셨고,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다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10-18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다. 제사장들이 드리는 반복된 제사는 죄를 없앨 수가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의 영원히 유효한 희생 제사를 드리신 뒤에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다고 말한다. 이어서 예레미야서 3133-34절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체결하시고, “나는 그들의 죄와 불법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죄와 불법이 용서되었으므로 죄를 사하는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히브리서 저자는 옛 언약은 그림자요, 새 언약은 실체라고 주장한다. 이 내용은 다음과 같이 표로 작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