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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4 16:28
더 좋은 것24: 그리스도인의 인내와 믿음(1)(히 10:26-39)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1  

더 좋은 것24: 그리스도인의 인내와 믿음(1)(10:26-39)

믿음과 인내

성서는 믿음과 인내에 관한 글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신실한 믿음과 인내로써 이미 받은 구원의 약속을 쟁취하라고 권면한다. 이집트세대의 히브리인들이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약속받고서도 광야에서의 고난의 행군시기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순종을 반복하다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기는 자들에게는 상과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이 점에 대한 대표적인 글이 히브리서와 계시록이다. 히브리서 1026-39절의 말씀은 대충 이런 내용이다.

첫째, 진리의 지식을 얻은 뒤에 일부러 죄를 지으면, 그 때에는 속죄 제사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26).

둘째, 신실한 믿음과 인내를 보이지 못하고 배신했을 때, 남은 것은 무서운 심판과 그들을 삼킬 맹렬한 불뿐이라고 말한다(26).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은혜의 성령을 모욕한 사람이 얼마나 더 무서운 벌을 받게 될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29). 여기서 생각하라는 이집트세대의 히브리인들이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약속하시고 이집트노예에서 해방시켜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시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광야에서의 고난의 행군시기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순종을 반복하다가 그들을 삼킨 맹렬한 불 심판을 받아 광야에서 죽은 것과 끝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셋째, 하나님을 처음 믿고, 구원의 빛을 받은 뒤에 그 숫한 고난의 싸움을 견디고 이긴 첫 사랑의 때를 회고해 보라는 것이다(32). 그 시절에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고, 동일한 처지에 놓인 교우들의 동반자가 되며,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재산몰수를 당하고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일을 기쁨으로 당하던 시절을 생각하라는 것이다(33-34).

믿음의 종류

고생 실컷 하고, 머지않아 수고의 대가를 받아 영생복락을 누릴 텐데, 왜 이제 와서 쪽박을 차려고 하는가, 그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아는가라고 경고하는 말씀이다. 바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서도 안식을 얻기까지 잠시 겪는 시련을 견디지 못하여 젖과 꿀을 먹지 못한 조상들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넷째,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동이다. 믿음의 행동은 한번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참고 인내하며 용기 있게 전진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 큰 상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나서, 약속하신 상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35-36).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과 인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다섯째, 수고를 마치고 인내의 결실을 수확할 때가 멀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다는 것이다. 그분은 결코 지체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뒤로 물러서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인내와 신실한 믿음을 보이고 영생을 얻을 사람들이다(37-39).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홍해를 건넌 히브리인들의 행군은, 비록 그것이 고난의 연속이었을지라도, 점점 가나안땅에 다가서는 것이었다. 가나안땅이 멀리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뒤로 물러서거나 주저앉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세대의 히브리인 대부분이 하나님을 배신한 대가로 멸망당하고 말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되지 말자는 것이 히브리서의 가르침이다. 신실한 믿음과 인내로써 최후승리자가 되자는 것이 히브리서의 권면이다.

믿음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했을 때, 그 믿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마음에 믿는 것을 말한다(10:9). 이 믿음을 통해서 은혜로 값없이 선물로 구원의 꽃을 피우지만, 이 꽃에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신실한 믿음과 인내이다. 신실한 믿음과 인내는 믿음으로 피운 구원의 꽃을 열매 맺게 한다.

믿음의 연단

악한 세상의 상징인 이집트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곧바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에서 40년간 단련을 받은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을 받고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채 여전히 사막 같은 세상에서 믿음의 연단을 받는 것의 모형이자 그림자이다. 그러나 믿음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나 역경은 재앙이나 저주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재앙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장차 겪게 될 무서운 심판과 저주이지만, 환난과 역경은 구원의 약속을 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훈련이자 연단이기 때문이다. 서정주 시인의 노래처럼, 봄의 소쩍새 울음과 여름의 천둥과 늦가을의 서리가 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연단의 과정인 것처럼, 신앙인의 시련과 역경은 보다 큰 축복을 얻기 위한 연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신실한 믿음과 인내이다.

신약성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신실한 믿음과 인내의 모범자로서 각각 예수님과 바울을 설정하고 있다.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길이 예수님께서 믿음과 인내로써 걸었던 순례자의 길이었고, 바울이 걸었던 길이었으며, 수많은 주의 백성들이 걸었던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의 길, 구원의 길, 영광의 길, 축복의 길이지, 저주와 죽음의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그 길을 걷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시다.

재앙과 환난의 차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구원받은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글이 히브리서와 계시록이다. 계시록 141-7절을 보면, 힘들고 고달픈 길이지만, 생명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던 사람들이다. 고문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사람들이다. 거짓말하지 않고, 흠이 없는 신앙생활로 예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하며 따랐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계시록 152-3절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 앞 불이 섞인 유리바다 해변에 서서 새 노래, 승리의 노래, 모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계시록 716-17절을 보면, 다시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더위에 쓰러지지 않고, 햇빛에 화상을 입지 않고,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되고, 모든 눈물을 씻기고, 구원의 흰옷을 입으며, 빛나는 승리의 월계관을 쓸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