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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4 12:34
더 좋은 것27: 그리스도인의 인내와 믿음(4)(히 11:33-4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50  

더 좋은 것27: 그리스도인의 인내와 믿음(4)(11:33-40)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영성(1)

믿음의 영웅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군대를 물리쳤다. 믿음의 여걸들도 믿음으로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만났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또 믿음의 영웅들은 조롱을 받고, 채찍으로 맞고, 결박을 당하고, 감방에 갇혔지만, 믿음으로 그 시련을 이겼다. 또 그들은 돌로 맞고 톱으로 켜이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맸다. 그런데도 유대교인들이었던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계획을 세우셨고, 그리스도인들을 그 계획 속에 포함시키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을 제쳐놓고 유대교인들만 약속된 것을 받을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든 물리적 총칼의 박해와 이단의 거짓진리에 맞서야 했다. 그래서 성경 66권에는 물리적 박해와 거짓진리로 인해서 성도들이 신앙을 버리지 않도록 권면하는 내용과, 바른 신앙을 변호하는 내용이 많다. 또 성경에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예배와 교육, 조직과 치리를 위한 내용도 많다. 특히 신약성경은 이런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대부분이 기록되었다. 그 이유는 초대교회가 유대당국과 로마당국으로부터 가혹한 박해를 받고 있었고, 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이단자들의 도전을 강하게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이다. 이 땅의 교회들도 총칼의 박해와 거짓진리에 맞서야 했다. 따라서 가혹한 탄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믿음을 지켰던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역사는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영적 문화적 세속적 탄압을 받고 사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이기고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국 기독교의 순교역사는 크게 두 기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다산 정약용의 매형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때로부터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1886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103년에 이르는 이 기간에 가톨릭 신자 1만 여명이 순교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영성(2)

둘째는 190511월 을사보호조약이후 1945815일 해방되기까지 40년간 받았던 일제의 탄압과 해방이후 공산군의 남침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에 개신교에 속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였다. 특히 3·1독립만세운동이 있었던 1919년과 신사참배가 본격적으로 강요되던 1938년 이후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어 구금되었고, 참혹한 고문을 당하거나 처형되었다.

6·25, 공산군의 만행으로 인한 그리스도교의 피해는 초기 가톨릭교회가 당한 박해와 성격이 같은 것이었다. 조선당국이 가톨릭교회 자체를 이단시하여 박멸하려고 했던 것인 만큼,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를 마약으로 간주했던 공산군들이 유물론 사상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사살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 민족의 그리스도교 순교역사를 보면, 로마제국으로부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받았던 박해에 못잖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성경이 그 시대의 고난당하는 신앙인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 자랑할 만한 특징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조선 땅에 가톨릭 복음을 들여오고 교회를 세운 것이 선교사가 아닌 조선선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이다. 조선 땅에 그리스도교 복음을 들여오고 교회를 세운 것이 선교사가 아닌 선비출신의 조선인 보따리장수들이었다. 둘째는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이 흘린 선혈의 터 위에 세워졌다는 점이다. 셋째는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래가 드문 빠른 성장을 하였다는 점이다. 넷째는 조선 기독교인들의 신앙영성이 매우 뛰어났다는 점이다. 그들의 뛰어난 신앙영성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첫째, 조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는 일을 최우선에 두고 살았다. 경북 상주시 청리면 삼괴2리에 있는 재실 마을에 1890년 중반에 가톨릭 신자인 김삼록이 세운 조선인 모습의 신앙고백비가 있다. 얼굴 부분은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었고, 그 위에 갓을 씌웠다. 김삼록은 얼굴 부분인 십자가 중앙에 천주’(天主)라고 크게 쓰고, 몸통 부분 상단에 천주 성교회 성호 십자가라 쓰고, 그 아래에 첫째로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고, 둘째부터 넷째까지는 성직자들을 직위별로 차례로 위하고, 마지막 다섯째는 교우를 위한다고 적었다. 오직 하나님과 교회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위대한 신앙고백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영성(3)

둘째, 조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분의 차이를 두지 않았다. 교인들은 서로를 교우라고 부르며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신분을 따지지 않았다. 황일광이란 백정출신의 가톨릭 신자가 있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을 모든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보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자, 교우들은 그를 친형제처럼 대우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농담조로 사람들이 너무 점잖게 대해 주기 때문에 내게는 이 세상에 하나, 또 후세에 하나, 이렇게 천당 두 개가 있다.”고 하였다. 또 윤권명이란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종들을 모두 풀어 자유인이 되게 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셋째, 조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유일하게 팔, 다리, 머리를 잘라 전국 각지에 보내는 육시형을 1801년에 당한 전주지방의 순교자 유항검의 처 신희는 배교하고 목숨을 건지라는 관리에게 그리스도교는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남편이 그로 인하여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 있으면서 섬기는 도리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빨리 죽기를 원할 뿐이다.”고 했고, 유항검의 동생 유관검의 처 이육희는 국법이 비록 엄하지만 그리스도교도 소중하다. 살기를 꾀하여 배교하기보다 순교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유항검의 조카 유중성 역시 죽기를 원할 뿐이다. 다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고 대답하였다.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과 이순이 부부도 유항검과 함께 체포되어 참수형을 당했다. 이순이는 유중철과 결혼하였으나 4년간을 부부생활 없이 정결하게 지내다가 참수형을 받았다. 그녀는 망나니 앞에서 매우 침착한 자세로 웃옷을 벗었고 조금도 흩트리지 않고 머리를 도끼 밑에 놓았다고 한다.

1866년 보령 갈매못에서 참수를 당했던 프랑스 신부 다블뤼 주교는 젖먹이가 딸린 여인들이며 노인과 처녀들이 말씀을 듣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서 조그만 선물을 손에 들고 자신이 머문 충남 합덕에서 가까운 신리공소로 3, 6일 또는 8일씩 걸어서 찾아왔고, 잡히면 처형될 것을 잘 알면서도 그 먼 산길을 발이 붓고 피부가 벗겨져 피가 나는 것과 혹심한 추위를 무릅쓰고 찾아왔었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는 밤이 맞도록 설교를 듣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결코 그만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전하였다. 그들은 엄중한 국가법을 알면서도 단 한 번의 예배를 위해서 멀고 험한 산길을 남몰래 숨어서 걸었던 것이고, 그들이 겪었던 혹독한 시련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