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8-05-18 06:59
더 좋은 것28: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히 12:1-13)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5  

더 좋은 것28: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12:1-13)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인내로써 완주하자

히브리서 12장은 네 번째 교훈에 담긴 내용이다. 1-5절까지는 그리스도를 모델로 한 경주에 관한 권면의 글이다. 1절의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11장에 소개된 믿음의 영웅들이다. 그들은 수동적 구경꾼으로서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로서 진리를 고백하고 확증하였으며, 일부는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이다. 비록 그들은 약속의 실체를 받지 못했지만 삶 속에서 약속의 실체를 기다리며 증언한 자들이다. 여기서 약속의 실체를 받지 못했지만이란 뜻은 믿음의 조상들이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곳 지상 가나안 땅은 그림자일 뿐이고, 장차올 더 좋은 실체 곧 하늘 가나안 땅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믿음의 영웅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나라의 땅을 상속받기 위해서 동참할 때까지, 곧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그 땅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하는 자들이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는 시합에 나가 달리는 자가 경주하는 데 방해가 되는 무거운 짐이나 거추장스런 것들을 말한다. 고대 헬라인들이 시합 중에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 경기를 했던 관습에서 나온 말이다. 믿음의 경주를 위해서 거추장스런 죄를 벗어버리자는 것이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는 마라토너처럼 우리가 마땅히 달려야 할 길을 인내로써 완주하자는 뜻이다.

2-3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는 믿음을 창시하시고 완성하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승리의 월계관을 쓰기 위해서 부끄러움도 상관치 않고 적대자들의 박해와 십자가의 고통을 참아내셨고, 그 결과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는 영광을 차지하셨다. 우리가 이 점을 생각한다면, 좌절하거나 주저앉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인내로써 경주하게 된다는 뜻이다.

주님께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마라

예수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약속하셨다(3:21). 바울도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다”(8:17)고 하였다.

히브리서 124절에서 저자는 너희가 죄와 싸우나,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가 생각난다. 5절에서 저자는 잠언 311절을 인용하여 또 하나님께서 아들들에게 하듯 너희에게 말씀해 주신 권면을 잊었다. ‘나의 아들아, 주님의 훈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마라.’”고 하였다. 부모는 아마도 안도현의 시어처럼 제 자식이 언젠가는 자기를 끝닿는 데까지 밀어붙여 활활 타오르기를 바랄 것이다. 한 장의 연탄처럼 제 자식이 뜨거운 밑불위에 올라앉았을 때 낙심하지 않고 밑불의 바통을 이어받아 서서히 벌겋게 달아오르며 찬란한 끝장을 보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도 그와 같다. 부모가 자녀들을 훈련시키듯이, 하나님도 사랑하는 자녀들을 훈련시킨다. 그때 그 훈련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꾸지람을 듣더라도 낙심하지 말며, 그 훈련을 잘 참아 내라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예수님에 비교되는 인물이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은 알케이데스가 자신에게 운명으로 부과된 극한의 시련과 역경을 다 이긴 후에 얻게 된 이름으로써 헤라의 영광이란 뜻이다. 그는 자신에게 부과된 가엾은 운명과 싸울 때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했고, 지혜의 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았으며, 최후까지 신 앞에서 겸손하였다. 그런 그를 두고 독일의 시인 쉴러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용감한 헤라클레스는 끝없이 싸우며 괴로운 가시밭길을 걸었다.... 헤라의 증오는 지상의 모든 고뇌를, 지상의 모든 수고를 그에게 지웠으나, 운명의 생일로부터 저 장렬한 최후의 날까지 그는 이 수고를 훌륭하게 참아내었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바른 길을 달려가라

히브리서 126-13절까지는 훈련과 인내에 관한 권면의 글이다.

부모가 자녀를 훈련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그가 어떻게 사랑받는 자녀이겠는가? 자녀가 마땅히 받아야 할 훈련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생아지, 참 자녀가 아니라고 말한다. 훈련시키는 육신의 부모도 공경해야하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며 훈련을 잘 참고이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더욱이 하나님 아버지의 훈련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훈련이 다 그렀듯이, 받을 당시에는 괴롭지만, 받고나면 고생한 보람이 있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므로 훈련받지 못해 시들부들한 사람처럼,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의 사람이 되지 말고, 훈련을 잘 마쳐서 꼿꼿하고 똑바로 걷는 씩씩한 용사가 되라고 말씀한다.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는 격언이 있듯이, 훈련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안다고 하였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분이 아니시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시련과 연단을 받도록 허락하시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시다. 엄격히 말해서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시험과 시련을 주시지 않고, 그들이 당하는 시험과 시련을 허락하실 뿐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의 시험과 시련이 자기 자신의 문제나 주변 환경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께서 그 시험과 시련을 막아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지 않고, 허락하시는 경우가 많다. 목표를 정해서 가는 길에 산이 나타나면 산을 넘어야 하고, 강이 나타나면 강을 건너야 한다. 바다가 나타난다면, 바다도 건너야 한다. 하늘이 가로막는다면, 하늘을 날아야 한다. 그래야 목표한 지점에 도달할 수가 있다.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듯이, 산과 강과 바다와 하늘이라는 장애물들은 인간들에게 배를 만들게 하고, 자동차를 만들게 하며, 비행기를 만들게 하였다. 시련이 인간에게 기술과학문명을 가져다준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16:33)고 하셨다.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을 최후 승리자가 되어 월계관을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