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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8 07:26
더 좋은 것30: 영원히 한결같으신 예수님(히 13:1-1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2  

더 좋은 것30: 영원히 한결같으신 예수님(13:1-14)

영원히 한결같으신 예수님

하나님이 기울이시는 최대관심은 인간이다. 인간들을 관계단절에서 회복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은 인간관계의 원상회복과 화평을 위해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셨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깨진 관계복원을 위해서 인간들에게 먼저 취해야할 어떤 행동이나 제물을 바치도록 요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이 먼저 솔선해서 화목제물이 되어 희생당하시고 그 사랑의 힘과 신뢰를 바탕으로 깨진 관계가 복원되도록 하셨다. 이 사랑을 성서는 아가페라고 말한다. ‘아가페‘just love’를 말하는 것으로써 의로운 사랑이란 뜻이다. 이 사랑은 자기희생과 자기 포기를 통해서 의로움을 세우는 희생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죄인을 벌줌으로써 세워지지 않고, 죄인을 대신해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세워졌다. 이것을 하나님의 의로운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그리스도인들이 지속적으로 이웃사랑의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내어 공동체발전이란 귀한 열매들을 맺게 하라는 것이 히브리서 131-8절의 내용이다.

인간의 하나님 사랑이나 관심은 이웃사랑에서 증명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을 입으로만 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라고 말씀한다.

나그네와 감옥에 갇힌 자들을 꼭 문자적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 주변에 정신적 영적 물적으로 나그네 된 자들과 갇힌 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정신적 영적 갇힘의 현상을 코쿤현상이라고 말한다. ‘코쿤현상이란 애벌레가 고치를 짓고 그 속에 자신을 가두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코쿤현상은 병든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한테서도 발견된다. 매사를 자기중심에서 남을 생각하고, 자기우상에 빠져서 남을 이단시하는 것도 코쿤현상이다. 자기중심에 갇힌 사람, 자기 우상에 갇힌 사람, 자기 교만에 빠진 사람, 내가 남을 위해서 무엇을 해 줄까를 생각하기보다는 남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헌신적이기 때문에 자기를 가둔 고치를 뚫고 나온 나비가 세상을 향해 날갯짓하며 꽃가루를 옮겨 열매를 맺게 하듯이 정신적 영적 부활의 정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살림의 일이 풍성하다.

사람을 깨끗케 하시는 예수님

가정경제의 어려움만큼 우리를 낙심시키고 팔다리에 기운을 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을 귀하게 여기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권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고, 언제나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 일시적인 것에 착념치 말고, 하늘의 것, 영원한 것을 얻고자 힘쓰며, 말씀으로 신앙을 지도하는 목회자들을 기억하고 본받자고 말한다. 또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으신 예수님을 본받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을 기억하고, 눈과 마음과 생각을 그분에게 고정시켜, 그분에 대한 믿음과 인내를 경주하여 최후의 승자가 되자고 권한다. 그러면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군과 천사와 수를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성도들이 운집한 큰 집회에서 영광스런 월계관을 받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식탁은 제단에 가깝다. 특히 저녁식사는 매우 종교적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식사가 너무 종교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방인들과의 식탁교제를 막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유대교인들은 그들의 종교법에 따른 코숴곧 정한 음식만 먹을 뿐 아니라, 고기제품을 우유제품과 함께 먹을 수 없고, 고기제품에 접촉된 그릇들은 우유제품에 쓸 수 없고, 반대로 우유제품에 접촉된 그릇들은 고기에 쓰일 수 없도록 하고 있어서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사실상 차단시키고 있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그것이 아무리 종교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성결하다 해도, 사람을 깨끗케 하지는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사람을 깨끗케 하는 것은 마음의 죄악을 제거하는 것이지, 특정 음식을 먹고 안 먹는 것에 있지 않다고 하셨다. 죽음의 근원인 죄악을 마음에서 제거하지 않은 채, 음식을 가려 먹는다고 해서 결코 성결해질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주의 만찬은, 안디옥교회를 섬긴 이그나티오스 교부가 에베소 서신에서 밝힌 것처럼, “불사(不死)의 약()이요, 죽음의 해독제이다. 그리스도께서 당한 수치와 고통과 죽음의 십자가에 불사(不死)의 능력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역설(paradox)이 먼 옛날 유대인들에게는 수용하기 힘든 뜨거운 감자였고,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이 역설이 믿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는가를 알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불사의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예식이 바로 성만찬이다.

성문 밖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

이 같은 맥락에서 히브리서 13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다.”고 한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다. “우리에게는 제단이 있는데에서 우리는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하고, ‘제단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 상을 말한다. 그리고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다.”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거나,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축복들에 참여할 분깃이 없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11, “그 짐승의 피는 죄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 밖에서 불태워지기 때문이다.”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제사의 경우에 제사장들은 제물의 일정부분을 자기 몫으로 취하게 되지만, 대제사장이 주관하는 초막절 5일전에 드리는 대속죄제의 경우, 제물을 모두 진영 밖에서 태워버렸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몫이 없었던 점을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12절에서 그리하여 예수께서도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고 한 것은 연중 한번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희생제물이 진영 밖에서 모두 태워졌듯이,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당하신 사실을 말한 것이고, 이 사실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이루신 대속사역의 축복들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차별이 없는 이 대속의 은혜를 값없이 은혜로 입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옛 언약법이나 음식규정에 매이지 말고, “우리도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자고 권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진영 밖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분이 십자가의 수난을 다 참고 견디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고 도달한 곳은 일시적이고 유한한 이 땅의 시온성이 아니고, 저 하늘에 있는 영원한 도시란 점을 14절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바울이 골로새서 32절에서 말한 것처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