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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8 08:21
더 좋은 것32: 히브리서의 핵심메시지(히 10:26-39)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11  
더 좋은 것32: 히브리서의 핵심메시지(히 10:26-39)

히브리서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려하는 유대인들에게 왜 예수님이 메시아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자들이지만, 히브리서는 오히려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왜 그분이 천사나 모세보다 뛰어난 분이신지, 왜 그분이 아론계열의 대제사장들보다 우월한 분이신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유대교인들의 희망의 실상이요 증거이시며, 유대인들이 그토록 바라는 참 안식을 주실 수 있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 분, 장래 좋은 것을 가져오실 분,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신 큰 목자로 소개하였다.

히브리서의 예수님 소개 방법과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처음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과 바벨론유배 전후에 예언된 메시아(제2의 모세, Moshiach)와 신정국가(올람 하바, Olam Ha-Ba) 도래에 대한 오래 묵은 유대교인들의 희망 때문이고, 둘째는 장차 나타날 구원자 제2의 모세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이었다. 유대교인들은 메시아가 단지 인간일 뿐이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적(神的) 혹은 반신적 존재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히브리서는 유대교인들의 이러한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실체와 그림자,’ 혹은 ‘원형과 모형’으로 명확하게 구분지어 설명한다. 유대교인들이 바라는 ‘그 희망’(Ha-Tikvah)의 내용들은 땅의 것이고, 유한한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고, 장차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와 모형에 불과한 것이며, 기독교인들의 희망은 하늘의 것이고, 무한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고, 장차올 좋은 것들의 실체와 원형임을 밝힌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은 땅에 속한 아론계열의 대제사장이나 다윗혈통의 제2모세가 아니라, 천사와 모세보다도 우월하시고, 아론계열의 그 어떤 대제사장들보다 뛰어난 하늘에 속한 분으로서, 육신에 속하여 연약하고 무익하며 폐지된 율법을 따르지 않고, 불멸의 능력을 따라 하나님의 맹세로 된 대제사장으로서, 그 직분이 영원히 보장되어 인류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하늘보다 높이 되신 대제사장이심을 밝힌다.

히브리서 설명의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의 하나는 구약성서내용을 신약성서내용의 모형과 그림자로, 신약성서내용을 구약성서내용의 실체와 원형으로 설명하는 모형론(또는 유형론, typology)이다. 모형론에서는 먼저 있는 것이 나중 있을 더 좋은 것의 모형이요 그림자이며, 나중 있을 것은 먼저 있는 것의 원형이자 실체로 본다. 따라서 ‘구약의 예법과 성막’(9:1)은 신약의 가르침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의 그림자요 모형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은 구약의 예법과 성막의 원형이요 실체가 된다는 설명이다.

히브리서는 성도들이 나아가 도달한 곳은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임을 밝힌다. 성도들의 오름의 행진과 방향은 저 팔레스타인 땅의 시온산과 예루살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시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그곳은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를 끝내고, 그곳에 오르는 날,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군천사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승리자로서 월계관을 받아쓰게 될 곳이고, 진정한 의미의 안식과 쉼을 얻을 곳이다.

히브리서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름의 행진과 그 방향’에 관한 히브리서의 설명이다. 본향을 떠난 삶을 유배생활로 인식하는 유대인들이 동쪽 끝자락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에 눈을 향하고 이주하는 것을 일컬어 ‘시온에 오름’이라 부른다. 이사야 35장 5-10절을 보면, 시온에 이르는 대로(highway)가 언급되어 있다. 이사야 35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메시아시대에 관한 예언이자 이스라엘 회복에 관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지고, 언젠가는 실제로 이스라엘 땅에서 이뤄질 ‘장차올 세상’이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시온에 이르는 대로(highway)가 하늘나라 시온성에 오르는 길로 이해되어지고 있고, 신실한 믿음과 인내가 요구되는 길로 소개되고 있다. 히브리서 12장 22절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시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란 표현을 써가며 ‘장차올 더 좋은 세상’이 하늘나라인 것을 밝히고 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에 관한 히브리서의 설명이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오름의 행진을 성공리에 펼치고 믿음 명예의 전당에 그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약속 받은 것을 문자적으로는 받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히브리서의 해석에 따르면, 그들은 약속받은 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을 뿐이지, 이 땅에서는 그것들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이 이 땅에서는 남의 나라에 얹혀사는 외국인이요, 유배지를 떠도는 나그네인 것을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말한 이유는 그들이 여전히 본향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수천 년에 걸쳐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도 본향을 향해 눈을 고정시키고, 돌아갈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았던 조상들이 그토록 바랐던 ‘그 희망’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나라’ 곧 하늘나라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한 영원한 도시를 마련해 주셨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 그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희망은 이 땅이나 이 땅의 것들이 아니고, 하늘나라에 관한 것들이었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들이 약속을 받았으되, 그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고 죽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에베소서 3장 5-6절의 말씀대로, 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을 함께 나누는 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것을 복음의 신비요, 하나님의 은혜의 결정 속에 있었던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감춰뒀던 비밀이었다고 말한다. 이 복음의 신비로 말미암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고, 한 몸 교회의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모든 축복을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나눌 자격자가 된 것이다.

셋째, ‘장차올 좋은 것’(what is to come)에 대한 히브리서와 신약성서의 설명이다.

(1)‘장차올 좋은 것’은 참 안식을 주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 나라에 들어가 살기 위해서 받아야할 거룩하고 영화로운 부활의 몸을 말한다. 히브리서는 ‘장차올 좋은 것’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6장 9절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더 좋은 것이 있다’는 말씀으로 포문을 연 후에 ‘좋은 소망’(7:19), ‘더 좋은 언약’(7:22), ‘더 좋은 약속’(8:6), ‘장차올 좋은 일’(9:11), ‘장차 나타날 좋은 것’(10:1)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11장에서는 ‘믿음의 사람들’이 ‘더 좋은 것을 사모’하였는데, 그것이 ‘하늘나라였다’고 밝힌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시고, 미리 세워둔 ‘더 좋은 계획’에 따라(40절) 그들을 위한 ‘한 도시’ 곧 하나님의 나라를 마련해 주셨다(16절)고 밝힌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감옥에서 풀려나기를 바라지 않았다’(35절)는 것이다. 바울서신들도 ‘장차올 좋은 일’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5장 5절을 보면,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이 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지만, 영어성경에서는 이 말씀이 “장차올 것을 보장하는 보증금으로써”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번역되었다. 여기서 성령님은 ‘장차올 좋은 것’에 대한 ‘약속’의 ‘보증금’과 ‘인감’으로써 설명되었다. 그리고 바울서신들에서 ‘장차올 좋은 것’은 ‘영원한 집,’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생명,’ ‘부활’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는 부활의 몸을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보장하는 보증금과 인감으로써”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2)‘장차올 좋은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이고, 그 나라에서 받을 상속을 ‘기업’과 ‘후사’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에베소서 1장 21절, 디모데전서 4장 8절, 히브리서 2장 5절은 ‘앞으로 올 세상’을 언급하고 있고, 히브리서 11장 40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고,” 13장 14절에서는 “장차 올 도시” 곧 천성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장차올 나라’에서 받을 상속을 ‘기업’이란 말로 설명하였다. 에베소서 1장 14절을 보면, 고린도후서 5장 5절에서 사용된 “장차올 것을 보장하는 보증금”이란 말 대신에 ‘기업에 대한 보증’이란 말을 쓰고 있어서 우리가 장차 받을 기업, 상속의 내용은 ‘장차올 좋은 세상’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베소서 1장 18절에서는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다.

(3)‘장차올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끝까지 견디는 신실한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6장을 보면, 게으르지 말아야 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12절). 11장을 보면, 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하고 있다.

‘장차올 좋은 일’은 구약성서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그것을 일컬어 신학에서는 ‘묵시문학사상’이라 부르고 있고, 유대교적 배경에서 보면, ‘올람 하바’에 대한 ‘하티크바’ 곧 ‘다가올 세상’에 대한 ‘희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유대교적 배경은 고대 페르시아제국시절에 활동했던 역대기 역사가들의 가나안신정국가이념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테마가 안식이다. 유대인들은 오랜 유배생활에 지쳐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안식은 절대적이고, 신성하며, 지복의 상징이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의 원형(prototype)은 가나안 땅이다. 떠돌이 히브리인들의 후예인 유대인들은 너무 오랜 세월을 노예로서, 유배당한자로서 혹은 피억압자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다. 그들은 그들의 눈을 가나안 땅 예루살렘 시온에로 향하고 산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이 안식개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신약성서의 시각이고, 그 잘못을 바르게 잡고 있는 것이 신약성서이다. 유대인들의 안식개념은 지나치게 민족적이고, 배타적이며, 영토 중심적이다. 그것은 또 지나치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다. 이런 잘못된 안식개념을 우주적이고 탈 민족주의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 신약성서이다. 유대인들의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안식개념을 내세적이고 영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 신약성서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승천하신 예수님을 장차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로 확신하였고, 그분이 선포했던 ‘하나님의 나라’를 참되고 영원한 안식처로, ‘장차올 좋은 일’로, ‘장차올 세상’으로 인식하였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문자적 의미의 이스라엘 왕국이 아니라, 성령님이 예수님을 믿는 자 개개인들에게 임하신 후에 이뤄질 영적 의미의 이스라엘 나라이며, 민족과 신분과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공평하고 값없이 은혜로 열려있는 현재의 영적구원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궁극적으로 이뤄질 부활과 영원한 세계를 성령님을 통해서 약속하고 보장하고 인증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문자적인 세계이고, 아직 이뤄진 적이 없는 미래세계이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장차올 좋은 것’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우리 안에 상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 속에서 이미 우리 가운데서 이뤄졌고, 장래에 이뤄질 거룩하고 영화로운 몸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원한 안식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셨고, “그 약속을 보장하는 보증금과 인감으로써”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장차올 좋은 것들’을 ‘기업’으로 ‘상속’받게 될 ‘후계자들’이고, 이런 일을 미리 계획하고 실천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넷째, 히브리서는 열일곱 차례나 ‘하자’라는 말을 쓰고 있다. 4장에서 다섯 번 쓰고 있는데,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자(1,11절). 신앙을 굳게 지키자(14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16절).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자(16절)고 했고, 6장에서 한번 초보단계에서 벗어나자(1절)고 권했다. 10장에서 네 번에 걸쳐 하나님께 나아가자(22절). 신앙을 굳게 잡자(23절). 서로 격려하자(24절). 모이기를 힘쓰자(25절)고 했으며, 12장에서도 네 번에 걸쳐 인내로써 경주하자(1절). 예수님을 바라보자(2절). 감사드리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자(28절)고 권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3장에서 세 번 예수님이 겪으신 치욕을 짊어지자(13절). 찬양의 제사를 드리자. 입술의 열매를 드리자(15절)고 권했다.

다섯째, 히브리서는 믿음과 인내에 관한 글이다. 히브리서 10장 26-39절은 기록목적에 부합한 글이다. 내용은 이렇다. 진리의 지식을 얻은 뒤에 일부러 죄를 지으면, 그 때에는 속죄 제사가 남아 있지 않다. 믿음과 인내를 보이지 못하고 배신했을 때, 남은 것은 무서운 심판과 그들을 삼킬 맹렬한 불뿐이다. 하나님을 처음 믿고, 구원의 빛을 받은 뒤에 그 숫한 고난의 싸움을 견디고 이긴 첫 사랑의 때를 회고해 보라. 그 시절에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고, 동일한 처지에 놓인 교우들의 동반자가 되며,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재산몰수를 당하고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일을 기쁨으로 당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라.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동이다. 믿음이 있는 행동은 한번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참고 인내하며 용기 있게 전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나서, 약속하신 큰 상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수고를 마치고 인내의 결실을 맺을 때가 멀지 않다.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다. 그분은 결코 지체치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10:35-37). 우리 성도들이 붙들고 놓지 아니한 그 희망과 믿음의 끈이 결국에는 우리를 인생의 미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에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