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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02 14:50
하나뿐인 복음01: 바울의 사도직 논쟁(갈 1: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4  

하나뿐인 복음l01: 바울의 사도직 논쟁(갈 1:1-5)

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제 3차 선교 여행 당시 에베소에서 2년 3개월간 머물고 있던 주후 54년에서 57년 사이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

갈라디아 지방에 대해서는 두 개의 상반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그 하나는 흑해 쪽으로 터키 동북방향에 위치한 북갈라디아로써 벳시누, 다비움, 안기라와 같은 도시들이 포함된 이 지역의 명칭이 갈라디아였다. 다른 하나는 지중해 쪽으로 터키 중남부에 위치한 남갈라디아로써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를 세운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디모데의 고향이며, 바울이 돌에 맞아 구사일생한 루스드라, 더베와 같은 도시들이 행정상 갈라디아주에 속하고 있었다. 바울의 갈라디아서가 갈라디아라는 지역명칭을 가진 북갈라디아에 보내졌는지, 행정상 갈라디아주에 속한 남갈라디아에 보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신언서라 불리는 책이다. 이 서신은 로마서와 함께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서신이다. 루터는 “나는 이 서신과 결혼했다. 이것은 내 아내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갈라디아서를 좋아했고, 고데(Godet)는 “이 서신은 인류역사를 새로 시작하는 기원이다. 이 서신은 인간의 영적 해방에 대한 일찍이 없었던 소중한 문서이다.”라고 말했다.

갈라디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첫째, 1-2장은 바울의 전기적 해설로써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이다. 둘째, 3-4장은 교리적 해설로써 율법의 속박과 이신칭의에 관한 논증이다. 셋째, 5-6장은 윤리적 훈계로써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에 관한 내용이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언제부터인가 유대교적 율법주의자들과 방종적 영지주의자들이 숨어들어 신앙을 왜곡시키고 있었다. 유대교적 율법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이 된 헬라인들에게 구약의 할례의식이나 유대 절기를 지키도록 강요했고, 방종적 영지주의자들은 구원과 자유의 의미를 왜곡시켜 도덕적 방종에 빠져들게 했으며,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에 대해서 강력하게 도전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계시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천명하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잘라 말했다.

본래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의 육체적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나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우대하며, 할 수만 있었다면 눈이라도 빼어 주었으리 만치 바울을 사랑하는 교회였다.

바울은 어떤 인물인가?

첫째, 바리새파 유대인이었다. 바울은 청소년시절 예루살렘에서 힐렐학파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성문토라와 미슈나를 공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힐렐(Hillel)학파는 헬라시대에 샴마이(Shammai)학파와 쌍벽을 이룬 주고트(Zugot, 273BC에 출범)의 한 학파였다. 힐렐학파는 구전토라를 인정할 뿐 아니라 천사, 부활, 사후세계 등 영적세계를 인정한 학파요, 주후 70년대에 요하난 벤자카이와 카말리엘2세가 야브네에 세운 유대교학교의 뿌리이기도 하다.

둘째, 다소가 고향인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이었다. 다소는 스토아철학이 유명한 곳이었다. 스토아철학은 이성을 중시하고 자기부정의 금욕주의를 통한 ‘초연한 마음의 경지’ 곧 ‘아파테이아’(apatheia)를 추구하였다. 바울은 이곳 다소에서 스토아철학과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을 접하였고, 천막제조업을 생업으로 익혔다.

셋째, 율법과 규례 및 수사학과 헬라철학을 공부한 유대인이었다. 바울은 바리새파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에서 실천종교인 유대교를 배웠고,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동굴의 비유의 영향을 받은 알레고리즘과 모형론에도 익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레고리란 성경의 문자 이면에 감춰진 영적인 뜻이 있다고 믿고 해석하는 영해(靈解)를 말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학자 필로는 그의 책 <특별한 법>(De specialibus legibus)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말씀이며, 세상은 그 말씀에 의해서 창조되었다”(I,81)고 하였는데 이것이 알레고리의 한 가지 예이다. 추측하건데, 바울은 구약성경을 알레고리하기보다는 모든 신약성서 저자들이 취했던 방법, 즉 구약의 것을 신약의 것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로 보는 예표론에 능통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넷째, 그리스도교를 핍박하는 유대인이었다. 바울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으므로 유대인의 희망(Ha-Tikvah)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설교에 분노를 참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이스라엘의 희망과 관련되어 있다. 바울과 스데반은 모두 노예들의 후손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전 722년, 605년, 597년, 586년에 각각 근동지방으로, 주전 312년 프톨레미 라구스에 의해서 알렉산드리아로, 주전 63년 폼페이에 의해서 유럽으로 끌러갔다. 이 같은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그들이 꿈꾸는 세상의 정점이었다. 유대인들은 성전중심의 다윗왕국의 회복을 희망하였고, 그 대업을 성취할 자가 제2모세 즉 메시아였다. 그가 와서 성취할 종말세계를 ‘올람 하바(다가올 세상)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다”(행 7:48)는 스데반의 설교는 성전을 폄훼한 말로써 유대인들에게 결단코 용납될 수 없는 모독이었다.

사도직 논쟁

바울의 개종과 사도직에 관한 유대인들 사이의 논쟁은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실존했었다는 증거이자, 예수님 사건이 초기부터 십자가와 부활사건에 집중되었었다는 증거이다. 그분의 복음사역과 가르침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의 후속편이다.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예슈와가 오실 자 메시아였다‘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운동의 뿌리와 줄기라면, 그분의 복음사역과 가르침은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에 해당된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개종과 사도직 논쟁은 그리스도교가 실체적 사실에 근거하였음을 시사한다.

바울의 사도직을 문제 삼아 대적했던 자들은 유대교를 포기하지 못한 에비온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바울이 선포한 복음, 곧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복음에는 차별이 없고, 율법을 실천하는데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회개하고 시인하고 침례를 받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 그렇게 주장할만한 사도직이 바울에게 없다는 것이 에비온파의 주장이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들에 속한 자가 아니었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장 21-22절에 따르면, 사도가 될 자격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요한의 침례로부터 승천하신 날까지 예수님과 함께 다녔던 사람이고, 둘째는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었다. 첫 번째 것에서 바울은 자격에 미달된다.

이 점에 대해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았다.”고 하였다. 이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았다.” 예수님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활시킨 분이시다고 주장하였다. 또 바울은 자신의 글들에서 수차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고전 1:1, 고후 1:1, 골 1:1, 엡 1:1, 딤후 1:1) 또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딤전 1:1) 되었다고 증언하였다. 또 바울은 자신이 부활을 전할 사도가 된 목적을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딛 1:1-2)고 하였다. 이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갈 1:11), 주께 받은 것”(고전 11:23)이라고 하였고,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전 15:2)고 하였다. 바울에게는 개종 후 안디옥교회에 초빙을 받기까지 대략 10여년 정도 예수님과의 영적 교제의 시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