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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02 15:03
하나뿐인 복음02: 다른 복음은 없다(1)(갈 1:6-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51  

하나뿐인 복음02: 다른 복음은 없다(1)(갈 1:6-10)

기로에 선 유대교와 기독교

주후 70년 유대-로마전쟁의 참패로 이스라엘의 모든 정파와 종파들은 소멸되고 오직 바리새파만이 남게 되었다. 로마군에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당시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한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와 그의 제자들은 전쟁직후 로마의 허가를 받아 욥바 남동쪽 20킬로미터 지점, 지중해 동쪽 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야브네’(Japheth/Yavne) 혹은 ‘얌니아’(Jamnia)란 소도시에 율법학교를 세워 성전을 대신할 율법중심의 유대교를 재건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생존에 힘을 쏟아부어야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더 이상 탄압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그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잠재적 위험요소로 보고 회당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파문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때가 요한복음이 기록되던 85년경이었다.

한편 유대-로마전쟁의 참패로 인한 예루살렘교회의 폐쇄와 야브네 회의의 그리스도인 파문결정으로 세력이 약화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 교회들에 대한 지배권을 잃게 되었다. 주후 30년 오순절 날 성령의 임재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된 곳은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거의 모두 유대인들이었고, 야고보 장로가 수장이었다. 이방인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유대교에 완전 개종했거나 절반 개종한 하나님 경외 자들이었다. 또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지만 여전히 유대교회당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에 예수님의 경고,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눅 21:20-21절)는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 요르단 강 동편의 ‘펠라’와 ‘페트라’로 피신하였다. 이런 이유들로 예루살렘교회는 더 이상 이방인 교회들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유대-로마전쟁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핍박과 유대인 기독교의 간섭에서 벗어나 지금의 기독교가 되는 발판을 제공하였고, 동시에 기독교가 이후 300여 년간 로마당국의 박해를 받는 새로운 위기도 제공하였다.

유대-로마전쟁이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회당의 소속으로 남든지, 아니면 유대인의 민족유산을 다수 포기하고 이방인 교회에 합류하든지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남은 유대인들에는 ‘나사렛당’(Notzrim)과 ‘에비온파’(Ebionites)가 있었다. 나사렛당은 유대교의 계명들을 준수했지만, 그것들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랍비들이 만든 울타리 법들(Gezairoth)의 구속력을 부정하였다. 이들은 유대-로마전쟁에 가담하지 않고 ‘펠라’와 ‘페트라’로 피신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변절자로 낙인찍혔다. 에비온파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이단이었다. 그들은 율법을 중시한 반면 바울의 글들은 무시했으며, 마태복음만을 복음서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또 예수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였다.

바울의 적대자들

갈라디아지역 교회들에 바울의 적대자들이 나타나 “다른 복음”(갈 1:6,7,9)을 전하고 있었다. 바울은 그러한 자들이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갈 1:8,9)고 강한 어조로 경고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고린도교회에도 바울의 적대자들이 나타났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율법주의자들과 자유지상주의자들을 적대자로 부르지 않고 “육신에 속한 자”로 불렀다. 이들은 바울로 하여금 가슴 아픈 방문을 하게 만들고 눈물로 편지를 쓰게 만든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의 적대자는 고린도전서가 전달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곳에서 침투한 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그와 그를 추종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이들은 분명히 “히브리인”(고후 11:22)들로서 “지극히 큰 사도들”(고후 11:5, 12:11)을 빙자한 “거짓 사도”(고후 11:13)들로서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고후 11:4)을 전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때까지 히브리파인 팔레스타인 출신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대다수가 예수운동을 유대교의 한 분파나 메시아운동 정도로 여겼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유대교인들’ 또는 사람들이 ‘나사렛파’(노쯔림, Notzrim)로 부른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나사렛파의 근본주의적 성격을 띤 그룹이 에비온파이고, 복음주의적 성격을 띤 그룹이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인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다. 에비온파는 이방인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구원론, 즉 하나님의 구원은 민족성별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또 율법에 상관없이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데서 온다는 바울의 가르침에 반발해서 생긴 조직이었을 수 있다.

문자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뜻하는 에비온파(Ebionites)는 단일신론자들로서 예수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대신,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 혹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일깨워준 참교사로 떠받든다. 또 그들은 이 그룹의 지도자로 예수님의 이복형제인 야고보를 꼽는다. 에비온파는 랍비들이 만든 울타리법들을 인정하지 않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그대로와 노아홍수이전처럼 채식을 고집한다. 에비온파는 바울의 사도직을 부정할 뿐 아니라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한 유대교의 배신자와 이단자로 보기 때문에 바울서신들을 성서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그들이 신약성서에서 받아드린 책은 히브리어 마태복음뿐이다. 반면에 나사렛파는 예수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 등을 믿는다. 따라서 나사렛파는 큰 틀에서 예수님을 섬김과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그리스도인들의 범주에 속하지만, 에비온파는 전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에비온파는 예수님을 따름과 실천의 대상으로 삼지만, 섬김과 예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에비온파는 기독교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유대문화와 이방문화들을 정치적으로 혼합한 이방종교에 불과하다고 본다. 에비온파들은 역설적으로 신약성서교회는 구약성서교회가 아니며 신약성서교회와 구약성서교회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증언해주고 있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

바울시대에는 교통과 통신수단이 오늘날과 같이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려면 추천서가 필요하였다. 신약성서가 아직 없던 때여서 방문자의 가르침이 옳은 것인지를 확인할 마땅한 수단이 없던 때였다. 그런데다가 이 시대에는 떠돌이 사역자들이 많았고, 그들 중에는 이단자인 에비온파와 영지주의자들이 있었다.

주후 30년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처음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진 때로부터 27권의 글이 신약성서로 확정되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까지 360년 정도가 걸렸고, 이 기간에 정통과 이단을 구별할 수단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실천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여러 복음서, 서신서, 행전들이 나왔다. 교회들은 저마다 힘닿는 대로 문서들을 수집하였으나 예배 때 낭독해도 좋을 문서인지를 결정해야했고, 그 잣대가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이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는 1세기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인 27권을 대부분의 교회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동방교회는 367년에, 서방교회는 393년과 397년에 각각 이들 27권을 신약성서의 정경으로 확정지었다.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진 주후 30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주후 70년까지 팔레스타인 출신인 히브리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일부는 유대교의 율법과 전통을 포기하지 못하였고,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의 일부는 성육신을 부정하고 율법과 물질을 악하게 보는 영지주의를 포기하지 못하였다. 이들 율법주의와 영지주의는 피차 상극으로써 대표적인 기독교 이단들이었다. 그리고 바울의 사도직을 문제 삼아 대적한 자들은 유대교를 포기하지 못한 에비온파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이란 문자적으로 가나안땅에서 누리는 안식이다. 유대인들에게 땅은 너무나 절실하고 절박한 것이었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떠돌이였고 노예였다. 땅은 그들이 수천 년간 꿈꿔왔던 희망(Ha-Tikvah)이었고, 다가올 세상(Olam Ha-Ba)이었다. 아브라함이 그들의 조상이 되는 까닭도 그가 가나안땅의 희망을 품었던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후로 그들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고 주권을 행사한 기간은 1천년이 넘지 않지만, 주권을 빼앗겼거나 속주민으로 살았던 기간은 3천년이 넘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땅에 대한 절박함은 율법준수의 엄격함으로 나타났다. 유대교는 민족해방과 가나안땅회복이 ‘토라’(모세율법)와 토라보호를 위해서 만든 울타리법인 규례를 철저히 지킬 때 이뤄진다고 믿고 가르치는 민족종교이자 실천종교이다. 유대교는 교리종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