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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02 15:50
하나뿐인 복음06: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2)(갈 1:6-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20  

하나뿐인 복음06: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2)(갈 1:6-10)

교황이 명한 대로(1)

가톨릭의 문제점은 성경보다는 교황청이 명한대로 하는데 있다. 가톨릭도 유대교처럼 하나님을 독점하려 한데서 몇 가지 적폐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사제들의 하나님독점이다. 유대교가 하나님을 유대인들의 하나님으로 독점하는 오류를 범했듯이, 가톨릭교회도 사제들이 하나님을 독점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을 차단시켰고, 마리아와 성인들을 그 자리에 대신 앉혔다. 따라서 신자들은 성부 성자 하나님께 감히 기도하지 못하고, 마리아나 성인들께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하나님께 바치는 제대(제단)를 더욱 높은 곳에 세웠고, 신자석과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하였으며, 사제복을 더욱 화려하고 위엄 있게 만들었다. 성부 성자 하나님을 신자들과 멀어지게 하고, 그 사이를 사제들이 꿰차고 앉았다. 이뿐만 아니라, 중세유럽에서 개인들은 그리스도님의 대리자(Christi Vicario/ Vicarius Fili Dei)임을 주장하는 교황 또는 사제들로 인해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그것은 마치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성전을 예루살렘 한곳에만 두고, 사제들이 장악한 채 민족과 성별과 신분과 계급의 담, 곧 이방인의 뜰과 성전영내, 여인의 뜰과 이스라엘(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들)의 뜰, 이스라엘의 뜰과 제사장의 뜰을 담으로 분리, 또 성소와 지성소(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대제사장만의 공간)를 휘장으로 분리함으로써 개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았던 것과 같다.

둘째는 사제들의 사죄권 행사와 주의 만찬의 독점이다. 사제들이 하나님을 독점함으로써 신자들은 성부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신자들은 회개할 기회와 주의 만찬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하였다.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통해서 사제들에게 회개하였고, 사제들은 사죄권을 행사하였다. 고해성사의 기회가 평생에 몇 번으로 제한된 때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신자들은 죽음에 임박하기 전까지 고해성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고해성사를 하지 못한 사람들은 주의 만찬에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서 매일의 미사를 통해서 행하여지는 주의 만찬은 사제들만의 것이 되어버린 적이 교회사 속에서 오랫동안 있었다.

교황이 명한 대로(2)

셋째는 사제들의 성경과 예배의 독점이다. 가톨릭은 과거 1,400여 년 동안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성경만 허용하였다. 미사언어도 라틴어만 허용하였다. 값싸고 질 좋은 종이와 인쇄술이 없던 시절에는 성경이 고가여서 소유하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몰라서 읽지 못하였다. 조선에 가톨릭이 전래된 역사가 2백 년이 훨씬 더된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라틴어를 몰라서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고, 라틴어를 몰라서 예배진행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가톨릭교회에 본격적으로 자국어 성경과 자국어 미사가 허용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1960년대 이전에는 신자들이 기껏해야 세례문답과 간단한 교리를 배우는 정도에 그쳤다. 성경을 읽지 못한 사람들은 사제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신봉하였고, 또 사제들은 미개한 신자들이 그들이 이전에 빠져있던 이방종교와 문화를 기독교 신앙에 혼합시키는 것을 부분적으로 눈감아 주었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자국어 성경을 읽고, 자국어 미사를 갖게 된 것은 불과 6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교황청이 1,400여년 만에 미사 중에 설교와 회중찬양을 복원하였지만, 아직까지도 평신도 기도는 복원되지 못하고 있으며, 모든 미사와 설교문과 기도문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어서 예배에서 사제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넷째는 사제들의 성사의 독점이다. 가톨릭에서는 미사 말고도 일곱 가지 성사가 있는데, 사제만이 집례할 수 있다. 침수세례를 약식세례로 변질시킨 것은 십자군을 모병하던 12세기경에 이방인 병사들을 집단으로 개종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런 가톨릭의 적폐들을 고치고 성경에로 돌아가자고 한 것이 16세기에 단행된 종교개혁운동이었다. 종교개혁운동은 가톨릭교회의 교황과 사제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개인들에게 직접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운동이었다. 그것은 마치 성소의 휘장을 갈라놓은 그리스도님의 십자가 사건이 유대교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에게 눌려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개인들에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히 10:19) 하였고,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히 4:16) 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히 10:22) “새로운 살 길”을(히 10:20) 열어 주었던 것과 같다.

국가종교가 명한 대로

또 종교개혁운동은 근원에로 돌아가자(Ad Fontes)는 운동이었고, 헬라어성경과 히브리어 성경의 필사본들을 비평하여 대본성경을 만들어 인쇄출판하고, 또 그것들을 모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함으로써 라틴어 성경과 라틴어 미사만 허용되던 시대에 모국어로 성경을 읽거나 특히 예배 중에 모국어로 읽어 주는 성경말씀들을 들을 수 있도록 해준 운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 한계는 개신교 역시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국가종교 또는 시의회종교였던데 있다. 국가종교 또는 시의회종교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특히나 츠빙글리, 칼뱅, 루터 등의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교회 사제출신들이었고, 국가종교의 틀에 갇혀있었으며,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국가들과 시의회들은 주류 이외의 신앙운동들을 모두 사형으로 다스렸다. 이것이 개신교에서조차 적폐가 많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와 칼뱅이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정교분리를 주장한 재침례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시의회는 이들을 익사(침례를 조롱할 목적), 화형 등으로 처형하였다. 그러나 평화주의, 무저항주의자들이었던 재침례인들은 그 어떤 저항이나 반항도 하지 않고 순교하였다. 독일에서는 마르틴 루터가 뮌스터신앙공동체를 제압하는데 동조하였고, 영국에서는 청교도들이 영국교회(성공회)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성전 멸망이후 고착된 유대교기도회에 주의 만찬을 첨가하여 성전예배의 의미를 살린 것이 초기 그리스도교 예배였다. 그리고 주의 만찬에 신비(성체신학, 화체설)를 추가한 것이 가톨릭미사이고, 주의 만찬에서 그 신비를 빼버린 것이 개신교예배인데, 츠빙글리와 같은 개혁가들이 주의 만찬에서 신비(미신)만 뺀 것이 아니라, 매일 드리는 예배내용 그 자체였던 주의 만찬을 연 2-4회로 줄임으로써 개신교예배를 기도회, 경건회, 사경회, 부흥회로 추락시키는 오류를 범하였다. 칼뱅은 이를 시정하려고 시의회에 여러 차례 건의하였으나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기독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적폐는 그것이 가톨릭교회에서든 개신교교회들에서든 바울이 그토록 강한 어조로 대응했던 그리스도교의 유대교화에 있어왔다. 이들 유대교화의 대표적인 사례들에는 가톨릭교회의 제사(봉헌)와 사제(제사장) 개념; 제칠 안식일(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준수를 고집하는 안식교회(재림론자 교회)와 ‘예슈아’를 그리스도로 믿으나 세대주의 성경해석법을 따르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Messianic Jews); 단일신론을 고집하며 예수님의 신성과 성령님의 인성을 부정하는 여호와증인; 원시교회로의 환원을 주장하지만, 구약성경교회와 계시의 지속성까지 포함시켜 몰몬경, 일부다처제, 사도 직제 등을 주장하는 몰몬교; 구약성경예언의 문자적 해석을 고집하는 세대주의(시대구분론); 피 뿌림과 할례를 모방한 약식세례와 유아세례; 반 그리스도교 유대인들인 에비온파(Ebionites) 등이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유대교화를 꾀한 에비온파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 (고후 11:4, 갈 1:6-9),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는 자들(갈 1:7),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빌 3:18), “저주를 받을” 자들이었다(갈 1:8-9)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