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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09 08:33
하나뿐인 복음11: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2)(갈 2:15-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22  

하나뿐인 복음11: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2)(갈 2:15-16)

“율법의 행위로써”

갈라디아서 2장 15절,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라는 말은 바울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율법을 자긍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을 말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였다. 그래서 타 민족들은 하나님이 없는 이방 민족들이었다. 세상에는 오로지 두 개의 민족, 즉 유대인과 이방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모멸하는 이방인의 나라들에서 수천 년을 떠돌이와 노예로 산 것은 깊이 박힌 목의 가시였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천상천하에 한분뿐인 신이시고, 조상들의 하나님이시며, 자기 민족을 노예와 떠돌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시고, 언약의 내용으로 토라를 주시고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이시며, 야훼신앙을 민족종교로 주신 하나님이시고, 가나안땅을 안식할 영토로 주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될 것을 의도하지 않으셨다. 선택된 자들만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출 19:6) 또는 ‘이방의 빛’(사 49:6)으로 뽑은 것이었지, 그들 자신만을 위해 뽑은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야훼가 자신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오해하였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에서 “율법의 행위”란 613개의 계명들(mitzvoth)과 그 계명들을 어길 수 없도록 랍비들이 둘러친 규례들(Gezeiroth)을 지키는 행위를 말한다. 유대교는 교리를 믿는 종교가 아니라 율법을 실천하는 종교이다. 유대교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율법과 규례는 반드시 문자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유대교인들에게 율법과 규례는 안식의 상징인 이 지상 가나안땅과 민족의 생사가 걸린 하나님과의 언약이기 때문이다. 또 모든 율법과 규례를 문자적으로 철저히 지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유대교 엘리트들이 불치병과 같았던 자기 민족사에 내린 처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추구하는 참 안식의 나라가 이 지상에 있는 가나안땅이 아니라, 저 하늘 가나안땅이고, 인류가 죄로 인한 불치병을 고침 받고 참 안식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방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라는 복음을 주께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구원에 대한 개념도 다르고, 이루는 방법도 다르다. 유대교인들은 “율법의 행위로써” 그들이 바라는 것을 얻고자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고자 한다. 따라서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예수님을 믿어야지 “율법의 행위로써”는 얻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구약성서를 자기 나라의 출범과 흥망성쇠에 관한 글이라고 믿고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준수하는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서를 전 인류의 흥망성쇠 곧 영적 구원과 삶에 관한 글이라고 믿고 인류구원이란 큰 틀에서 영적으로 예표로 구속사적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구약성서는 지상 가나안땅과 이스라엘에 관한 약속과 성취와 멸망과 회복에 관한 글이고, 또 그들이 원하는 ‘안식’은 유배와 노예의 삶에서 해방되어 지상 가나안땅, 특히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회복된 성전예배를 드리며 사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장차 오실 자 ‘모쉬아크’(Moshiach)가 해야 할 대업도 유대인들의 ‘그 희망’(Ha-Tikvah)을 성취시키는 것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서를 예표적으로 하늘 가나안땅과 영적 이스라엘,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약속과 성취에 관한 글이고, 구속사적으로 인류의 멸망과 회복에 관한 글이며, 또 그들이 바라는 ‘안식’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부활과 영광의 몸을 입고 하늘 가나안땅, 하늘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천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 강림하신 하나님의 아들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Yehshuah)께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 우편보좌에 앉으심으로써 인류의 ‘그 희망’을 이미 영적으로 영혼구원을 성취하셨고, 인류의 ‘그 희망’을 문자적으로 육체구원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희망’의 성취를 적은 글이 신약성서이다. 그러므로 신약성서는 유대인들의 ‘그 희망’에 관한 구약성서를 인류의 ‘그 희망’과 ‘그 희망’이 ‘이미’ 성취된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로 대단원을 장식하게 될 내용으로 새롭게 해석된 글이다.

따라서 바울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에서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그 ‘모쉬아크’(Moshiach)를 말한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Yehshuah)를 말한다. 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모쉬아크’ 곧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싫어한다. 하지만 바울은 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고 믿었다(고전 1:18,24).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

이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유대인들은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율법을 잘 지키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에게 주신 가나안땅과 이스라엘의 명예와 주권을 지켜내는 길이라고 믿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말하는 구원이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육체부활도 믿고, ‘다가올 세상’(Olam Ha-Ba)도 믿는다. 그러나 그 같은 믿음은 구약성서이후시대인 헬라시대 때 시작되어 중세시대 때 발전되었다. 다니엘서 12장 2절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언급되어 있지만, 대개의 학자들은 이 구절이 헬라시대의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에는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스올’(Sheol)은 지옥이 아니고 무의식상태의 지하 무덤을 의미한다.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부활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또 누가 부활하게 될지를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어떤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 모쉬아크 시대에, 또 다른 유대인들은 모쉬아크 시대가 끝나고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또 어떤 유대인들은 의로운 자들만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가하면, 다른 유대인들은 모든 유대인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다.

‘다가올 세상’에 대한 유대인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이 낙원과 천국 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갖는 견해만큼이나 다양하다. 반면에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에덴동산(Gan Eden)에 연결되고, 지옥은 ‘게힌놈’(Gehinnom) 곧 ‘힌놈의 골짜기’에 연결되는데, ‘게힌놈’은 심판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을 말하며, ‘게힌놈’의 불은 지상의 것보다 60배나 더 뜨겁다는 이야기가 후대에 첨가되었다. 다만 ‘게힌놈’은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연옥과 같아서 ‘다가올 세상’이 도래하기 전까지만 존재하며, ‘게힌놈’에서 머무는 기간도 최장 12개월로 한정된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다가올 세상’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로써 바울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고 한 말씀을 다른 각도에서 풀어보았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서로 너무 다르다. 구원에 대한 개념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다. 유대교인들은 “율법의 행위로써” 그들이 바라는 바를 얻고자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고자 한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로써”는 그리스도교가 제시하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