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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10 06:19
하나뿐인 복음12: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3)(갈 2:17-2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5  

하나뿐인 복음12: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3)(갈 2:17-21)

에비온파의 주장대로라면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교이고, 구원에 대한 개념도 다르며, 구원을 얻는 방법도 다르고, 지향하는 목적도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갈라디아서 2장 15절 이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전제하에서 17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에비온파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한 주장에 연결된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신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성모독죄에 해당된다거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 우상숭배에 해당된다는 것 등이다. 이런 비난은 오늘날에도 에비온파들에 의해서 지속되고 있다. 에비온파 유대인들의 주장대로라면, 갈라디아 교회들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이 되는 꼴이고, 바울에게 나타나서 복음을 계시하신 그리스도께서 선량한 사람들로 하여금 신성모독죄에 빠지게 하고, 우상숭배죄를 범하도록 만든 것이 된다. 이 점에 대해서 바울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18절,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는 말씀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유대인으로서 또 예루살렘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바리새인으로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하는 일에 앞장섰던 뼛속까지 유대교인이었던 사람으로서, 유대교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극적으로 그리스도교에 개종했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 전파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빌 3:8) 여긴 자로서, 또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고전 4:13) 된 자로서, 만일 에비온파의 주장이 옳다면,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폐하게 된다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19-21절에서 결코 그런 상황이 벌어져서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취지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고 피력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여기서 19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와 같은 뜻이다.

“내가”는 피조물을 말한다. 피조물은 필연적으로 부족한 존재이고, 성경에서 부족은 죄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죄를 모르는 갓난아이라 할지라도 그가 피조물이란 관점에서 그는 죄란 열매를 반드시 맺게 될 씨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은 이 씨앗을 원죄로 이해했고, 인간을 타고난 죄인으로 간주하였다. 반대로 유대교에서처럼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다할지라도 피조물인 인간이 죄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라는 존재는 죄인이다. 이 죄인은 율법의 규정 때문에 사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에서 “그리스도와 함께”는 ‘그리스도 안에서’란 뜻이다. 따라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내가”로 대표되는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는 율법규정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죗값을 치렀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롬 7:4)는 뜻이다. 이 뜻을 바울은 로마서 5장 6-7절에서 좀 더 명확히 설명하기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고 하였다.

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침례와도 관련되어 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3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고, 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했으며, 5절에서 침례 받은 자를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로써 바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한 후에 침례를 받는 것을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와 합하여 무덤에 장사되는 행위로 보았다.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다.”

바울은 율법이 규정한 죄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는 이유를 19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다.”고 하였다. 20절은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 6장 4절에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다.”고 하였고, 5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둘째, 새 사람으로 부활한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그리스도인을 새 사람으로 부활시키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것을 바울은 로마서 6장 6절에서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다.”고 하였고, 9절에서는 부활하시여 영원한 생명을 찾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21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또 다시 율법의 행위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셋째, 성화의 삶을 점진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신학에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회개하고 그 믿음을 고백한 후에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합하여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와 합하여 무덤에 장사된 후 새 사람으로 부활한(거듭난) 것을 하나님의 무죄 선언 또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하심이라고 하며, 이를 줄여서 ‘이신칭의’ 또는 ‘초기성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신칭의’나 ‘초기성화’의 목적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고,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하려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하려는 것이고,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삶을 신학에서는 ‘점진성화’라고 부른다.

‘점진성화’란 나는 감춰지고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품과 영광이 들어나는 것을 말한다. 나는 감춰지고 그리스도가 높임 받는 것을 말한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말한다(실존).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말한다(존재).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주권).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롬 14:8) 것을 말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완전성화’는 몸의 부활을 통해서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