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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12 12:58
하나뿐인 복음13: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4)(갈 3: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8  

하나뿐인 복음13: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4)(갈 3:1-5)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갈라디아 지역에 유대교 회당들이 많았고,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갈라디아인들은 그들로부터 바울을 폄훼하는 말들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에비온파 유대인들까지 합세하여 바울을 비반하였기 때문에 갈라디아인들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갈라디아인들이 귀가 얇고 잘 속는다는 점은 이미 10여 년 전 바울과 바나바의 첫 선교 때 드러난 바가 있다. 사도행전 13-14장을 보면, 헬라인들이 유대인들의 선동에 쉽게 넘어가 바울과 바나바 및 그리스도교에 개종한 헬라인들에게 악감을 품고 박해한 것을 볼 수 있고, 디모데의 고향인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발을 쓰지 못하는 한 헬라인을 고쳤는데,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화신(化身)이라며 소란을 피웠고, 심지어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까지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를 바치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갈라디아 지역에 거주하는 유력한 헬라인들 특히 귀부인들 가운데는 할례와 침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절반 개종자들이 많았다. 지역에 따라서는 회당 출입자의 거의 절반에 육박할 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는 헬라인들이 많았고, 소수였지만 할례와 침례까지 받은 완전 개종자들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는 유대교의 상징인 메노라(등잔대)를 기증하거나 회당건축에 큰 힘을 보태기도 하였다. 이런 우세한 상황을 이용하여 유대인들은 바울과 개척교회들을 강력히 저지하였고, 유력한 헬라인들까지 동원하여 탄압하였다. 게다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에비온파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직접 제자들의 추천서를 거론하며 바울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을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1절에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따졌다. 이 말의 뜻은 이미 명확히 깨달아 알고 있듯이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다르고, 구원의 의미나 구원에 이르는 방법도 다르며, 또 구원은 민족성별의 차별 없이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그토록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냐는 뜻이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유대교에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제삼위의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없다. 거룩한 영이신 야훼 한분만 섬기는 일신교이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 “하나님의 신” 또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은 표현들이 나오지만, “하나님의 신”은 거룩한 영이신 하나님의 권능을 뜻하고,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계시형태나 심부름꾼인 천사를 지칭할 때에 쓰인다. 따라서 2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에서 “성령”은 유대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뜻하지 않고,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제삼위의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성령”을 방언이나 신유와 같은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선물)로 잘못 아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성령”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임마누엘 성령님을 뜻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이 성령님을 율법의 행위로 받지 않고 듣고 믿음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그토록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신약성서에서 모세는 예수님, 히브리인들은 그리스도인들, 출애굽사건과 광야생활 40년의 사건들은 신약교회에서의 사건들의 예표와 모형으로 설명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4절에서 히브리인들이 구름아래서 갈라진 바다를 마른땅 밟듯이 건넜던 홍해를 영적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써 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한 후에 옛 사람은 죽어 장사되고 하나님나라의 시민과 하나님가족의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받는 그리스도인 침례의 예표와 모형으로 보았고, 히브리인들이 먹고 마셨던 만나와 반석의 물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주님의 만찬의 예표와 모형으로 보았다.

또 바울은 로마서 5장 5절, 고린도후서 1장 21-22절, 에베소서 1장 13-14절의 말씀들을 통해서 광야에서 히브리인들을 인도하였던 구름기둥을 그리스도인들을 하늘 가나안땅에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예표로 확신하였다. 언급된 구절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 인내와 연단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광야사막에서 히브리인들을 이끌었던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이었다. 구름기둥은 성령님의 임재의 예표였다. 구름기둥이 있었기 때문에 히브리 민족이 광야사막생활을 마침내 끝내고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 가나안땅을 약속하시고 그 보증과 인침의 표로써 선물로 주신 성령님이 그리스도인들을 하늘 가나안땅에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 결코 부끄럽게 되지 않는다고 확신하였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이 같은 이유에서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고 물음으로써 유대인들의 꾐에 빠져 잊고 있었던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상기시켰다.

여기서 바울은 죄인의 구원이 성령님의 사역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성령님의 구원사역에는, 신학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간접사역과 직접사역으로 나뉜다. 구원을 하나의 과정으로 볼 때,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으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다. 여기서 믿음과 신앙고백은 같은 것이지만 사적으로 믿는 것을 증인들 앞에서 공적으로 고백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회개와 침례는 같은 것이지만 사적으로 한 회개를 증인들 앞에서 공적으로 회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모든 과정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만, 특별히 침례 때 의사로서의 성령님은 죄로 인한 불치병(사망)을 치료하시고 중생의 씻음과 거듭남(초기성화)을 주시며, 내주 동거를 시작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 가나안땅에로 인도하시며 보증하시고 인(印)을 치신다. 이것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의 물음 속에 담긴 뜻이다.

죄인이 어떤 시점에 구원(칭의와 초기성화)을 받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구원이 언제 시작되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구원이 믿음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 3절의 “성령으로 시작하였다”는 뜻은 믿음으로 시작하였다는 뜻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믿음과 성령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데는 하나의 과정이 요구된다. 가장 먼저 잉태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야 수정란이 만들어지고 세포가 분열을 시작하여 배반포, 배아, 태아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양수를 터트리고 빛의 세계로 나오게 된다. 믿음과 침례가 잉태와 출산에 비교되는 이유이다. 출산의 고통과 생명의 신비를 생각해 본다면, 왜 바울이 4-5절에서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라고 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