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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16 11:58
하나뿐인 복음16: 율법과 믿음(갈 3:23-29)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5  

하나뿐인 복음16: 율법과 믿음(갈 3:23-29)

“믿음이 온 후로는...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않는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3-25절에서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고 하였다. 여기서 “초등교사”는 다른 성경들에서 “몽학선생,” “가정교사,” “개인교사,” “후견인,” “감시자” 등으로 번역되었다.

유대지방 대도시들에 학교들이 세워진 것은 주전 75년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가장들이 자녀교육을 책임지고 있었다. 주후 64년에도 대제사장 죠수아 벤 가므라(Joshua ben Gamla)가 마을마다 학교들을 세우게 하고 다섯 살 이상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유대인들은 다섯 살부터 성문토라(Mikra)를, 열 살부터 구전토라(Mishnah)를 배웠고, 열세 살부터 계명들(mitzvoth)을 지켰으며, 열다섯 살부터 탈무드(Talmud)를 배웠다. 초등교육은 주로 회당에 붙은 ‘헤데르’(heder, 방)라 불린 ‘방’에서 이뤄졌다. ‘멜람메드’(melammed)라 불린 개인교사가 ‘티노코트’(tinokot)라 불린 사내아이들에게 토라와 탈무드를 가르쳤다. 그러나 동유럽에서는 주로 개인교사의 집 ‘헤데르’에서 이뤄졌다. ‘헤데르’의 상급학교는 ‘예시바’(yeshiva, 앉음)이다. ‘예시바’가 생기기 전에는 유대교 법정(beth din)에서 세 줄로 앉아 공부하였다.

헬라인들 중에는 학식이 높은 노예를 비싼 가격에 매입하여 사내들을 가르치고 돌보며 감시하는 후견인(paidagogos)으로 삼았다. 이들 교사들의 역할은 사내아이들이 보통 16세 정도에 이르면 정지되었다. 아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신학자였던 최병헌(崔炳憲, 1858-1927)이 쓴 <셩산유람긔>(聖山遊覽記)라는 글에서 원각대사(圓覺大師)에게 이런 말을 한다. “거친 음식과 풀죽(疏食菜粥)과 기름지고 맛난 음식(膏粮玉食)이 다 같이 음식이로되 귀천(貴賤)과 미악(美惡)이 있나니, 옥식(玉食)을 만나지 못하여서는 초식(草食)을 먹으려니와 옥식(玉食)을 보고도 의심하며 먹지 아니하면 실로 어리석은 사람의 지혜 없는 일이라”(<신학월보> 230쪽).

이와 같이 바울은 아이가 장성한 후에는 초등교사가 필요 없듯이, 해가 뜬 낮에는 달이 필요 없듯이 또 옥식이 있으면 풀죽을 먹지 않듯이 믿음이 온 후에는 율법이 필요 없다고 피력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6-27절에서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시점에 관한 말씀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과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부터 침례까지는 구원의 과정으로써 잉태로부터 출산까지가 새 생명의 탄생의 과정인 것과 같고,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여 결혼에 골인하기까지가 부부탄생의 과정인 것과 같다. 또 탕자가 회개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아들로 영접되고 깨끗이 씻긴 후에 형인 맏아들의 옷을 입는 것과도 같다. 신약성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맏아들”로 표현하고 있다(롬 8:29, 골 1:15,18, 히 1:6).

침례식은 마치 임산부가 아이를 출산하는 시간이나 사랑하는 남녀가 혼례식을 거행하는 시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출산의 개념은 중생의 시간으로, 혼례식의 개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시간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보는 때는 출산의 때요, 사랑하는 남녀가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는 시간도 혼례 때인 것처럼 중생의 거듭남과 죄 씻음은 물론이요 의롭다 하심을 입는 공식적인 시간은 침례 때인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놀라운 역사는 물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요, 성삼위 하나님의 공동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짐은 말할 것도 없다. 디도서 3장 5-7절과 고린도전서 6장 11절의 말씀과 에베소서 2장 8-10절의 말씀들, 그리고 로마서 3장 21절에서 5장 21절의 구원에 관한 모든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단정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침례 안에서 재판장 되신 성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포하시고, 대속의 보혈을 친히 흘리시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신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며, 의사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고 부패한 상처를 싸매는 대 수술을 하심으로써 옛 사람을 물속에 장사시키시고 새 생명으로 부활케 하신다. 물론 이 수술 작업의 근원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은총이요, 조건은 신자의 믿음이다. 침례는 단지 시간상의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마르틴 루터가 말했듯이 침례는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다. 인간이 침례식을 거행하지만 하나님을 대행할 뿐이다. 따라서 침례는 하나님의 권위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이다.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다.”

갈라디아서 3장 28-29절에서 바울은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민족 신분 성별의 차별 없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의 땅을 상속 받을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믿음의 혈통과 하늘 가나안땅을 말한 것이지 육신의 혈통과 지상 가나안땅을 말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이스라엘나라를 그리스도의 나라의 예표로 보고 한 말씀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민족 신분 성별의 차별 없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는 말씀은 당대의 상황에서 볼 때 매우 급진적인 선언이었다.

유대교 회당의 구성원 자격은 13세 이상의 남성들이었다. 이 남성들이 또한 이스라엘의 구성원들이다. 여성들은 계명들을 지켜야할 의무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대교에서의 역할이 제한적이었다. 아직까지도 유대교정통파에서는 회당기도회 때 여성들을 별관에 앉힌다. 19세기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고, 히브리어를 읽지 못했으며, 히브리어 성서를 낭독할 자격도 없었다. 대개의 여성들은 집안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다가 여성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였다. 전장에 나간 남성들의 공백을 여성들이 채워야 했고, 교사, 스파이, 비서, 안내인, 간호사, 여군 등의 필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에 맞춰 여성들이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고, 남녀평등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져갔다.

여성이 정식으로 랍비안수를 받기 시작한 것은 유대교개혁파에서는 1972년, 유대교보수파에서는 1983년부터였다. 하지만 유대교정통파에서는 여전히 꿈도 꿔볼 수 없는 일이다. 반면에 유대교재건파는 유대교개혁파나 보수파보다도 훨씬 더 진보적이다. 1922년 재건파를 설립한 카프란(Kaplan)은 최초로 12세 여자아이들에게 ‘계명의 딸’(Bat Mitzvah)의식을 시행하였다. 지금은 개혁파에서도 여자아이들에게 ‘계명의 딸’ 의식을 시행하지만, 전통적으로 유대교에서는 13세 남자아이들에게만 ‘계명의 아들’(Bar Mitzvah) 의식을 치러왔다.

이런 정황에서 볼 때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다.”라는 바울의 선포가 얼마나 파격적인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또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신”(고전 12:13) 한 몸이라고 선언하였다. 에베소서 3장 8-9절에서는 이 같은 사실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요,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9절)이라고까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