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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19 16:19
하나뿐인 복음17: 율법과 아들(갈 4:1-7)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9  

하나뿐인 복음17: 율법과 아들(갈 4:1-7)

“유업을 이을 자가...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1-2절에서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유업”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지상 가나안땅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된 하늘 가나안땅을 말한다. “유업을 이을 자”는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그리고 “어렸을 동안”은 율법시대를, “후견인과 청지기”는 율법과 규례를 말한다. 또 “아버지가 정한 때”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때”는 신약성서기독교시대가 출범한 주후 30년 오순절 날을 말한다. 유대인들이 첫 오순절 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주후 30년 오순절 날 시온산에서 복음을 받았다. 따라서 신약성서기독교시대가 도래한 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구약시대의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오히려 율법 위에 있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아들이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의 종이나 다름이 없어서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지만, 장성한 이후에는 유업을 이을 아들로서 또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그들 위에 있게 되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신구약성서는 동일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구약성서가 신약성서 위에 있지 않고, 신약성서가 구약성서 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성서 저자들이 구약성서를 이해하고 해석한 예표, 모형, 그림자, 구속사의 영적 방식이 유대인들이 구약성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유대민족의 출범, 이동, 흥망성쇠 등의 문자적 방식을 지배한다. 비록 유대인들이 신약성서 저자들의 방식을 강하게 거부하고 적대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약성서 저자들의 방식이 반드시 따라야할 옳은 방식이다. 복음에 근거한 그리스도교는 율법에 근거한 유대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의 지배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하는 입장에 서있다.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초등교사”의 역할은 아이를 교사에게 데려다 주고 데려오며, 아이의 교육기자재(악기, 석판)를 들어다 주는 것이었다. 또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고,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며, 아이의 행실을 바르게 훈육하고 지도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읽기와 쓰기, 산술과 시문학 또는 악기연주 수업을 받는 동안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 앉아 수업에 참관하였다. 그의 지팡이는 아이를 보호하거나 훈육하는데 쓰는 도구였다. “후견인”(epitropos)은 ‘보호자’란 뜻으로써 가사와 아이를 책임지는 노예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청지기”는 ‘일군’(oikonomos)이란 뜻으로써 가업과 재산을 관리하는 노예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바울은 3-5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앞에서 초등교사, 후견인, 청지기로 묘사한 율법을 다시 “초등학문”에 비유하였고, 하나님이 외아들에게 육신을 입혀 율법 아래에 태어나게 하신 목적이 초등교사, 후견인, 청지기, 초등학문으로 비유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해방시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자녀들은 노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식구들을 엄하게 지도할 권세와 성적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인들의 아버지의 근본은 제우스였다. 제우스는 부도덕한 호색한이요 독재자였다. 제우스는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주인이고, 인간은 자기 운명과 권리와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와 같았다. 노예에게는 인권도 없고, 그 어떤 결정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유대인들의 아버지의 근본은 야훼이시다. 하나님은 좋으신(토브) 아버지, 인자(헤세드)하신 아버지, 의로우신 아버지, 거룩하신 아버지이시다. 이 하나님이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아빠 하나님’ 개념이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6-7절에서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 아들의 영”은 “양자의 영”이란 말로 이해될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5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고 하였다. 또 바울은 로마서 8장 23절에서 양자가 되는 것과 “몸의 구속”을 동일하게 취급하였다. 따라서 “몸의 구속”은 “유업을 받을 자”와도 동일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29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양자삼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맏아들이 되게” 하셨다고 했다. 요한도 일서 3장 1-2절에서 하나님께서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고...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였다. 또 요한은 복음서 1장 12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7절에서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다.”고 하였다. 여기서 “유업을 받을 자”는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몸의 구속”과 “영생” 곧 하늘 가나안땅의 시민권을 받을 자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직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요 20:17)고 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셨고,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엄청난 선포는 일차적으로 당신의 직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이차적으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 죄인들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외아들 예수님을 맏아들로 삼으시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양자로 삼으시는 하나님,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바 아버지”(롬 8:15) 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 하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신 은총의 하나님이시다. 제우스처럼 부도덕하고 독재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거룩하고 신실하며 참으로 인자한 아버지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