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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05 07:02
하나뿐인 복음22: 복음과 자유(4)(갈 5:13-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5  

하나뿐인 복음22: 복음과 자유(4)(갈 5:13-15)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갈라디아서 5장 13-15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권하였다. 이 권면은 고린도전서 10장 23-24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이들 말씀은 영지주의자들처럼 자기결정권을 우상시하는 자유지상주의자나 율법과 규례를 절대시하여 이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멸시하고 손가락질하는 율법주의자로 살지 말고, 사랑으로 자기 권리와 권한을 제한하여 서로 섬기는 자들이 되라는 권면이다.

율법과 규례를 절대시하는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정한(kosher) 것과 부정한(treyf) 것으로 양분되므로 모세가 전한 율법과 규례에 따라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정한 것만 구별해서 먹고 정한 것만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율법과 규례가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율법과 규례를 지키는 유대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난한 자, 병든 자, 세리와 창녀, 특히 이방인은 부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과 교제하면 부정하게 되고, 규례에 따라 정결의식을 치러야하므로 그들과의 교제를 멀리하게 된다. 율법과 규례를 지키는 유대교인들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세리와 창녀, 이방인이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을 함께 섞거나 함께 씻거나 함께 조리하거나 함께 보관하거나 함께 먹지 말라는 유대교의 음식법(Kashrut)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안식일법과 손 씻기법 같은 의식법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기 때문에 죄인으로 취급한다.

반면에 성령을 따라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거룩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중립적이라고 믿는다. 또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사용하는 동기, 목적, 방법에 따라 그것들은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되며, 그 책임은 사용자인 인간에게 있다고 믿는다. 인간에게는 자유가 허용되지만,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법 테두리 안에서 자유를 쓰기도 하고 제한하기도 한다. 사랑이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절대 자유와 절대 권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사랑으로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시고, 인간들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으셨으며,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저급하고 악하며, 그것을 지은 창조자는 저급한 신(神)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눈에 보이는 세계와 육체는 감옥이고 악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뤄도 된다고 생각했다. 또 어떻게 신이 악한 육체를 입고 인간이 될 수 있겠느냐며 성육신을 부정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며 그 무엇도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은 불행한 자들을 멸시하고 착취하고 지배하며, 육체와 세계로부터 탈출하여 빛의 세계로 들어갈 지혜(열쇠, 암호)를 비전(秘典)을 통해서 얻고자했다.

같은 맥락에서 19세기의 질적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그의 <자유론>에서 사람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유지상주의를 펼쳤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면서 개인을 보호하려 들거나 다수가 믿는 최선의 삶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하며, 개인이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하는 유일한 행동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주장은 공동체의식이란 미덕, 즉 국가나 이웃에 대한 의무에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야기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개인이 타인의 행복, 즉 공동체를 위한 행복의 도구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오직 내게만 속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식이다. ‘자기결정권,’ 곧 내 몸의 결정권은 내게 있으니, 내가 자살을 하든, 낙태를 하든, 마약을 하든, 매춘을 하든, 동성애를 하든, 장기를 떼어 팔든, 대리모를 사고팔든 상관하지 말라는 식이다. 이런 주장은 낙오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해소할 모든 수단을 거부할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또 이런 주장은 국가나 교회나 회사나 이웃을 위한 헌신이나 희생을 거부한다.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기”보다는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는” 자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논리에 급속도로 빠져들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애국심이나 애교심 또는 애사심 같은 것들이 사라진지 이미 십 수 년이고, 오직 자기 또는 자기집단의 이익추구를 위한 투쟁만이 난무한다. 수많은 이익추구집단들이 들고 일어나서 정의와 인권을 부르짖고, 국민을 입에 올리지만, 그들에게서 애국심이나 애교심 또는 애사심을 찾기란 해변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독재시대에도 넘쳤던 애국심, 애교심, 애사심과 같은 것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민주화운동이후에는 개인과 집단 이기주의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는 경고가 두렵게 느껴진다.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바울은 두 종류의 종 노릇을 언급하였는데, 죄의 종 노릇과 사랑의 종 노릇이 그것들이다. 죄의 종 노릇은 피차 멸망하는 길이요, 사랑의 종 노릇은 피차 상생하는 길이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자유 함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원함으로 “의의 종”(18절), “순종의 종”(16절), “하나님의 종”(22절)이 된다고 하였다. 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16절)고도 하였다. 죄는 율법의 종 노릇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죄의 종 노릇이나 율법의 종 노릇은 같다. 또 의의 종 노릇과 하나님의 종 노릇은 감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사랑의 종 노릇과 같다. 그리고 죄에게 종 노릇하는 것은 피차 멸망에 이르는 길이요,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며 세상을 살리는 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4-15절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권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완성하는 일이다. 또 그 일이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는” 방법은 사랑으로 피차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서 사랑의 법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그리스도인을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는 신령한 사람들은 서로 대적하지 않기 때문에 피차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된다. 반면에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사람은 “성령을 거스르기” 때문에 피차 멸망하게 된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6-7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을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을 한 모범으로 제시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꽉 붙잡아야할 것으로 생각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려놓아야 할 것으로 여기셨다. 예수님은 권리와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처럼 섬기는 자가 되셨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인류가 피차 멸망할 수렁에서 벗어나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며 세상을 살릴 방법을 깨우쳐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