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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06 12:11
하나뿐인 복음23: 복음과 자유(5)(갈 5:16-2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4  

하나뿐인 복음23: 복음과 자유(5)(갈 5:16-26)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사랑의 법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그리스도인을 신령한 사람(the spiritual), 쾌락과 자유지상주의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을 육신에 속한 사람(the worldly)으로 규정한바가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비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영을 좇는 사람이었다.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성령을 따라 행하는 신령한 사람과 성령을 거스르는 육신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육신에 속한 사람으로 구분하였다. 바울은 18절에서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기”(17절) 때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하나님의 비밀 곧 십자가의 도를 깨달은 사람, 그리스도의 마음 곧 하나님의 영을 좇는 사람, 믿음지식과 성화가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사람, 자유인이지만 사랑의 법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따라 행하는 사람,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영에 다리를 걸친 사람, 믿음지식과 성화가 멈춘 사람,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 바울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을 말한다. 또 바울은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을 율법주의자와 방탕주의자로 구분하였다. 율법주의 그리스도인은 유대인 에비온파,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교의 복음에 양다리를 걸친 사람. 금욕주의자 등을 말한다. 반면에 방탕주의 그리스도인은 헬라인 영지주의자, 헬라철학과 그리스도교 복음에 양다리를 걸친 사람. 쾌락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자를 말한다.

바울은 성령의 법을 자율로 율법을 타율로 보았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으면,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하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해야 한다”(13절). 자유의 본래적 목적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고, 자유자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자율적이다. 반면에 율법은 지키도록 강제하는 규범이고, 조건적이며, 이를 지키려하는 자는 마지못해서 하거나 자기 의를 이루려는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타율적이다. 그러나 율법에 의한 행위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고 그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자유를 얻기 위한 율법주의자의 선행은 아직 받지 못한 것을 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조건적이고 계산적이며 동기가 불순하다는 점에서 타율적이다. 그러나 이미 자유를 얻은 복음주의자의 선행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는 말씀을 자율적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기가 순수하다. 동기가 순수한 것이 자율적이고, 동기가 불순한 것이 타율적이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래적 신앙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이익의 도구로 삼거나 하나님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이익의 도구로 삼거나 이웃을 섬김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이익의 도구로 삼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죄의 성질)의 욕심에 따라 타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믿음으로 회복한 영적 본래성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본래성마저 상실하게 된다. 결국 자유를 잃고 공허한 성공주의의 속박에 묶여 살게 되는 것이다.

언약법의 특징은 “너희가 ...하면, 내가 ~하겠다.”는 데 있다(출 15:26, 19:5; 신 6:25; 왕상 3:14, 9:4, 11:38; 대하 7:17; 슥 3:7).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공리주의나 자유지상주의와 같이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지 못한 결과중심주의 또는 성공주의를 철저히 반대하였다. 칸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옛 언약법은 가언적이고 조건적이며 계산적이다. 칸트는 율법을 조건적이고 계산적으로 지키는 행위를 결과(공리)라는 타율에 의한 것이고 동기가 불순하다고 보았다. 결과를 따지는 행위, 계산적인 행위는 동기에 문제가 있다.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행위는 결과에 지배를 받거나 조종당하기 때문에 타율적이다.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못하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자기 백성을 향해서 항상 회개를 촉구했던 것도 떠돌이와 노예의 사슬을 끊고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워주신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아 사랑하고 감사함으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항상 눈에 보이는 결과와 당장 현실문제에 해답이 되는 것들을 좇다가 망했거나 망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새 언약법을 믿음의 법, 은혜의 법, 성령의 법으로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법대로 살고자 하는 이유는 결과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성취된 결과로 인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사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칸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새 언약법은 정언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행위는 성령에 의한 열매들을 맺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으므로 구원의 본래 목적인 성령에 의한 열매들을 맺어야 한다.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바울은 로마서 7장 5-6절과 21-25절에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타율)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자율)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조문의 묵은 것(타율)으로 아니할지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자율)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타율)이 내 마음의 법(자율)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타율)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자율)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타율)을 섬기노라.”고 하였다. 여기서 “영의 새로운 것,” “하나님의 법,” “내 마음의 법”은, 칸트의 의견을 빌리자면, 순수 실천이성에 지배를 받아 본래적 목적을 따르는 자율이고,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하여 본래적 목적인 성령에 의한 열매들을 맺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동기가 순수하지만, “죄의 정욕,” “율법조문의 묵은 것,” “한 다른 법,” “죄의 법”은, 칸트의 의견을 빌리자면, 본능이 갖는 죄의 성질에 지배되는 타율이고, 아직 받지 못한 것을 받기 위해서 지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동기가 불순하다.

동기가 순수한 것이 자율이고, 동기가 불순한 것이 타율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본래적 신앙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이익의 도구로 삼거나 하나님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이익의 도구로 삼거나 이웃을 섬김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이익의 도구로 삼는다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성질에 따라 타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믿음으로 회복한 영적 본래성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본래성마저 상실하게 된다. 결국 자유를 잃고 공허한 성공주의의 속박에 묶여 살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그 같은 일을 육체의 일로 규정하고, 그 같은 것들을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이라고 했으며,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다.”고 경고하였다.

반면에 바울은 22-26절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행위는 성령에 의한 열매들을 맺게 되는데, 그 같은 것들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꼽았다. 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므로... 성령으로 행해야 하며,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아야한다.”고 권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