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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11 13:06
하나뿐인 복음24: 예수의 흔적(1)(갈 6: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3  

하나뿐인 복음24: 예수의 흔적(1)(갈 6:1-5)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강조한 내용을 6장 10절까지로 이어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자유와 권리를 바르게 쓰고 누리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재차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울은 6장 1절에서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권하였다. 바울은 이미 두 종류의 종 노릇을 언급하였는데, 죄의 종 노릇과 사랑의 종 노릇이 그것들이다. 죄의 종 노릇은 피차 멸망하는 길이지만, 사랑의 종 노릇은 피차 상생하는 길이다. 따라서 비난이나 비판의 자세가 아니라, 온화하고 부드러운 낮은 자세로 범죄한 형제가 바로 서가도록 도울 뿐 아니라, 자신도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도록 조심스런 마음을 가지라는 부탁이다.

계속해서 바울은 6장 2절에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짐”은 헬라어 ‘바로스’(baros)를 번역한 것으로써 혼자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버거운 짐,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가혹한 일 등을 말한다. 따라서 2절의 “짐을 서로 지라”는 말은 “사람이 만일” 범죄의 결과로 과중한 책임에 허덕일 때, 또는 실패와 좌절로 인해 시험에 들거나 괴로워 몸부림칠 때, 범죄의 유혹이나 위협 속에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뜻이다.

또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실천하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바가 있다. 또 마태복음 22장 40절에서 “온 율법과 선지자들” 곧 구약성서의 가르침이 사랑에 있다고 말씀하신바가 있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서 이미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뤄졌다.”고 하였고, 로마서 13장 10절에서는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예수님께서 생전에 친히 모본을 보이시고 율법을 성취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는 방식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성취하라는 뜻이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갈라디아서 6장 3-4절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할 것이다.”는 사랑으로 종 노릇하지 않는 자가 형제를 멸시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라는 뜻이다.

‘자랑질’은 교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헬라인들이 교만하고 오만한 자들이 신들로부터 응보(네메시스)를 받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고 저주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랑거리’는 사랑으로 종 노릇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이다. 그런데 하라는 종 노릇은 하지 않으면서 잘난 자기를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고 오만을 떠는 행위는 백해무익한 짓이다. 주어진 ‘자랑거리’는 섬김으로 남에게 기부되지 않으면, 남에게는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다. 또 ‘자랑질’은 약자를 등치고 지배하려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바울시대에 유대교에 큰 관심을 보였던 큰 무리의 헬라인들과 다수의 귀부인들이 그리스도교에 재차 개종했던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는 헌신적인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일체감이 강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가입하면 의식주 해결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믿음 때문에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형제자매로 환대받았다. 게다가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높은 윤리성과 도덕성으로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며” 깨끗한 삶을 살았다.

반면에 3만이 넘는 신들을 믿었던 헬라인들은 참 신(神)에 대한 갈망이 컸다. 헬라의 신들은 능력을 행하고 죽지 않는다는 것 빼고는 상당수가 인간들보다 훨씬 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었다. 이로 인해서 헬라인들의 상당수가 이 헛된 신들과 공허한 철학에 환멸을 느꼈고, 유대교의 윤리도덕적인 유일신에 큰 반응을 보였다. 큰 무리의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조차 ‘하나님 경외자’의 신분으로 유대교회당에서 하루 세 번씩 갖는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게다가 바울이 전한 기독교 복음은 디오니소스 제전이 제공한 본능적 원시적 성적 에너지의 발산과 쾌락이 채워주지 못했던, 또 카비루스신앙과 황제숭배신앙이 채워주지 못했던, 심지어 유대교조차 채워주지 못했던 헬라인들의 영적인 목마름을 해소시켜주었다. 이런 식으로 바울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였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다.”

갈라디아서 6장 5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다.”에서 “짐”은 헬라어 ‘포르티온’(phortion)을 번역한 말로써 배에 싣는 한 사람의 ‘짐 꾸러미’를 뜻하였다. 따라서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다.”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맡기신 직무나 책무를 감당하라는 말이다.

또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절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에 잇대어져 있다. 이 말씀은 공동체의 구성원은 공동체를 위해 서로 짐을 지되, 각자는 자기 일로 남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바울은 친히 자기의 손으로 일하는 모범을 보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고 하였다.

바울은 이미 앞에서 종의 멍에는 메지 말되 사랑의 멍에는 메라고 권면한바가 있다. 율법의 멍에는 메지 말되, 자기 십자가는 지라고 권한바가 있다. 계속해서 바울은 6장 2-5절에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권면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공동체의 연대책임뿐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의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3-15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권면하였다. 이것은 자기결정권을 우상시하는 자유지상주의자나 율법과 규례를 절대시하여 이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멸시하고 손가락질하는 율법주의자로 살지 말고, 사랑으로 자기 권리와 권한을 제한하여 서로 섬기는 자들이 되라는 권면이다. 그리고 6장 2-5절에서는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위해 서로 짐을 지되, 자신의 짐을 공동체에 떠넘기지 말라고 하였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책임지되, 만일 그럴 형편이 못 되는 형제가 있다면, 그 형제의 십자가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나눠지라고 권면하였다. 예수님께서 생전에 친히 모본을 보이시고 율법을 성취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종 노릇하는 방식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성취하라고 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