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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12 16:17
하나뿐인 복음26: 예수의 흔적(3)(갈 6:11-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10  

하나뿐인 복음26: 예수의 흔적(3)(갈 6:11-18)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갈라디아서 6장 11절,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에서 “큰 글자로 쓴 것”은 1장 1절부터 6장 10절까지가 대필자에 의해서 기록되었고, 11절부터는 친필로 쓰고 있음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17절에서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쓴다.”고 하였는데, 이 같은 친필 문안이 고린도전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에도 있다. 따라서 “큰 글자”는 장문의 글이란 뜻으로 이해되기보다는 바울이 사용한 큰 글씨체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12-13절,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다.”는 바울이 베드로에게 했던 책망, “당신은 유대인인데도 유대인처럼 살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에게 유대인처럼 살라고 강요합니까?”(2:14)와 연결했을 때 이해될 수 있다. 베드로는 안디옥에 머물고 있을 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했는데, 한번은 그들과 함께 먹고 있다가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오자 그들로부터 비난받을까 두려워하여 자리를 피해버렸다. 이 같은 행동은 베드로가 보였던 앞선 행동과 변증들을 뒤집는 처신으로써 다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외식하게 만들뿐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행위였다. 그러므로 12절에서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은 할례를 주장하는 에비온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말한 것이고,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는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함으로써 받고 있었던 유대인들로부터의 박해에서 보듯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인 동족으로부터의 비난과 박해를 모면하려고 율법과 상관없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다.”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는 바울에게 있어서 세상은 더 이상 무슨 가치나 의미가 없으므로 죽은 것이고, 바울 또한 세상에게 죽은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15절에서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선언하였다. 이 선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에 연결된다.

16절,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에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교회를 뜻한다. 끝으로 바울은 17-18절에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편지를 마쳤다.

바울을 괴롭게 한 자들 가운데는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모세의 율법에 편향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할례의 흔적’을 자랑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할례의 흔적은 유일신 하나님이 그들만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랑의 표시였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이 할례를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구원에 필요한 것은 육체에 새긴 ‘할례의 표’가 아니라, ‘심비(心碑)의 표,’ 곧 ‘예수의 흔적’임을 강조하였다.

학자들은 바울이 말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에 대해서 네 가지 정도의 해석을 내리고 있다. 첫째는 빈번한 박해와 고문으로 인해서 몸에 생긴 흉터를 말한다는 주장, 둘째는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가 갖고 있었다는 ‘성흔’(聖痕)이 바울에게도 있었다는 주장, 셋째는 이교도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헌신을 맹세할 때 몸에 만드는 제의적인 흔적이 바울에게도 있었다는 주장, 넷째, 점진적인 성화를 통해서 점차 명확하게 마음에 새겨지는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들 가운데 첫 번째와 네 번째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자주 강조하였다. 신학자 케제만은 바울이 즐겨 쓴 ‘그리스도의 노예’란 표현을 그리스도를 향한 “바울의 운명적 사랑”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당시 노예들의 몸에는 이마에 새긴 ‘도망자’라는 화인(火印:“F”=Fugitivus)을 비롯해서 채찍에 맞아 생긴 흉터들을 갖고 있었다. 바울의 몸에도 그가 그리스도의 노예로서 살았던 고난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었다. 따라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표현은 바울이 어떤 경우에도 주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노예처럼 온몸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는 ‘자기인식’ 또는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다.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온몸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는 고난의 흔적들이 있는가에 있다.

조나단 워커(Jonathan W. Walker)는 1799년 3월 22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해리치(Harwich on Cape Cod)에서 출생하여 17세에 선원이 되었다. 선장 워커는 1844년 6월 22일 플로리다 주 펜서콜라(Pensacola) 농장에서 도망한 7명의 노예들을 배에 태워 바하마의 수도 나사우(Nassau)로 보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워커와 도망노예들은 7월 8일 플로리다 주 최남단에 위치한 키즈(Keys) 제도(諸島)에서 체포되었다. 7명의 노예들은 다시 농장으로 끌려갔고, 워커는 키웨스트(Key West)에 잠시 구금되었다가 7월 18일 펜서콜라로 끌러가 이듬해 5월 20일 석방될 때까지 감금되었다.

검사는 각각의 노예들을 별건으로 기소하였고, 이 때문에 워커는 노예 도둑질 한 건에만 기소당하지 않고, 총 4건에 기소 당하였다. 1844년 11월 16일 워커는 첫 건에 대해서 오른손에 “SS”(Slave Stealer)라고 새긴 낙인 곧 ‘노예 도둑’을 의미하는 글자를 찍는 불인두형과 15일간 투옥(실제로는 벌금을 완납할 때까지) 및 150불의 벌금형을 받았고, 이듬해인 1845년 5월 8일 나머지 3건의 기소에서 450불의 벌금형을 추가로 받았다. 이에 노예제 폐지 지지자들이 모금운동에 나섰고, 워커를 석방하는데 필요한 돈을 모아 벌금 600불과 변호사비용 300불을 갚음으로써 워커는 5월 20일 풀려날 수 있었다. 이 당시 900불은 큰 액수의 돈이었다(약 3천2백70만원).

고향에 돌아온 워커는 선장을 그만두고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순회강연을 다녔으나 생활형편이 어려워 1852년 위스콘신 주로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사회개혁가로 변신하여 두 개의 공동체를 세웠으나 실패하자 1864년 미시건 주 머스키건(Muskegon)에 정착하였다. 부인 제인은 1871년에, 조나단 워커는 1878년 4월 30일 사망하였다. 그들은 노턴 공동묘지(Norton cemetery)에 검소하게 안장되었으나 그를 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금을 마련하여 머스키건 소재 에버그린 공동묘지(Evergreen cemetery)로 이장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1878년 8월 1일 거행된 기념비제막식에 6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그리고 1921년 8월 16일 참배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그와 그의 기념비는 공동묘지 입구로 옮겨졌다.

이처럼 선한 일에는 흔적이 남는다. 워커에게는 두 가지 흔적이 남았는데, 한 가지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그리스도 예수의 흔적이요, 다른 한 가지는 그의 무덤과 기념비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시건 주 머스키건에 소재한 에버그린 공동묘지를 찾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