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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7 07:36
밝혀진 비밀12: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들(2)(엡 4:11-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0  

밝혀진 비밀12: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들(2)(엡 4:11-16)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교회에 일군들을 세우셨는데, 에베소서 4장 11절은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장로)와 교사로 삼으셨다”고 하였다.

이 가운데 사도와 선지자는 2장 20절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언급된바와 같이 한 몸 그리스도의 교회공동체가 세워진 기초이다. 여기서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말한다. 교회는 하나뿐이므로 그 교회가 세워진 기초도 하나뿐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몸이자 머리이시며, 기초를 놓는 기준이 되는 네 모퉁이돌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한 더 이상의 다른 그리스도가 있을 수 없고, 또 더 이상의 다른 사도나 선지자가 있을 수 없다. 이는 예수님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받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르치고 전한 전통 외에 다른 가르침이나 전통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교회에 보낸 서신들에서 "배운 것"이란 말과 "전한 것"이란 말을 여러 차례 썼다. 복음의 말씀을 누구한테서 배웠는가와 누가 전하였는가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께 배워서 사도들이 전한 것이 복음의 올바른 계보요 전통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7-9절에서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 하였고, 데살로니가후서 3장 6절에서도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도, 사도의 가르침 이외의 것을 가르치는 자를 일컬어, 거짓선지자요, 적그리스도라고 단정하였다.

1세기 그리스도교 상황에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들이었다. 반면에 목사들과 교사들은 지역교회에서 뽑혀 그 교회를 섬기는 장로들을 말한다. “목사와 교사”로 번역된 헬라어‘poimen’과 ‘didaskalos’는 양을 치는 목자와 가르치는 자라는 뜻이다. 이 두 직책이 오늘날의 목사에 해당될 수 있으나 종교개혁이전에는 목사라는 직책이 없었으므로 전통적으로는 장로(4세기이후 사제)의 직책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다.”

신구약시대 모두 유대교 회당에는 설교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회당은 유대인들의 기도회 장소이자, 교육을 펼치는 학교였으며, 종교재판이 열리는 공회였다. 이 회당의 최고 책임자들을 회당장이라 불렀는데, 세 사람이었으며, 모두 장로들이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운 후 양떼의 목자와 감독자로 장로들을 세웠는데, 그 숫자가 셋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바로 에베소서 4장 11절에 언급된 목사와 교사들이었다.

지역교회가 각자의 장로(감독)들의 사목을 전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같은 떠돌이 복음전도자 시대가 끝난 1세기말부터였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교가 392년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성체신학(Mass)의 발전으로 장로들을 사제(제사장)로 호칭하게 되었고, 사제(장로) 밑에 부제(집사), 사제위에 주교(감독), 주교위에 대주교, 그 위에 가톨릭에서는 추기경(Cardinal)과 교황(Pope)의 직제가 생겼으며, 정교회에서는 총대주교(總大主敎, Patriarch)가 생겼다. 따라서 목사라는 호칭은 가톨릭교회, 정교회, 성공회, 미국 감리교 등에는 없는 직책이다. 당연히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도 없는 직책이다. 이들 전통교회들에서는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가 없었고, 특히 가톨릭교회에서는 1400여 년간 라틴어 성경과 라틴어 미사만 허용되었으므로 (라틴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신자들 때문에) 설교자는 물론 대표기도자도 없었다.

16세기에 이르러 가톨릭교회 사제들이었던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마르틴 부쳐가 사제(priest)라는 호칭을 버리고 대신에 목자(목사, pastor)를 사용했고, 장 칼뱅과 존 녹스가 평신도 장로대의제도를 개혁주의 교회들에 도입함으로써 생긴 것이 임기 1년의 평신도 선출직 장로들이었다. 이때부터 개신교에서는 목사와 장로가 나뉘게 되었고, 목사가 장로인가 혹은 장로가 아닌가라는 논쟁이 불거졌다. 종교개혁으로 생긴 개신교 역시 모두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아니한 시의회교회 또는 국가교회체제였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고,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가 허락된 곳은 신대륙 미국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도들과 장로들이었고(행 11:30), 장로 야고보가 그들의 수장이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개척한 교회들에 장로들을 뽑아 지도자로 세웠고(행 14:23), 디모데는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았으며(딤전 4:14),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석별의 정을 나눴다(행 20:17). 이때 바울은 그들을 감독과 목자로 호칭하였다(행 20:28).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에서 언급한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여기서 다스리는 자들은 치리장로(감독)들을 말하고, 권하는 자들은 설교장로들을 말한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다”고 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다.”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교회에 일군들을 세우신 목적을 말한다. 바울은 그 목적을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라고 하였다. 여기서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는 문자적으로 “성도들의 준비를 향하여”라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어부가 고기잡이를 나가기 전에 찢어진 그물을 깁고 수선하는 것과 같고, 건축가가 완성도 높은 집을 짓기 위하여 부족한 실력을 연마하는 것과 같아서 교회의 일군들이 성도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잘 세울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일군들을 세우신 목적이 바로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일군들은 코치나 감독과 같아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도록”훈련시키는 자들인 것이다.  

둘째는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라고 하였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교회에 일군을 세우는 것이나 또 일군들이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나 또 준비된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의 목적에 해당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13-14절에서 설명하였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이고,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는 것이다. 또 그것은  우리가 성장을 멈춘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지지 않는 것이며,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는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용납으로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쓰셨다.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통합하게 하시고, 사람들끼리도 연합시키셔서 만물을 충만케 하셨다. 이 높은 경지의 성숙함, 이 깊은 차원의 정신이 바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15-16절에서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한다.”고 했고, 또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역할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듯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도 이 같은 방식으로 사랑으로 공동체를 완성시켜 나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