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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9 05:32
밝혀진 비밀13: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들(3)(엡 4:17-3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3  

밝혀진 비밀13: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들(3)(엡 4:17-32)

“너희는 이방인이...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행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에 대해서 말하였다. 바울은 17절에서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말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유물들, 조각상, 부조(relief), 프레스코화(fresco), 주화(coin), 도기화(red-figure, black-figure) 등을 살펴볼 때, 그리스로마신화들이 당대의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깊이 녹아들어 있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들은 3만이 넘는 신들을 믿었고, 올림포스의 주신들만 해도 12신이나 되었다. 주신인 제우스(유피테르)의 경우 천하에 둘도 없는 난봉꾼이었다. 이성간 간통, 동성간 간통, 수간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폴론만 해도 자신은 늘 동애자들이 선호할만한, 요즘의 십대 아이돌형상처럼, 미소년으로 조각이 되었고, 실제로도 히아킨토스(히아신스)를 사랑했던 동성애자이기도 했다. 그들이 섬기는 또는 그들의 삶이 투영된 신들의 형편이 이렇다보니까 당대의 그리스로마인들은, 디오니소스(바쿠스)제전의 오르지(orgy)에서 보듯이, 성적 타락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근친상간, 동성애, 매춘이 성행했고, 여성들도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해서라면 남편이나 연인 갈아타기를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로마시대에는 노예의 숫자가 전체인구 6천만 명 가운데 15퍼센트인 9백만 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이들 노예들은 조선시대의 노비와는 다르게 대부분이 전쟁 때 사로잡힌 포로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의사, 변호사, 교사와 같은 고급인력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의 몸값 또한 매우 높았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이 겁탈하면 겁탈당하고, 때리면 맞고, 굶기면 굶고, 가두면 갇혀야했던 자기 운명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매춘이 성행했던 이 당시 몸을 파는 여성의 대다수는 노예들이었는데, 주인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사람들 곧 참 신 야훼 하나님을 몰랐던 이방인들의 삶은 그들이 섬겼던 신들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었던 것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었다. 이것이 바울이 17-19절에서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권면한 배경이다. 바울은 그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았고, 무지와 완고함으로 살았으며, 지각이 어둡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었으며, 수치심을 잃었고, 방탕한 삶에 자신들을 내맡겼으며, 탐욕과 모든 더러운 일들을 행하였다고 진술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다.”

반면에 바울은 20절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참 신이신 야훼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당대의 사람들이 섬기던 3만이 넘는 거짓 신들과는 근본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헬라의 신들은 능력을 행하고 죽지 않는다는 것 빼고는 상당수가 인간들보다 훨씬 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었다. 그 때문에 다수의 헬라인들은 참 신(神)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들은 헛된 신들에 환멸을 느꼈고, 유대교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유일신 야훼 하나님에 큰 반응을 보였다. 큰 무리의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조차 ‘하나님 경외자’(문의 개종자)의 신분으로 회당기도회에 참석하였다. 게다가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교 복음은 디오니소스(바쿠스)제전이 제공한 본능적 원시적 성적 에너지의 발산과 쾌락이 채워주지 못했던, 또 카비루스신앙과 황제숭배신앙이 채워주지 못했던, 심지어 유대교조차 채워주지 못했던 헬라인들의 영적 목마름을 해소시켜주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21절에서 “예수 안에 진리가 있다.”고 했다. 이 진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게 하는 진리이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다.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고, 예수님께서 가르친 진리로 하나님을 알며, 예수님이 마련해 놓으신 새 생명을 얻는다. 따라서 성도들은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빌 4:9)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다.

바울은 또 22-24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다. 이것이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합당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미 앞서 쓴 서신들에서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에 대해서 수차례 언급한바가 있다. 특히 갈라디아서 5장 19-26절에서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고 권면하였다.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러면 우리가“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기”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25-32절이다.

첫째, 거짓을 버려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셋째, 화가 나더라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말아야한다. 넷째,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한다. 다섯째, 도둑질하던 사람은 더 이상 도둑질하지 말고, 도리어 빈곤한 자에게 나눠줄 것이 생기도록 수고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어야한다. 여섯째,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쳐야한다. 일곱째,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약정서에 도장 찍으시고 보증하시는 분이므로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여덟째,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려야한다. 아홉째, 서로에게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해야한다.

아들이 없는 어느 임금이 대궐 밖을 암행하다가 다리 밑에서 잠자는 거지 아이를 보고 데리고 와서 양자를 삼았다. 거지 아이는 임금의 호의로 왕자가 되었다. 저녁이 되자 새 왕자는 대궐 밖으로 나가려 했다. 신하들이 만류하자 그는 “나는 본래 거지라서 내 잠자리는 다리 밑에 있다.”고 말했다. 새 왕자는 아침이 되자 또다시 대궐 밖 강가로 나가려 했다. 신하들이 만류하자 그는 “나는 본래 거지라서 내가 세수할 곳은 저 강가다.”고 말했다. 그가 이처럼 행동한 것은 그가 아직 왕자신분이라는 정체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왕자다. 그러니 왕자답게 살자.’는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신분이 바꿨다는 인식이 분명할 때 생활방식이 바뀔 수 있다. 인식이 바꿔야 행동이 바뀔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새로운 작품들이다. 하나님의 명품 자녀들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왕자들이요 공주들이다. 왕자에게는 왕자에 어울리는 옷맵시가 있고, 말씨가 있으며, 걸음걸이가 있다. 공주에게는 공주에 어울리는 옷맵시가 있고, 말씨가 있으며, 걸음걸이가 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없다면, 삶이 바뀔 수 없고, 운명이 바뀔 수가 없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하였다. 우리 성도들은 더 이상 과거의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작품들이다(2: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