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9-04-25 12:48
히든카드01: 머리말(골 1:1-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98  

히든카드01: 머리말(골 1:1-2)

골로새(Colossae)

골로새서는 빌립보서, 에베소서, 빌레몬서와 함께 사도 바울이 주후 60년에서 63년 사이에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한 서신이다.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빌었다.

골로새에 빌레몬의 집이 있었고, 그의 집에서 골로새 교회가 모였다. 오네시모(Onesimus)와 아킵보(Archippus)도 이 교회 출신이었다(4:9, 17). 바울 일행이 제3차 선교 여행지인 에베소에 2년 3개월간 머무는 동안 에바브로(Epaphras)가 이곳에 교회를 세웠다.

골로새는 에게해 연안 에베소에서 메안데르(Maeander) 강의 지류인 뤼쿠스(Lycus) 강을 따라 동쪽으로 193km 떨어진 카드무스 산(Mt. Cadmus, 현재명은 Mt. Honaz National Park, 2,528m) 북쪽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서쪽으로 13km 지점에 라오디게아(Laodicea, 4:13), 21km 지점에 야외 온천으로 유명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Pamukkale, 4:13)가 삼각 형태로 위치해 있었다. 골로새는 페르시아제국과 헬라제국시대에 에게해 연안 도시들인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에서 동쪽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어진 군사와 교역 도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요충지였다. 주전 5세기경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골로새를 ‘브루기아의 큰 도시’라고 불렀고, 주전 4세기경의 역사가 크세노폰은 ‘인구가 조밀하며 풍부한 부를 누리고 있는 도시’라고 표현하였다. 골로새는 양모생산지였고, 골로새에서 생산된 양모는 콜로시누스(Colossinus)로 불렸다. 이런 정황으로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이들 지역에 거주하였다. 그러나 로마시대에는 주요 도로의 위치가 변경된 데다가 네로 통치시대에 큰 지진이 일어나 파괴된 후 골로새만 복구되지 못했으며, 작은 마을로 존재하다가 비잔틴시대인 7-8세기경 아랍인들의(Saracen) 침략으로 버려진 마을이 되었다. 주민들이 아랍인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지대가 높은 카드무스 산기슭 코내(Chonae) 곧 오늘날의 호나즈(Honaz)로 옮겼기 때문이다. 호나즈는 골로새에서 남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호나즈(2,528m) 국립공원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프랑스의 루이 7세(Louis VII)가 이끌던 제2차 십자군이 1148년 1월 6일에 발발한 카드무스 산 전투에서 룸의 셀주크(Seljuks of Rum)에 패함으로써 완전히 무슬림 지역이 되었다.

룸 셀주크는 튀르크계 왕조 국가로 11세기 말부터 1308년까지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지배했다. 본래 수도는 니케아(Nicaea)였지만, 1097년 제1차 십자군에게 니케아를 빼앗긴 뒤로는 이고니온(Iconium, 현재명 Konya)에 수도를 두었다. 그러나 14세기 초부터는 몽골 제국에 종속되었다.

성 미카엘 교회(St. Michael Church)

4세기 초에 교회사를 쓴 유세비우스(Eusebius)는 네로 통치 10년째(주후 64년경)에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폴리스를 황폐시킨 큰 지진이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이 증언을 근거로 볼 때 바울이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를 써 보낸 직후에 골로새를 파괴시킨 지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도 네로 통치 7년째에 라오디게아가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지진 후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는 재건되었으나 주후 96년에 기록된 계시록에 골로새가 없는 것으로 보아 골로새는 재건되지 못하고 작은 마을로 남아 그 명성을 잃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골로새는 아직까지 한 번도 발굴된 적이 없고, 옛 골로새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언덕(tell)에 안내 간판만 있을 뿐이다.

반면에 히에라폴리스에서 멀지 않은 케레토포스(Cheretopos, 코내라는 주장도 있다.)에는 미카엘 천사를 기념하여 4세기에 라오디게아 사람이 지은 성 미카엘 교회가 있었다. 에베소에 거주하던 사도 요한이 이곳까지 내려와 복음을 전한 후 떠나면서 거룩한 물이 흐르는 샘이 생길 것인데 미카엘이 그 물로 큰 능력을 행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전한다. 그 후에 병을 고치는 거룩한 물이 흐르는 샘이 생겼고, 사람들이 몰려와 이 물로 병을 고쳤다고 전한다. 한편 인근 라오디게아에 부유한 헬라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말을 못하는 벙어리 딸이 있었다. 그도 이 샘의 물로 자신의 딸의 병을 고친 즉시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가족이 모두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샘가에 성 미카엘 예배당을 지어 바쳤다.

한편 아킵보(Archippus)라는 주의 종이 성 미카엘 교회를 섬겼는데,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 반면에 이방인들은 아킵보와 그리스도인들을 혐오하여 제거할 목적으로 산에서 흘러내리는 두 물줄기를 하나로 합류시켜 큰 물줄기를 만들었고, 그 물줄기가 곧바로 교회를 향해서 흐르도록 만들었다. 이에 아킵보는 미카엘에게 이 재앙이 닥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고, 미카엘이 교회 근처에 나타나서 지팡이로 바위를 처서 크게 갈라지게 하였으며,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갈라진 바위틈으로 빨려들게 함으로써 교회를 보호했다고 한다. 성 미카엘 교회는 858년 대주교좌 교회로 발전되었으나 12세기 말에 셀주크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

골로새서의 기록 목적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목적은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이단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바울은 전반부 1-2장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1:15), 만물의 창조주(1:16),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1:17), 교회의 머리와 근본 및 죽은 자 가운데 먼저 부활하신 분(1:18),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시는 유일한 중보자(1:20) 또한 하나님의 충만한 신성을 몸에 지닌 분(2:9)으로 소개하였다. 바울은 인간이 만들어낸 철학의 허구성을 밝히고,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충족성을 피력했다. 후반부 3-4장에서는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구하며, 성화와 사랑의 띠를 매며, 피차 복종하고 사랑하며,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을 것을 당부하였다.

골로새 교회는 세 가지 위험에 처해 있었다.

첫째, 초등학문의 위험이 있었다. 초등학문의 위험은 주로 천사숭배나 점성술에 있었다. 천사숭배는 어떤 천사들이 인간의 일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까지도 지배한다는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천사들을 달래고 회유하기 위해서 그들의 존재와 활동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했다. 점성술은 인간의 운명이 출생과 얽혀 있는 별들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믿는데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별점을 쳐주는 장사가 널리 유행했다. 이런 형태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지위를 위협하는 요소였다.

둘째, 율법주의의 위험이 있었다. 유대교에서는 엄격한 카샤룻(Kashrut) 음식 규정과 손 씻기 및 안식일 법 등을 규정하였고, 절기를 지키고, 할례를 행하도록 하였다. 초기 교회를 가장 크게 위협한 이단이 바로 이 유대교적 율법주의였다.

셋째, 영지주의의 위험이 있었다. 물질과 육체를 악하게 보고 성육신을 부정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금욕을, 다른 일부는 방탕을 일삼았기 때문에 초기 교회를 크게 위협하는 이단이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침투한 이들 이단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히든카드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히든카드는 국면전환이나 전세를 역전시킬 목적으로 준비한 전략인데, 상대편에게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런데 바울은 이 편지에서 하나님께도 히든카드가 있었고 또 그 카드를 사용하셨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