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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27 07:13
1세기 교회질서40: 선한 일을 힘쓰는 그리스도인(9)(딛 3:9-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90  

1세기 교회질서40: 선한 일을 힘쓰는 그리스도인(9)(딛 3:9-15)

“어리석은 ... 다툼은 피하라”

바울은 9-11절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는다.”고 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네 가지를 피하라고 권하였다. 첫째는 “어리석은 변론”을 피하라. 둘째는 “족보 이야기”를 피하라. 셋째는 “분쟁”을 피하라. 넷째는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했다. 같은 권면이 디모데에게도 주어졌다. 이어서 바울은 “어리석은 변론,” “족보 이야기,” “분쟁,”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해야할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무익한 것... 헛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4절에서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어리석은 변론,” “족보 이야기,” “분쟁,” “율법에 대한 다툼”은 어리석고 공허하며 “끝없는” 것이어서 정신과 시간을 온통 빼앗아버려 선한 사역에 몰두하지 못하게 만들어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둘째는 변론과 분쟁 또는 다툼의 상대가 “이단에 속한 사람,”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토론이나 변론을 통해서 이런 자들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조차도 이런 자들과의 싸움이 녹록치 않았다. 따라서 바울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10절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는” 것이었고, 교회공동체에서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신학적인 논쟁조차 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과 “다른 예수”를 전하며 교회의 울타리를 허물기에 혈안이 된 여우무리 곧 유대인 에비온파를 저지하고 몰아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웠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1-13절에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고(딤전 1:18, 6:12), 디도에게도 에비온파의 “입을 막을 것이라...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권하였다(1:11-13). 같은 이유로 예수님과 사도들과 선지자들도 유대교의 ‘미슈나’(Mishnah), 일명 ‘장로들의 유전’(oral torah) 혹은 ‘게자이로트’(gezairoth)로 알려진 ‘안식일 법,’ ‘식사 전 손 씻기법,’ ‘카샤룻 음식법,’ ‘그릇 씻기법’ 등이 고침 받아야할 병든 상태 또는 청산되어야할 적폐란 점을 강력히 지적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4장 7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철학이나 신화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부정하는 것들을 말하고, 철학, 헛된 속임수, 사람의 전통, 세상의 초등학문이 그리스도를 믿는 교리에 상반될 수 있다는 경고이다. 그 같은 무기로 그리스도께서 주군으로 계신 거룩한 백성을 가로채고 사로잡으려는 자들에게 포로가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라는 경고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부정하는 것들을 일컬어 초등학문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특히 4장 10절에서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킨다.”며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는데, 빛으로 말하자면, 태양빛이 아니라 별빛이나 달빛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바울이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들로 지적한 것 가운데 가장 경계한 적대세력이 토라준수를 강조한 유대인 에비온파였다. 그들은 교회에 침투하여 바울 사도의 가르침과 권위에 강력히 도전하였다.

당대 그리스-로마사회의 문화와 관습은 신화에 기초한 종교와 철학에 깊은 관계가 있었다. 사람들은 3만이 넘는 신들을 받아들었고, 신전이나 사당에 모셔져 예배를 받았던 신들도 수없이 많았다. 또 각 신전과 사당들에서는 매년 수차례씩 축제가 열렸다. 이들 축제들은 대개가 우상숭배와 음복과 음행이 수반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혹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참된, 영원한, 빛의, 진리의 세계를 강조한 플라톤의 이데아론; 보이는, 땅의, 윤리적인, 현실적인, 현상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금욕을 강조하는 스토아철학의 숙명론,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긴 에피쿠로스철학에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도 주의해야할 것들이었다.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12절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에서 “아데마”(Artemas)는 에베소의 주신 아데미(Artemis)의 남성형이거나 ‘아데미의 선물’이란 뜻의 ‘아르테미도루스’(Artemidorus)의 약칭일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아데미는 디모데의 고향교회인 루스드라의 감독이었다고 한다. “두기고”(Tychicus)는 바울과 함께 여러 번 여행하였다(행 20:4, 엡 6:21, 골 4:7). 바울은 에베소서 6장 21-22절과 골로새서 4장 7-8절에서 두기고를 바울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성도들의 마음을 바울을 대신해서 위로할 수 있는 사람,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이라고 불렀다. “두기고”(Tychicus)란 이름은 ‘행운’ 또는 ‘운명’이란 말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름대로 파송된 지역의 성도들에게 예기치 않은 행운과 기쁨과 위로를 가져다주었다.

니고볼리(Nicopolis)는 ‘승리의 도시’란 뜻이다. 주전 31년에 악티움(Actium) 인근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함대를 물리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제국의 초대황제에 즉위한 주전 29년에 해전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자치도시로써 로마시민증을 수여받은 퇴역군인들의 정착지로 개발되었다. 따라서 이탈리아에 적용되는 동등한 권리(jus italicum)가 이곳에서도 적용되었다. 니고볼리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사이에 있는 이오니아 해(Ionian Sea) 그리스 땅 해안에 있었기 때문에 디도가 바울을 만나기 위해 그레데에서 배를 타고 가기에 편리한 곳이었다.

13절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라”에서 “세나”(Zenas)는 ‘제우스의 선물’이란 뜻을 가진 ‘제노도루스’(Zenodorus)의 약칭일 것이다. 세나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 율법사였거나 헬라인 법률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볼로(Apollos)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구약성경의 모형론 해석에 뛰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바울 일행을 만나 개종하였고 그들의 추천으로 고린도교회를 섬겼던 사역자이다. 세나와 아볼로는 바울의 보냄을 받고 파송지로 가는 도중에 디도서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레데를 경유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디도가 세나와 아볼로에게 긴급하게 필요한 것들을 부족함 없이 공급하여 그들이 신속히 그레데를 떠나 파송지로 갈 수 있도록 협조하기를 바랐다. 따라서 바울은 14절에서 성도들이 이 같은 ‘선한 일에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이끌라고 당부하였다. 마지막으로 15절은 한 지역의 교회공동체가 다른 지역의 교회공동체에게 보내는 문안인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비는 축복기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