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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5-28 05:11
하나님과의 사귐15: 하나님은 사랑(4)(요일 5:9-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631  

하나님과의 사귐15: 하나님은 사랑(4)(요일 5:9-15)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9절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에서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는 신명기 19장 15절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다.”에 연결된다. 또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는 죄와 허물을 피할 수 없는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들의 증언도 그토록 효력이 큰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시고 죄와 허물에서 완전히 자유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증언의 효력이 얼마나 더 크겠는가라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증거는”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말씀은 마태복음 3장 17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와 17장 5절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에 연결된다. 베드로도 목격자의 한 사람으로서 베드로후서 1장 17절에서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고 하였다. 히브리서 저자도 1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삼하 7:14)고 하였다. 게다가 누가복음 10장 22절은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는” 자가 하나님을 믿는 자이고, 그의 아들을 믿는 자이며, “생명(영생)이 있는” 자이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자이고, “자기 안에 증거가” 없는 자이며 “생명이 없는” 자이다. 따라서 요한은 10-1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하였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13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요한복음 20장 31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에 연결된다. 요한은 일서에서 예수님을 “생명의 말씀” 혹은 “영원한 생명”(1:1-2)이라고 하였고, 그분 안에 생명이 있다(5:11, 20)고 하였다. 또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2:25)이 약속되었고,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으며”(3:14), 그분을 영접한 자들에게 “생명이 있다”(5:12)고 하였다.

14절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는 히브리서 4장 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다.”에 연결된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서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다”는 TNIV에서 “This is the confidence we have in approaching God)”이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4장 16절에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다”는 TNIV에서 “Let us then approach God's throne of grace with confidence”라고 하였다. 이 두 구절이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감에 있어서 담대함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담대함은 믿음에서 나오는 확신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때에 담대함 곧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할 이유는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시기” 때문이고,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뜻대로”는 요한일서 3장 21절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에서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는 것”에 연결된다.

15절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안다.”는 하나님이 듣기만 하지 않으시고 들으신 것을 응답하시는 줄을 안다는 뜻이다. 요한일서 3장 22절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였고,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14장 14절에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으며,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다.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안다.”

누가는 예수님께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과 표적들이 모두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에 일어났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특히 누가복음 3장 21-22절에서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고 하였고, 9장 18-20절에서는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베드로한테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는 신앙고백을 들으셨다고 했으며, 29-32절에서는 다볼산으로 추정되는 변형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라고 하였다.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응답이 있는 기도는 은밀히 드리는 기도(마 6:6),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고 드리는 기도(마 21:22, 막 11:24),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마 26:39), 구제와 같은 선행이 따르는 기도(행 10:4, 31),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아뢰는 기도(빌 4:6), 꾸준한 기도(살전 5:17), 성령님 안에서 드리는 기도(엡 6:18, 유 1:20) 등이다. 특히 예수님은 강청(强請)의 기도(눅 11:5-13), 끈질긴 기도(눅 18:1-8), 겸손의 기도(눅 18:9-14)의 중요성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 비유들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언제나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 언제나 끈질기되 낙심하지 않는 믿음의 기도, 언제나 겸손하고 순종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교만한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셨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금식으로 준비기도 하셨고(눅 4:1), 문둥병자를 고치신 후에 한적한 곳으로 피하셔서 명성의 유혹으로부터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를 하셨다(눅 5:16).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에 산에 올라 가셔서 밤이 맞도록 철야기도 하셨고(눅 6:12),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시기 전에 즉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밝히시기 전에 홀로 기도하셨다(눅 9:1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도 장소를 택하여 기도하셨다(눅 11:1).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중보 기도하셨다(눅 22:32).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힘쓰고 애쓰며 간절히 기도하셨다(눅 22:44).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하셨고, 임종의 순간에도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기도가 이토록 절실했다면,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더 절실해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