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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5-29 05:54
하나님과의 사귐16: 중보기도(요일 5:16-2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70  

하나님과의 사귐16: 중보기도(요일 5:16-21)

“누구든지 형제가 ...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16-17절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에서 “구하라”는 중보기도를 의미한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언급된 “도고”가 중보기도이다. 영어성경에는 ‘intercession’으로 나오는데, 이 단어는 라틴어에서 나온 말로써 ‘cession’이란 말에 ‘inter’가 합성된 단어이다. 여기서 ‘inter’는 라틴어로 ‘~의 사이에’란 뜻이고, ‘cession’은 그 어근이 ‘ceed,’ ‘cede,’ ‘cess’로써 ‘go’(가다)라는 뜻이다. 이들 어근은 ‘가다,’ ‘후퇴하다,’ ‘항복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c?dere’에서 온 말이다. 또 영어 ‘cession’은 (영토의)할양, (권리의)양도, (재산 등의)양여 등에도 쓰인다. 따라서 중보(도고) 또는 중재의 뜻을 가진 영어 ‘intercession’은 ‘~의 사이로 가다’ 혹은 ‘~의 사이에서 양보(할양, 양도)를 받다’란 뜻이 된다.

구약성경에서 대표적인 중보기도는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린 간구일 것이다. 창세기 19장 29절은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다.”고 하였다. 열왕기상 13장 6절은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고 하였다. 이사야 37장 4절에서는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에게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부탁하였고, 예레미야 37장 3절에서는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부탁 하였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28절에서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고, 22장 32절에서는 친히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였고(살전 1:2, 빌 1:4, 9), 자신과 동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골로새서 4장 3절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고 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5절은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다. 히브리서 13장 18-19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한다.”고 하였고, 야고보서 5장 16절도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하였다.

“사망에 이르는 죄”

16-17절에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무엇이고, “사망에 이르는 죄”는 무엇인가? 헬라어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hamartian m? pros thanaton’이고, “사망에 이르는 죄”는 ‘hamartia pros thanaton’이다. 여기서 ‘pros’은 영어로 ‘unto’이고, 우리말로는 ‘~에게로’ 혹은 ‘~까지’란 뜻이다. 따라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사형에 해당되지 아니한 죄를 말하고, “사망에 이르는 죄”는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말한다. 교리적 혹은 영적으로는 많든 적든 크든 작든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반대로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온다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는 고의적이고 연속적이며 회개하지 않은 죄이다. 요한은 이 구절을 적을 때 적그리스도(거짓 선지자)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 성육신, 동정녀 탄생 등을 부인한 영지주의 경향을 띤 유대인 에비온파였다. 이들은 완고하여 그리스도교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고, 다른 교훈,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완강히 주장하였다. 그들의 죄가 “사망에 이르는 죄”였을 가능성이 높다.

출애굽기 21장에 사형에 해당되는 죄가 나온다. 타인을 살해한 죄(12-14절), 부모를 때린 죄(15절), 유괴죄(16절), 그리고 부모를 저주한 죄(17절)가 그것들이다. 살인의 종류로 고의적인 살인(12절),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살인(13절), 실수로 인한 살인이 언급되었다. 고의적인 살인일 경우는 반드시 죽이라고 했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살인과 실수로 살인한 경우에는 지정된 도피성에 피신하여 ‘피의 복수자’(고엘하담)로부터 피의 보복을 당하지 않게 하였다(민 35:11). 모세의 율법에 제시된 형벌의 종류를 보면, 상해의 경우는 동일하게 보상하거나(레 24:19, 신 19:21) 재판관의 판단에 따라서 40대까지의 태형을 가할 수 있었다(신 25:1-3). 그리고 유산을 시키거나 도둑질한 경우와 가축을 죽인 경우에는 금전으로 배상하게 하였고(출 22:1-15), 간음(신 22:21-24)하거나 안식일 법을 어긴 경우(민 15:32-36),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레 20:2)와 주술을 행하는 행위(레 20:27)는 돌로 때려죽이게 하였다. 또 우상숭배자(신 17:1-7)와 피를 보수하는 자의 친척복수의 경우 칼로 죽이고(민 35:19-21), 장모강간과 행음한 제사장의 딸은 화형에 처하게 하였다(레 20:14, 21:9). 그밖에 사형에 해당되는 죄목에는 살인, 부모모욕과 부모구타, 신성모독, 안식일 법 어김, 주술, 거짓 선지자, 간음, 음란, 강간, 근친상간, 비정상적 성행위, 유괴, 우상숭배, 거짓 증거가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살인, 간음, 배교를 3대악으로 보았다. 예수님은 성령 훼방죄(마 12:28, 막 3:29, 눅 12:10)를 말씀하셨는데, 당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완고함이 사도 요한 시대의 에비온파의 것들과 같았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서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고 한 말씀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18-21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완벽해져서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구원 곧 부활과 하늘 가나안땅이란 기업을 약속 받은 자들이고, 장차 주어질 이것을 성령님께서 보증하시고 인치시며 선취하도록 인도하실 뿐, 주님의 재림 때까지 혹은 죽어서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이 낙원에 이르기까지는 여전히 불완전하여 죄와 허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육체(본능, “내 속에 거하는 죄,”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롬 7:17, 23) 가운데 살기 때문이다.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칭의함(무죄선언)을 받고 거듭남(중생)으로써 초기성화를 이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교회생활(광야생활)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성화를 이뤄가는 자들이지 죄와 허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자들이 아니다. 그 단적인 증거가 21절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이다. 성경 66권은 회개와 인내를 강조한 말씀이고, 회복과 구원을 약속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8-20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는 말씀의 의미를 사도 바울이 강조한 3무(三無) 또는 3P로부터의 자유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무는 무벌(無罰), 무구속(無拘束), 무죄(無罪)를 말하고, 3P로부터의 자유는 죄의 형벌(punishment), 죄의 권세(power), 죄의 실재(presence)로부터의 자유 곧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순종의 종,” “의의 종,” “하나님의 종”(롬 6:16-22)이 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죄의 3P 즉 죄의 형벌(punishment), 죄의 권세(power), 죄의 실재(presence)로부터 해방된 그리스도인은 자원함으로 순종의 종(16절), 의의 종(18절), 하나님의 종(22절)이 된다고 했고, 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16절)고도 하였다. 바울은 두 종류의 종노릇을 언급하였는데, 죄의 종노릇과 사랑의 종노릇이 그것들이다. 죄의 종노릇은 피차 멸망하는 길이요, 사랑의 종노릇은 피차 상생하는 길이다. 요한이 형제 사랑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듯이, 바울도 갈라디아서 5장 14-15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고,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2장 16-17절에서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