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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5-31 09:34
하나님과의 사귐17: 그리스도교 장로(요이 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31  

하나님과의 사귐17: 그리스도교 장로(요이 1:1)

그리스도교 장로는 본래 제사장(사제)이 아니었다.

1절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에서 장로는 사도 요한을 말한 것이다. 위계상으로 장로보다 상위였을 사도가 어떻게 그보다 아래인 장로라 할 수 있었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 여기에 좀 장황하게 설명해보려고 한다.

사도시대의 교회는 하루 세 번 오전 오후 저녁에 동물제사를 바쳤던 성전보다는 하루 세 번 오전 오후 저녁에 일어서서(아미다) 18개의 기도문(쉐모네 에스레이)을 바쳤던 유대교 회당의 성격이 더 강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유대교인들이 하루 세 번하는 쉐모네 에스레이 대신에 하루 세 번 주기도문을 하도록 권했고, 유대교인들이 월요일과 목요일에 하는 금식대신에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도록 권하였다. 그리스도교가 392년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 전까지 예배당 구조는 성전구조를 본뜬 유대교 회당구조를 따랐다. 그래서 출입구가 동쪽에 있었고, 성전에서 메노라(등대)가 성소에, 법궤가 서쪽 끝 지성소에 놓였듯이, 또 회당에서 13세 이상의 계명의 아들들이 서는 성소에 메노라가 휘장 뒤 지성소에 두루마리성경궤(법궤)가 놓였듯이, 예배당의 구조와 배치가 동일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었으므로 남녀와 신분의 차별이 없었고, 성소와 지성소의 벽(휘장)이 없었으며, 누구나 예배당(성소)에 들어가 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다. 또 유대교인들과는 달리 매주일 주의 만찬을 행하였다.

보조자들이었던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성전예배와 의식에만 종사했던 자들이었으므로 성전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 역할이 중단되었다. 바벨론 유배이후 70년(586-516 BC)간 성전예배가 중단되었고, 주후 70년 이후 지금까지 성전예배는 중단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단 한분 하나님 야훼만을 믿으며, 성전도 단 한 개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에 세워진 성전만 인정한다. 따라서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폐쇄이후 지금까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역할이 중지된 상태에 있다.

이스라엘 바깥 이방나라들에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들을 믿었고, 그들을 모신 수많은 신전들이 있었으며, 남성 제사장뿐 아니라 여성 제사장들의 숫자도 매우 많았다. 그런데 이들 남녀 제사장들, 특히 바알과 아스다롯 신전들의 제사장들,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전의 제사장들, 바쿠스(디오니소스)축제의 제사장들은 모두 성창(聖娼)들이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에 여성 제사장들을 허용하지 않았던 여러 이유들의 하나였다. 또 다른 이유들에는 성경시대에 여성들이 남자들의 소유물(재산)에 불과했고,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며, 게다가 계명(율법)을 생명처럼 여기는 이스라엘에서는 13세 이상의 ‘계명의 아들’(Bar Mitzvah)들 곧 13세 이상의 남자들만을 이스라엘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계명들을 지켜야할 의무자들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도 이스라엘에서는 여성들이 제사장이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예배는 유대교 회당 기도회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로마세계에서 예루살렘성전은 주후 70년에, 이방인 신전들은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된 392년에 완전히 폐쇄 또는 붕괴되었고 따라서 이방인 제사장들도 모두 역사에서 사라졌다. 지중해 연안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제사장들이 사라진 직후부터 반대로 그리스도교예배는 기도회 성격에서 제사예배의 성격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것이 가톨릭교회의 미사예배(성체성사)이다. 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의 만찬에서의 빵과 포도주가 성찬기도직후 성체(聖體) 곧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신앙의 신비’에 있다. 따라서 이 예배를 진행하는 장로들이 점차 제사장(사제)들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오늘날 가톨릭신부들을 사제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예배는 동물제사예배가 아니므로 제사장들이 없었다. 그리스도교에는 집사들과 장로들만이 있었다. 집사와 장로가 구약시대의 레위인과 제사장에 해당된다는 개념은 국교가 된 이후 그리스도교 예배를 제사예배로 발전시킨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일 뿐이다.

그리스도교 예배는 성전의 제사예배가 아니라 회당의 기도회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성경시대에 유대교 회당에는 설교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회당에는 복수(3명)의 남성 장로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회당장들이었다. 또한 이들은 회당의 관리와 민원을 해결하는 공회원들이었다. 이들은 예배와 교육의 책임은 물론이고, 율법규정에 따라 삯을 받는 유일한 고용인이었던 집사로 하여금 곤장을 치게 하거나 파문을 시키는 등의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마 10:17, 막 5:22, 눅 7:3, 21:12, 행 22:19). 예수님, 바울, 바나바 등이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할 수 있었던 것도 설교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막 1:21, 눅 6:6, 행 13:15, 19:8). 회당에서는 안식일, 월요일, 목요일 오전기도회 때 해당 주의 ‘파르샤’(모세오경을 54개로 나눈 것)와 ‘하프타라’(파르샤와 연관된 역사서와 예언서의 몇 개의 구절)를 낭독자가 읽는다. 설교는 이 부분을 해설해 주는 것으로써(행 28:23) 필요할 경우 회당장들로부터 지명을 받은 자나 자원자가 할 수 있었다.

유대교 회당에 설교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던 이유는 유대교가 교리종교가 아니고 실천종교이기 때문이었고, ‘쉐모네 에스레이’(일명 ‘아미다’)라 불리는 18개의 기도문을 낭송하기 위한 집회의 특성상 전담 설교자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회당에 설교자가 따로 없었고 회당장이 여러 명이었다는 증거는 신약성경에 많다. 대표적인 구절이 사도행전 13장 14-15절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파르샤와 하프타라)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에도 복수(3명)의 남성 장로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지역교회의 당회장(감독자와 치리자)들이었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장로들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였다. 사도 야고보가 주후 44년에 참수를 당하자 그의 빈자리를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메웠다. 사도들은 순회전도를 위해서 자리를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은 야고보의 몫이 되었다(행 15:4, 6, 13, 고전 15:7, 갈 1:19, 2:12). 바울이 선교지에서 교회를 설립한 후 복수의 장로들을 선출하여 장립한 것은 바로 유대교 회당의 회당장들에 필적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에 세 명의 장로들이 있었다.

개개의 회당에 3명의 회당장 장로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바울은 선교지 교회들에 3명의 장로들을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14장 23절은 바울이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개교회의 장로들은 지역교회의 목자(목사)와 감독자로서 그 역할과 임무가 신약성경에 분명히 명시되어져있다. 특히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그들의 직책이 양무리를 보살피는 목자와 감독자임을 주지시켰다. 동일한 맥락에서 야고보서 5장 14절은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하였다. 동일한 맥락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스스로를 일컬어 ‘장로’라고 하였다(벧전 5:1, 요이 1:1, 요삼 1:1).

개교회의 남성 장로들이 반드시 설교자일 필요는 없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지역교회를 감독하고 목양하는 남성 장로들만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세기 말까지는 사도, 전도자, 선지자(예언자), 교사들이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순회 목회자들이었다. 이 순회목회자들 가운데 소수의 여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례를 집례하고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를 맡아하는 남성 장로 설교자는 2세기 초 이그나티우스에 의해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그나티우스가 서머나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언급한 주교/감독의 직무는 다수 장로들의 으뜸 곧 오늘날의 담임 목사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장로들은 16세기에 칼빈과 존 녹스의 평신도 장로 대의제 도입에서 비롯되었다. 원칙은 회중에 의해 선출된 회중의 대표가 치리회를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그리스도교는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국가교회체제였기 때문에 제네바에서는 20인, 60인, 200인의 시의회들에서 남성들만으로 장로들이 선출되었고, 칼빈은 이들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한바가 있다. 존 녹스 역시 칼빈이 제네바에 확립시킨 개혁교회 장로회 제도를 도입하여 스코틀랜드 의회의 승인을 받아 스코틀랜드 개혁교회에 정착시켰다. 스코틀랜드에서 회중이 선출한 장로들과 사제(장로)들로 구성된 당회(session)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것은 1563년부터였다. 이때 장로의 임기는 제네바에서와 마찬가지로 1년이었으나 인적자원의 부족을 이유로 1578년부터는 종신직으로 바꿨다.

‘목사’라는 호칭은 '사제(제사장)'(장로 곧 목양자)라는 말을 '목사'로 바꾼 종교개혁가 마르틴 부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미사'를 '주의 만찬'으로 '제단'을 '주의 만찬상'으로 바꾼 개혁가였다. 이로써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시대나 미사예배에서처럼 희생제물을 바치는 제사도 제단도 사제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가톨릭교회에서 부제(신학대학원 졸업반 학생들)로 정교회에서 보제로, 성공회에서 보조자(대학원 졸업 후 보조자 고시에 합격한 후 보조자 서품을 받은 자)로 불리는 사제의 말단계급인 집사는 감리교에서는 수련목, 한국루터교회와 기독교장로회에서는 준목, 예수회장로회에서는 강도사에 해당된다. 이상의 보조자들은 평신도 집사들과는 달리 제사장들을 보조했던 레위인들에 해당된다. 그것은 마치 평신도 장로들이 사제 장로들과 차별되는 것과 같은 것인데, 구약시대의 레위인과 제사장 제도를 그리스도교에 도입한 것이 과연 옳은지 심사숙고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