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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6-04 17:57
하나님과의 사귐19: 네 영혼이 잘됨 같이(1)(요삼 1: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02  

하나님과의 사귐19: 네 영혼이 잘됨 같이(1)(요삼 1:1-8)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

요한삼서 1장 1절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에서 장로 요한이 ”진리 안에서 사랑한“ 가이오는 누구인가? ‘가이오’(Gaius)란 이름은 당대에 ‘루기오’(Lucius. 행 13:1, 롬 16:21)란 이름 다음으로 가장 흔한 이름이었다고 한다. ‘가이오’는 ‘기뻐하다’(rejoice)란 뜻의 라틴어 ‘gaudere’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유명한 율리우스 시저의 이름이 가이오(Gaius Julius Caesar)였고, 그의 조카이자 양아들(후계자)이었던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도 가이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였다. 신약성경에도 여러 명의 가이오가 언급되었는데, 모두가 바울의 동역자들이었다. 가장 먼저 언급된 가이오는 바울이 침례를 베푼 고린도 사람으로서(고전 1:14) 바울과 고린도교회를 돌보아 주는 집주인이었다(롬 16:23). 두 번째는 주후 57년 말 에베소에서 바울과 동행한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였고(행 19:29), 세 번째는 주후 57년 말에 바울이 3차 선교를 마치고 고린도에서 3개월간 겨울을 보낸 후 여러 지역의 교회들이 모아준 거금의 예루살렘교회 후원금을 가지고 58년 봄에 고린도를 출발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갈라디아 교회들을 대표하여 아시아(드로아)까지 동행한 더베 사람 가이오였다(행 20:4). 네 번째는 요한 삼서에 언급된 가이오인데, 이 사람은 버가모 교회의 초대감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내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란 뜻이다.

2절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축복론으로 인해서 한국인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성구이다. 삼박자 축복은 삼중축복으로도 불리는데, 영혼이 잘되는 축복, 범사에 잘되는 축복, 건강하게 되는 축복을 말한다. 그러나 이 삼박자 축복론은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그리스도교에 문자적으로 적용시킨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삼박자 축복론은 십자가를 지는 삶에 목적을 두게 하지 않고, 물질의 복과 건강의 복을 받는 삶에 목적을 두게 함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성공주의 결과주의 공리주의 실용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같은 주의주장들의 특징은 성공과 바라는 결과가 선이고 축복이라는 가르침이다.

‘peri pant?n’(모든 것에 관하여)는 교회와 가정과 직장과 영육의 건강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한다. 바울은 이것을 위해서 기도한다(euchomai)고 했다. 그리고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잘되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그리고 ‘kathos euodoutai sou he psyche’(네 영혼이 잘됨 같이)는 3-4절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에 연결된다. 3-4절은 “영혼이 잘됨”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구절들이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 “영혼이 잘되는” 것임을 말한다. 따라서 2절의 뜻은 ‘사랑 받는 자여(Agapete), 네 영혼이 잘됨 같이(kathos euodoutai sou he psyche) 곧 네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처럼, 모든 것에 관하여(peri panton) 곧 네 자신이 잘 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에서도(se euodousthai kai hygiainein) 그렇게 행하기를 기도한다(euchomai).’는 뜻이다.

여기서 “영혼”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시케’(psyche)는 사람 곧 영육 모두를 말한 것일 수도 있다. 프시케가 ‘혼,’ ‘영혼,’ ‘존재,’ ‘사람,’ ‘생명체’ 등을 뜻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는 ‘네페쉬’(????????)란 말로 쓰였는데, 이 말은 ‘존재,’ ‘사람,’ ‘생명체,’ ‘짐승’ 등을 뜻하는 말이다. 구약성경 39권이 완성된 페르시아시대까지 근동세계에는 영혼 또는 영적 세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유대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스라엘 나라와 가나안 영토를 지키기 위해 혹은 빼앗긴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민족종교이다. 따라서 ‘네페쉬’는 일원론적인 개념이다. 영과 육의 세계, 빛과 어둠의 세계, 영혼과 육체와 같은 이원론 개념은 그리스에서 발전된 개념으로써 헬라시대에 근동세계에 알려졌고, 신약성경에서 강조되었으며,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다만 구약성경이 신약성경 이해의 또 다른 핵심이기 때문에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의 일원론 개념과 헬라시대의 이원론 개념이 혼용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혼’ 또는 ‘혼’으로 번역되는 ‘프쉬케’(psyche)란 말과 ‘음부’로 번역되는 ‘하데스’(Hades)란 말이다. 그리스신화에서 하데스는 낙원에 해당되는 ‘엘리시온’(Elysian Fields)과 지옥에 해당되는 ‘타르타로스’(Tartarus)가 함께 있는 깊은 지하세계, 음부의 세계 곧 죽음의 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이것에 해당되는 ‘스올’(Sheol)은 ‘보이지 않는 세계’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 곧 ‘무덤’이란 뜻이다. 따라서 ‘스올’은 죄를 짓고 벌 받아 가는 곳이 아니라, 죽으면 누구나 다 가는 곳을 말한다. 이들 단어들 ‘하데스’와 ‘스올’은 죽음의 세계란 점에서 신약성경에서 혼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네 영혼이 잘됨 같이”에서 “영혼”은 사람의 본질일 수도 있고, 사람(생명체)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또 “네 영혼이 잘됨 같이”는 ‘가이오’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말한 것일 수 있다.

또 3-4절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는 요한이서 1장 4-6절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에 연결된다.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5-8절,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에서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은 떠돌이 전도자들을 말한다. 이 무렵 떠돌이(순회) 사도들은 이미 대부분 소천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남은 떠돌이 예언자들과 전도자들이 여기에 해당되었을 것이다. 주후 70년경에 쓰인 마태복음 25장에는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한” 자들에게는 영생에,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영벌에 들어갈 것에 대한 주님의 경고가 실려 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고 하셨다. 바울은 주후 60년대 초에 쓴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서 감독될 자격자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라야 하며(딤전 3:2, 딛 1:8),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도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라야한다고 했다(딤전 5:10).

가이오는 위의 말씀들을 충성스럽게 실천에 옮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가이오의 착한 행위는 그로부터 대접을 받은 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회중에게 알려졌다. 따라서 장로 요한은 가이오에게 “네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그들을 잘 보살펴서 보내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나선 사람들인데, 이방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돌보아주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우리가 진리에 협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고 하였다.

주후 100년경에 쓰인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은 ‘떠돌이 사도들과 예언자들 접대’편에서 떠돌이 전도자들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식별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복음의 지침” 곧 예수님과 사도들의 지시를 자기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에 관해서는 복음의 지침에 따라 이렇게들 하시오. 여러분에게 오는 모든 사도는 마치 주님처럼 영접 받을 일입니다. 그는 그러나 하루만 머물러야 합니다. 만일 사흘을 머물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사도가 떠날 때에는 (다른 곳에) 유숙할 때까지 (필요한) 빵 외에 (다른 것은)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가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영으로 말하는 모든 예언자를 여러분은 시험하거나 판단하지 마시오. 사실 모든 죄가 용서받겠지만, 그런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영으로 말한다고 해서 다 예언자가 아니고 오직 주님의 생활 태도를 지녀야만 예언자입니다.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는 그 생활 태도로써 밝혀질 것입니다. 식탁을 (마련하라고) 영으로 명하는 모든 예언자는 바로 그 식탁에서는 먹지 않습니다. 만일 먹는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모든 예언자가 만일 가르치는 것들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영으로 말한다면서 “내게 돈이나 다른 어떤 것을 주시오.” 하거든 여러분은 그의 말을 듣지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빈궁한 이들을 위하여 달라고 하거든 아무도 그를 심판하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