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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6-05 06:38
하나님과의 사귐20: 네 영혼이 잘됨 같이(2)(요삼 1:9-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75  

하나님과의 사귐20: 네 영혼이 잘됨 같이(2)(요삼 1:9-15)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

요한삼서는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첫째, ‘가이오’는 요한삼서의 수신자이며 요한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만큼 훌륭한 인물이었다. 가이오는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복음의 지침” 곧 예수님과 사도들의 지시를 충성스럽게 실천에 옮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가이오의 착한 행위는 그로부터 대접을 받은 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회중에게 알려졌다. 사도 요한도 그 소문을 듣고 있었다.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었다. 가이오는 진리를 위하여 수고하는 자였다. 가이오는 사도요 목회자요 장로인 요한을 매우 기쁘게 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요한은 가이오에게 “네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그들을 잘 보살펴서 보내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나선 사람들인데, 이방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돌보아주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우리가 진리에 협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고 하였다.

둘째, ‘디오드레베’는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복음의 지침” 곧 예수님과 사도들의 지시를 어기고 떠돌이 전도자들을 무시하며 영접하지 아니한 자로써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서는 안 될 자였다.

중국 전국시대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업주가 있었다. 술맛이 일품이었고, 고객에게 무척 친절하였지만, 술이 팔리지 않아 만들어 놓은 술이 변질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업주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웃에 사는 양청(楊靑)이란 사람을 찾아가 물었다. 그가 답하기를, “자네 말이야, 집에서 사나운 개(猛犬)를 키우고 있지 않는가? 술을 사러간 고객에게 으르렁대고 물려고 덤비니, 누가 자네 집으로 술을 사러 가겠는가?”고 했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회사든, 교회든, 국가든, 어느 크고 작은 집단이든 간에 사나운 개가 버티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여들지를 않게 되고, 결국은 문을 닫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디오드레베가 바로 교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전도의 문을 가로막는 사나운 개였던 것이다. ‘디오드레베’란 ‘양육 받음“(nourished by Jupiter)이란 뜻인데, 그는 양육을 받은 자가 아니라, 양육을 받아야할 자였다. 이런 우려를 금치 못한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를 써서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고 말하면서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본받지 말고, 데메드리오의 선행을 본받으라고 권면하였다.

디오드레베는 으뜸 되기를 좋아한 사람이었다. 9-10절에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이런 지도자가 판치는 집단은 앞서 한비자의 글에서 으르렁대는 사나운 개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것처럼 반드시 망하고 만다.

“선한 것을 본받으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 26-27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23장 10-12절에서는 “너희는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섬기는 자’ 또는 ‘자기를 낮추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이런 사람은 최고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것과 싸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남이나 남의 것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섬기는 자’ 또는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항상 자신이나 자신의 것에 대해서 부족을 느끼고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만에 빠지지 않고 부단히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남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 익은 곡식은 머리를 숙인다고 하지 않는가? 익은 곡식 사이에서 고개를 쳐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쭉정이거나 가라지일 것이다. 가짜가 언제나 큰소리 치고 가짜가 언제나 고개를 쳐드는 법이다. 따라서 참 지도자의 모습은 겸손히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디오드레베는 사도요 목회자요 장로인 요한을 멸시하고 접대하지 않았다. 9절에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다. 디오드레베는 주의 종들을 악한 말로 중상 모략하였고, 접대하지 못하도록 훼방한 사람이었다. 10절에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다.”고 한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따라서 디오드레베는 반드시 그의 악행에 대해서 심판을 받아야할 자였다. 10-11절에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셋째, 요한은 데메드리오를 본받아야 할 자로 추천하였다. 데메드리오는 가이오처럼 진리 가운데서 행하는 자였다. 12절은 데메드리오가 그 일로 뭇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사도 요한과 그의 일행으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자라고 하였다.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본받지 말고, 데메드리오의 선행을 본받으라는 취지로 요한삼서를 써서 보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저주의 말씀을 하셨는데,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란 생각이 들어서 몇 가지 적용해보았다.

첫째,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이다(마 23:13).

둘째,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은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자이다(마 23:15).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셋째,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사랑과 믿음은 버리는 자이다(마 23:23).

넷째,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자이다(마 23:25).

다섯째,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은 회칠한 무덤 같아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자이다(마 23:27).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이 교회 안에 있으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생기게 되고, 회사에 있으면, 회사를 떠나는 인재들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교회에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이 아무리 많다하더라도 그들을 핑계 삼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저버리거나 성경의 권위와 변화의 능력마저 무시하는 건 스스로 더 큰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다. 가이오와 데메드리오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일류상품이라고 가정해 보면,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은 가짜요 모조품이다. 가짜가 극성을 부린다고 해서 진품을 탓하면서 가짜 취급할 수는 없지 않는가? 오늘날 일부 잘못된 신앙인들과 교회들을 탓하면서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를 비방하는 인물들은 그들이 누구건 간에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거나, 10절처럼, 고의적으로 악한 말로 망령되이 폄하하며 무시하는 자들일 것이다. 가짜를 본 후에 진짜를 폄하한다고 진짜가 가짜가 되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주후 57년 말경에 에베소에는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은장이 ‘데메드리오’가 있었다. 가이오는 흔한 이름이었던 반면에 데메드리오는 흔치 않은 이름이었지만, 이들은 이름만 같을 뿐 요한삼서에 나오는 가이오와 데메드리오하고는 다른 인물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데메드리오’(Demetrius)는 백성의 어머니란 뜻이다. 같은 이름으로 에베소에 은장이(Silversmith)가 있었다. 그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은감실 곧 은으로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형 신전들을 만들어 적지 아니한 돈을 벌고 있었는데, 바울과 그 일행의 전도사역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는 설교로 인해서 사업에 피해를 입게 되자 동업자들을 충동하여 큰 소요를 일으켰다. 이 소요 때 에베소에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폭도들에게 붙들려 연극장으로 끌려갔었다(행19:23-41).

요한삼서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는 ‘데마’(골4:14; 딤후4:10; 몬1:24)와 동일한 인물로서 요한이 빌라델비아의 감독으로 임명한 인물(Apostolic Constitutions)로 추정되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아무튼 데메드리오의 선한 행위들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신 19:15, 요일 5:7, 8) 입증되었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였으며, 요한 자신이 보기에도 칭찬할 만하였다.

13-14절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는 요한이서 1장 12절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에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