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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4 01:56
신약시대의 포도주 마시기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215  

신약시대의 포도주 마시기
Wine-Drinking in New Testament Times

 번역 조동호 목사

Robert H. Stein, "Wine-Drinking in New Testament Times," Christianity Today(June 20, 1975), pp. 923-925. 로버트 H. 스타인은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St. Paul) 소재 베델대학(Bethel College)의 신약학 부교수이다. 그는 훌러 신학대학원(B.D.)과 앤도버 뉴톤 신학교(S.T.M.), 그리고 프린스톤 신학대학원(Ph.D.)에서 각각 학위를 받았다. 


복음주의자들로써 우리들은 성경이 우리들을 위한 믿음과 실천의 유일한 무류(無謬)의 규범이란 점을 견지(堅持)한다. 성경은 모든 교리(믿음)와 윤리(실천)문제들에 있어서 우리들의 최종적인 권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20세기를 살고 있는 복음주의자들에게 쓰여진 책이 아니다. 수세기 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가 오늘날 의미 있고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성경본문을 해석하는 학문 또는 기술은 "해석학"이라 불린다. 해석학의 기본원리는, 간단히 말해서,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과거에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의미했는가?"라고 물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이 기록되었을 때 그 본문이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먼저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총명하게 해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필자의 주제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포주도"라는 말의 사용이다. 어떤 독자들은 이미 "그가 우리들에게 성경에서의 포도주는 포도주스를 의미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신약성경에 언급된 포도주는 오늘날 크리스천 브라더즈(Christian Brothers)나 쉐토우 라퓌테 로스차일드(Chateau Lafite-Rothschild) 또는 모겐 데비드(Mogen David)에 의해서 입병된 포도주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성경의 포도주가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스가 아니었다는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의 포도주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렇다.

고대시대에 포도주는 암포라에(amphorae, 위의 사진)라 불린 끝이 뾰쪽한 큰 용기들에 언제나 저장되었다. 포도주가 사용되어졌을 때에는 암포라에로부터 크라테르(kraters, 왼쪽사진)라 불린 큰 대접들에 옮겨 부어졌다. 거기서 포도주는 물과 희석되었다. 지난해 필자는 그리스 아테네 소재 대형 고고학 박물관을 찾아볼 영광을 누렸다. 거기서 필자는 수십 개의 이들 커다란 크라테르들을 보았다. 그 당시 그것들의 용도가 성경시대의 포도주 마시기와 무슨 연관이 있었는가를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들 크라테르들에서 컵들에 혹은 큐릭스(kylix, 아래 사진)에 옮겨 담아졌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중요한 것은 포도주가 음용(飮用)되기 전에 그것이 물과 함께 희석되었다는 것이다. 큐릭스는 암포라에로부터 채워진 것이 아니라 크라테르들에서 채워졌다.

물과 포도주의 비율은 다양하였다. 호머(Homer, Odyssey IX, 208f.)는 20대 1, 즉 물 20에 포도주 1의 비율을 언급한다. 플리니(Pliny, Natural History XIV.vi.54)는 물 8에 포도주 1의 비율을 언급한다. A.D. 200년경에 기록된 한 고대의 저서, 아테나에우스의 {교양 있는 연회}(Athenaeus, The Learned Banquet)에서 우리는 제10권(Book Ten)에 실린 음용관례에 관한 이전 저자들의 진술들의 수집을 발견한다. 아리스토판네스(Aristophanes)가 쓴 희곡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 3대 2로 희석한 이것 또한 마시게.' 데무스(DEMUS). '제우스! 그러나 그것은 달콤하고 3대 1이 낫네.'" B.C. 5세기에 살았던 시인 유에노스(Euenos)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좋은 포도주의 비율은 많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 왜냐면, 그것은 슬픔과 광란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3대 1로 혼합한 넷째 잔이 포도주를 만족시킨다. (It pleases the wine to be the fourth, mixed with three nymphs.)

여기서 물과 포도주의 비율은 3대 1이다. 다른 언급들은 다음과 같다.

3대 1 --- 헤시오드(Hesiod)
4대 1 --- 알렉시스(Alexis)
2대 1 --- 디오클레스(Diocles)
3대 1 --- 아이온(Ion)
5대 2 --- 니코카레스(Nichochares)
2대 1 --- 아나크레온(Anacreon)

때때로 비율은 1대 1 또는 그 이상으로 낮아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혼합은 "독한 술"(strong wine)로 언급되고 있음이 주목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희석되지 아니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스키타이인"(Scythian) 혹은 야만인의 관습으로 간주되었다. 아테나에우스는 이 저서에서 아테네의 므네시테우스(Mnesitheus)를 인용한다.

신들은 인간들에게 포도주를 주었다.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커다란 축복이 되지만,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그 반대가 되도록 하였다. 그것을 가지고 마음과 몸을 강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의약으로써 그것은 크게 유익하며, 액체와 약과 혼합될 수 있으며, 부상당한 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매일의 교제에서 그것을 희석하여 적당하게 마시는 자들에게, 그것은 기분을 좋게 하지만, 만일 그대가 경계선을 넘게되면, 그것은 폭력을 가져온다. 그것을 50대 50으로 혼합하라. 그러면 그대는 광란하게 된다. 희석시키지 말라. 그러면 그대의 몸은 붕괴된다.

포도주가 고대에서는 의약으로 (또는 의약 대용으로) 그리고 물론 음료로써 사용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음료로써 그것은 언제나 희석된 음료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면, 플루타크(Plutarch, Symposiacs III.ix)는 말하기를, "비록 큰 몫의 구성부분이 물이긴 하지만, 우리는 혼합주를 포도주라 부른다." 물의 비율은 다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야만인들만이 그것을 희석하지 않고 마셨다. 그리고 물과 포도주의 희석비율이 동일한 경우 "독한 술"로 간주되었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고대 세계에서 "포도주" 또는 오이노스(oinos)란 말은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는 대로 포도주를 말하지 않고, 물과 희석한 포도주를 의미하였다. 보통 저자는 물과 포도주의 희석물을 "포도주"로 언급하였다. 음료가 물과 포도주의 혼합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는 "희석되지 아니한 포도주"(akratesteron)를 말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포도주를 물과 혼합하는 관습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국한된 일이 아닌가하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유대인 사회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패턴이 이제까지 열거한 사례들의 것과 실질적으로 달랐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입증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유대와 기독교 문학 모두에서 아마도 성경에서 조차 포도주가 포도주와 물이 혼합된 것으로 마찬가지로 이해되어졌다는 분명한 사례들을 갖고 있다. 구약성경의 몇 가지 사례들에서 "포도주"와 "독한 술"사이의 구별이 드러난다. 레위기 10장 8-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 . ." 나실인 서약에 관해서 민수기 6장 3절은 나실인이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할 것을 언급한다. 이러한 구별은 신명기 14:26; 29:6; 사사기 13:4,7,14; 사무엘상 1:15; 잠언 20:1; 31:4,6; 이사야 5:11,22; 28:7; 29:9; 56:12; 그리고 미가 2:11에서도 발견된다.

1901년 {유대인 백과사전}(Jewish Encyclopedia, vol. 12, p. 533)은 랍비 시대에는 적어도 "'야윈'(yayin, 포도주)은 '쉐카'(shekar, 독주)와 구별되어진다. 전자는 물로 희석되어진 것이요(mazug), 후자는 희석되지 않은 것이다(yayin hai)." B.C. 200년부터 A.D. 200년 경사이의 구전들이 담긴 탈무드에 물과 포도주의 혼합을 논의한 몇 개의 논문들이 있다. 한 논문(Shabbath 77a)은 물을 3배로 잘 희석하지 않은 포도주는 포도주가 아니라고 진술한다. 보통은 물과 포도주를 2대 1로 혼합한다고 전한다. 유월절 의식 때 모든 유대인들이 마시기로 되어있는 네 잔의 포도주는 물과 포도주를 3대 1로 희석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가장 중요한 한 전거(典據, Pesahim 108b)에 진술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상당한 정도의 확실성을 가지고 주의 만찬제정의 때에 사용된 포도나무의 열매는 물과 포도주의 비율이 3대 1의 혼합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B.C. 60년경의 또 다른 유대인의 전거(典據)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는다. "포도주 자체나 또는 물 자체만 마시는 것은 해롭다. 물을 혼합한 포도주는 달고 맛있고, 마시는 자의 즐거움을 높여준다"(II Maccabees 15:39).

고대시대에는 마시기에 안전한 음료가 많지 않았다. 물 자체만 마시는 것의 위험은 또 다른 점을 일으킨다. 고대인들이 물을 마시기에 안전하게 만들 수 있었던 몇 가지 방법들이 있었다. 한 가지 방법은 끊이는 것이었으나 성가시고 비용이 들었다. 여러 가지 여과방법들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물을 마시기에 안전하게 만드는 가장 안전하고 쉬운 방법은 물에 포도주를 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포도주, 즉 물과 포도주의 혼합물을 마시는 것은 안전성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마실 물은 때때로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리스 살로니카에서 물을 좀 마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 물에 포도주를 탔거나 약간의 다른 정수제를 넣었더라면 내게 훨씬 좋았을 뻔하였다.)

우리가 신약성경에 이르게 되면, 포도주에 관한 내용은 전혀 논의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포도주"가 헬라인들, 신구약 중간기의 유대인들, 그리고 초대교회 교부들에 의해서 언급된 포도주와 실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할 사람은 그 입증이 확실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초대교회 교부들의 글들에서 "포도주"는 물과 혼합된 포도주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A.D. 150년경의 순교자 저스틴(Justin)은 주의 만찬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떡(빵)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오고, 집례자는 같은 방법으로 그가 할 수 있는 대로 기도와 감사를 올립니다"(Justin, Apology I.67.5). 65년쯤 후에 히폴리투스(Hippolytus) 감독들에게 지시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그리스도의 살을 대신하는 빵에 먼저 축사할 것이며, 그리고 그분을 믿었던 모든 자들을 대신해서 흘린 피의 표상으로 포도주를 혼합한 잔에도 그리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Hippolytus, Apostolic Tradition XXIII.1). 참고. 이 부분은 히뽈리뚜스, {사도전승} 이형우 역주(분도출판사, 1992)에 따르면, "21. 거룩한 세례의 전통에 대하여"(De traditione baptismi sancti)에 나온다. 침례식과 이어지는 견진례(=입교식) 직후 거행되는 성찬식에 대한 것으로써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때에 봉사자들(=집사들)이 감독자(=목사)에게 예물을 바치고 (감독자는) 그리스도의 몸의 표상 - 희랍어로 antitypum이라 한다 - 이 될 빵에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또 그분을 믿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흘리신 피의 표상 - 희랍어로 antitypum이라 한다 - 이 될 물 탄 포도주 잔에 (감사의 기도를 바칠 것이다)."]. A.D. 200년경의 키프리안(Cyprian)은 어떤 이단적인 관행들에 반박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바쳐진 잔은 포도주와 혼합되어 바쳐져야하는 것과 같이 우리를 대신해서 주께서 먼저 행하셨던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우리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 . .

그러므로, 그래서, 주의 잔을 고려함에 있어서, 물 자체만은 드려질 수 없고, 심지어 포도주 자체만도 드려질 수 없다. 만약 누군가가 포도주 자체만을 바친다면,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와의 관계에서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물 자체만이 라면, 사람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잔은 정말로 물 자체만도 아니요, 포도주 자체만도 아니요, 물과 포도주가 피차 희석되어진 것이다(Cyprian, Epistle LXII.2.11,13.).

주의 만찬 때에 희석되지 아니한 포도주와 맹물은 두 가지 다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포도주와 물의 희석은 규범이었다. 2세기 후반 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포도주로써는 가능한 한 많은 양의 물과 희석되는 것이 최상이다. . . . 두 가지 다가 하나님의 사역들이다. 두 가지, 물과 포도주 모두의 희석은 건강을 낳는다. 왜냐하면, 삶이 필수적인 요소와 유용한 요소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필수적인 요소에 있어서, 가장 큰 양을 차지하는 물, 즉 얼마간의 유용한 요소 가운데서 희석되는 것이 있다(Clement, Instructor II.ii.23.3-24.1.).

물과 포도주의 비율이 3대 1인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두 잔의 마티니 속에 있는 알코올의 양에 도달하려면, 22컵 이상을 마셔야 할 것이다. 환원하면, 물과 포도주의 비율이 3대 1인 포도주를 마시고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마시게되면, 그것이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훨씬 전에 십중팔구 방광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짧은 기사를 마무리지으면서 필자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성경 본문이 기록된 상황에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성경 본문이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묻기 전에, "그것이 본래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였는가?"를 물어야 한다. 둘째, 오늘날 알코올이 든 술 종류를 마시는 것과 신약성경 시대에 포도주를 마시는 것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만약 포도주를 희석시키지 않고 마시거나 심지어 물을 1대 1 비율로 희석시켜 마시는 것조차 고대 시대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었다면, 알코올 함량이 자주 3배 내지 10배가 넘는 증류주들을 마시는 것은 확실히 훨씬 더 많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