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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27 12:54
전통적인 예배 양식에 관한 고찰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509  

 전통적인 예배 양식에 관한 고찰

조동호 목사<빛과 생명 그리스도의 교회>

들어가는 말
1. 예수님의 공생애 재현
2. 사도행전 2장 42절의 예배순서
3. 말씀의 예배와 주의 만찬 예배의 초기 단계
4. 회당예배와 성전예배의 통합
5. 초기 신약교회 예배 양식의 재구성
6. 전통적인 예배 양식
나오는 말

들어가는 말

16세기 종교개혁, 17-19세기 신앙고백(신조)주의, 경건주의, 대각성운동, 20세기 오순절운동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기독교 예배는 오랜 전통의 틀이 점차 깨졌고, 결국 오늘의 기도회 성격의 예배로까지 분화되었다. 종교개혁이후 오늘날까지 개신교 예배에서 가장 크게 치명타를 입은 것이 예배의 핵심이자 클라이맥스였던 주의 만찬이다. 가장 핵심적인 본 예배가 가장 소홀히 취급당하여 일 년에 단 두서너 차례로 축소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과거 2천년 역사 속에서 지속되어져 온 전통적인 예배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예배가 제1부 말씀의 예배와 제2부 주의 만찬 예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조차 생소할 것이다. 대다수의 개신교회들이 주의 만찬을 거의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척박한 정황에서 주일예배 중에 주의 만찬이 반드시 필요한가와 설교 후 주의 만찬이 옳은가 혹은 설교 전 주의 만찬이 옳은가를 묻고, 그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는 것이 본 글의 목적이며, 그 방법으로써 성서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전통적인 예배 양식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하려는 것이 본 글의 과제이다. 아무쪼록 본 글이 전통적인 예배 양식에 생소한 이들에게 조금치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1. 예수님의 공생애 재현

기독교 예배는 예수님의 전 생애, 즉 가장 위대한 예배의 삶이었던 갈릴리 사역과 예루살렘 사역에 대한 재현이다. 예수님의 갈릴리에서의 사역이 말씀의 예전으로 표현되고,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이 주의 만찬 예전으로 표현된다. 마르틴 캘러(Martin Kähler)가 복음서를 “긴 서론을 가진 수난사”[김득중, <<복음서 신학>>(컨콜디아사, 1985), p. 97.]라고 지적한 것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예루살렘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은 갈릴리 사역이 선행될 때에 비로소 의미가 살아나며, 갈릴리 사역은 예루살렘 사역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의미가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어떻게 연출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기독교 예배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준다.[장자끄 폰 알멘, <<구원의 축제: 그리스도교 예배의 신학과 실천>> 박근원 역(도서출판 진흥, 1993), pp. 17-20, 185-186; 장자끄 폰 알멘, Worship Its Theology and Practice, 정용섭, 박근원, 김소영, 허경삼 공역, <<예배학원론>>(대한 기독교 출판사, 1979), pp. 22, 157.]

2. 사도행전 2장 42절의 예배순서

사도행전 2장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는 말씀이 나온다.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교회가 세워진 다음에 사도들이 전적으로 헌신했던 일은 이들 네 가지였다. 이 네 가지 일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들 네 가지는 모두가 서로 동일하게 중요한 동등한 요소들이다(Things that are equal are equal to each other). 사도들이 어느 것을 더 힘쓰고 어느 것은 덜 힘쓴 그런 것들이 아니라, 동일하고 동등하게 힘썼던 예배의 내용들이며, 이들 네 가지 요소들이 바로 예배를 완성시키는 네 모퉁이 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서를 보면, “사도들의 가르침” 즉 말씀의 예배가 먼저 나오고, “떡 뗌” 즉 주의 만찬 예배가 나중에 나온다. 사도행전 2장 42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fellowship.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breaking of bread.
They devoted themselves TO prayer.[NIV. See also Alexander Campbell, "A Restoration of the Ancient Order of Things. No. Ⅴ: Oder of Worship,"
The Christian Baptist, July 4, 1825.]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에 전혀 힘쓰니라.
저희가 교제에 전혀 힘쓰니라.
저희가
떡 뗌에 전혀 힘쓰니라.
저희가
기도에 전혀 힘쓰니라.

3. 말씀의 예배와 주의 만찬 예배의 초기 단계

주후 30년 오순절 성령강림 후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낮 시간대에 주로 성전 영내의 솔로몬 행각에 모여서 말씀의 예배를 드렸고(요 10:23, 행3:11, 5:12), 저녁 시간대에 주로 집에서 주의 만찬(애찬) 예배를 드렸던 것 같다(행 2:46, 20:7).

다락방(upper room) 예전으로 알려진 주의 만찬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즉 주후 30년 4월 7일 금요일 유월절 식사 중에 떡을 떼어 주실 때와 잔을 채워 주실 때에 각각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주님의 부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가 춘분이 지난 첫 음력 보름날 밤이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는 솔로몬 행각을 말하며, “집에서 떡을 떼며”는 저녁 식사를 말한다. 유대인들의 하루의 시작은 해가 질 때부터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저녁식사는 막연히 하루 중 한 끼니의 식사개념이 아니라, 종교적 식사라 보면 옳다. 저녁 식탁은 제단이요, 가장은 제사장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저녁식사 때에 떡을 떼는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주후 57년 드로아교회가 바울 일행과 함께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는 모임을 가졌는데 이때가 저녁이었다(행 20:6-12).

주후 112년경에 소아시아 비두니아의 로마 지방장관이었던 플리니(Pliny the Younger)가 트라잔 황제에게 보낸 편지는 보다 많은 예배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서신은 비두니아 지역의 교회가 정한 날 새벽 미명에 모였다는 것과 예배 중에 연도형식(alternate verses)의 찬양과 십계명과 유사한 엄숙한 맹세를 했으며, 흩어졌다가 저녁에 다시 모여 “보통의 흠없는 음식에 참여했다”는 점을 보도하고 있다.[Everett Ferguson, Early Christians Speak(Abilene, Texas: Biblical Research Press, 1981), p. 81.] 이 시대의 일요일은 공휴일이 아니었고, 기독교는 불법 종교였으며, 또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노예들이 많아서 낮 시간에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씀의 예배를 새벽시간에 모여서 드렸고, 일과 후 저녁시간에 떡을 떼기 위해서 다시 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4. 회당예배와 성전예배의 통합

기독교 예배는 이스라엘 민중이 가졌던 두 가지 형태의 예배, 곧 회당의 말씀의 예배와 성전의 제사예배가 통합된 형태가 기독교예배였다. 유대교예배의 핵심은 성전의 제사예배였으나 주전 586년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유배당함으로써 더 이상 성전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성전제사를 대신하여 그 횟수만큼 기도를 바쳤는데, 그것이 회당예배의 시작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하루 세 번씩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에 희생 제사를 하나님께 바쳤는데, 유배상태에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음으로 대신에 하루 세 번씩 18개의 기도문으로 구성된 ‘쉐모네 에스레이’(Shemoneh Esrei)를 바쳤다.[http://www.jewfaq.org/prayer.htm]. 유대인들은 이 회당예배를 흔히 기도회라 부르는데, 기도회는 단지 제사예배를 대신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또 그 후에 성전이 재건되었을지라도, 성전은 예루살렘에 단 하나밖에 두지 않았음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심지어 본토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조차도 회당예배는 필수였으며,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삶을 실질적으로 관장하였던 유대인 공동체의 센터였다. 초기 기독교는 이 유대교회당예배에서 말씀의 예배를, 성전의 제사예배에서 주의 만찬 예배를 발전시켰다.

5. 초기 신약교회 예배 양식의 재구성

신약성서는 초기 예배 양식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해놓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배 양식을 재구성할만한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의 <<성만찬 예배>>(은혜출판사, 1995, 2004) 제2장 성만찬의 성서적 기원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여기서는 고린도전서 16장 20-24절만 언급하려고 한다. 바울의 이 구절에 나타난 평화의 입맞춤과 마라나타 그리고 축도로 구성된 마지막 인사말을 두고 학자들은 “최초의 기독교 예배순서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로빈슨(J.A.T. Robinson), 리츠만(H. Lietzmann), 보른캄(G. Bornkamm) 등이다.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는 이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 고린도전서 16:20-24는 “서신의 결미를 장식하는 상투적인 용법일 뿐 아니라, 한 예배 공동체가 다른 예배 공동체에 보내는 인사, 즉 성찬을 들기 위해 모인 성도들 간의 대화”이다. (2) 이 일 절에서 우리는 “그 기원이 바울 이전인, 최초의 기독교 예배의 순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초기 신약교회의 예배의 기본 구조는 말씀과 주의 만찬에 강조점을 두고 이에 기도와 찬송이 수반되는 2부 구조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고린도전서 16:20-24가 암시하는 바를 따를 것 같으면, 고린도전서가 말씀의 예배 가운데서(in the service of the Word) 읽혀졌어야만 했고, 그 직후에 주의 만찬 예배가 드려졌어야했던 것처럼 보인다.[Robert E. Webber, <<예배학>>(Worship Old and New), 김지찬 역(생명의 말씀사, 1988), 57쪽의 오역을 원본을 참고하여 수정하여 옮김.]

이런 주장이 옳다면, 고린도전서 16장 20-24절은 다른 성서적 증거들과 함께 초대교회의 예전을 재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만찬 제정사와 관련된 몇 개의 성구들은 ‘성찬 봉헌’, ‘성만찬 기도’, ‘분병례’, 간단한 ‘성만찬 설교’ 그리고 ‘성찬배수’로 이어지는 예전을 짐작케 하기 때문이다.[박근원 편저, <<리마 예식서>>(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1975), p. 17.] 이들 성구들은 고린도전서 11장 23-24절, 누가복음 22장 19절과 24장 30절, 마가복음 14장 22절, 그리고 마태복음 26장 26절로서 한결같이 “떡을 가지사(봉헌), 축사하시고(성만찬 기도), 떼어(분병례), 주시며(성찬배수/聖餐拜受), 가라사대(교훈)”로 되어 있다.[Robert Webber, op. cit., pp. 254-257.] 다음은 신약성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증언들을 종합해서 재구성해 본 예전순서이다.

말씀의 예전

성서봉독(바울 서신의 봉독)
집례자의 설교
기도
찬송시(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엡 5:16; 골 3:16; 고전 14:26)

다락방 예전

인사와 평화의 입맞춤(고전 16:20-24)
봉헌(“떡을 가지사”)
성만찬 설교(“가라사대”)
성만찬 기도(“축사하시고”, 고전 10:16)
주의 기도(마 6:9-13)
성만찬에의 초대(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마라나타.”)[이 구절은 <<디다케>> 10장에 나오는 “사람아, 만일 거룩하면 오라. 거룩하지 않으면 회개하라. 마라나타. 아멘” 과 거의 비슷하다. 정양모 역주,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분도출판사, 1993).]
분병례와 참여(“떼어 주시며”)
축도(고전 16:23-2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아멘.)

6. 전통적인 예배 양식

기독교 예배는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전통적으로 제1부 말씀의 예전과 제2부 성만찬 예전으로 진행되었다. 앞서 열거한 이유들 이외에도 학습세례를 받는 자들이 제2부 주의 만찬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저스틴(순교자)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예배의 원형은 순교자 저스틴의 글 속에서 볼 수 있다. 저스틴은 사마리아에서 출생하여 에베소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 로마의 한 교회에서 교사로 봉사하다가 주후 168년경에 순교하였다. 그는 150년경에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Emperor Antonius Pius)에게 <<변증서>>(The First Apology)를 기록하여 그 당시 이교도들 사이에 퍼져 있었던 기독교에 대한 악성 루머들을 해명하려 하였다.

저스틴에 의하면, 2세기 중반의 교회들은 주일날에 모여서 성서를 봉독하고 집례자(the president of the brethren)로부터 설교를 들었으며, 일어서서 다함께 기도하였다. 또 집례자의 설교 후에 떡과 물로 희석된 포도주의 봉헌과 성별의 기도와 분병례와 헌금과 구제가 있었다. 또한 집례자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떡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마음껏 올렸다. 다음은 저스틴이 쓴 <<변증서>>(The First Apology) 65-67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예배 순서이다. 

말씀의 예전

성서봉독--사도들의 회고록 즉 복음서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는다.
설교--집례자는 봉독한 성서 본문을 토대로 교훈과 권면을 한다.
기도--사람들로부터 옳다 인정함을 받고 옳은 행실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 또 명령을 지키는 자가 되기 위해서 온 회중이 일어서서 기도한다.[6-7세기경 이후의 문헌에는 신자들의 기도가 없어졌다. 그 이유는 공동체의 기도에 지나친 개인적 감정 표현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최윤환, <<간추린 미사 해설>>(가톨릭 출판사, 1991), p. 35.]

성만찬 예전

인사--평화의 입맞춤
봉헌--떡과 물로 희석된 포도주를 부제가 집례자에게 준다.
성찬기도--집례자가 그리스도의 성만찬 제정사를 포함한 성별의 기도를 올린다[주후 380년경 현재의 가톨릭교회 성만찬 제1양식이 정식화되기까지는 주교는 성령께서 은혜 주시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Everett Ferguson,
op. cit., pp. 93-105.]
응답--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한다.
분병례--부제는 신자들에게 분배하고 참석치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집으로 가져간다.
성만찬에의 참여--진리를 믿고,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다.
헌금--자원해서 바친 헌금으로 구제를 행한다.

2)동방교회(정교회)

최초의 성문화된 주의 만찬 예식문은 3세기 초(215년경)에 로마의 감독 히폴리투스가 기록한 <<사도의 전승>>[이형우 역주, ??히뽈리뚜스, 사도전승??(분도출판사, 1992)]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히폴리투스는 원래 동방 출신으로써 로마에서 주교가 된 사람이다. <<사도의 전승>>은 본래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나 유실되어 없고 라틴어 사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의 전승>>에 영향을 받았던 동방교회는 오늘날까지도 큰 변화 없이 박해시대의 예전 형태를 반영하고 있고, 이러한 동방교회의 보수주의가 초기 기독교 예배의 원형 회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박은규, <<예배의 재발견>>(대한 기독교 출판사, 1990), p. 86.]

동방교회 예전의 뿌리는 역시 예루살렘교회의 예전이었을 것이다. 이 예전이 3세기에 와서는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한 서시리아와 동시리아 예전과 알렉산드리아교회를 중심으로 한 이집트와 에디오피아 예전으로 발전되었다.[부르크하르트 노인호이저(Burkhard Neunheuser), <<문화사에 따른 전례의 역사>> 김인영 옮김(분도 출판사, 1992), pp. 67-68.]

동방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예전은 서시리아의 ‘성 요한 크리소스톰의 예전’이었다. 이 예전은 ‘성 바실의 예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써 간단하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었다. 이 예전의 내용은 “하늘과 승리하는 교회의 끊임없는 활동”과 “하늘의 회중과 연합”하여 예배드림을 상징하였다. 그 예배 내용은 다음과 같다.[박은규, op. cit., pp. 87-90.]

준비의 직무--떡과 포도주를 놓을 성찬탁(Prothesis)을 준비한다.
사제는 휘장 뒤에서 기도 드린다.
예배의 시작(Enarxis)
페사크(Pesach)의 연도(the Great Litany)--“주여, 불쌍히 여기소서”가 수반되는 연도이다.
시편 102편과 소연도
시편 145편과 찬송
소연도
산상수훈

말씀의 예전

(부제가 입장하면 하늘의 열림을 상징하는 휘장의 세 문이 열린다.)
소성입(the Little Entrance)과 삼성창(Trisagion)--“거룩하신 하나님, 거룩하시고 강대하신 하나님, 거룩하시고 영존 하시는 하나님”
프로케이메논(Prokeimenon)--시편에서 온 구절들
서신 낭독과 아홉 번의 알렐루야
복음서 낭독
설교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
세 가지 연도--이 연도 후에 침례 받지 아니한 자들은 퇴장한다.

성만찬 예전

(입교인의 예배의식)
두 가지 짧은 연도
대성입--떡과 포도주를 성찬탁으로 운반한다.
평안과 탄원의 말씀--초심자의 퇴장을 기억하게 함
니케아 신경
성찬기도
성직수임 혹은 입교식
아남네시스(Anamnesis/기념사)
에피클레시스(Epiclesis/성령의 임재를 기원)
마리아, 살아 있는 성인들, 죽은 성인들에 대한 기념
송영가(Doxology)
간구의 연도와 주의 기도
성찬을 받음
감사기도
안티도론의 분배--성별기도를 받지 아니한 떡을 방문객이나 비입교인에게 줌.

3)서방교회(가톨릭)

서방교회는 로마와 칼타고 중심의 예전,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암브로시우스의 예전, 스페인의 비시고틱 예전, 그리고 프랑스의 갈리아 예전이 있다.[Burkhard Neunheuser, op. cit., pp. 67-68.]

서방교회의 예전 가운데 로마교회는 현재 로마교회의 <<미사경본>>[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발행,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개정 공포된 미사경본>>(한국어판, 1974년 1월 10일 교황청 확인, 1976, 1992)]의 첫 번째 성만찬 기도문인 로마의 성찬 기도문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고,[Ibid., p. 69.] 프랑스 스페인 지역의 교회도 역시 단 하나의 성만찬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로마 전례문은 짧고 간결한 반면, 프랑스 스페인 지역의 기도문은 활동적이고 아주 길다는 차이점이 있다.[Ibid., p. 71.]

로마 전문인 성만찬 기도문 제1양식은 380년대에 로마에서 헬라어 미사가 라틴어로 바뀌면서 거의 대부분이 고정되었다.[쯔지야 요시마사, <<미사: 그 의미와 역사>> 최석우 옮김(성바오로 출판사, 1991), p. 125.] 이러한 기도문은 5-8세기에 이르러서 로마와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장엄한 형태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Burkhard Neunheuser, op. cit., p. 74.]

서방교회는 성 어거스틴 때에 이르러 많은 종류의 기도문, 특히 감사송이 자유롭게 작성되기 시작하였고, 수집되기도 하여, 나중에는 사제들이 연중에 걸쳐 성사 집행에 사용할 수 있는 <<성사집>>(sacramentarium)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성만찬 기도문만은 단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7-8세기경까지는 <<로마 전례서>>를 비롯하여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젤라시오 성사집>>이 나왔고, 이러한 전례서들이 한데 수집되어 <<미사경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474년에는 밀라노에서 <<로마 미사경본>>이 탄생되기에 이른 것이다.[Ibid., pp. 69-70, 85, 119, 125.]

7세기경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에 수록된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말씀의 예전

입당송--성직자가 입당할 때 두 성가대가 부름
키리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대영광송(주교 참석시 주일이나 축일 때)
집례자의 인사
본기도
예언서 혹은 구약성서 낭독
교송(antiphonal chant)
사도서신 낭독
층계송 또는 알렐루야
복음서 낭독--불을 붙이고 향을 피우며 응답함. 낭독 후 비입교인은 퇴장한다.

성만찬 예전

봉헌--떡의 비치, 제단 위에 성찬포를 펼침, 성찬배수(聖餐拜受)를 위한 준비, 예물의 봉헌, 물과 포도주의 혼합, 시편 노래
봉헌기도
인사(Sursum corda)
감사송
삼성창
성찬기도
평화의 입맞춤
떡의 분활
주의 기도
성찬배수--집례자가 먼저 받고 회중이 나중에 받음(시편이 노래됨)
성찬 후 기도(감사기도)
주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어린양)[<<그레고리오 성사집>> 1-33항; Burkhard Neunheuser, op. cit., p. 73; 박은규, op. cit., pp. 99.]

8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기독교 복음이 유럽 대륙의 프랑크족과 게르만 민족에게 전파되면서 예전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때에 고백의 기도와 사죄의 선언(11세기) 그리고 분향(9세기)이 공적으로 행하여졌고, 아리우스 이단을 받아 드린 게르만 민족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 바치는 기도가 생겼다. 로마 미사에 니케아 신조가 도입되었고(1014년), 누룩 없는 떡을 사용하였으며(9세기), 그 후에 밀가루로 크고 작은 두 종류의 호스티아(Hostia/祭餠)가 사제용과 신자용으로 미리 따로 만들어짐으로써 성만찬 전에 떡을 떼어 나누던 전통이 형식적인 것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이 시대에는 미사의 공동 집전이 줄고 사제들의 개인 미사가 성행하였으며, 제단이 점차 신자석과 멀어져 사제석과 신자석 사이에 간격이 생겼고, 신자는 무릎을 꿇고 떡을 받게 되었다. 또한 이 시대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도가 강조됨에 따라서 그의 중보자로서의 성격이 인식되지 못하고 그 대신 성모나 성인들에 대한 공경심이 성행하게 되어 그들을 위한 축일이 두드러지게 되었다.[쯔지야 요시마사, op. cit., pp. 131-134.]

몹수에스트의 주교이며 유명한 신학자였던 데오도루스(Theodorus, 428년 사망)의 가르침에 의해서 동방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일종의 두려움을 갖기 시작하였고, 아리우스파를 막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신성이 강조됨에 따라서 제단과 신자석 사이에 높은 벽이 세워지는가 하면, 신자가 성만찬을 자주 떼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런 영향이 서방교회에도 미쳐 고대 말기까지 주일마다 성만찬을 떼던 습관을 버리고 중세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신자들이 주일 미사에 참석하면서도 성만찬을 하지 아니하고 일 년에 한 두 차례만 하게 되었다. 이러한 습관은 20세기 초 교황 비오 10세 때에 와서야 비로소 시정되기 시작하였다.[네메세기, <<주의 만찬>> 김영환 역(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1986), pp. 118-119.]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서 12세기 이후 15세기에는 바야흐로 연출미사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물질의 성체화(화체설)의 신학으로 인해서 초와 종을 사용하였으며(12세기), 떡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어 절하며 바치는 기도(12세기), 가슴을 치는 행위, 떡을 만진 손가락을 경의의 표시로 계속 맞붙이는 행위 등 외적인 동작을 눈으로 보고 의식에 참가하였다. 이때부터 신자들 사이에 떡을 공경하는 믿음이 성행하였고, 성변화된 떡의 거양이 12-13세기에, 그리고 성작(聖爵)의 거양이 14-15세기에 걸쳐서 행하여지기 시작하였다.[쯔지야 요시마사, op. cit., p. 137; Burkhard Neunheuser, op. cit., p. 112.]

서방교회는 1545년 트렌트 공의회를 개최하여 자체 내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중세 말기의 예전이 심각하게 타락함으로써 개혁가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하고 예배갱신을 위해서 1562년에 위원회를 설치하고 미신에 가까운 제요소들을 제거하였다. 전례의 타락을 막기 위해서 표준판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는데 <<성무일도서(1568)>>, <<미사경본(1570)>>, 그리고 <<주교 의식서(1596)>>가 간행되었다. 표준판을 의무적으로 사용케 함으로써 남용이나 이단을 막으려 하였으나, 전통적인 로마 양식의 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종교개혁가들의 입장에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따라서 트렌트공의회는 미사를 봉헌 즉 제사로 보는 견해, 떡의 현상화에서도 그리스도가 현존한다는 견해, 일곱 가지 성례에 대한 정의 등을 강조하게 되었다. 한편, 미사를 모국어로 거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라틴어를 모국어로 바꾸면 이단으로 흐를 염려 때문에 교황 알렉산더 7세는 1661년에 <<미사경본>>의 모국어 번역을 금하기도 하였다. 의식은 시종일관 그레고리 시대로의 복고를 주장하였으나 중세 예전의 결함을 근본적으로 쇄신함이 없이 그대로 고정시켜 버리고 말았다.[쯔지야 요시마사, op. cit., pp. 139-140, 165.1]

1570년 <<미사경본>>에 따른 ‘라틴어 미사 통상문’은 다음과 같다.[조숙자 편저, <<교회의 성찬 예전과 음악>>(장로회 신학대학 교회 음악 연구원, 1988), pp. 4-18; 정장복, <<예배학 개론>>(종로서적, 1989, 재판), pp. 87-89; 쯔지야 요시마사, op. cit., pp. 139-140.]

말씀의 예전

개회식
입당송--층하경(層下經)의 시편 43편(“천주여, 나를 판단하사....”)
키리에
대영광송
인사와 본기도
서신서 봉독
층계송--성가대
교송(antiphonal chant)
복음서 봉독과 기도(“거룩한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 죄를 씻으소서”)
니케아 신경

성만찬 예전

봉헌
봉헌기도
인사
감사송
삼성창
성찬기도
사제의 주의 기도
평화의 입맞춤
떡의 분활
하나님의 어린양 찬미
성찬배수--집례자가 먼저 받고 회중이 나중에 받음(시편이 노래됨)
성찬 후 기도(감사기도)
주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사제의 폐회식 기도(“우리의 예배와 제사가 당신 어전에 기쁘게 상달되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게 하옵소서....”
축복기도(“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여러분에게 강복하소서”)
마지막 인사와 요한복음 1:1-14 낭독
회중의 응답(“천주께 감사합니다”)

상기한 라틴어 <<미사경본>>(1570)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 완전히 획일화되고 고정된 규범 판으로써 사용되었다. 이 라틴어 <<미사경본>>에서는 구약성서의 낭독이 생략되었고, 떡의 분할 후에 하던 주의 기도가 봉헌기도에 이어지도록 하였고, 그 대신 마지막에 불렀던 ‘하나님의 어린양의 찬미’가 떡의 분할 다음에 오도록 고쳤다. 폐회식 때에는 요한복음 1장 1-14절을 읽도록 한 점이 <<그레고리오 성사집>>과의 차이점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개정 공포된 한국어판 <<미사경본>>도 트렌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개정 공포된 라틴어 <<미사경본>>과 큰 차이점이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4)마르틴 루터와 루터교회

종교개혁의 선두 주자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는 1523년과 1526년 두 차례에 걸쳐서 <<독일 미사>>(Deutsche Messe)라는 예식서를 출간하였다. 그는 이 예식서에서 전반부 ‘말씀의 예전’에 독일어 찬송과 설교를 첨가하였고, 후반부 ‘다락방 예전’은 크게 간소화시켜 복잡한 성만찬 기도문을 생략하고, 그 대신 권면(성만찬 설교), 성만찬 제정의 말씀, 분병, 찬송과 기도, 그리고 아론의 축도로 예배를 마치도록 하였다. 니케아신경을 사도신경으로 바꾸었고 그 위치도 성만찬 예배 때에 하던 것을 설교 전에 하도록 한 것도 한 가지 다른 점이다.[박근원, <<오늘의 예배론>>(대한 기독교 서회, 1992), p. 32; Burkhard Neunheuser, op. cit., p. 132.]

그의 <<독일 미사>>(Deutsche Messe)에 실린 예전의 형태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정장복, <<예배학 개론>>(종로서적, 1989), p. 103.]

말씀의 예전

입당송 또는 독일어 찬송
키리에
인사와 기도문
서신서
독일 찬송
복음서
사도신경(이 때에 성만찬이 준비된다)
설교

성만찬 예전

주의 기도의 풀이
교훈의 말씀
성만찬 성경말씀과 분병 및 분잔
성만찬에 참여(주로 삼성창이 계속됨)
성만찬 후 기도문
아론의 축복기도

5)츠빙글리와 쮜리히(Zurich) 개혁교회

츠빙글리(Urich Zwingli/1484-1531)는 성만찬을 은총의 채널로 생각지 않았고, 기독교 예배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 달에 한 번 이상의 성만찬을 주장한 루터나 칼뱅과는 달리 한 해에 네 번 정도를 주장하였다. 앉아서 받는 성만찬 예식이 쯔빙글리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는 중세교회가 떡을 받지 않던 습관을 지적하면서 그들보다는 더 자주 성만찬에 참여토록 권장하였다. 그가 만든 ‘독일어 예배 순서’는 성만찬이 없는 보통의 ‘아침 기도회’(matins) 순서에 설교와 죄의 고백이 더 첨가된 정도이다. 성만찬 예배 순서는 ‘말씀의 예전’ 부분에 ‘영광송’과 ‘사도신경’을 추가하였으며, ‘다락방 예전’에 ‘권면’과 ‘참여자의 자격’(Fencing of the Table)과 ‘주의 기도’를 드렸으며, 긴 성만찬 기도 대신에 간단한 ‘기도’를 드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주일 예배에서 성만찬을 분리시킨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박근원, op. cit., p. 33.]

츠빙글리의 성만찬 예전은 다음과 같다.[정장복, op. cit., pp. 104-105.]

말씀의 예전

봉헌(성물의 준비와 배열)
기원
기도문 낭송
서신서
하나님께 영광 교송
복음서
사도신경

성만찬 예전

교훈
성만찬단의 정리
주님의 기도
용서의 기도
성만찬 말씀
분병과 분잔
시편 교송
기도문
폐회

6)마르틴 부처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개혁교회

개혁교회의 예배의 틀로 발전된 스트라스부르의 예배 유형은 1524년 슈바르츠(D. Schwarz)가 만든 독일어 미사에서 출발되었다. 자국어로 집행되었으며, ‘죄의 고백’과 ‘용서의 선언’이 첨가되었다. 여기에 마르틴 부처(M. Bucer/1491-1551)는 니케아 신조 대신에 사도신경을, 로마예식의 축도 대신에 아론의 축도를 사용하였다. 또 시편 교독과 찬송을 독일어로 바꾸었으며, ‘미사’, ‘사제’, ‘제단’이라는 용어 대신에 ‘주의 만찬’, ‘목사’, ‘성만찬상’이라는 말로 바꾸었다. 라틴어로 된 예배순서의 명칭이 독일어로 바뀌었고, 성만찬상의 위치도 바뀌었다. 예배 중에 말씀이 선포되었으며, 예식은 크게 간소화되었다.[박근원, op. cit., pp. 33-34.]

칼뱅에게 영향을 주었던 부처의 스트라스부르 예배 유형은 다음과 같다.[정장복, op. cit., p. 106-107.]

말씀의 예전

예전 준비
기원
죄의 고백
시편 교송
인사와 응답
키리에
영광송
기도문 낭송
서신서 봉독
복음서 봉독
니케아 신경

성만찬 예전

봉헌
성물의 배열과 준비
교훈
인사와 서송(序誦/“주를 우러러볼지어다”)
성만찬의 서문경(序文經)
성송(聖誦)--시편 95편
손 씻음과 기도문
전문(典文)
중보의 기도
생활을 위한 기도
성찬의 말씀
회상
주님의 기도--음률을 첨가한 송영으로
성상패--목사와 성도가 입을 맞추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는 기도
성만찬 기도문
성도들의 교제
분병과 분잔 및 참여
성만찬 후 기도문
인사와 응답
강복 선언

7)장 칼뱅과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개혁교회

장 칼뱅(John Calvin/1509-64)도 성만찬을 초대교회 때와 같이 단순한 예식으로 계획하는 데 주력하였다. 매주 성만찬을 집례 할 때마다 신자들이 참여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환원시키려 하였다. 예배 때마다 성경이 읽혀지고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로 환원시키려 하였다. 칼뱅은 원래 매주일 성만찬을 주장하였으나, 츠빙글리의 예배 전통이 이미 자리를 잡은 후라서 한 달에 한번 정도로 후퇴하고 말았다.[박근원, op. cit., p. 34.]

1545년 칼뱅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성찬 예식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장로교회 성만찬 예식문은 칼뱅의 것과 대체적으로 비슷한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조숙자 편저, op. cit., pp. 36-51.]

말씀의 예전

예배의 말씀--개회 성구(시편 124:8)
죄의 고백--제네바는 사죄선언을 거부함
용서의 말씀--성구(딤전 1:15)
사죄의 선언
십계명의 노래와 기도--십계명 전반부를 노래하고 나서 기도하고 다시 십계명 후반부를 노래한다.
성령의 조명을 구하는 기도
성서봉독
설교
중보기도
신앙고백--사도신경노래

성만찬 예전

(성만찬이 거행될 때)
성만찬 기도
주의 기도
성만찬 제정사
권면의 말씀
성만찬 분배
성만찬 분배송--시편 138편
성만찬 후 감사기도
기도서의 성가
복의 선언--예배 후에 헌금을 받음

8)존 녹스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칼뱅의 제네바 예전을 기초하여 스코틀랜드의 <<공동 의식서>>(The Book of Common Order)를 작성한 사람은 존 녹스(John Knox/1513-72)였다. 그는 교회력을 예배에서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성서를 순서대로 읽고 설교하도록 하였다. 또한 그는 말씀을 성만찬보다 우위에 둠으로서 성만찬은 1년에 네 번만 시행하도록 하였다.[Ibid., pp. 135-136.]

그러나 녹스가 관여하였던 스코틀랜드의 <<예식서>>(The Forme of Prayers)에는 성만찬이 주일 예배의 일부였고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의 집례가 정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집례할 목사가 부족하였고, 츠빙글리의 간접적인 영향도 있었기 때문에 매주 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성만찬을 집례 하는 것이 여러모로 어렵게 되어 성만찬 없는 예배가 관례화 되어 버리고 말았다.[박근원, op. cit., p. 35.]

스코틀랜드 교회의 성만찬 예전은 다음과 같다.[정장복, op. cit., p. 110-111.]

말씀의 예전

예배의 부름
예배기도--경외, 찬양, 성령의 임재를 기원함
구약의 말씀--한 장을 읽음
신약의 말씀--한 장을 읽음
운율을 사용한 시편
고백과 중보의 기도
설교
기도--구속, 복음, 설교의 내용 등에 대한 감사
주님의 기도

성만찬 예전

(성만찬이 거행될 때)
봉헌--성물을 알맞은 그릇에 넣어 가져다 드림
성만찬에의 초대
성물의 성별
성만찬의 말씀--고전 11장
교훈
봉헌의 기도
떡의 분활
분병 및 분잔
성도의 참여와 명상
성만찬 후 기도
시편 노래
축복 기도

9)토마스 크랜머와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이며 예전학자인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1489-1556)는 가톨릭교회의 예배[크랜머가 사용한 가톨릭교회의 예배문은 영국의 샐리스버리(Salisbury) 교구에서 사용되었던 사룸예식서(Sarum Missal)였다. 정철범, "한국 성공회 성찬 예식문 연구," <<은곡 김소영박사 회갑 기념 논문집: 교회의 예배와 선교의 일치>>(대한 기독교 서회, 1990), pp. 120-122.]와 개혁교회의 예배의 두 모형을 절충하여 1549년 영국교회를 위한 <<공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집성하였다. 이는 가톨릭의 성만찬 예배와 개신교의 말씀의 예배를 병합한 것이다. 크랜머는 중세교회의 풍부한 기도들을 이용하였고, 개혁교회로부터는 고백기도, 초대의 말씀, 용서의 확언, 성만찬 때의 안위의 말씀을 받아드렸다. 또한 크랜머는 성체신학(화체설)을 거부하였고, 영어 성경을 사용하였으며, 의식을 간소화시켰다. 또한 평신도는 반드시 성만찬 때에 성만찬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성공회의 예전은 토마스 크랜머의 것보다는 가톨릭 예전에 더 가깝다. 1992년 수정 재판된 한국 가톨릭교회의 ‘백성과 함께 드리는 미사 통상문’[<<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에 따라 공포된 미사경본>> s.v. “백성과 함께 드리는 미사 통상문.”]과 상기한 대한 성공회의 <<공도문>>[대한 성공회, <<공도문>>(대한 성공회 출판부, 1922, 재판), s.v. “성찬의 전례.”]에 의한 예전을 비교해 볼 때, 이 두 예전은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회의 예전은 가톨릭의 예전을 그대로 본받으면서 부분적으로 축소했거나 바꾸었을 뿐이다. 세부적으로 성공회는 ‘개회기도’를 대폭 축소시키고 있고, 형편에 따라서는 영광송까지를 생략할 수 있도록 ‘본기도’ 전에 인사를 삽입하고 있다. 그리고 성공회 예전에서는 ‘신자들의 기도’후 성만찬 예전에 들어가기 전에다 미사 통상문에 없는 ‘십계명’과 ‘죄의 고백’을 삽입하고 있다. ‘성만찬 기도’에 있어서 성공회는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양식을 제시하고 있으나 ‘성인 기념 기도’와 ‘고유성인 기념 기도’를 포함해서 대폭 간소화시킴으로써 적정한 길이의 기도문을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의 기도’ 후에도 ‘천주의 어린양’까지를 대폭 생략하고 있다.

대한 성공회의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말씀의 예전

입당찬미
개회기도
키리에
영광송
본기도
구약성경
서신서
복음서
설교
니케아 신경
신자들의 기도
십계명
죄의 고백

만찬 예전

평화의 인사
봉헌례
성만찬 기도--인사, 감사송(특송), 삼성창, 성찬기도
주의 기도
떡의 분할--‘천주의 어린양’을 노래한다.
사제의 성찬배수
신도의 성찬배수
성찬 후 기도
축복 기도

10)리마 예식서

예배갱신운동이 범기독교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먼저 가톨릭교회가 예배갱신운동을 펼쳤다. 가톨릭교회는 1962-65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서 예배 중에 설교와 신자의 성찬배수를 회복하였고, <<미사경본>>의 모국어 번역이 허락되었으며, 비로소 미사가 모국어로 집례 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가톨릭교회도 196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국어 <<미사경본>>을 준비하여 사용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전격적으로 예배에 관한 각종 문헌들이 한국어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쯔지야 요시마사, op. cit., s.v. “부록.”] 이때에 리츠만(H. Lietzmann), 쿨만(O. Cullmann), 그리고 폰 알멘(J. J. von Allmen)과 같은 성서신학자들이 초대교회 예배 연구에 대한 업적들을 쏟아 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들의 업적이 도화선이 되어 말씀과 주의 만찬이 함께 있는 균형 있는 예배의 복원에 대해서 세계교회들이 깊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 열매가 1982년 1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천주교회, 동방정교회, 성공회, 개신교회의 대표들이 모여서 교파간에 이해를 달리하는 침례, 성만찬, 그리고 교역에 대해서 조정된 합의를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들 침례, 성만찬, 그리고 교역에 대해서 교파간에 상호 이해와 일치를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써 이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리마 문서>>이다. 이 책을 <<BEM 문서>>라고 칭하기도 하는 데, 이 문서가 채택된 이후 침례 성만찬에 대한 성례전의 인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워지고 있고, 그 의미도 선명해지고 있다. <<리마 문서>>와 함께 복원된 예전이 <<리마 예식서>>이다.[박근원, op. cit., pp. 10-17.]

<<리마 예식서>>에 실린 성만찬 예배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박근원 편저, <<리마 예식서>>(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1987), pp. 32-53.]

개회예전
개회찬송
인사
죄의 고백
용서의 선언
자비의 연도(키리에)
영광송

말씀의 예전

오늘의 기도
구약성서 봉독
명상의 시편
사도서신 봉독
할렐루야 영창
복음서 봉독
설교
침묵
니케아 신앙고백
중보의 기도

성만찬 예전

준비 기원
인사
처음 기원(감사송)
삼성창
성령 임재의 기원(1)
성만찬 제정사
기념사
성령 임재의 기원(2)
추모의 기원
마지막 기원
주의 기도
평화의 인사
분병례
하나님의 어린양
성만찬에의 참여
감사의 기도
폐회 찬송
분부의 말씀
축복 기도

상기한 내용은 그 골격에 있어서 대체로 가톨릭의 예전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먼저 ‘고백의 기도’와 ‘용서의 선언’을 들 수 있다. 이 부분은 미국과 캐나다의 <<루터교 예식서>>에서 수용한 것이다.[Ibid., p. 43.]

11)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미국의 교회들 가운데는 설교 전 주의 만찬을 시행하는 교회들이 있고, 혹은 설교 후에 주의 만찬을 시행하는 교회들이 혼재하지만, 이는 개교회가 편의상 결정하여 시행하는 일이지, 성서적 근거가 명확하기 때문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교회의 형편과 결정에 따라서 설교 전에 혹은 설교 후에 어떤 교리적 혹은 성서적 근거와 제한 없이 자유롭게 주의 만찬을 시행하고 있다.

1991년에 출판된 <<그리스도의 교회 목회자 매뉴얼>>[Roderick E. Huron, Compiler. Christian Minister's Manual(Cincinnati: Standard Publishing Co., 1991).]에 보면 두 가지 양식을 추천하고 있다. 제1추천양식에서는 주의 만찬을 설교 전에 배치하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를 설교직후에 이어지는 결심자 초대와 침례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설교를 항상 결심자 초대로 마치고 있다. 만일 침례를 받지 아니한 자가 설교자의 초대에 응하여 회중석 앞으로 나오면 즉석에서 성도들 앞에서 신앙고백을 받고, 즉석에서 침례식을 거행하게 된다. 이 경우 침례식은 광고와 축도 이전에 진행됨으로 침례식은 예배의 연장선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주의 만찬을 설교이후에 하게 되면, 침례를 받겠다고 결심한 자를 신앙고백만 받고 주의 만찬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해야 함으로 이런 불편 때문에 편의상 설교 이전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2추천양식에서는 설교 후에 주의 만찬을 시행하도록 배치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설교자의 초대를 받고 초대에 응하여 강단 앞으로 나가서 신앙을 고백한 후에 자리에 돌아가 주의 만찬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침례를 받게 되고, 침례식이 끝나면 광고와 축도로 예배를 마치게 된다.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추천하는 두 가지 예배 양식은 다음과 같다.

제 1 추천양식

1. 전주
2. 예배의 부름
3. 개회찬양(회중은 일어서며, 기도가 끝날 때까지 서 있는다).
4. 기원
5. 찬양
6. 환영 및 광고
7. 성만찬 찬양(성만찬 위원들은 찬송이 불리는 동안 배찬을 준비한다).
8. 성만찬 명상
9. 주의 만찬(집례자의 기도, 분병과 분잔)
10. 헌금기도
11. 헌금봉헌
12. 기도송(회중은 마지막 절을 부를 때에 일어선다).
13. 아침기도
14. 성경봉독
15. 성가대 찬양
16. 설교
17. 초대송(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기를 원하는 자나 교인등록을 원하는 자는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 받는다).
18. 새 신자 환영 및 침례식(결신자가 있을 경우)
19. 축도
20. 후주

제 2 추천양식

1. 전주(예배위원 입장행렬)
2. 성가대에 의한 예배의 부름(성가대 또는 중창)
3. 찬양송
4. 예배송
5. 성가대 찬양
6. 기도송(한 절, 일어선다).
7. 아침기도
8. 성경봉독
9. 솔로(봉독된 말씀과 관련된 찬양을 준비시킨다)
10. 설교
11. 초대송(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기를 원하는 자나 교인등록을 원하는 자는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 받는다).
12. 초대에 응한 자들의 신앙고백
13. 성만찬 찬양
14. 성만찬 명상(성경봉독과 성만찬에 관한 간단한 교훈)
15. 주의 만찬(집례자의 기도, 분병과 분잔, 성가대는 떡과 잔을 받은 후에 앉은자리에서 성만찬과 관련된 준비된 찬양을 부른다)
16. 침례식(결신자가 있을 경우)
17. 광고
18. 축도
19. 후주

나오는 말

이상으로 전통적인 예배 양식(설교 후 주의 만찬 시행)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신약성서는 물론이고, 초대교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전례역사는 일관되게 설교 후 주의 만찬 시행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로써 설교 후 주의 만찬의 시행 즉 본 예배를 생략하지 말고 시행해야할 이유는 충분히 확보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