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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01 18:30
침례(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2013.08.15수정)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82  

침례(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출저: Douglas A. Foster, Paul M. Blowers, and D. Newell Williams, "Baptism," The Encyclopedia of the Stone-Campbell Movement(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4)

번역: 조동호 목사

목차

    1. 배경
    2. 침례에 관한 초기 스톤-캠벨 운동의 지도자들
    2.1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
    2.2 발톤 W. 스톤(Barton W. Stone)
    2.3 요약

    3. 스톤-캠벨 운동에서 침례신앙의 발전-19세기와 20세기 초
    3.1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
    3.2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와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and Christian Churches/Churches of Christ>

    4. 침례신앙과 실행의 더 최근의 발전들
    4.1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4.2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Churches of Christ)
    4.3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

    5. 결론

스톤-캠벨 운동의 교회들은 성경적 침례를 회개한 신자들의 침수세례로 또 한 구원과정의 정점(頂點)으로 믿는 입장을 역사적으로 취해왔다. 그 구원과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침수세례이후에는 동료 신자들로 구성된 한 회중(교회)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기게 된다.

1. 배경

스톤-캠벨운동의 창립 지도자들의 신학은 그들의 종교개혁 유산(遺産)과 19세기 미국 기독교의 경험 모두에서 영향을 받았다. 알렉산더 캠벨은 침례를 신성하게 제정된 한 표식과 죄 사함의 약속으로 강조한 루터교의 교리를 전용하여 그가 침례를 주제로 쓴 가장 중요한 글일 수도 있는 “죄 사함(Remission of Sins)”에 관한 논문을 썼다. 스톤과 캠벨 모두 장로교주의와 장 칼뱅의 변치 않는 영향의 산물들이었다. 칼뱅은 침례와 주의 만찬을 외적 표지들로써 정의하였다. “이 외적 표지들에 의해서 주님께서 우리 믿음의 연약함을 떠받치기 위해서 우리 양심에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선한 의지의 약속들을 인 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신에 그분을 향한 우리 경건을 증명한다.” 칼뱅에게 침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한 증거요, 그분을 향한 우리의 경건을 상호 인증하는 외적 표지에 의한 확증이었다.”

미국 변방(개척지)의 종교적 상황은 스톤과 캠벨에게 두 가지 물음을 제기했다. 이들 물음의 첫 번째는 침례의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이 물음은 변방의 점증하는 침례 교인들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이들은 성경적 침례가 신앙고백에 따른 신자들의 침수였다고 주장하였다. 미국 변방의 많은 수의 장로교인들 역시 유아세례의 관행을 변호하였다. 스톤과 캠벨 모두는 성경적 침례는 회개하는 신자들의 침수라는 것을 결국 확신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두 번째 물음은 초기에는 침례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어떻게 신자가 하나님께 용서받고 영접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느냐에 관한 물음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견해들은 미국 장로 교인들에 의해서 전용되었는데, 그는 하나님께 용서받고 영접되었다는 유일한 확신은 그가 거룩함이라고 칭한 그리스도인의 신실한 삶이라고 주장하였다.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인의 신실함을 하나님께서 마음을 변화시켜주신 즉 하나님께서 죄인을 영접하심을 항상 동반하는 변화의 결과로써 이해하였다. 감리 교인들은 존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랐다. 웨슬리는 사람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전, 즉 사람이 거룩할 수 있기 전에 하나님께 용서받고 영접된다는 것을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신자들이 성령의 즉각적인 증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개인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 증언 혹은 계시는 하나님께서 언표하신 말씀, 즉 성경의 말씀들 혹은 마음에 감동된 약속 혹은 하나님의 용서와 영접에 대한 깊은 느낌으로써 찾아왔을 것이다. 침례의 설계와 목적에 대한 알렉산더 캠벨의 이해, 즉 침례는 회개하는 신자에게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이라는 이해는 폭넓게 스톤-캠벨운동에 의해서 어떻게 신자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확신할 수 있느냐에 관한 물음에 대한 그것의 독특한 대답으로써 전용되곤 하였다.

2. 침례에 관한 초기 스톤-캠벨 운동의 지도자들

2.1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

토마스와 알렉산더 캠벨은 유아세례를 받았다. 이미 1809년에 유아세례의 타당성의 문제가 그리스도인의 협의회(Christian Association)에서 회원들이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곳에서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침묵한다.”는 슬로건을 채택했을 때 제기되어왔다. 그 이슈가 1812년 알렉산더에게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핵심내용으로 부상하였다. 그는 침례에 관한 진지한 연구에 돌입하였고, 그가 성경적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침수에 복종하기로 결정하고, 침례교 목사 마티아스 루스(Matthias Luce)에게 침례를 집례해 줄 것을 설득하였다. 그의 아내, 부모, 자매 또 그리스도인 협의회의 후속(後續)인 브러시 런 교회(Brush Run Church)로부터 두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단순한 신앙고백에 따라 한날한시에 침수세례를 받았다.

    <사진설명: 침례교 목사 마티아스 루스는 토마스와 알렉산더 캠벨을 그들의 아내들과 다른 세 명과 함께 1812년 6월 12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단순한 고백에 따라 침수하였다. 1826년 피존 크릭 침례교회(Pigeon Creek Baptist Church) 목사였던 루스는 레드스톤 협의회(Redstone Association)로부터 13개의 다른 “개혁하는” 교회들과 함께 필라델피아 신앙고백서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추방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역사학회의 허가를 받음)>

캠벨에게 있어서 누가 침례의 적절한 대상인가에 대한 이슈는 교회의 성질, 그것의 상태와의 관계, 신앙적 정치적 자유와 관련되었다. 캠벨은 “누구도 대리로 혹은 다른 사람의 고백에 따라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침례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캠벨은 기독교는 “개인적이며, 가족이나 국가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유아세례에서 세례대상자들은 ‘예’나 ‘아니오’를 말할 어떤 자유도 갖지 못하였다. 부모들이 그들의 믿음을 고백하였으나 그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것은 양심에 가하는 가장 나쁜 종류의 독재이다.”고 캠벨은 주장하였다. 종교의 설립을 향한 강한 반감을 회고하면서 그는 바로 그 19세기 초반 수십 년에 동부의 몇몇 주들에서 여전히 세워진 신앙단체들이 신앙과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추구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유럽의 국가교회들에서의 유아세례의 역할에 익숙한 캠벨은 신자들의 침례가 개인 신앙의 자유만큼 잘 국가의 방해로부터 교회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았다.

게다가 캠벨은 유아세례가 교회로 하여금 그것의 증언을 타협하게 하고 그것의 정체성을 잃게 하였다고 비난하였다. 유아세례는 “기독교에 처음 결함이 생긴 이후로 다른 어떤 쇄신보다 더 교회를 육화시키고 세속화시켰다.” 그것은 “세상과 교회사이의 구별을” 상실케 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국가교회에서 나라 전체가 세례를 받은 한 시대를 언급하면서 캠벨은 “그 영역에서 저질러진 모든 무법은 교회의 구성원들에 의해서 저질러졌다.”고 진술하였다. 캠벨에게 있어서 침례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복음의 명령에 그들 자신들을 복종할 준비가 된 회개하는 신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 같은 견해는 깊은 사회적 영향(함축)들을 갖는다고 믿었으며, 또 그는 그의 운동이, 노예제도의 폐지와 여성들의 교육과 그리스도인 일치를 포함해서 그가 복음이 명령하는 것으로 이해한, 사회변화에 전념하는 것이라 믿었다.

브러시 런 교회는 1815년에 레드스톤 침례교 협의회의 지체가 되었다. 알렉산더 캠벨은 초기에 신자의 침수에 관해 1820년 장로교의 존 워커(John Walker)와 1823년 W. L. 맥칼라(Maccalla)와 각각 토론함으로써 침례 교인들을 위한 챔피언이 되었다. 그러나 1820년대 10년간 침례의 목적에 대한 캠벨의 이해에서 식별할 수 있는 전환이 있다.

캠벨은 그의 워커와의 토론에서 침례는 믿어왔던 자들이 이미 받은 구원의 상징이라는 것을 분명히 진술하였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한 것의 표시로써 신자를 선행하시면서 침례에로 인도하셨다. 캠벨의 이해는 본질적으로 당시 대다수 침례 교인들이 신봉했던 것이었다.

맥칼라와의 토론 때까지 캠벨은 침례와 죄 사함사이에 훨씬 더 깊은 연관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는 용서와 구원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분의 피로 인하여 온다는 것을 여전히 고집하였다. “진짜의” 혹은 “실제적” 용서는 침례를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 죄 사함은 침례의 행위에서 온다.

그러나 1820년대 말까지 캠벨은 이 입장을 넘어서서 실제적이고 공식적인 용서의 지점들이 합류하는 데로 옮겨갔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은 침수를 통하여 - 바로 그 행위를 통해서 또 바로 그 순간에 -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나는 솔직히 강력히 주장한다. 사람은 그가 혹은 그녀가 씻기기 전에는 깨끗하지 않다고 캠벨은 논하였다. 자연의 상태와 은혜의 상태 사이에 분명하게 보이는 표지는 침례의 행위이다. 그 누구도 침례 때까지는 죄 사함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갖지 않는다. 일찍이 그 누구도 믿음만으로는 죄의 용서를 받지 않았다. 물 침례는 행동의 원칙으로써 믿음과 함께 수단이다. 그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주신다.

캠벨의 신학논문 <크리스천 시스템>(The Christian System)의 삼분의 일이상이 그가 이해한 침례와 죄 사함에 대한 해설에 공들여지고 있다. 웨슬리처럼 캠벨은 하나님께 영접되었다는 신자의 확신은 그리스도인의 성결의 기초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용서받음, 사함 받음, 의롭다함을 받음, 성화됨, 화해됨, 하나님의 가족에 입양됨, 그리고 구원받음과 같은 말들에 의해서 동일시된다. 비록 그가 “상태(state)와 개성(character)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거나 혹은 상태가 개성에 갖는 어떤 영향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어휘들은 어떤 개성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나타낸다고 캠벨은 주장하였다.

    참으로 사도들이 사용했던 가장 유력한 그리스도인들과의 의론은 그들로 하여금 품성의 모든 도덕적 신앙적 빼어남을 발전적으로 배양하고 드러내도록 권하려는 것으로써 그것들이 처한 상태의 의미와 가치에서 기인한다. 용서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용서해야 한다.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의롭게 살아야 한다. 성화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거룩하게 나무랄 데 없이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 화해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이들과 평화를 키워야 하며.... 모든 이들을 향해서 호의적으로 행해야 한다. 입양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품위와 순결로 걸어야 한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깨어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복된 희망을 기대하면서 감사들과 기도들과 기쁨들에 차있어야 한다.

침례는 우리의 상태가 변화되는 행위라고 그는 분명하게 주장한다.

사람이 시민이 될 수 있는 것만큼이나 외국인이지만 미국시민의 면책권을 갖는 것만큼 신속하게 사람은 그가 중생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의 특권을 누린다..... 만약 거듭나는 것이나 또는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 입회에 필요하다면, 또 만약 물로 나는 것이 침수를 의미한다면, 모든 증인들에 의해서 명백히 입증된 것처럼, 그러면 죄 사함은 이생에서는 구조적으로 침수 전에 즐길 수 없다.  

게다가 캠벨은 디도서 3장 5절에서 언급된 “중생의 씻음”이 침수와 동의어라고 설명하였다. 침수는 단순히 육체의 행위가 아니었다. 

기독교 제도에 외적이고 육체적인 행위들과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모든 다른 것들에서와 침수의 행위에서조차도 결코 그런 것은 없다. 게다가 그것은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이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 입적되는 것이고, 방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방주 안에 거한다면, 그 방주는 우리를 하나님의 산에로 실어다줄 것이다.

캠벨의 견해는 성례의식 그 자체로써 효력을 갖는다(ex opere operato)는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과 침례가 구원과 별개라는 개신교의 이해들 사이에 중도(via media)였다. 개인의 믿음과 회개는 침례의 효력에 필수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는 신자의 침례에서 상태의 참변화가 일어났다.

캠벨부자와 그 운동의 초기에 가장 훌륭한 전도자였던 그들의 동료 월터 스콧(Walter Scott)은 거의 15년 동안 침례 교인들로서 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벨이 침례에 관해 도달한 입장이 침례교의 교리와 맞지 않다는 것이 많은 침례교 지도자들에게는 분명해졌다. 1830년까지 많은 침례교 협의회들이 “개혁가들”의 주장들을 놓고 분열되었다. “개혁가들”과 그들의 침례교 동료들 사이의 분열이 잇따라 일어났다.

침례에 관한 캠벨의 성숙한 견해는 엄격하고 예외 없이 들어난다. 그러나 1830년 초 캠벨에게 부담이 됐을 세 가지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침례에 관한 그의 가르침들에 예상되는 중요한 결과들을 안고 있었다. 첫 번째는 침례가 사람이 용서를 보증 받는 일종의 행위인가 여부를 다뤄야했다. 캠벨은 대답하기를, “우리는 침례를 선한 행위들 속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침례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가 동의하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에서 수동적이다.” 캠벨은 침례의 성격에 관하여 몇몇 그의 동역자들과 일치하지 않았다. 몇몇 사람이 “침례에 어울리지 않는 지위 즉 죄의 용서를 보증 받고 그 효력을 누리는 것보다는 일종의 죄의 용서를 획득하는 지위를 부여하였다....그러나 그와 같은 것은 결코 나의 논거(論據)들이 아니었으며 나의 방향이 아니었다.”고 말하였다. <크리스천 시스템>(The Christian System)에서 그는 “신앙하는 회개자에게 그것은 일종의 공식적 별다른 독특한 면죄나 유죄에서 놓임이거나.... 그들에게 용서를 보증하는 충분하고 명백한 하나님의 증거를 받는 수단이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두 번째 문제는 침례 때에 사람의 지식을 다뤄야 했다. 그 행위 속에서 그들의 죄가 사함 받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침수가 유효한가? 환원하면, 자신의 침수에 대한 충분한 중요성을 알지 못한 것이 그것을 무효로 만들며 그로 하여금 “재 침례”를 받도록 요구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캠벨의 대답은 역시 분명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순한 고백에 따라 침례를 받았으면, 그 또는 그녀는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이다. 누군가의 재침례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만약 침례 후보자가 첫 번째 침수시기에 예수는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았노라고 그 또는 그녀가 고백했을 때뿐이다. 캠벨은 사람의 죄가 용서되는 것은 침례 안에서였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 때에 이 지식이 필요한 믿음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아니었다. 사실들의 목록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임이 필수였다. 침례의 행위에서 초래된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지식이 그것의 타당성을 위한 선행지수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이 로마, 갈라디아,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침수했어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들 교회들의 모두에게 침례의 바로 그 의미를 설명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캠벨은 죄 사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침례 안에서 회개하는 신자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 축복을 받는다. 침례는 그것에 대한 사람의 완벽한 이해 때문에 구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구원한다. 그는 또는 그녀가 침례 안에서 그들의 죄가 사함 받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의 침례가 무효하다고 고집하는 것은 마가복음 16장 16절,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는 예수 자신의 진술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이슈는 침수 받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가에 관계가 있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지만 무지해서 또는 솔직히 잘못 알아서 결코 침수 받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저주를 받는가? 이 문제에 관해서 캠벨은 1837년 버지니아 주 루넨버그(Lunenburg)의 한 여성이 보낸 서신에 대한 답변으로 쓴 일련의 기사들에서 가장 명확하게 진술하였다. 그 사건은 캠벨과 존 토마스(John Thomas)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의 배경에서 반드시 이해되어야 한다. 토마스는 영국인 의사로서 버지니아 주로 이주하였으며, 그 운동에서 지도자가 되었다. 토마스는 죄 사함의 명확한 지식 없이 침례를 받았던 사람들의 재침례를 전투적으로 주장하였다. 1837년 7월에 토마스의 지지자 한 사람이 캠벨에게 그가 앞선 기사에서 모든 개신교 교파들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발견되어진다고 쓴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는 짧은 글을 보냈다.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됩니까?”고 그녀는 물었다. “그리스도의 이름 혹은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믿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에로 침례에 의해서 장사되는 사람들 이외에 누구에게나 속합니까?”

캠벨의 대답은 그 점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그리스도인인가?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로 마음으로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뜻에 대한 자기 지식의 정도에 따라서 모든 것에서 그분께 순종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나는 답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상태나 개성을 절대적으로 상실치 않고도 어느 정도 불완전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켜야 할 의무 혹은 그리스도인의 상태나 특성의 표준을 정할 수 없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조차도 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식이나 동의 없이 유아 때에 약식으로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천국에 대한 확고한 희망이 없는 외인들이라고 마음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면, 신앙 고백에 따라 받는 침수를, 그것이 비록 성화와 안위에 대단히 본질적일지라도,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인 본질로 만들 이유(occasion)는 없다. 나의 오른쪽 손과 오른쪽 눈은 나의 소용과 행복에 대단히 본질적이다. 그러나 나의 생명에는 그렇지 않다. 그것들 없이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침수의 진실 되고 성서적인 의미와 목적대로 바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수용함이 없이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서 침수세례자 이외에는 아무도 그리스도인이 없다고 추측하는 사람은 분명하고 온전한 시력을 가진 자 이외는 산 사람이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만큼이나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캠벨의 대답은 꾀 큰 소동이 일게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죄 사함을 위한 침례의 중요성에 관해 설교해왔던 것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켰다고 불평하였다. 캠벨은 이것 혹은 그리스도의 의식들의 어떤 것을 완강히 반대했거나 혹은 주님의 뜻 확인을 의도적으로 게을리 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하였다. 오히려 그는 “단순한 실수를 통해서, 어떤 외고집도 마음에 포함하지 않은, 외적 침례를 잘못 생각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였다. 침례가 내적 외적 모두의 행위였기 때문에, 사람이 성경적으로 침례 받지 않고서도 내적으로 변화 되는 것이 가능하였다,

비록 캠벨이 적어도 일부 미침수 신자들의 기독교를 기꺼이 허용하였지만, 그의 인정이 보이는 교회 즉 지상의 하나님의 왕국의 멤버들로서 그들을 수용하는 데까지는 확대되지 않았다. 그는 발톤 W. 스톤과 의견이 맞지 않았다. 스톤의 운동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오픈 멤버십”을 실천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보이는 순종에 의해서 단지 판단할 수 있을 뿐이라고 캠벨은 역설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옆으로 비겨놓을 수 없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수 받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로 받아드릴 수 없다. 하나님은 미침수 신자들의 마음들을 궁극적으로 판단하실 것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보이는 지상왕국의 친교를 즐길 수 없다.

2.2 발톤 W. 스톤(Barton W. Stone)

비록 발톤 W. 스톤이 그의 개혁을 위한 사역에 있어서 캠벨부자보다 먼저 시작했지만, 침례는 그와 그의 운동에 중대한 이슈는 아니었다. 스톤과 몇몇 그의 장로교 동료들은 1803년 켄터키 주 총회(Synod of Kentucky)를 탈퇴하여 그들 자신의 스프링필드 장로회(Springfield Presbytery)를 조직하였다. 이단이란 비난이 그들의 멤버 가운데 한 사람에게 쏟아지고 난 다음이었다. 1800년에는 이미 스톤의 동료들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마샬(Robert Marshall)이 신자들의 침수가 진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스톤은 이 “잘못”과 침례교회에 가입하려는 마샬을 설득하여 단념시키려고 노력하면서 그와 서신교환을 하게 되었다. 스톤은 마샬의 논증들이 매우 설득시키는 것이어서 그가 유아세례의 관행을 버렸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스톤은 기록하기를 “대부흥”이 (1801년 스톤의 고장 일대에서) 일어났을 무렵, 그가 수년간 침례의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 문제가 1807년경 그의 운동에서 다시 부각되었을 때, 스톤은 신자들의 침수를 받아드렸다. 그러나 그 문제는 개인의 양심에 맡겨졌다. 관용이 규칙이나 마찬가지여서 침수를 택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얕보지 않았으며, 그 반대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톤은 또 기록하기를 한동안 그와 다른 이들이 죄 사함을 위한 침례를 설교하였으나 “나는 그것이 몇 년 후 형제 알렉산더 캠벨에 의해서 되살아나기까지 교리의 정신에로 결코 온전히 인도받지 못했다.”고 인정하였다.

스톤은 1820년대 내내 캠벨부자의 사역을 점차 의식하게 되었다. 그는 1824년에 처음으로 캠벨을 만났다. 그의 자서전에서 그는 그들 두 사람 사이에서 그가 본 유일하게 실재적인 교리의 차이는 죄 사함을 위한 침례의 캠벨의 가르침이었다고 말하였다. 비록 캠벨이 1823년 맥칼라와의 토론에서 이 가르침을 분명히 밝혔지만, 죄 사함의 교리를 실제로 설교한 이 운동에서의 최초의 인물은 스톤-캠벨운동의 목회자인 B. F. 홀(Hall)이었다. 캠벨-맥칼라 토론의 출판 본에서 캠벨의 가르침을 발견한 홀은 마음내켜하지 않는 스톤에게 그가 그 세기(世紀) 초에는 가르쳤으나 버렸던 이 교리가 충실한 복음적 설교에 결정적이었다고 확신시키려고 하였다.

결국 스톤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캠벨과 동일한 입장들을 취하게 되었다. 언급한대로 캠벨은 “보이는 교회”에서 미침수자들과의 공식적인 친교와 교제를 부정하였다. 환원하면, 미침수자들은 캠벨의 개혁운동에 가입한 회중(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스톤은 죄 사함을 위한 침수의 교리를 옹호하면서도 그의 운동의 지체들이었던 교회들의 멤버십에서 미침수자들을 제외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를 가르치고 믿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위해 침수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의 진리를 듣는 우리의 청중들을 확신시키려고 힘쓴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할 수 없는 그 같은 경건한 사람들을 향하여 인내와 관용을 베푼다.” 스톤은 캠벨의 배제의 자세가 잘못이라고 믿었다.

2.3 요약

위에서 요약한 입장들은 스톤-캠벨운동에서 침례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신앙들이었다. 그 운동의 모든 지체들에서 공통으로 취한 생각들은 (1)성경적 침례는 신자들의 침수라는 것과 또 (2)침례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회개하는 신자에게 죄를 사하시는 행위를 포함한다. 그 운동에서 그것에 대하여 논쟁이 되어왔던 생각은 (1)침례의 “목적”(죄 사함)에 대한 지식이 그것의 타당성을 위해 필요한가와 (2)“경건한 미침수자들”(적어도 그들 가운데 일부는) 구원을 받을 것인가와 또(3) 경건한 미침수자들이 그 교회들에서 (개방 대 폐쇄 멤버십) 멤버십을 갖도록 허용될 것인가를 포함한다. 침례를 거의 기계적인 행동으로 격하시킨 분별력이 낮은 교사들은 더 사려 깊고 영적인 지도자들을 대표하지 않았다.

3. 스톤-캠벨 운동에서 침례신앙의 발전-19세기와 20세기 초

3.1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그 운동의 초기부터 침례에 관해 가장 제한적인 즉 믿고 침수 받은 자들만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자세를 구현하였다. 그들은 또 죄 사함이 침례의 행위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주저 없이 주장하였다. 침례는 “당신의 순종을 완성하는 것”이며, 구원은 순종이 완성할 때까지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문제는 침례 때에 피침수자의 지식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1890년대 오스틴 맥개리(Austin McGary)와 데이비드 립스콤(David Lipscomb) 사이의 논쟁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일 수 있다. 립스콤은 침례가 그 속에서 사람의 상태가 “하나님을 거슬리는 멀어짐과 반역의 상태에서 그분의 영접과 은혜를 입는 상태로” 완전히 변한 행위라고 가르쳤다. 그는 하나님의 법이 구원받게 될 모든 자들에게 믿고 회개하고 침례 받을 것을 요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그들이 믿고 침례를 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정죄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그것에 순종할 것을 역설하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이 또는 그녀가 침례 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거나 침례를 대신하는 관수(灌水)나 뿌림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일찍이 누군가에게 말씀하셨다할지라도, 립스콤은 진술하기를, 그는 결코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였다. 립스콤이 일찍이 “그분의 시험 의식”(his test ordinance)라 불렀던 것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동안에도 그들에게 그들이 안전하며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미침수자들에게 반(反)하는 큰 죄요 속임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미침수 신자들에게 친절하게 참고 교제해야 하는 동안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진리에 복종하도록 권면하기 위해서 모든 기회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말하였다. 왜냐하면, 침례에 복종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완전케 하는 것을 거부한 자들을 위해 성경은 어떤 약속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립스콤은 만일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하고, 또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침수를 받았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에 더하여 졌다고 주장하였다. 저들 성경적 구성요소들이 들어있는 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침례가 집례 되었는가는 차이가 없었다. 립스콤은 올바르게 침례를 받아왔던 침례교, 감리교, 장로교 또 다른 교단들에 속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더하여져왔다고, 비록 그가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저들 교파적 조직들에서 떠나야 한다고 믿긴 하였지만, 흔쾌히 인정하였다. 게다가 그는 그 같이 단순한 복종은 그리스도인에게 약속한 모든 축복들과 특권들을 그것들에 대한 신자의 지식에 상관없이 확고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죄 사함에 대한 지식이 없는 침수의 타당성에 관한 립스콤의 캠벨의 입장은 일단의 엄격주의자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1884년 오스틴 맥개리는 단순히 하나님께 복종하는 침수가 그 행위를 타당하게 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가르침을 진척시키기 위해서 <견고한 토대>(Firm Foundation)란 제목의 저널을 창간하였다. 게다가 맥개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홀로 죄 사함을 위한 침례를 가르치기 때문에 또 다른 신앙단체에서 침수를 받은 사람일지라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와 그리스도의 교회의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재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립스콤은 하나님이 단순히 사람이 복종과 연관된 모든 축복들과 약속들을 기다려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복종함으로 행한 섬김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재침례” 그룹은 “교파 침례”로 침례를 받은 자들은 올바른 도리를 위해 침례 받지 않았다고 되받아쳤다. 그들은 종종 그들의 죄가 이미 용서되었고, 그들의 침례가 특정 교파에 가입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립스콤은 그것이 어쩌면 때로는 사실이란 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교파 침례”는 그리스도의 교회들 밖에 있는 자들에게 제한되지 않았다.

립스콤은 재침례 세력들에게 지적하기를, 올바른 길로 여행을 시작해서 (이미) 먼 길을 간 사람이 옳지 아니한 방향으로 전환해서 출발점에로 되돌아가는 것은 전혀 일리가 없는 상식 밖의 일이라고 하였다. 그 같은 경우는 성경적으로 침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교파 교단들에 속해 있는 자들에게도 해당되었다. 그 같은 결과로서 일어나는 잘못된 방향전환은 그들의 믿음, 회개, 혹은 침례를 원상태로 되돌리지 않는다. 그 같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실 되고 옳았던 모든 것을 계속해야 하며, 잘못된 길에서 내려 올바른 길로 갈아타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오직 우리가 잘못한 지점에로만 돌아가 거기서부터 바르게 시작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복음 주창자>(Gospel Advocate)와 <견고한 토대>(Firm Foundation)사이에 벌어진 토론은 1890년대 기간과 20세기에로 휘몰아쳤다. 이 시기는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 중요한 분열이 있었던 시기였다. 그 분열을 감싸고도는 강렬한 느낌들과 제자파와 관련된 신학적 자유주의에의 두려움이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많은 사람들을 보수적인 형태로 밀어붙였다. 맥개리에 의해서 주장된 엄격주의자의 입장은, 비록 좀 더 온건한 립스콤의 입장이 특히 립스콤의 영향이 가장 컸던 테네시 주 중부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다수 견해가 되었다.

    <사진설명: 콩고 웨마(Wema in Congo)에서의 침례식. 집례 목회자들은 좌측에서 오른쪽으로 클레이톤 위크스(Claton Weeks), 데일 화이어즈(A. Dale Fiers, 당시 연합 그리스도인 선교회 회장), 본잘리 페텔로(Bonzali Petelo) 그리고 이일 페텔로(Eale Petelo). (그리스도의 제자들 역사학회의 허가를 받음)>

3.2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와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and Christian Churches/Churches of Christ>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가장 문제된 논쟁이 침례 때에 피침수자의 지식에 관련된 반면,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사이에 가장 논란이 된 이슈는 교회들에서 경건한 미침수자들에게 멤버십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이슈는 제자파가 20세기 초에 근대 에큐메니컬 운동에 가담함으로써 빚어졌다. 20세기의 두 번째 10년에 출판된 두 개의 중요한 연구들이 그 이슈를 규정지었다. 찰스 클레이톤 모리슨(Charles Clayton Morrison)의 <침례의 의미>(The Meaning of Baptism, 1914)는 경건한 미침수자들에게 교회들에서 멤버십을 허용해야한다고 논하였다. 비록 이 입장이 초기에 스톤에 의해서 뚜렷이 구별된 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다른 근거들에서 논의되었다. 프레더릭 커쉬너(Frederick D. Kershner)의 <그리스도인의 침례>(Christian Baptism, 1917)는 오로지 침수된 신자들만을 교회들에 허용하는 것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캠벨의 루넨버그 서신왕래를 생각나게 하는 부담 때문에 그는 주장하기를, “자기 자신의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깨닫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충분하고 정식적인 의미에서든 그렇지 않든, 치명적이고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였다.

모리슨과 커쉬너는 둘 다 제자파의 에큐메니컬운동에 전념하였다. 게다가 그들의 침례관들은 현저하게 비슷하였다. 세 가지 합치점이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모리슨과 커쉬너는 둘 다 경건한 미침수자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 점들에서 신자의 침수를 논하는 스톤-캠벨 운동에 속한 일부 경향을 반대하였다. 둘째, 모리슨과 커쉬너는 둘 다 기독교를 본질적으로 죄인들의 도덕적 혹은 윤리적인 변화로 기술하였다. 둘 다 침례를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계적인 행동으로 각하하는 어떤 형태의 “율법주의”도 거절하였다. 셋째, 모리슨과 커쉬너는 둘 다 침례를 기독교의 입회의식으로 정의하였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 가운데 누구도 침례가 회개하는 죄인에게 죄 사함의 확신을 제공하는 것으로 기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죄 사함을 위한 캠벨의 침례관이 19세기에 답했던 개인 신앙의 질문, 즉 회개하는 신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접을 확신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적어도 모리슨과 커쉬너가 속한 신앙 단체들에서는 그랬다.

모리슨과 커쉬너의 입장들에서의 차이점은 침례에 대한 침수와의 관계에 있었다. 침례는 육체적 행동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한 캠벨을 내세우면서 모리슨은 “침례”가 그리스도인의 입회의식에 대한 명칭이라고 주장하였다. 초대교회가 그 의식의 표지로서 침수를 전용한 것은 오로지 사회적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제자들을 삼아 그들을 교회로 가입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입회의식에서 사용된 표지, 즉 침수는 그 의식에 본질이 아니었다. 따라서 침수된 신자들은 몇몇 다른 표지에 의해서 교회에 가입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들에서 멤버십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의 입회의식에서 사용된 표지에 관계없이 그처럼 간주되어야 한다.

모리슨은 두 가지 점에서 그 운동의 전통적인 관행을 지지하였다. (1)스톤-캠벨 운동의 교회들은 유아들에게 침례주지 않음으로써 옳았다. 교회는 하나의 “사회 속에 있는, 교회 구성원들의 삶에서와 사회질서 속에서 어떤 도덕적 목적의 성취를 떠맡은 조직”이다. 결과적으로 만약 멤버십의 요구들이 “영적으로 자격을 갖춘 사람의 자기 헌신”보다 못한 무엇으로써 생각된다면, “교회의 영적 분위기와 힘은 기어코 낮아지게 된다.” 유아들은 적절한 봉헌식을 통해서 교회의 친교에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나 젊고 자기 헌신이 가능한 사람들로서 그들이 그 같은 멤버십에 도덕적으로 자격을 갖출 때까지 침례를 받거나 멤버로 가입돼서는 안 된다. 모리슨은 유아들이 견진례를 받을 때까지 세례를 받은 아이들에게 정식 멤버십을 주지 않는 이것이 유아세례 교회들의 실제 관행이라고 적었다. (2)스톤-캠벨 운동의 교회들은 오로지 침수만으로 침례를 베풂으로써 옳았다. 다른 방법들이 논쟁중일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역자 주: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말함) 침례로써 침수를 받아드렸다. 따라서 침수만을 시행하는 것은 교회의 연합을 진작시키는 하나의 화평케 하는 척도였다. 한 가지 침례방법에 정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양한 침례방법들에 대한 논의를 배제시키고, 침례가 그들을 구별시키는 일을 진척시키도록 하였다.

커쉬너는 침수가 침례의식의 본질이라고 주장하였다. 기독교의 목적이 개인들과 사회 모두의 도덕적 변화라는 모리슨의 견해를 공유하면서 커쉬너는 “교회는 그것의 성례들과 그것의 예배를 위한 정기적인 임명들과 그것의 중요하고 인상적인 상징을 가지고 매우 중요한 기독교의 확장과 보전을 위한 가능한 유일한 수단을 제공한다.”고 선포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지키도록 명령한 입회의식이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이런 맥락에서였다. 가입방법을 무관심한 것으로써 보았던 모리슨과는 대조적으로 커쉬너는 “기독교를 세우신 분께서 어떤 복종의 형식을 택하여 그분의 교회에 사람들을 받아드리는 공개적인 입회의식이 되게 하신 한편, 그분의 조직에서 중심적인 사실 혹은 사실들을 가장 인상적으로 상징할 의식이 우리가 그분께 택하여 주시기를 기대해야할 의식일 것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고 진술하였다. 고린도전서 15장과 연관해서 로마서 6장을 주석하면서 커쉬너는 결론짓기를, 침례는 (1)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을 요약한 것으로써 복음과 (2)모든 개심자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통과해야하는 경험과 (3)그리스도인의 부활의 희망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침수는 그리스도인의 입회의식에서 필요 없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커쉬너에게 있어서 침례의 정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상징의 힘, 즉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통치 확장을 위해 사용하려했던 침수의 상징이었다.

1920년대까지 경건한 미침수자들에게 교회들에서 멤버십을 주는 문제에 대한 논쟁은 제자들을 1970년대까지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와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로 알려지게 될 두 개의 파로 나누고 있었다. 한편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가 개방 멤버십이라 불린 주장들을 (모리슨에 의해서 주창된 입장) 포함하게 될 때,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미침수자들 사이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믿는 한편, 교회들에서의 멤버십은 신앙고백에 따른 침수를 요구한다는 가르침을 일관되게 견지하였다.

그러나 대립기간을 거치는 동안 좀 더 보편적인 교회학적 정신을 북돋우는 한편 신자들의 침수를 규범적인 것으로 지지하려는 온건한 목소리들이 일부 있었다. 그 같은 목소리를 가진 세 사람이 영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 1888-1963)과 필립 대학교의 제자들 학자 스티븐 잉글랜드(Stephen England(1895-1987)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가이자 전 밀리건 대학 교수 로버트 화이프(Robert O. Fife, 1918-2003)이다.

윌리엄 로빈슨은 스톤-캠벨 교회들 사이에서 교회 자체와 침례와 주의 만찬의 “의식들”(“성례전”이란 말을 선호하고, 그 같은 사용에 대해 성경적인 추리를 변호하면서)의 성례전적 특성에 깊은 감성을 갖도록 권하였다. 초대교회의 일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은혜의 “연장”이었던 성례전에서 근거되어져 왔다고 그는 인정하였다. 침례는 그것만으로도 신자를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롬 6장)과 동일시하게 하며 공동 경험하게 하는 그 은혜를 체현(體現)한다. 죄 사함을 위한 신자들의 침수는 그 진실, 즉 동시에 “존재의 신비적 변화”와 윤리적 변형을 초래하는 것의 규범적 증거이다. 침례의 “성례전적 원리”를 회복하는 것은 교회들이 실천에 관한 율법주의와 개인주의를 극복하게 하고, 교회의 바로 그 일치와 보전에로 그것을 다시 연결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빈슨의 성례전주의는 이번에는 스티븐 잉글랜드와 로버트 화이프 둘 다의 생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잉글랜드는 제자들 구성원들 안에서 새로운 분열이 예기 되면서 긴장들이 실로 누적되고 있었던 1960년에 <하나의 침례>(The One Baptism)를 출판하였다. 그는 사상과 실천의 차이점들 즉 침례는 엄밀히 말해서 구원에서든 심지어 교회 멤버십에서든 본질이 아니라,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웰빙”(bene esse)에 관한 것이며, 또 게다가 침례 즉 침수하는 신자들의 신약성경 규범은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일치에 본질이라는 차이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 보수 제자들의 공통 근거로써 그가 본 것을 강조하려고 시도하였다. 잉글랜드는 “개방 멤버십”을 가볍게 다뤘다. 대신에 “총괄적 멤버십” 모델, 즉 제자들의 교회로 이적하는 사람들에게 침수를 받으라고 절대로 요구하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하여 그렇게 하도록 권하는 모델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교파적 승리주의와 같은 것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자들의 침수가 신약성경의 포괄적인 원칙이었으므로, 그것은 바로 그 교회의 보존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잉글랜드는 그보다 앞선 로빈슨처럼 신약성경 침례의 의미에 대한 신선한 탐구가 신자들에게 죄를 사하고 성령을 선물로 주는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그리고 부활의 “성례전적” 구현으로써의 독특한 그것의 특성이 그 실천을 고집하는 제자들에게 대의를 제공하고,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데 그것의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었다.

1963년 내쉬빌에서 개최된 그리스도인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의 그리스도인 일치에 관한 제4차 협의에서 로버트 화이프는 그가 후에 개정하여 1990년에 재발행한 “교회 멤버십의 총괄”에 관한 하나의 성명을 제시하였다. 잉글랜드처럼 화이프는 한편에서는 지나친 융통과 다른 편에서는 율법주의를 극복하려고 힘썼다. 교회 “멤버십” 그 자체는 신약성경에서 그것이 단지 등록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에로의 활기차고, 유기적인 편입, 즉 하나의 계약적 관계에서 그리스도와 동료 신자들과의 연합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더 연구가 필요했다. 화이프의 결론들은 어떤 점들에서는 잉글랜드의 것들과 비교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또한 회중들이 미침수자들에게 침례를 강요하지 말고, 그들이 그 성례를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장려하고 가르치라고 권장하였다. 그 같은 것은 신약성경에의 충실뿐 아니라, 지역교회의 보전의 문제였다. 한편, “교제의 악수”를 아직 받지 못한 저 “경건한 미침수자들”은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에서 그들 자신의 양심에 따라 주님의 테이블에서 성찬을 받음으로써 엄밀히 “그들의 멤버십을 유지할” 위치를 여전히 찾을 수 있었다. “하나의 방편으로써 멤버십의 승인과 연결된 교제의 악수와는 다르게 주의 만찬은 신성하게 제정된 멤버십 의미를 갖는다.”고 화이프는 적었다. 잉글랜드의 “총괄적 멤버십”처럼, 화이프의 “성만찬의 멤버십”은, 그러므로, 신자들의 침수의 규범성과 그것을 떠받들 회중들의 책임성에 관해 애매하게 말하지 않고 “경건한 미침수자들”에게 자격을 부여하려고 하였다.

경건한 미침수자들이 교회에 받아드려질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는 1960년대 내내 계속되었다. 이 논의에서 부각된 가장 급진적인 제안은 조셉 벨캐스트로(Joseph Belcastro)의 <침례의 교회 멤버십과의 관계>(The Relationship of Baptism to Church Membership, 1963)였다. 벨캐스트로는 신약성경의 새로운 연구로부터 신약성경 교회에서 침례는 그리스도인의 구속적 경험에 대한 일종의 극화(劇化)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입회의식 또는 구원의 수단으로써 결코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표현과 부유(富裕)를 위한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교회의 구성원들로서 이미 인정된 사람들의 증언을 위한 일종의 기구였다. 신자들의 침수가 아닌 다른 어떤 형태에 의해서 가입한 사람들이 그 교회들에게 받아드려질는지 모른다는 견해를 넘어 이동하면서 벨캐스트로는 침례에 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해석한 교회에서는 멤버십을 위해 어떤 형태의 침례도 요구되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결론지었다.

4. 침례신앙과 실행의 더 최근의 발전들

4.1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침례에 관한 제자들의 사상과 실천에 있어서 최근의 발전들은 제자들이 에큐메니컬 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영향을 받아왔다. 1980년대는 두 권의 중요한 책출판과 함께 연합 발전들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시기였다. 교회 연합 협의회(Consultation on Church Union)의 <COCU의 합의: 연합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찾아서>(The COCU Consensus: In Quest of a Church of Christ Uniting)와 세계 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소속 신앙과 직제 위원회(Faith and Order Commission)의 <침례, 성만찬, 교역>(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이 그것들이다. <COCU의 합의>에서 제자들은 교회 연합 협의회의 다른 북미주 교회들과 더불어 침례는 “그리스도의 한 행위이며, 복음의 한 선포”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로 침례 받은 자들의 편입을 초래하거나 뜻하고, 교회의 살아있는 구성원들인 그들이 우주적이 되게 하며, 그들이 그들의 믿음을 고백할 수 있게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 협의회는 침례의 다른 방식들, 즉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필요를 강조하는 유아세례와 은혜와 죄 사함에 개인적인 응답을 강조하는 신자들의 침례를 그것의 의미의 다른 차원들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 <COCU의 합의>는 두 가지 의미들이 다 중요하며, 따라서 “선택적인 실행들이 연합하는 교회(a Church Uniting) 내에서 유지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결론지었다.

<침례, 성만찬, 교역>에 대한 그들의 공식적인 반응에서 제자들은 선언하기를, “우리는 BEM문서 2-7단락에서 발전시킨 다섯 가지 측면들,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자유로운 참여로써, 마음의 개심으로써, 성령의 인침으로써, (교파에로의 편입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에로의 편입으로써,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과 다가올 삶의 표지로써” 분명히 말한 침례의 신학적 의미를 기린다고 하였다. 제자들은 그 반응에서 계속 말하기를, “제자들이 신자들의 침례를 사도교회의 관행으로 긍정하는 한편, 우리는, BEM문서가 가르친 대로, 신자들의 침례와 유아 세례/견진례 둘 다가 완전히 실행될 수 있는 연합교회를 지향한다.”고 하였다.

제자들은 제자들의 실행에 끼친 BEM문서의 가장 명확한 도전이 단락 13, 즉 “침례는 반복될 수 없는 행위이다. ‘재침례’로 해석될 수 있는 어떤 실행도 반드시 피해야 한다.”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BEM문서에 반응한다. 제자들이 “재침례”를 의식적으로 실행하지 않는다고 진술하면서, 제자들은 그 반응에서 소수의 제자들 회중들이 유아 때 세례 받은 성인들에게 침수를 정말 요구하는 한편, 다른 회중들은 유아 때 세례 받은 자들을 침수하겠지만, 그들의 양심이 이제는 그들이 신자들의 침례를 요구하도록 인도한다고 기술하였다. 그 같은 봉사가 그 사람들을 위한 목회적 돌봄의 행위로써 또 신약성경 관행에 증거로써 수행된다는 것을 확언하는 한편, 제자들은 그 반응에서 “명확히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재침례’로 해석하는 이 행위의 에큐메니컬 관련들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권고하였다.

<COCU의 합의>와 <침례, 성만찬, 교역>의 출판에 의해 자극을 받아 침례에 대한 에큐메니컬 논의가 점증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일치에 관한 제자들 협의회(Disciples Council on Christian Unity)는 클라크 M. 윌리엄슨(Clark M. Williamson)의 <침례: 복음의 체현: 제자들 침례 신학>(Baptism, Embodiment of the Gospel: Disciples Baptismal Theology, 1987)을 교회의 본질(The Nature of The Church), 즉 그 시리즈의 일부로써 출판하였다. 윌리엄슨은 침례의 종교적 중요성과 종교사에서의 물과 유대교에서의 침례 모두의 관점에서 그의 연구를 시작한다. 신약성경 침례에 관한 결정적인 장(章)에서 윌리엄슨은 현대의 제자들이 고려해야할 여섯 가지 점들을 제안한다. (1)신약성경이 우리에게 초대교회 침례 관행에 관하여 상당히 적은 정보를 주는 반면, 그것은 초대교회들에서 그것의 다양한 신학적 해석들에 관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한다. (2)그 같은 해석들의 다양성이 있다 (윌리엄슨은 복음서들과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의 침례사이의 유사성과 다양성을 논의하였다). (3)제자들은 그들이 초대교회의 “우주적 관행”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 반면, 그것에 관해서 우리가 가장 많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일상의” 관행이다 (비록 침례가 우주적 관행이 정말 되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침례를 받았다는 것이 더 이상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유대교의 개종침례와의 비교들은 사도행전에 보도된 식구들의 침례에 아이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4)제자들이 “침례하다”의 헬라어 동사의 의미가 “침수하다”는 유일한 의미를 가졌다고 주장한 반면, 어떤 현대 학자들은 의견이 다르다. (5)초대교회에 관해서 환원운동주의자가 되지 않은 채로 우리가 침례에 관해서 성서적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는 결론이 뒤따른다. (6)윌리엄슨은 “제자들이 - 그것은 ‘죄 사함을 위한 한 침례’라는 것 - 그리고 그것은, 도덕적으로 제자직의 삶으로 귀착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의 ‘아멘’(‘예’)에 일종의 양극적 강조를 수반한다는 것을 주장한 침례의 주된 신학적 이해가 신약성경의 견고한 기초이다.”고 주장한다. 윌리엄슨은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침수에 의한 신자들의 침례는 가장 적절하고,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침례의 규범적인 형식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예’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가장 잘 상징하는 관행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침례의 유일한 배타적 형식이라고 주장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복음이 우리들 각자와 모두에게 하나의 약속으로써와 하나의 도전으로써, 즉 우리에게 결정을 요구하는 하나의 약속과 도전으로써 오는 것을 분명하게 만드는 것은 그 형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약속에 관해서 우리 자신을 궁극적으로 또 유일하게 이해할 것인지와 철저한 이웃사랑에 착수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것이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4.2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Churches of Christ)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그들이 개방 멤버십을 반대함에 있어서 또 그들이 지역 교회의 멤버십에 본질로써 죄 사함을 위한 신자들의 침수를 채택함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의 초기 집결지점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 같은 결속이 일부 특히 침례와 구원 사이의 관계에 관한 해석의 다양성을 막지는 못하였다.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의 구성원들에서 강한 환원운동주의자들은 여전히 침수를 무조건적으로 구원에 본질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구성원들, 십중팔구 대다수는 침례를 구원에 본질적인 것으로 긍정할 것이지만, 하나님이 경건한 미침수자들을 구원할 특권을 갖고 계시다는 단서를 유지할 것이다. 여기 다른 추론들이 있다. 일부 교회들은, 미국 복음주의의 주류와 그것의 유산인 “오직 믿음”에 편향되어 또 율법주의를 경계하여, 침례를 그리스도인의 구원으로 완전히 규정짓는 순간으로 삼는 것을 주저해 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로버트 화이프와 같은 다른 이들은 스톤-캠벨운동의 (알렉산더 캠벨을 포함하여) 몇몇 초기 지도자들이 침례를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것이 되게 하는 것을 거부한 또 경건한 미침수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의 영역 속에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보호하였던 실례(實例)를 관찰한다.

침례의 기본신학에 대한 일부 차이들이 또한 있다. 강한 보수주의자들은 “성례전”(sacrament)보다는 “의식”(ordinance)으로써 침례의 언어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왔고, 침수를 해석학적이고 언어학적인 근거들에서 방어하였다. 그러나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의 유산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영향을 받은 소수의 무리는 침례를 본질적으로 하나의 성례로써, 하나님이 물질적 매체를 통해서 당신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의 독특한 수단으로써 이해해왔고, 또 침수를 원칙적으로 (로마서 6장의 본문에 분명한 근거를 두고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공연(公演)하고 체현(體現)하는 것으로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참된 침례는 믿음과 회개에 의해서 안내된 순종의 한 행위이며, 신자들의 중생에 지극히 중요하다는 견해에 있어서 사실상 전원 일치하고 있다.

전면적으로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새 신자들에게 침수하며, 침수를 행하지 않는 교회들에서 이적한 교인들에게 침수를 받도록 강력히 권한다. 일부 교회들은 신자들에게 침수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일에 상당한 강조점을 두어왔다. 예를 들어, 켄터키 주 루이빌 소재의 사우스이스트 그리스도인의 교회(Southeast Christian Church)는 침수에 관한 개인 성경연구서를, 그 이슈에 대해, 성경본문을 통해서 후보자들을 안내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긍정적인 결론들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질문들을 유발(誘發)시키는 상당히 “귀납적인” 접근방식의 전통에서, 1996년에 발행하였다.

4.3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

20세기 후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부분적으로는 국제 그리스도의 교회(International Church of Christ)가 취한 입장들에 의해서 유발된 재침례 논쟁에 다시금 휘말리게 되었다. 그 단체의 회원들은 자기 자신들을 유일하게 참된 그리스도인들로서 보았고, 그들의 친교에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죄 사함을 위한” 침례를 이전에 받은 자들에게까지 재침수할 것을 고집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주류에 속한 일부의 사람들에게 이 접근은 그 주제에 관해서 억지로 재검토를 하게 하였다. 그러나 국제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장 거친 혹평가들의 다수가 유사한 견해와 관행을 견지하였다. 널리 존경받는 성경교사와 전도자인 지미 알렌(Jimmy Allen)은 1991년에 나온 그의 책, <재 침례? 중생받기 위해서 사람이 무엇을 반드시 알아야하는가>(Re-baptism? What One Must Konw to Be Born Again)에서 “립스콤”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였다.

침례에 관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회원들과 다른 종교 단체들 사이의 토론들은 비록 빈도가 줄어들긴 하였지만, 20세기에 지속되었다. 텍사스 주 파사데나(Pasadena)의 침례교 근본주의자인 밥 로스는 그가 “캠벨주의”의 이설(異說)로 분류한 것을 공격하는,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침례 중생론을 비난하는 책들과 팸플릿들을 출판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사람들은 침례가 죄 사함을 위한 것이며, 구원에 본질적이라는 주장들을 방어해왔다.

토론에서 그 같은 입장들을 방어하는데 따르는 위험은 침례가 단순히 복종되어져야할 하나의 명령, 즉 수행해야할 하나의 기계적인 행동으로 간주되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들 사이에서 침례를 이해하는 가장 건설적인 진술은 그것이 침례의 행동, 즉 믿음과 회개로써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굴복하는 이 행동 속에 있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사람을 죄로부터 씻고, 외국인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 사람의 신분을 진실로 바꾸는 데 있다. 침례는 인간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장소이다. 이 입장은 20세기 대부분을 통해 설교들과 책들과 주일학교 교재들에서 일관되게 교수되어져왔다. 비록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침례를 기술하기 위해서 “의식”(ordinance)이나 “성례전”(sacrament)이라는 어휘들을 사용하지 않지만, 그들의 견해는 성례전 존중으로 올바르게 분류되어질 수 있다.

1980년대 후반과 그 후에 일부 집단들에서 침례에 관한 가르침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침례의 중요성을 보강하고 침례 받을 준비를 하는 자들에게 교리문답적인 교수를 위해서 쓰인 다수의 연구서들의 출판이 유발(誘發)되었다. 가장 최근의 문서에서 나타난 한 가지 경향은 침례의 지속적인 변화의 능력에 관한 강조이다. 침례의 첫 번째 중요성은 단순히 과거나 법률적인 요건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의 한 가지 표지로써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변화의 일을 진행하시는 곳인 “그리스도 안에로” 신자를 배치하는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앞서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본 신앙들과 동일한 스펙트럼을 반영한다. 이것은 한 때 그 단체를 특징지었던 당파적 태도들을 거부하면서 침례의 중요성에 관한 그 운동의 역사적 가르침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소수자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들은 침례의 성경적 가르침의 풍부함을 재조사하는 것이고, 그것이 기독교 내에서 차지하는 중심적이고 본질적인 위치를 보강하는 것이다.

5. 결론

스톤-캠벨운동의 가장 초창기 때부터 침례는 우선적인 이슈였었다. 그 운동은 이것에서 독보적인 것은 분명히 아니다. 침례는 교회의 시작이래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구원과 교회의 물음들의 바로 그 핵심이었다. 스톤-캠벨운동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침례가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취급당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침례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그 운동을 비난해왔다. 다른 사람들은 침례의 심오한 의미의 깊이와 신자들의 삶에서 그것이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측량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그 운동을 비난한다. 스톤-캠벨운동의 흐름들을 가로지르는 정서는 세계교회협의회의 BEM문서의 다음과 같은 말을 환영한다. “침례는 일시적인 경험에뿐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로 일평생 성장하는 것에 관련된다. 침례를 받은 자들은 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항구적으로 점증하는 광채로 그분의 모습에로 닮아가면서 주님의 영광을 반사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보충연구: 침례교인들, 캠벨-맥칼라 토론, 캠벨-라이스 토론, 캠벨-워커 토론, <크리스천 시스템>, 국제 그리스도의 교회들, 루넨버그 서신, 오스틴 맥개리, 개방 멤버십, 중생.

참고도서

Jimmy Allen, Rebaptism: What One Must Know to be Born Again (1991).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1982). Joseph Belcastro, The Relation of Baptism to Church Membership (1963). T. W. Brents, The Gospel Plan of Salvation (1868). Alexander Campbell, "The Ancient Gospel - No. VII. Christian Immersion," Christian Baptist 5(July 7, 1828): 277. Alexander Campbell, The Christian System (1839). Alexander Campbell, Christian Baptism: With Its Antecedents and Consequents (1853). The COCU Consensus: In Quest of a Church of Christ Uniting (1984). Stephen J. England, The One Baptism (1960). Robert O. Fife, "The Inclusiveness of Church Membership," in Consultation on Internal Unity, 4th series, ed. Charles R. Gresham (1963), pp.11-24. David W. Fletcher, ed., Baptism and the Remission of Sins (1990). John Mark Hicks and Greg Taylor, Down in the River to Pray: Revisioning Baptism as Go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