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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1-31 07:52
주의 만찬(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2012.01.7수정)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32  

주의 만찬(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출처: Paul M. Blowers and Byron C. Lambert,[역자 주 1] "Lord's Supper, The," The Encyclopedia of the Stone-Campbell Movement(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4)
번역: 조동호 목사

    목차
    1. 빈도와 실천
    2. “개방”대(對) “폐쇄” 성만찬
    3. 주의 만찬의 의미
    4. 세 줄기들에서의 전통

성만찬 식사의 정기적인 준수는 마지막 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셨다.

스톤-캠벨운동의 초기 지도자들은 그들이 사도 기독교에로 돌아가는 한 가지 표시로써 세웠던 가장 독특한 실천들 중에 한 가지는 매주 성만찬의 실천이었다. 토마스와 알렉산더 캠벨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이 1811년 5월 펜실베이니아 주 워싱턴 군에 브러시 런 교회를 조직하였을 때, 예배 중에 그들의 첫 번째 행동은 주의 만찬의 거행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후로 매주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1. 빈도와 실천

알렉산더 캠벨은 “일들의 옛 질서의 회복”(A Restoration of the Ancient of Order of Things)[역자 주 2]에 관한 그의 오랜 <크리스천 뱁티스트>(Christian Baptist)지(誌)의 시리즈에서 신약성경이 초대교회의 실천에 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를 상세하게 검토하면서 또 그 주제에 관하여 (장 칼뱅을 포함하여) 선도적인 개신교 개혁가들의 지지 증언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주의 만찬의 매주 준수에 대한 변증을 포함시켰다. 비록 신약성경에 매주 거행에 대해 “주께서 그 같이 말씀하시기를”이란 말씀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지만, 이것은 “승인된 전례”[역자 주 3]의 명백한 사례였다. “사도적 본보기는 사도적 훈계와 동등한 권위로 정당하게 평가된다.”고 캠벨은 이 점에 관해서 적었다. 주의 만찬의 바로 그 의미는 신약성경 교회들에서 정기적인 준수에 관한 간략한 기술들(행 2:42, 20:7)과 함께 적어도 매주일 거행을 권하기에 충분하였다. 발톤 스톤은, 그의 1829년 <크리스천 메신저>(Christian Messenger)지(誌)에서 좀 더 상세하였지만,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비록 그가 그 쟁점이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지만, 스톤은 1831년 J. A. 가노(Gano)의 매주 주의 만찬의 변호를 진심으로 승인하였고, 스톤의 교회들이 캠벨의 교회들보다는 단지 조금 늦게 그 실천에 전념하였다는 사실을 회고하였다.

    [역자 주 1] Paul M. Blowers는 Emmanuel School Religion의 교수이며, Byron C. Lambert는 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의 교수이다.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인의 교회들 소속이다.

    [역자 주 2] 사도전통을 말함.

    [역자 주 3] 교회와 관련된 모든 규정은 하나님이 정하신 신약성경의 규정만을 지킨다(No ordinances but the Divine). 하나님이 정하신 신약성경의 규정이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아들 예수님의 가르침과 명령을 따라 제자들이 세운 교회의 조직, 치리, 예배 등의 전통을 말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규정을 세우는 방법에는 세 가지, 즉 ‘직접적인 명령,’ ‘승인된 사도의 모범,’ 그리고 ‘필요한 추론’을 적용한다. 직접적인 명령(direct command)은 충분히 명백하며, “침례를 받으라”(마 28:18-20)는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해서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승인된 사도의 모범(approved apostolic example)은 성도들이 주님의 만찬(행 20:7)에 참례하기 위해서 함께 모이는 날짜나 방법에 의해서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추론(necessary inference)은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셨기"(마 3:16) 때문에, 그분이 침례를 받기 위해서 물에 들어가셨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진술에 의해서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캠벨은 <크리스천 시스템>(The Christian System, 1935)에서 주의 만찬 거행에 관한 그의 결정적인 해설, 즉 그 이후 스톤-캠벨운동의 모든 줄기들의 소속 회중들의 사상과 실천을 형성한 해설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캠벨은 주의 만찬이 특성상 기념적이며, 신자들의 전 공동체에 속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는 일곱 가지 진술들로 그의 논의를 전개한다.

  • 하나님의 집이라 불리는 한 집이 지상에 있다.
  • 하나님의 집에는 주님의 식탁이 있다.
  • 그 식탁 위에는 오직 한 덩어리의 빵이 필요하다.
  •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들이므로 그들은 모두 그 빵에 참여할 수 있다.
  • 한 덩어리의 빵은 성도들이 그것을 먹기 전에 눈에 보이게 쪼개져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 그것을 위해 축사한다.)
  • 빵을 떼고, 잔을 마시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고
  • 주의 만찬은 모든 기독교 집회들의 모든 정기적인 모임들 (즉 공식적인 예배시간들)에서 갖는 제정된 예배의 일부분이다.

캠벨은 대부분의 공간을 마지막 명제(빈도의 문제)를 지지하는데 궁극적으로 할애하였다.

캠벨은 주의 만찬의 매주 준수가 신자에게 끼친 영적인 향상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왜냐하면 그것이 새 언약에서 발견될 기쁨에 중심을 두었고, 기존 교단들이 일 년에 4번 혹은 2번 하는 성만찬을 퍼뜨린 무거운 검은 그림자를 바로잡았기 때문이었다. 그 잔치가 특성상 본래 추도(追悼)이기 때문에 함께 나눈 추억에서 신자들을 하나 되게 함으로써 교회의 일치를 증진시켰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가 이상적인 주의 만찬 의식을 공개한 것으로 믿었던 단순한 예배의식에 대한 이야기체 설명으로 쓰인 <크리스천 시스템>(The Christian System, 1935)에서 그는 자신의 에세이를 끝마쳤다. 이 의식에서 회중의 상급자 중에 한 사람이, 그가 안수 받은 장로나 교사일 필요는 없다(종종 일부 교회들에서는 그 같은 능력을 갖춘 자격자가 아무도 없다), 빵을 취하여 그것을 위해 축사하고, 쪼갠 후 그의 각각의 편에 있는 제자들에게 건네면, 그들은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다 먹을 때까지 쪼개진 빵을 한 사람씩 차례로 전달한다. 같은 방법으로 인도자는 그 때 잔을 취하여 축사하고 그의 곁에 앉은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것을 건넨다. 그는 잔으로부터 마시고 그것을 옆 사람에게 전달한다. 각각의 참여자는 모든 사람이 참여를 마칠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한다.[역자 주 4]이 일 후에 헌금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걷힌다. 캠벨은 첨언하기를 의식 전에 식탁이 준비되고, 주의 만찬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아주 적절한 기도들과 찬송들과 성경봉독들이 활용되며, 그리고 오직 그 후에 참석자들이 다른 참석자들의 덕을 세우기위해서 해설들이나 교훈들로 성경의 말씀들을 함께 나누도록 초대된다고 하였다. 이 시나리오로 보건데 캠벨이 주의 만찬을 기독교 예배에 절대적인 중심으로 간주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스톤-캠벨 전통에서 역사적으로 회중들의 예배는 캠벨의 이상화(理想化)에서 멀어져 갔다. 그 운동이 확장되고 많은 교회들에서 교인 수가 불어났음으로써 전도자들과 설교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으며, 주일 예배에서 설교를 특별히 돌출시키려는 개신교의 경향이 주의 만찬의 준수와 나란히 커졌고, 설교와 주의 만찬이 중심성(中心性)을 함께 나누는 결과를 낳았다. 개개의 회중에서 안수 받은 장로들을 복수로 세우는 점증하는 관행이 주의 만찬이 배찬(配餐) 되는 방법을 또한 바꿔놓았다. 보통 그들 임원 중 두 명이 주의 만찬을 인도한다. 한 사람은 빵을 위해 축사하고, 다른 사람은 잔을 위해 축사한다. 그리고 그 때 도우미 일을 하는 배찬자들 혹은 집사들은 신자들에게 성찬을 나른다. 많은 회중들은 교인 수가 많기 때문에 두 개의 성배(聖杯)들과 두 개의 성반(聖盤)들을, 필요시에 잔들을 다시 채우기 위한 식탁용 포도주 용기와 거행 전과 후에 성찬기구들을 덮는 흰 식탁보와 함께, 배찬(配餐) 에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초기 교회당들에는 회중을 마주보는 벽을 따라 바닥보다 약간 높은 단상(壇上)이 있었고, 단상 위 앞쪽과 중앙에 강대상이 놓였으며, 강단 바로아래 바닥에 또 중앙 통로의 머리맡에 모든 신자들의 같은 높이 공동체의 상징으로써 성만찬상이 놓였다.

다수의 사회적 발전들이 주의 만찬의 겉모습을 적어도 미국 교회들 사이에서 또한 바꿔놓기 시작하였다. 19세기의 금주운동[역자 주 5]은 알코올중독에 빠지기 쉬운 신자들에게 유혹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교회들로 하여금 발효 포도주 사용을 재검토케 하였다. 따라서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스의 사용이 교회들 사이에서 점차 관례가 되었다. 아이오와(Iowa)에서 존경받는 스톤-캠벨운동의 학자 목사인 D. R. 던건(Dungan)은 1889년에 알코올로 발효되도록 버려두면, 상징적으로 유력한 “포도나무의 열매”는 자취를 감추기 때문에 어쩌면 예수님께서 포도주의 사용을 제정하지 않았을 수 있으며, “또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님의 죽으심을 알코올과 독으로 제조된 마취성의 술로 기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며,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톤-캠벨의 전통을 가진 세 줄기 모두의 교회들의 대다수가 오로지 포도주만을 계속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의 매우 작은 분파를 제외하고는 주님의 만찬을 여전히 포도주스로 기념한다.[역자 주 6]

    [역자 주 4] 이것은 교회가 하나의 커다란 빵과 하나의 컵만으로 주의 만찬이 시행된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주의 만찬 참여자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은 빵을 직접 자기 손으로 떼어 먹고, 동일하게 옆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은 포도주 컵으로부터 마신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하나의 컵을 참여자 모두가 다 같이 사용한 것이 된다. 따라서 위생의 문제가 제기 될 수 있었고, 특히 미국 남부는 담배농사에 종사할 뿐 아니라, 씹는담배를 즐기는 신자들이 많았으므로 더더욱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미국 남부 신앙인들은 대체로 보수적이었지만, 흡연을 문제 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역자 주 5] 미국의 금주운동은 대각성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1800년에 한 교회에서 시작된 금주서약이 1808년 금주운동단체로 발전되었고, 1833년에는 6,000개의 지부가 형성되었다. 1846(1851)년에 메인 주에서 금주법이 통과된 이후 1920년까지 33개 주에서 금주법이 시행되었으며, 1919년 10월28일, 미국 의회가 볼스테드법(Volstead Act)인 전국 금주법(National Prohibition Act)을 통과시켰다. 1933년 연방의회가 수정헌법 제18조의 폐기를 제안한 이후 1966년까지 모든 주에서 금주법이 폐지되었다.

    [역자 주 6] 보다 폭넓은 연구를 위해서는 “신약시대의 포도주 마시기”(http://kccs.info/wine.htm)를 참고하시오.

19세기의 또 다른 발전은 폐결핵 전염에 대한 불안이 교회들에게 한 컵 사용을 중단하고 (때맞춰서 미리 쪼갠 빵조각들을 담은 빵 접시들과 짝을 맞춘) 포도주잔 용기들에 담아서 교인들에게 돌린 작은 개인용 컵들로 대신하도록 하였다. 이 “위생상”의 실천이, 스톤-캠벨의 다수 교회들에 지금까지 전형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논쟁 없이 수용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주일학교들(Sunday Schools)에 반대했던 1920년대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지도자들의 한 그룹은 다수의 성찬 컵들에 공고히 저항하였다. 그들은 그것이 사도전통에서 떠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주로 텍사스 주에 집중된 한 작은 분파인 “한 컵” 그리스도의 교회들(One Cup Churches of Christ)이 주의 만찬의 한 컵 준수를 엄격히 유지해왔다. 영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수년간 한 컵 즉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이 옹호한 한 습관을 그것이 옛 습관이었을 뿐 아니라, 뜻 깊은 상징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존속시켰다. 근래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와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모두의 다수 회중들은 성찬의 빵을 포도주에 적시는 즉 예배자들이 그들의 몫의 빵조각들을 공동 컵에 담가 적시는 감리교 전통과 유사한 실천을 통해 한 컵 사용에로 복귀하였다.

스톤-캠벨운동의 세 줄기들의 교회들에서 주의 만찬의 준수를 기술하는 어려움들 가운데 한 가지는 완고한 개인주의와 독립정신으로 결합된 수백만 교인들로 자란 그들 각각의 성장이 그들 사이에서 다양한 주의 만찬의 실천들을 낳게 했다는 점이다. (한 컵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본 대로) 그 쟁점에 대한 공공연한 분열이 있어왔던 반면, 종종 한 회중에서 다른 회중을 방문했을 때 예상했던 것을 파악하는데 따른 불편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어떤 교회들에서는 오직 장로들만이 주의 만찬을 인도할 수 있는 반면, 다른 교회들에서는 아무 성인(成人)이나 인도할 수 있다.

어떤 교회들은 주의 만찬을 주일 아침예배에서만 제공하는 반면, 다른 교회들은 그것을 (교회는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서 주의 만찬을 준수하는데 자유롭다는 알렉산더 캠벨의 주장과 완전히 일치하는) 주일 저녁예배, 주중 (즉 세족식 목요일), 사사로운 가정모임, 여름수련회 폐회집회, 연차대회들에서 제공한다. 어떤 사람들은, 만일 한번 이상 예배모임이 있다면, 신자는 주의 만찬을 한 주일날에 한번만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신자는 그가 혹은 그녀가 원하는 만큼 여러 번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회중들은 오늘날 거동할 수 없는 교인들에게 매주일 주의 만찬을 또 심지어는 일시적으로 병들었거나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에게까지 배달한다.

목사, 장로들 가운데 한 사람, 혹은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을 받은 평신도 한 사람에 의해서 주의 만찬 직전에 읽히는 간단한 명상문의 사용은 또한 널리 퍼진 관행이 되어왔다. 어떤 교회들은 주의 만찬을 예배 중 설교 전에 배치하는가하면, 다른 교회들은 설교 후에 그것을 배치한다. 그래서 종결초청찬송들은 주의 만찬이 최고로 중요하다는 한 가지 표시이며, 복음주의적 중심인 예배의 설교보다 주의 만찬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그가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는 표시로써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의 회중들은 여성들을 장로직에 선출하며,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빵과 잔에 축사하기 위해서 종종 주의 만찬 테이블에 함께 선다. 여성을 장로직에 선출하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는 드물게 있어왔고,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는 거의 전부 금지되고 있다.

주의 만찬의 건축학적 차원은 중요성이 없지 않다. 최근 몇 년에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와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양쪽의 교회들은 주의 만찬을 위한 배치로써 “분리된 강단”을 채택하였는데, 강단 중앙 뒤쪽(회중석 쪽)에 주의 만찬 테이블을 두고, 강단 앞쪽에 등거리로 배치한 강대상과 독서대를 두었다. 그 배열은 주의 만찬 테이블에서 이뤄지는 것을 더 잘 보이게 하고, 그것을 물질적으로 더 부각되게 하며, 그것을 그것 배후 상단에 있는 침례탕과 보통 일렬로 세워 상호 눈에 띄는 관계에서 두 개의 의식들을 배치한다.

제자들의 전례학자인 키이스 왓킨즈(Keith Watkins)는 분리된 강단에 적합할 서방교회 전례의식(Western Rite)[역자 주 7]의 개작(改作)을 교회들에서 사용하도록 제안하였다. 어떤 회중들은 전례의식에 더 훈련된 예배에 열려 있었던 반면, 다른 교회들은 저항하였다.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동함으로써 많지 않은 소수의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구도자(求道者) 먼저 생각하기”(seeker sensitive)[역자 주 8]의 모델을 따르면서 옆방이나 성소의 뒤쪽(출입구 쪽)으로 주의 만찬 테이블을 치웠고, 예배에서 명백한 기독교 상징의 사용은 전통적인 기독교에 불쾌감을 갖는 불신자들에게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의 만찬을 시선을 끌지 않게 행한다.

    [역자 주 7] 정(통)교회들과 동일한 정통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성 크리소스톰의 전례와 같은 비잔틴의식을 사용하지 않고 서방교회 전례의식(Western Rite)을 행했던 소수의 정교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서방 전례 정교(Western Rite Orthodoxy)라고 부른다.

    [역자 주 8] 불신자들에게 예민하게 대응함으로써 그들에게 교회를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전도방법을 말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과학기술과 매체를 전도에 활용하는데 그 효과가 크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교회에 유해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2. “개방”대(對) “폐쇄” 성만찬

“개방”대(對) “폐쇄” 성만찬의 쟁점은 (이를 테면, “경건한 미침수자들을 주의 만찬에 참여를 허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스톤과 캠벨 운동들의 교회들에서 똑같이 발생하였다. 1829년에 이미 그의 <크리스천 메신저>(Christian Messenger)에서 발톤 스톤은 경건한 미침수자들이 “합법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들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들이 “정직하게 잘못하고 있고,” 충분히 “그리스도인”이며, 또 그들이 주의 만찬 테이블로 나오는 것을 금할 어떠한 성경적 이유가 단순히 없다는 것을 동시에 주장한다는 비판에 대답하였다. “설사 내가 그의 세례에서 그와 교제를 즐길 수 없다 할지라도, 왜 내가 주의 만찬에서 그와 교제를 즐길 수 없단 말인가?” “만일 내가 잘못하는 것이라면, 자애의 측면에서 내버려 두라.”

스톤과 캠벨 운동들이 1832년에 연합할 때까지, 그러나, 캠벨의 교회들로부터 스톤의 교회들에 미침수자들을 조직적으로 테이블에 초청하지 않게 하고, 침수에 관한 그 운동의 강경노선을 절충하려는 것과 같은 압박이 있었다. 라쿤 존 스미스(Raccoon John Smith)는 스톤의 교회들에 대한 제자들의 신뢰를 보증하는 데 목표를 둔 한 회유 설교에서 그가 저 교회들 가운데 어떤 곳에서도, 그들의 관용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사전행동으로 성찬을 받도록 미침수자들을 초청(혹은 관용)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어떤 “젊은이”(Juvenis)가 1843년 <크리스천 메신저>(Christian Messenger)에 가명으로 기고한 글에서 그들 자신들을 시험하여(고전 11:28) 그들이 주의 만찬에 참예할만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라고 선언하면서 스톤의 교회들에서 무엇이 규범적인 실천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하였다.

알렉산더 캠벨은 개방 성만찬이 성경적 근거가 부족할 뿐 아니라, 침수에 대한 사도의 명령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1829년 <크리스천 뱁티스트>(Christian Baptist)지(誌)에서 우려하면서 자기 진영을 위해서 이 쟁점을 놓고 씨름하였다. 이후 30년 동안 그는 여전히 “옛 질서”에 밀접하게 고수하면서도 관대한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표시하고자 하면서 그 쟁점에 대해서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한 것 같았다. 그는 교리 또는 정치적 이유로 주의 만찬 테이블에 나가지 못하게 서로 울타리를 치는 “파벌주의자들”을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그렇지만 1830년대 중반에 그는 사도교회의 전례를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또 성경말씀은 명백히 오직 침수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의 만찬에 초청을 허가하였다고 그가 주장한 1859년의 한 진술에서 개방 성만찬을 거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벨은 또한 이따금 자신이 기꺼이 경건한 미침수 교파교인들과 함께 빵을 떼고자한다는 뜻을 비쳤다. 1843년 장로교 신학자 나단 라이스(Nathan Rice)와의 토론에서 박식한 라이스는 이 쟁점에 관해서 자기 자신에 반(反)하여 행동한다면서 캠벨을 실제로 비난하였고, 그에게 “개방” 성만찬의 어의적 의미를 명확히 하라고 밀어붙였다. 이에 캠벨은 자신과 많은 수의 그의 동료들이 행한 것처럼 선한 양심으로 경건한 미침수자들과 함께 성찬을 받는 것과 선행적(先行的)으로 주의 만찬 테이블로 미침수자들을 초청하는 것, 즉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들 회중들에서 관행이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 사이를 구별하였다.

그 운동에서 제2세대 지도자들은 개방 대(對) 폐쇄 성만찬의 쟁점이 가끔씩 지속해서 발생하였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아이작 에레트(Isaac Errett)와 로버트 리차드슨(Robert Richardson)은 1860년대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확립된 입장으로써 그들이 본 것을 확증하였다. 에레트(Errett)는 침례에 관한 그들의 잘못이 무엇이든지 간에 “교파들” 속에 진실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과 “그러므로 우리의 실천은 특정 부류들의 사람들을 초청하지도 거절하지도 않는 것이지만, 주의 백성을 위해서 주의 이름으로 식탁을 준비하는 것이고, 개개인 각자의 책임 하에서 원하는 자는 모두 오도록 허락하는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로버트 리차드슨(Robert Richardson)은 이것을 확증하였고 또 원칙적으로 이 실천을 지지하면서도 여전히 “미침수자들은 누구도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며 [또] 모든 침수세례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다”고 추정하는 자들을 비난하였다. 1863년에 모세 라드(Moses Lard)는 경건한 미침수자들은 성찬을 받는 “듯이 보였을 뿐이고,” 그들이 침수세례를 받지 않은 것은 일종의 부적절한 믿음을 예약한 것이며, 그래서 주의 만찬에의 그들의 진짜 참예의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면서 날카롭게 반대하였다.

약간의 저항과 약간의 서로 다른 신학적 강조점들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합의가 스톤과 캠벨의 상속자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양심적인 사람들이 자유로이 주의 만찬 테이블에 나올 수 있게 하고, “우리는 초청도 금지도 하지 않는다.”는 자주 반복된 말을 소중히 간직한, “개방 성만찬”은 스톤-캠벨 운동의 모든 줄기들에서 눈에 띄는 관례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지지자들이 이 “개방성”을 동일한 방법으로 해석하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천에 관한 그 운동의 수동적인 형태가, 비록 그것이 경건한 미침수자들을 주의 만찬 테이블로 거의 끌어들이지 않았지만, 연합제의 즉 그들이 그 왕국에서 지위를 함께 나눈 교파들에게 보내는 긍정적인 제스처에 상당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건한 미침수자들에게 호의적인 동시에 침수세례에 강경한 것은 그것을 수단으로 단순히 중도(中道)에 머물렀던 것이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파들”에게 어떤 제안을 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엄격히 주님에게만 속한 테이블 앞에서 개인의 종교적 양심의 자유란 말로 고린도전서 11장 28절을 해석하는 하나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이 마지막 입장은 궁극적으로 제한을 암시하며, 역설적으로 그들은 성만찬이 그리스도인의 일치의 “표지”(sign)이지, 그것에 대한 “수단”(means)이 아니라는 로마 천주교의 표어에 그들 자신의 방법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3. 주의 만찬의 의미

역사적으로 스톤-캠벨 전통의 교회들은 주의 만찬의 의미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있어서 그것을 첫째로 기념의식으로 보는 (언제나 개신교 개혁가 훌드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의 것으로 간주되는 입장) 것과 그것을 대체로 성례전의 용어로 보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와 신실한 자들이 그의 몸을 먹는 “영적 급식”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전통과 영국국교주의의 유산) 것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전자 즉 기념주의자의 관점은 초기 운동에서 지배적이었고 오늘날에도 많은 지방들에서 우세하다. 이른 시기에 언급된 그것에 관한 알렉산더 캠벨 자신의 선호는 주의 만찬이 일종의 단순한 기념 그 이상인지의 여부를 묻는 “제자들”(Disciplus, Robert Richardson)의 질문에 대한 그의 1846년 대답에서 억지로 되풀이되어진다. “침례가 불신자(alien)에게나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행하는 것처럼,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죄 사함에 관한 것과 동일한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효과적으로 침례 후 죄 사함을 확신하는 일종의 성례전이지 (비록 리차드슨이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않는가? 캠벨은 주의 만찬이 “상징적,” “기념적”이며, 신자들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속죄되었다는 일종의 “매주 추억”이라고 재차 진술하면서 명백하게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요약하자면, “그것은 새로운 복들을 받기 위한 의식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후에 그 운동의 옹호자들은 캠벨과 다른 초기 지도자들이 염두에 둔 것은 결코 “그저 추도식”이 아니라, 풍부한 회상과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일종의 시범(示範)과 시연(試演)이었다고 주장하였다. W. B. 블레이크모어(Blakemore)는 1960년대 초에 제자들 학자들의 심사원단(Disciples' Panel of Scholars)에 보낸 보고에서 그 운동이 신실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억”과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보답하는 그들의 기념(기억)의 성경적 상호작용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주의 만찬에서 “기념의 역할은 주님을 우리의 현존에로 모셔오는 것이 아니라, 기념이 우리의 눈을 그분에게로 열어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그분의 현존에로 불려가 있는 것이다.”고 제안하였다.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의 W. R. 워커(Walker)는 기념의식이 계약갱신의 더 깊은 “엄숙한 서약”을 수반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그의 아들 딘 E. 워커(Dean E. Walker)는 성례전(sacramentum)의 본래적 의미인 개인 “맹세”의 이미지를 유사하게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찬식 임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전환들이 알렉산더 캠벨이 제안한 더 객관적인 이익들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주의 만찬의 독특한 주관적인 이익들을 토론하는 중에서 19세기 중반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성공회 신자였던 로버트 리차드슨(Robert Richardson, 1806-1876)은 종종 캠벨의 입장들을 거리낌 없이 비판하였던 인물로서 그 운동의 예배와 영성을 개혁하기 위해 그가 더 널리 펼친 운동의 배경에서 주의 만찬의 더 깊은 신비적 의미를 지지하였다. <새천년 왕국의 선구자>(Millennial Harbinger)에 실렸고, 후에 책 형태(1872)로 출판된 그의 연재물 “예배당에서 성찬받기”(Communings in the Sanctuary)에서 리차드슨은 철저히 시적으로 기념적이고 성례전적인 언어를 다음과 같이 혼합하였다. “우리가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고, 기억의 매장(埋葬) 장소들에게 명하여 그들의 사자(死者)를 포기하게 하여, 우리가 그들과 함께 심지어 거룩한 도성(都城)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여기[주의 만찬에서]이다. . . . 그리고 잘못된 영상(映像)이 우리의 눈에서 사라지게 되고, 우리가 우리 구세주의 영적 임재를 알아보게 되며, 빵을 뗌으로써 그분이 우리에게 보이게 되는 것은(눅 24:30-31 참조) 무엇보다도 여기에서이다.” 리차드슨은 그리스도와 함께 성찬을 받기 위한 신약성경 자체의 “리얼리즘의”(realist) 언어를 되찾겠다고 주장하였다.

로버트 밀리건(Robert Milligan, 1814-1875)은 비슷한 감성을 표현하였다. 영향력이 지대한 그의 책, <구원의 계획(1868)>(The Scheme of Redemption)에서 밀리건은 예배의 큰 적은 반성 없이 예배의 동작들을 통해서 진행되는 “형식주의”(formalism)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식과 기도와 단정한 복장으로 성만찬을 준비할 것과 주의 날에 부적절한 세속적인 활동들을 피할 것을 권하였다. 제자가 참으로 주의 몸을 분별하고, 그분의 살과 피를 영적으로 먹으며,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미리 맛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성찬 받을 준비를 통해서이다. 리차드슨처럼 밀리건은 주의 만찬의 신비적 차원을 수용하였다. 주의 만찬은 “잔치에 대한 단순한 추억 그 이상이다. 그것은 또 배고프고 목마른 영혼에게 영적인 음식물을 공급하는 매개물이 되게 할 작정이었다.”고 그는 진술하였다. 빵과 포도주는 살과 피로 바뀌지 않지만 그것들에 의해서 상징되어지는 것은 영적으로 먹히고 소화되는 것이고, 올바르게 받는다면, 신자의 영혼은 진실로 양육 받고 성장하게 된다.

주의 만찬에 관한 풍부한 문헌들이 남북전쟁(Civil War)과 1925년 사이에 스톤-캠벨의 교회들에서 출판되었지만, 그것의 대부분은 특성상 신학적이기보다는 영감을 주고 덕을 세우는 것이었고 [예: G. L. 브로코우(Brokaw) 편저,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 1903)], 성만찬 의식을 회복하는데 헌신한 초기 세대들의 정착된 기념주의(memorialism)를 훨씬 뛰어넘는 스톤-캠벨운동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의 생각을 움직이지 못했다. 1915년 <크리스천 스탠더드>(Christian Standard)에서 제자들 학자 프레더릭 커쉬너(Frederick Kershner)는 주의 만찬에 대한 세 가지 고전적인 이해들, 즉 (1)로마가톨릭의 성체성사(화체설), (2)그리스도의 임재의 쟁점을 크게 무시한 것과 스톤-캠벨 교회들에서 유행한 츠빙글리의 기념주의, 그리고 (3)빵과 포도주의 물질적인 성분들을 침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임재를 고려한 루터교의 “성체공존”설을 회상하였다. 커쉬너는, 전통적인 주류의 비위에 거슬리게 분명히 자르는 한편, 새로워진 감성을 주의 만찬의 신비적 차원에 신호보내면서 루터교의 견해를 더 선호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世界大戰)사이에 단 한번 스톤-캠벨 전통에서 더 충분히 발전된 성만찬의 임재설이 있었는데, 영국 버밍햄(Birmingham) 소재 오버데일 대학(Overdale College)의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역자 주 9]학장의 저술과 그가 1950년 버틀러 대학교(Butler University)에 부임한 이후로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딘 E. 워커(Dean E. Walker, 1898-1988)와 버틀러 대학교 신학원의 (현재 크리스천 신학대학원) 로빈슨의 제자들과 같은 미국인들을 통해서였다. 로빈슨은 그의 통찰력이 수정주의자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상들, 즉 미국의 월터 스콧(Walter Scott)과 영국의 데이비드 킹(David King)과 같은 19세기 개혁가들에게 이미 있었던 사상들의 발전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진실로 영국의 스톤-캠벨 교회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념하는 값진 성만찬 경건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로빈슨은 그의 전임자 데이비드 킹(David King)뿐만 아니라, 리버풀(Liverpool) 소재 그리스도의 교회의 장로인 G. Y. 티클(Tickle, 1819-88)의 감동적인 성만찬 찬송들의 주제들을 그대로 따라하였다.

로빈슨은 다수의 책들과 성만찬 안내서들, 즉 대표작인 <그리스도인의 일치에 관한 에세이집>(Essays on Christian Unity, 1922)과 <성만찬 예배 안내서>(A Companion to the Communion Service, 1942)에서 그의 견해들을 발전시켰다. 그는 그의 <크리스천 애드보케이트>(Christian Advocate)지(誌)의 오랜 편집자의 직책과 부상(浮上)하는 신앙과 직제운동에의 참여 때문에 대영제국에서 영향력이 매우 컸다. 로빈슨은 그것을 순수하게 관례적이고 기념주의자적인 의식으로 축소한 주의 만찬의 어떤 견해에도 반대하였다. 그는 침례와 주의 만찬에 “성례전”(sacrament)이란 용어를 적용할 것을 고집하였고, 그것으로 인해서 스톤-캠벨 운동의 언어적 관용을 깨트렸다. 성례전(sacrament)은, 그가 주장하기를, 성경적이지도 않고, 어떤 반대할만한 신학적 함축들로부터 자유롭지도 않는 반면, 고린도전서 10장 3-4, 16-17절 11장 29-34절과 같은 성구들에서 발견된 주의 만찬의 간과된 측면들을 빛에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역시 비성경적인) 의식(ordinance)보다는 더 선호할만하다고 하였다.[역자 주 10] 침례와 성만찬은, 순수하게 기념적인 준수가 호감을 갖게 하는 것처럼, 단지 상상을 돕는 것들이나 영적인 자기 암시를 위한 호기(好機)들일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상호작용의 장(場)들이다.

로빈슨은, 주의 만찬의 신비를 지지하는 한편, 그것의 효험을 마법적이거나 기계적인 형식으로 보는 어떤 암시에도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성례전은 결정적으로 구체적으로 독특하다. 절대자로서 하나님은 동시에 모든 곳에 계신다. 그러나 인간들이 거주하는 시공간에 그분은 구체적으로 실제로 임하셔야 한다. 이것은 성육신 그 자체와 저 모든 현존하는 것의 신성하게 지정된 수단에 진실로 통한다. 거기서 저 수단이 인간의 방법으로 동일함을 증명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다. 주의 만찬은 저 신성하게 세워진 구체적으로 독특한 수단의 하나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임재를 먹고 살아간다. 구원은 지상에서 시작되는데, 그 때는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그분의 내주의 은혜와 능력을 함께 나누게 할 수 있을 때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공동생활에서 주로 이뤄진다. 교회에서 신자들은 “불가사의로 인정받는”(supernaturalized) 존재인 성령으로 마음에 심겨지고, 또 그들 자신을 은혜의 통로로 만든다. 실제적 임재(Real Presence)의 초기 교리들과 현저한 대조를 보이면서 로빈슨은, 객관적이고 신비적인 실재를 지지하는 한편, 자발적이고 윤리적이며 공동적인 참여를 요구한 그리스도의 “실제적 행동”(Real Action)의 개념을 분명히 말하였다.

로빈슨은 성(聖)변화를 이룬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임재가 실현되어지는 로마가톨릭 교리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참 실재는 예배하는 자들에게 먹고 마시는 행위에서와 영적인 참여의 원동력에서 온다고 설명하였다. 로빈슨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선물은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실재에 구조적으로 묶여있다고 주장하였다. “단 한번으로 모든 것”(once-for-all-ness)을 커버하는 그리스도의 희생은 천지창조 때부터(계 13:8)[역자 주 11]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최후 순간까지(고전 11:26) 매순간 모든 시간을 망라한다. 종말론적으로 성례전이 지켜질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은 우리와 동시대의 인물이 되시며, 예수님은 역사 속에서 그것이 지켜지는 매번 주님의 만찬 때마다, 중세시대의 사람들이 오해한 것처럼,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분은, 이를테면, 교회와 연대하여 현제의 순간에로 되부름을 받으신다. 한참 선배인 로버트 리차드슨(Robert Richardson)과 후배인 W. B. 블레이크모어(Blakemore)처럼 로빈슨은 기념의 차원을 훼손하려고 하지 않았고, 스톤-캠벨의 유산을 소중히 하였으며, 오히려 그것의 더 깊은 실체를 살려내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과거의 행동이 즉시 현재에 발휘되게 하는 그것의 시연(試演)과 심원한 기념의식의 의미에서 신약성경의 아남네시스(anamnesis)의 용법을 알아내려고 하였다.

스톤-캠벨 전통 안에서 나온 주의 만찬에 관한 또 하나의 주된 역사적 신학적 연구는 로빈슨보다 더 젊은 그의 동시대인인 <월드 콜>(World Call)의 전 편집자이자 <크리스천 센추리>(Christian Century, 1955-64)의 편집자인 해롤드 훼이(Harold Fey)에 의해서 출판되었다. 훼이의 <주의 만찬: 일곱 가지 의미들>(The Lord's Supper: Seven Meanings, 1948)은 특별히 주의 만찬의 교회의(ecclesial) 차원을 두드러지게 하였다. 그것을 그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화해와 연대의 탁월성과 동등한 잔치로 이해하였다. 훼이는 “의식”(ordinance) 대(對) “성례전”(sacrament)의 쟁점을 결정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주의 만찬 식탁에 “정말로 참석하는 분이시고, 개인적으로는 신성한 은사들로 자기 자신을 먹이시며, 자기 자신의 큰 선물, 즉 그분을 통해서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친교를 나눠주신다.”는 스웨덴의 신학자 잉그베 브릴리오드(Yngve Brilioth)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분명히 성례전 쪽으로 기울었다.

    [역자 주 9] 1888-1963년.

    [역자 주 10] 성만찬에 대한 신약성경적인 용어는 ‘주의 만찬’(고전 11:20)이며, 신약성경은 주의 만찬에 대해서 ‘의식’(ordinance)이나 ‘성례전’(sacrament)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통적인 개신교회들은 ‘의식’(ordinance)이란 용어를, 가톨릭교회, 정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감리교회와 같이 전통적인 교회들은 ‘성례전’(sacrament)이란 용어를 즐겨 쓴다. 로빈슨의 주장과 그가 성공회와 감리교의 텃밭인 영국출신이란 점은 어떤 모양으로든 무관치 않을 것이다.

    [역자 주 11] 원문에는 [Rom. 13:8]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계시록 13장 8절이므로 역자가 임으로 고침.

4. 세 줄기들에서의 전통

그 운동의 세 줄기들 가운데 어느 것에서도 스톤-캠벨의 성만찬 신학과 실천의 이전의 전통들에 대한 그것의 증언에서 절대적으로 뜻이 명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 줄기는 그 자체의 고유한 배경에 따라 그 유산을 맞춰왔다. 또한 각 줄기는 교회의 예배에서 주의 만찬의 수위(秀偉)성과 중심(中心)성을 그 자체의 방법 안에서 보호하려고 힘써왔다.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는 최근 수십 년간 그것의 성만찬 가르침에서 기념설적이고 성례전적인 강조들 모두를 지지해왔다. 게다가 교단 재구성과 에큐메니컬 운동에 일찍부터 깊이 관여한 점에 비춰서 그 가르침을 분명히 말해왔다. 교단의 로고로 성배(聖杯)를 택한 단체로써 성만찬 사상과 실천은 언약, 교회의 완전성, 예배를 위한 능력강화, 포용성 및 다양성 속의 일치와 같은 주제들에 초점을 맞춰왔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일치 추구의 의미들과 실천들의 폭을 주장하는 신앙과 직제 위원회(Faith and Order Commission)의 <침례, 성만찬 및 교역>(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문서(1982)[역자 주 12]에 꽤 호의적으로 반응을 나타냈다.

    [역자 주 12] 세계교회협의회(W.C.C) 산하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Faith and Order Commission)가 1982년 1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채택, 발표한 침례ㆍ성만찬 및 교역에 관한 문서를 말한다. 줄여서 <BEM 문서>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침례에 관한 21개 항목, 성만찬에 관한 33개 항목, 교역에 관한 54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에서 합의되지 못한 교파적 교리의 차이점들과 앞으로 좀 더 연구해야 할 쟁점들은 해당 항목의 해설에서 열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그 운동의 제1세대 지도자들의 모범에 따른 성만찬 믿음과 실천에 관한 사도 규범에 재 헌신하는 전통을 지속시켜왔다. 한 컵(One Cup, 포도주만) 그룹들과 관련해 언급한대로, 차이점들은 존속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들 사이에 주의 만찬이 원래 기념의식이며 기독교 예배의 정신(soul)이어야한다는 한 가지 합의가 있다. 존 마크 힉스(John Mark Hicks)와 같은 최근 몇몇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신학자들은 성만찬 식사의 더 깊은 성경적 교회적 차원들에서 회중들을 교육하고 또 종종 주의 만찬의 준수를 특징지었던 개인주의자의 경건주의를 극복할 뜻을 품어왔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출판된 “성만찬 명상집” 문헌과 <크리스천 스탠더드>(Christian Standard)와 같은 정기간행물들에 종종 실린 교육적인 기사들에서 보이듯이 스톤-캠벨 성만찬 신학과 실천의 기념전통에 더 밀접하게 고수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차드슨, 밀리건, 커쉬너 및 로빈슨의 것과 같은 종류의 “성례전적 전통”에 대한 새로워진 관심이 특히 밀리건 대학(Milligan College)과 임마누엘 신학대학원(Emmanuel School of Religion)에 집중된 일부 지역들에서 증대되었다. <주의 만찬: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그것의 의미에 관한 역사적 저술>(The Lord's Supper: Historical Writings on Its Meaning to the Body of Christ, 1993)이란 제목으로 찰스 그레샴(Charles Gresham)과 톰 로슨(Tom Lawson)이 편집한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 해롤드 훼이(Harold Fey)외 여러 사람의 증쇄(增刷)된 논문집 한권이 이 소수의 시각이 지지자들을 얻었다는 증거이다. 이 논문집에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위해 주의 만찬의 열 가지 의미들을 개설(槪說)하였지만, 폭넓은 스톤-캠벨 유산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반영한 바이런 C. 램버트(Lambert)의 연구가 포함되어 있다. 램버트는 주의 만찬이 (1)순종의 행위, (2)기념의 행위, (3)감사의 행위, (4)(“주님의 죽으심의”) 선언, (5)(“그가 오실 때까지...”) 신의(神意)의 전달, (6)새 언약의 표지, (7)“임재의 빵”을 명예롭게 하는 제단에서의 섬김, (8)자기 반성의 행위, (9)그리스도와 동료 신자들과의 친교, 그리고 (10)그리스도를 먹는 영적 급식의 행위였었다고 결론짓는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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