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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08 01:14
사도행전 2장 38절의 εισ αφεσιν에 관한 고찰2/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017  

2. 2-4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증언

      목차
      들어가는 말
      1. 1세기 신약성경 저자들의 증언
      2. 2-4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증언
      나오는 말
      참고도서

1세기 신약성경 저자들의 증언이 주후 392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되기 이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baptisma의 목적뿐만 아니라, 방법까지도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후 100년경에 기록된 <디다케> 제7장을 보면, 주후 70-80년경에 기록된 마태복음 28장 19절의 말씀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물로 baptisma를 주시오.”<각주22: 정양모 역주,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분도출판사, 1993), 55-57쪽.>라고 되어 있다. 이는 사도행전의 특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행 2:38) 혹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행 8:16, 19:5, 22:16) baptisma를 받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baptisma를 베풀라”(행 10:48)는 말씀과 비교된다. 가톨릭교회의 정양모 교수는 위의 두 가지 사례 즉 마태복음과 <디다케>가 삼위일체론을 주장한 서방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오히려 동방 시리아 지역의 baptisma관행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디다케>가 시리아 지방 어느 시골교회의 그리스도인이 편집한 교회 규범서였기 때문이다.<각주23: Ibid., p. 7.> 주후 150년경의 순교자 저스틴의 <변증서>1권 61장 3절도 “만민의 주재자이신 하나님과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이름으로” baptisma를 베풀었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각주24: Ibid., p. 55.> 이밖에도 주후 180년경의 이래내우스(Irenaeus, Proof of the Apostolic Preaching 3)와 4세기 인물이었던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Baptismal Instructions II:26) 등의 글들이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baptisma를 베풀었다고 증언하고 있다.<각주25: Everett Ferguson, Early Christian Speak(Abilene, Texas: Biblical Research Press, 1981), p. 32-36, 45-46.>

사도행전에서 baptisma를 예수님의 이름만으로 베푼 것처럼 기록된 것 때문에 어떤 교단에서는 baptisma를 예수님의 이름만으로 베푼다고 한다. 사도행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혹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를 강조한 이유는 아마 세례 요한의 baptisma가 예수님의 이름을 포함하지 않고 베풀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이름을 강조함으로써 이 baptisma가 그리스도인의 baptisma임을 강조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baptisma는 예수님의 명령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증언대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져야 한다.

물에 관해서 <디다케>는 살아 있는 물을 강조한다. 살아 있는 물이란 강물이나 샘물처럼 흐르는 물을 말한다. 그러나 “만약 살아 있는 물이 없으면, 다른 물로 baptisma를 주시오. 찬 물로 할 수 없으면, 더운 물로 하시오. 둘 다 없으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머리에 세 번 부으시오.”<각주26: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 55-57쪽.>라고 말한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이 밝혀진다. 첫째는 다른 교부들의 증언에서처럼 물속에 세 차례 즉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각각 세 번 침수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물이 없는 곳에서는 물을 머리에 붓는 방법을 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언급은 현존하는 문서들 가운데 아마 가장 최초로 약식 baptisma를 허용한 사례가 될 수도 있다. 히뽈리뚜스의 <사도전승>도 baptisma를 위한 물은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나 위에서부터 흐르는 물이어야 한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할 것이다”고 강한 어조로 권한다.<각주27: 히뽈리뚜스, <사도전승>(분도출판사, 1992) 이형우 역주, 127쪽.>

사도행전 2장 38절의 βαπτισθήτω... εἰς ἄφεσιν τών ἁμαρτιών ὺμών에서 살펴본 것처럼, 2-4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baptisma의 목적을 죄 사함을 얻기 위한 것으로 당연하게 받아드렸다. 아래의 현존하는 글들이 이 사실을 증언한다.<각주28: Everett Ferguson, pp. 32-36, 45-46.>

  • <바나바서>• - “baptisma는 죄 사함을 가져온다”(Barnabas 11:1,8,11).
  • 허마스의 <목자>(Hermas, Shepherd) - “당신의 생명은 ... 물을 통해서 구원받을 것이다”(Vision III.iii.3). “우리가 물속으로 내려가서 과거의 죄들을 사함 받았을 때의 것 말고는 다른 회개가 없다”(Mandate IV.iii.1), “그들은 그러면 물속에 내려가서 죽고, 올라와 살아난다”(Similitudes IX.xvi.3-6).
  • 순교자 저스틴(Justin) - “우리는 과거 죄들의 사함을 물속에서 얻을 것이다”(Apology I.61).
  • 데오빌로(Theophilus) - “사람들은 물을 통해서 회개와 죄 사함과 ‘중생의 씻음을’ 받을 것이었다”(To Autolycus II.xvi).
  • 이래내우스(Irenaeus) - “우리는 죄 사함을 위해 baptisma를 받았다. 이 baptisma는 영생의 인침이요, 하나님께로 거듭 태어난다”(Proof of the Apostolic Preaching 3).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er) - baptisma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조명을 받고, 조명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자녀들이 되며, 자녀들이 됨으로써 완전해지고, 우리가 죽지 않는 완전한 자가 된다“(Instructor I.vi.25.3-26.2;30.2;32.1).
  •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 “어느 누구도 Baptisma없이는 구원의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정해졌다”(On Baptism 1).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하게 된다”(On Baptism 7).
  • 오리겐(Origen) - 홍해도하를 baptisma와 연결 지으면서 “당신은 죄의 더러움을 씻고서 ‘새 사람’으로 올라오며, ‘새 노래’를 부르게 된다”(Homilies on Exodus V:5).
  • 암브로시우스(Ambrose) - “당신이 담그고 일어날 때 거기서 부활과 같은 것이 일어난다”(On the Sacraments III.i.1,2)
  •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그가 세 차례 머리를 담그고 일으켜 세우며, 당신으로 하여금 이 신비한 의식에 의해서 성령의 임재를 받게 한다”(Baptismal Instructions II:26). “어떤 무덤에서처럼 정확하게, 우리가 우리의 머리들을 물속에 가라앉힐 때, 옛 사람은 장사된다. 그리고 그가 수면 아래로 잠기듯이, 그는 몸 전체가 확실하게 감춰진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우리의 머리들을 들 때, 새 사람으로 다시 나타난다“(Homilies on John XXV:2, on John 3:5).

위의 증언들은 주후 392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되기 이전까지의 것들이다. ‘가톨릭’(catholic)이란 말이 등장하기 이전시대의 증언들이다. 이들 증언들은 모두가 사도행전 2장 38절의 βαπτισθήτω... εἰς ἄφεσιν τών ἁμαρτιών ὺμών의 의미가 “너희의 죄 사함을 위하여 baptisma를 받으라”로, 즉 대격과 함께 쓰이는 전치사 eis를 목적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것임을 입증한다.

baptisma의 방법에 대해서도 2-4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baptisma가 물속에 잠기는 것임을 증언하였다. 로마의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의 전승>에 나타난 의식을 보면, 옷을 벗고 세 번 물속에 몸을 담갔다. 몸에 아무 것도 걸쳐서는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의식은 밤중에 있었을 것이며, 제일 먼저 어린이들에게 baptisma를 베풀었고, 그 다음에 남자들, 마지막에 여자들이 baptisma를 받았다.<각주29: <사도전승> 126-141쪽.> 4세기 이후 비잔틴시대에는 침례탕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앞으로 세 번 몸을 굽혀 물에 담그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번,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번, 성령님의 이름으로 한번, 도합 세 번 침수를 했던 것이다. 아래의 현존하는 글들이 이런 사실을 증언한다.<각주30: Ibid.> 특히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의 글은 주목할 가치가 크다. 그는 세 차례 머리를 담근다고 말하고 있고, 무덤에 장사되듯이 몸 전체를 수면 아래로 완전히 잠수시켰다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 <바나바서>• - “우리는 물속으로 내려간다”(Barnabas 11:1,8,11).
  • 허마스의 <목자>•(Hermas, Shepherd) - “우리는 물속으로 내려갔다”(Mandate IV.iii.1,). “그들은 그러면 물속으로 내려간다”(Similitudes IX.xvi.3-6).
  • 파피루스 문서 <옥시린쿠스> - “영생의 물들 속에 담겼다”(Oxyrhynchus Papyri V:840).
  • 위(僞)키프리아누스(Pseudo-Cyprian) - “담긴다”(Against the Jews 10:79-82).
  • 멜리토(Melito) - “담금으로”(On Baptism).
  •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 “우리는 물속에 침수되었다”(On Baptism 7).
  • 예루살렘의 키릴로스(Cyril of Jerusalem) - “물속에 뛰어들어 baptisma를 받는 자는 물로 전신을 덮는다”(Catechetical Lectures XVII:14).
  • 암브로시우스(Ambrose) - “당신이 담그고 일어날 때”(On the Sacraments III.i.1,2).
  •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그가 세 차례 머리를 담그고 일으켜 세운다”(Baptismal Instructions II:26). “어떤 무덤에서처럼 정확하게, 우리가 우리의 머리들을 물속에 가라앉힐 때, 옛 사람은 장사된다. 그리고 그가 수면 아래로 잠기듯이, 그는 몸 전체가 확실하게 감춰진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우리의 머리들을 들 때, 새 사람으로 다시 나타난다“(Homilies on John XXV:2, on John 3:5).

침수 baptisma가 적법하고 옳은 사도전통이었지만, 몸을 물속에 완전히 담그지 않는 변형된 약식이 2세기 이후 종종 시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개는 침수할 물이 부족하거나 죽어가는 병자일 경우에 한하였다. 주후 100년경에 기록된 <디다케><각주31: 정양모 역주, <열두사도의 가르침: 디다케>(분도출판사, 1993).>는 침수할 물이 없을 경우에만 세 번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머리 위에 물을 붓도록 권하였고, 북 아프리카 칼타고의 키프리아누스는 주후 250년경에 병약한 상태에서 구원의 물속에 들어가 씻기지 못하고 몸에 물을 부어 하나님의 은혜(baptisma)를 입은 사람이 합법적인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전(恩典)들이 어떤 경우에도 불완전하게 되거나 약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구원의 성례들에서, 필요성이 강요되고 또 하나님이 당신의 자비를 내리실 때, 신성한 약식들은(divine abridgements) 신자들에게 온전한 은전을 수여하므로 병자들이 성례를 받을 때 뿌림을 받거나 부음을 받은 것 같은 것으로 누구도 걱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물의 뿌림은 역시 구원의 씻음과 동등한 것으로 드러난다(Epistle 75[69]:12).

여기서 키프리아누스는 병자가 받은 병상 baptisma, 즉 침수로 하지 아니한 약식을 구원의 씻음(침수 baptisma)과 비교하였다. 키프리아누스의 당대에 죽어가던 환자가 병상에 누운 채 물을 부어 baptisma를 받았는데, 이 사람이 노바티아누스(Novatianus)였다.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나서 로마 감독의 비호로 로마교회의 장로(사제)로 장립을 받자, 모든 사제단과 많은 평신도들이 감독에게 반발하였다. 병 때문에 침상에 누워서 물을 부어 baptisma를 받은 사람이 사제직에 장립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독은 유독 이 사람에게만 안수할 것을 요청하였다.<각주33: Eusebius, The History of the Church from Christ to Constantine. Trans. by G. A. Williamson(Penguin Books, 1984), p. 283(VI.xliii.14,17).> 그 후로 노바티아누스의 라이벌이었던 로마감독 코르넬리우스는 노바티아누스의 약점인 병상 baptisma의 적법성을 계속해서 물고 늘어졌다.<각주32: Everett Ferguson, p. 46.>

이미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복음을 듣고 믿고 죄를 회개한 자라야 baptisma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밟을 수 없는 철없는 유아들에게 baptisma를 베푸는 것이 적합하냐는 것이다. 유아 baptisma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세기말부터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칼타고 교회에서 200년경에 쓴 <침례론>(On Baptism) 17장에서 스스로 신앙고백을 할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baptisma를 베푸는 것이 타당하지 못하므로 18세 이상 된 성인에게만 baptisma를 베풀라고 하였다. 이보다 약 50년 후에 유아 baptisma에 대해 최초로 신학적 해설을 남긴 칼타고의 감독 키프리아누스는 <Fidus에게 보낸 서간>(Ep 64)에서 어린이들에게 가급적 빨리 생후 8일 이내에 baptisma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칼타고 주교회의의 결정 사항임을 강조하였다.<각주34: <사도전승> 126-127쪽.> 테르툴리아누스와 동시대에 쓰인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 21장에는 다음과 같이 어린이 baptisma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너희는 어린들에게 먼저 세례를 베풀 것이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스스로 대답할 것이고, 말할 수 없는 (어린이의 경우에는) 부모나 그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그들 대신 대답할 것이다.<각주35: Ibid., p. 127>

오리겐은 누가복음 설교에서 유아들이 죄 사함을 위해서 baptisma를 받는다고 하였다(Homily on Luke XIV:5). 특히 시편 51편 5절을 인용한 후에 레위기 설교에서 유아들에게 baptisma를 베푸는 것이 교회전통이라고 하였고(Homily on Leviticus XIV:5), 로마서 주석에서는 유아들에게 baptisma를 베푸는 것이 사도들 때부터 전해오는 교회전통이라고 주장하였다(Commentary on Romans V:9).<각주36: Everett Ferguson, p. 57.>

나오는 말

이상으로 사도행전 2장 38절의 eis aphesin과 2-4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헬라어 문법으로 볼 때, eis aphesin을 원인이나 결과로 해석하기보다는 목적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또 주후 392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되기 이전까지의 그리스도인들의 증언들을 통해서 baptisma의 목적과 방법뿐만 아니라, 약식과 유아 baptisma처럼 변형된 형태의 것들도 살펴보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에 따른 baptisma의 본래 모습을 확인코자 하였다.

초기 기독교가 3백여 년 동안 받았던 극심한 박해를 극복하고 주후 392년에 로마제국의 국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다수의 원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유가 목회지도력에 있었다. 당시 지도자들이었던 장로(사제)들과 감독들이 오늘날과 같이 일정기간 동안 특별한 신학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면서 교회를 극심한 환란에서 건져내고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성례의식을 중요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오늘날 개신교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례의식들을 무슨 율법의 행위쯤으로 경시하는데 있다. 그러나 21세기 교회현장에서 확연히 드러난 누수현상을 줄일 목회지도력 회복에 baptisma의 원래 모습의 회복(to restore the ancient order of things)이 갖는 가치는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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