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3-04-17 09:04
예배(Worship)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924  

예배(Worship)

번역 조동호 목사
출처: Bruce E. Shields, "Worship," in the The Encyclopedia of the Stone-Campbell Movement.

목차

1. 19세기
2. 20세기
2.1.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
2.2. 그리스도의 교회들
2.3.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교회들

1. 19세기

19세기 미주 개신교 교회들의 예전(禮典)적인 삶은, 비록 전통적인 형식과 방법들이 지속되고, 진행 중인 적응(추이)에 안전과 기초 모두를 제공했을지라도, 변방의 서부확장과 함께 중요한 변화를 보였다. 비록 스톤-캠벨운동이 궁극적으로는 장로제주의의 예전훈련을 버리고 오직 성서에서 그 운동의 예전규정을 찾겠지만, 그 운동의 초기 예배관행의 배경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 운동의 여러 지류들이 갖고 있던 개혁주의 전통이었다.

제2차 대 각성운동(1790-1840) 기간에 개혁주의 신학에서의 변화들은 (예: “올드 스쿨, Old School” 칼뱅주의의 누그러짐) 예배에서의 변화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새 빛, New Light” 회중교회 교인들과 장로교회 교인들은 어떻게든 죄인들이 추측컨대 자신들의 타락 상태에서 벗어나 은혜를 받기 위해 자신들을 준비시킬 “수단”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감성을 이용하였다. 그들은 회심의 경험적인 측면들에 그들 자신들을 또한 열중하게 하였고, 거듭난 죄인들의 삶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님의 현시(顯示)들을 분류하였다. 따라서 이 신앙부흥(운동자)의 정황에서 예배는 회심의 드라마가 저절로 연기되는 무대가 되었다. 척박한 변경지에서의 캠프집회는 성령님의 자발적인 임재에 기여하는 상황들과 죄인들이 집단으로 성도가 되는 변화를 준비하려고 열망하였다.

발톤 스톤(Barton Stone)은 이 신앙부흥운동자, 변경지방 예배의 캠프집회 유산과 더 광범위한 스톤-캠벨운동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살아있는 고리였다. 스톤은 1790대 초에 노스캐롤라이나 주(州) 길포드(Guilford) 군(郡)에 소재한 데이비드 콜드웰(David Caldwell)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때 “새 빛, New Light” 예배에 처음으로 노출되었다. 스톤은 저명한 신앙부흥운동자 제임스 맥그레디(James McGready)의 설교를 접했는데, 1801년 봄에 켄터키 주(州) 로건(Logan) 군(郡)에서 개최된 캠프집회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켄터키 주(州) 부르본(Bourbon) 군(郡)에 소재한 스톤 자신의 회중(교회)이 주최한 1801년 8월의 케인 리지(Cane Ridge) 부흥회는 변경지방 배경 속에서 예배의 전통적 형식들의 적응(추이)이란 관점에서 하나의 훌륭한 사례였다. 이 중요한 집회는 17세기이후 스코틀랜드의 개혁주의 교회들 사이에서 개최된 옥외 성찬식 축제들(“성회”)의 전통 속에 섰다. 비록 그 부흥이 교파가 다른 설교자들과의 협력과 그들의 설교에 주목할 만한 반응이 나타났던 스톤-캠벨유산에서 기억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은 주의 만찬을 위한 집회였다. 그러나 부흥회 참석자들이 믿었던 것에로 쏟아져 넘친 그 사건의 성례전적 특징은 영적인 “운동들”(체험들) 즉 성령님의 즉각적 현존에 의한 무아지경의 행동들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의 장엄한 표명이었다. 스톤 자신으로서는 이 운동들이 케인 리지 부흥의 독특한 상황에서 순전(純全)한 화해정신을 진전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건 이후로 그의 사역에서 교회들의 예배에서 그 같은 영적 체험들을 조금도 장려하지 않았다.

캠벨운동에 속한 오하이오 밸리(Ohio Valley)지역 교회들은 대개가 캠프집회를 멀리했다. 알렉산더 캠벨은 부흥운동이 안고 있는 선천적인 폐해에 대해 자신의 의심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그의 열정은 사도들의 예배질서, 즉 질서정연을 회복하는 것이었고, 주의 만찬과 다른 기독교 의식들이 처음대로 본래모습을 찾고 교회생활에서 중심적 기능을 갖도록 보증하는 것이었다.

캠벨의 예배관의 기본은, 타락 이전에 인류는 천사들처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미했지만, 타락 이후에 예배는 전반적으로 “종교”에, 즉 하나님과의 “화해방법의 한 체계”에 속한다는 확신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체계>(The Christian System)에서 캠벨은 어떻게 예배의 양식들이 구원역사의 시대들에 독특하게 계시되었는가를 개설하였다. 아담타락부터 할례언약까지 족장(혹은 “가족”) 예배는 안식일, 제단예배, 구전교육, 기도, 찬양, 축도의 제정들에 초점을 맞췄었다. 모세(유대인의)시대의 이스라엘예배와 함께 옛 족장 혹은 가족 예배는 “전국민화” 되었고, 그것의 전형적이거나 비유적인 특징들이 기독교시대를 예상하고서(고전 10:11) 확대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왕국이 그것의 “유일하고 확실한 법령”으로써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매주 기념하는 축전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 목적과 가장 거룩한 믿음으로 서로의 덕을 세우기 위해 매주 모이는 집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체계아래서 예배는 더 이상 전국민화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그래서 어떤 국가적 혹은 지리적 경계들을 알지 못하며 세계 만국에 광범위하게 확장될 수 있다.

캠벨은 그의 <그리스도인 침례자>(Christian Baptist)에 연재한 “일들의 옛 질서(사도전통)의 회복”(A Restoration of the Ancient Order of Things) 가운데 “예배의 질서”(Order of Worship)란 제목의 초기의 글을 두 개의 삼단논법으로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그리스도인 예배질서가 있든가 아니면 없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만약 없다면, 무질서한 예배와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따라온다. 왜냐하면 예배가 같은 형식을 취하게 할 어떤 질서도 없기 때문이다. 그 같은 것은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예배질서가 반드시 있어야한다. 둘째로 그 같은 예배질서는 모든 경우에 획일적이거나 그 반대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만일 획일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획일적으로 제각각이고, 그것은 무제한의 다름과 그래서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 또한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 예배에 획일적인 질서가 있다.

캠벨은 그 질서에 필수적인 것들을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찾았다. 그 성구는 초기 예루살렘교회가 주일집회 때 행한 내용, 즉 사도의 가르침, 떡 뗌, 친교 및 기도들을 간단히 진술하였다. (그는 기도들에 신약성서 다른 곳에서 입증된 찬송가를 통한 찬양을 추가하였다.) 캠벨은 예배를 위한 세부사항을 모두 담은 어떤 정밀한 규칙서도 없다는 것과 많은 방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식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또한 믿었다.

“예배에 관한 교회질서”란 1835년의 글에서 캠벨은 예배 그 자체의 내용과 순서보다는 개인을 위한 예법과 의식을 위한 예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발톤 스톤도 비슷한 관심들을 가졌다. 스톤과 캠벨은 예배드리는 자들이 일상적인 대화와 그들 배후에 있는 세속적인 관심들을 버려야한다는 것에 일치하였다. 스톤은 특히 주님의 집에서 정치를 말하지 말도록 충고하였다. 침묵과 무릎 꿇음은 두 가지 모두 흠숭의 표현으로써 적절하다고 보았다. 또 스톤은 심지어 착석이 예배를 위한 자세로써는 무익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스톤과 캠벨 모두는 예배의 간소함에 가치를 부여했고, 예배당들을 지나치게 많고 멋진 (악기들을 포함해서) 문화설비로 치장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들은 둘 다 너무 곱게 차려 입고 교회에 출석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하였고, 스톤은 적절치 못한 헤어스타일과 장신구 착용을 비판하였다.

스톤은 교회들의 예배에서 경건의 일반적 특성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인디아나 오하이오 켄터키 주들을 여행한 다음 1843년에 발표한 몇몇 묵상들에서 그의 관심들을 피력하였다. 스톤은 “개종시키는 것”이 일부 사례들에서 교회예배에서 덕을 세우는 것보다 우선 시 되고 있는(preempting edification) 것을 걱정하였다. 그리고 그는 부흥운동의 배경에서 그 위험(의 상태)이 피상적인 믿음과 충절에 머문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개심시키는 것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예배는 전도적일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지만, 교육과 권고와 훈계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경건과 참 예배를 예증함과 단지 감동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상으로 설교함에 있어서 솔선하는 것이 지역 회중(교회)들에서 설교자들의 의무였다. 로버트 리차드슨(Robert Richardson)도 캠벨의 진영에 속한 회중(교회)들의 설교와 예배에서 경건의 깊이가 부족한 것을 관찰한 후 1841년에 유사한 관심들을 표명하였다.

캠벨은 예배질서에 관한 1835년의 연구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예배의식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예배질서의 세부사항은 지역 회중(교회)들의 특권에 대부분 일임되었다는 것을 신약성서가 분명히 가르쳤다고 진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벨은 <그리스도인의 체계>(The Christian System, 1839)에서 겨룰만한 가치가 있고, 옛 질서와 일치한다고 생각한 것을 수반한 예배의식을 기술한다. 예배는 다음의 구성 요소들로 열거된다. (1)개회 찬양, (2)복음서 봉독, (3)회중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감사기도, (4)신약서신서 봉독, (5)찬양, (6)식탁에로의 초대, (7)장로에 의한 간소한 빵과 포도주 집례, (8)찬양, (9)탄원기도, (10)구약성서와 신약성서들의 봉독들 및 덕을 세우기 위한 사람들의 단평(설교), (11)“신령한 노래들” 및 (12)인도자에 의한 사도의 축복. 이것은 스톤-캠벨운동의 교회들에서 공통적인 예배질서가 되었다. 이 질서가 당시의 다양한 그룹의 장로교회들의 것과 다른 근본적인 차이는 매주일 예배에서 차지하는 주의 만찬의 중심성과 안수 받은 성직자들 대신에 평신도 장로들에 의한 주의 만찬의 집례였다.

캠벨은 더 나아가 이 예배질서의 예전적인 구성요소들이 일치하지만 그것들의 순서는 이따금 변경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사람들은 인도자의 초청이나 허락을 받지 않고 결코 일어나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형은 물론 경건의 능력까지 보여준 모든 것” 대로, “아무 것도 형식에 맞거나 격식을 차린 방법으로 이뤄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덕이 세워지거나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 계시다는 확신 없이 스쳐간 모든 것에 정성을 들일 수 없었다.” 캠벨은, 한편에서는 형식주의적이지 않고, 다른 편에서는 부적절하게 자동적이지 아니한 참된 영성을 입증하는 예배를 이상화하였다.

캠벨의 모범 예배가 보여줄 수 있는 것처럼, 설교는 중심적이지도 않았고 성직자에 의해서 반드시 행하여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선포였기보다는 더 교육이었고, 감성에 보다는 지성에 더 호소하였다. 믿음은 설교에 대한 정서적 반응도 은총의 기적도 아닌 것으로써, 그러나 성서본문과 교회사에 의해서 증명된 복음의 사실들의 제시에 대한 자연스런 인간 이성의 반응으로써 다뤄졌다. 캠벨이 ‘케뤼그마’(복음의 선포)와 ‘디다케’(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침)를 구별한 결과로써 전도적인 설교는 침례 받은 신자들의 예배와 대체로 구별되었다. 신자들의 회중(교회)들에게 전해진 설교들은 통상적으로 성서 본분들의 조사를 통해서 얻어진 교리적인 주제들의 연구였다. 그것들은 제시된 대로 진리를 듣는 자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논리적인 방법으로 설교되었다.

발톤 스톤은 그 자신의 개혁운동사 초기에 예배 끝 무렵에 “초청(의 시간)”을 갖도록 권장하였는데, 예배의 전도적인 성격의 분명한 암시인 복음에 공개적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응답자들의 뻔뻔함에 실망한 나머지, 스톤은 초청(의 시간)에 침례 주는 것을 중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20년대 후반에 월터 스코트(Walter Scott)는 캠벨 운동에서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라는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초청을 채택함으로써 그 초청을 끌어들었고, 결국에는 토마스와 알렉산더 캠벨도 이 관행에 승인하였다. 이것에 고무되어 발톤 스톤은 초청에 침례를 포함시키는 것을 원위치 시켰다. 그리고 심지어는 1843년에 의견을 피력하였는데, 그는 일부 응답자들이 믿음을 표명하지만 침례 받을 준비가 진실로 되어있지 않은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그는 “네 마음을 다하여” 믿는 것과 회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분명히 할 것이고, 그러고는 (초청에 응하여) 앞으로 나온 사람들에게 재초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19세기의 스톤 캠벨운동은, 주의 만찬이, 비록 의식에 대한 정확한 의미와 그 의식에 참예하는 자들에 대해 부득이한 의견차가 있을지라도, 적어도 매주일 지켜져야 할, 그리스도인 예배의 중심행위라는 일치가 광범위하고 빠르게 수립되었다. 알렉산더 캠벨은 <그리스도인 침례자>(Christian Baptist)에서 빈도에 관한 쟁점을 다뤘으므로, 주의 만찬의 구성행동들에 관해서보다는 그것의 의미에 관해서 덜 다룬(waxing) <그리스도인의 체계>(The Christian System)에서는 “떡을 뗌”(Breaking of Bread)의 의식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신자들의 한 몸을 나타내는 한 덩어리의 빵이 필요하다는 것, 참예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 2:9)을 형성한다는 것, 그 덩어리 빵이 그리스도의 몸의 깨어짐을 가리키기 위해서 회중 앞에서 명시적으로 쪼개져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의식은 전체적으로 주님의 죽으심에 대한 일종의 기념(과 일종의 선포)이라는 것을 중시하였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를 서둘러 하나님께로 가게하고 그분의 사랑을 우리 안에서 유포되게 하려는 것이다.” 캠벨은 다른 의식들처럼 주의 만찬이 하나님의 은총을 “만끽하는 수단”의 한 가지라고 믿었으나 주의 만찬에 대한 성례전적 언어를 직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로버트 리처드슨(Robert Richardson)은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감성을 고무시킨 아마 최초의 초기 지도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 만찬에 대한 그의 더 성례전적인 견해는 그 운동의 차기 세대들에서 목소리를 낸 소수에 의해서 되풀이되어 나타나곤 하였다.

“개방” 대(對) “폐쇄” 성만찬의 관행, 즉 “경건한 미침수자들을” 식탁에 허용할지에 대한 논쟁은 꽤 일찍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캠벨은 이 논쟁에 대해서 다소 유보적이었으나 발톤 스톤과 그 운동의 수많은 제2-3세대 지도자들은 개방 성만찬의 검증된 형식의 교회들에서 일반적인 관행이 된 것을, 또 어찌어찌해서 경건한 미침수자들이 적극적인 초청과 같은 것에 의거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양심적인 분별에 따라서 주의 만찬에 허용된 것을(고전 11:28 비교) 궁극적으로 허용하였다.

알렉산더 캠벨과 그 운동의 다른 지도자들은 찬송가들의 적절한 선택에 크게 힘썼다. 캠벨은 일찍부터 많은 개신교찬송 부르기가 공인되지 않은 신학적 개념들을 교인들에게 쉽게 주입시켜온 방식을 비난하였다. “아르미니안주의자(the Arminian)는 칼뱅주의 자들의 주권적 은혜(sovereign grace)를 논박하면서 얼마나 길고 또 얼마나 크게 자신의 자유(의지적) 은혜(free grace)를 노래하는가, 그리고 무슨 고무적인 선율로 칼뱅주의 자는, 그가 추측하기를, 자신의 행위로 의롭게 되기를 구하고 있는 아르미니안주의자의 면전에서 자신의 전가된 의에 대해서 노래하는가.” 훌륭한 시적 선율로 치장하고 비판 없이 정통신학으로 통하는 사색적인 신학들을 탑재하고서 많은 개신교찬송 부르기가 그리스도인의 찬송 부르기의 진실한 목적, 즉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에서 하나님께로 향한 경건한 명상들에 의해서, 그것들에 관한 우리의 추측들이나 의향들이 고유(固有)하지 않다는 사실들을 감복하고 칭찬함으로써 우리의 영혼들을 일으켜 세우고 고양시키기 위한” 목적을 방해하였다. 한편 발톤 스톤은 “곡조에서든 가수에게서든 엄숙함 없이 성가들에 응용된 새로운 연극이나 피아노 곡조들”에 대해서 불평하였다. 그것이 그에게는 엄숙한 예배이기보다 부자연스런 음악적 기교의 과시로써 (설사 음악이 그럴지라도)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19세기 내내 스톤-캠벨운동의 교회들은 그들이 드리는 예배의식들의 목적이 복음전도의 차원인지, 아니면 덕 세움의 차원인지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였다. 복음전도의 강조는 단지 신앙부흥운동의 한 자취가 아니라 새 신자들과 기존 신자들 모두를 위해 복음적 사실들을 끊임없이 전개하려는 그 운동의 결의에 대한 성찰이었다. 덕 세움의 강조는 스톤, 캠벨부자, 로버트 리차드슨 및 다른 사람들의 숙성된 감성들에서 유래하였다. 그들은 빠르게 신장되고 있는 그 운동의 성공적인 신앙부흥운동이 적절한 영적 수양과 깊이로 신자들을 단련하고 숙성시킬 예배기능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사람들이었다.

Paul M. Blowers and Bruce E. Shields

2. 20세기

2.1.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

20세기 초기에 변경지역 신앙부흥운동을 모루에 올려놓고 연마하던 스톤-캠벨운동은 회중예배의 신학과 실천에 거의 관심을 갖지 못하였다. 19세기의 복음전도의 열정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목사들은 새로운 개심자들을 만드는데 집중하였지 자기 교인들의 예배생활에 집중하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성서가 일반적으로 교회회복을 위한 또 각별히 교회의 예배모범을 위한 “헌법”을 담고 있다는 설립자들의 신념이 성서주의라는 암초에 걸려 난항을 겪었다. 무엇이 예배를 위한 성서의 규범인지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배에서의 기악(器樂)에 대한 토론과 1906년의 종국적인 분열은 일요일 예배의 다른 요소들이 무시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일들의 옛 질서”를(사도전통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더 폭넓은 교회예전의 발전들에 대한 어떤 관심도 꺾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톤-캠벨운동의 큰 공헌, 즉 매주 성만찬, 식탁에(주의 만찬)의 평신도 지도력(집례) 및 말씀과 성례전 사이의 적절한 균형의 복원은 지속되었다.

비록 그것들 각각의 질서에 있는 기본적인 예배요소들(개회 찬양, 성서 수업들, 목회기도, 성만찬, 헌금 및 설교)이 19-20세기 내내 제자들 교회들의 3분의 2가량에 의해서 지켜졌더라도, 변경지역과 다른 문화적 변화들의 발생은 회중예배에 영향을 끼쳤다. 소박하고 꾸미지 않은 예배당들이 전임 성직자가 섬기는 크고 인상적인 교회들로 바꿨다.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한 장면들은 물론이고, 비둘기, 십자가, 왕관, 알파와 오메가의 형상들을 새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은 예배장소의 특성을 드러냈다. 자주 오르간 반주에 맞춘 성가대의 찬양이 분위기를 돋우었다. 인쇄된 예배 안내서들, 찬송가집들, 주보들의 발달은 회중의 예배생활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송영, 아버지께 영광(Gloria Patri), 헌금찬송들, 예배에의 부름들, 기원들, 축도들, 교독문들, 화답찬양들과 같은 예전의 요소들을 끌어드렸다. 1920년대에 건축가 A. F. 위키즈(Wickes)는 성가대, 오르간 연주대, 지휘자를 (주의 만찬)식탁 뒤에 배치한 최초의 “분할된 성단소(聖壇所)”를 가진 성소(聖所)를 설계하였다. 1930년대에 일요일 저녁예배가 사라졌고, 신앙부흥운동을 대신해서 신앙교육이 새로운 교인들을 늘리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렇지만 스톤-캠벨운동의 신학적 특질들, 즉 신비적인 것들이 아닌 이성적인 것들에의 역설(力說), 전도설교에의 강조, 구원이 믿음으로 복음을 듣고, 죄들을 회개하고, 침례를 받고, 성령님으로 선물들을 받음으로 온다는 주장, “나를 기념하여” 행한 일종의 기념식으로써 주의 만찬을 소중히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인물과 사역에의 열심, 죄를 참회할 준비와 공동으로 고백할 마음이 없는 인류에 대한 낙관적인 해석은 그 운동의 예배생활 속에서 존속되었다.

1923년부터 1953년까지 시카고 소재 유니테리언교도 목회자 본 오그던 보그트(Von Ogden Vogt)에 의해서 시작된 예배운동의 심리학은 일반적으로 개신교 예배와 각별히 (그리스도의) 제자들 예배를 다듬었다. 이 운동의 지지자들은 예배의식의 외형적 형식이 예배자의 내적 상태와 나란히 있을 때 원하는 정서적 반응을 회중한테서 끄집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E. S. 에임스(Ames)와 W. W. 록하트(Lockhart)는 예배운동의 심리학을 제자들 목회자들과 교회들에게 소개하였다. 예배자의 주관적인 상태와 경험의 근거에 대한 강조는 당대의 제자들 예배예식서에 영향을 끼쳤다. 이제부터 목사는 성구를 읽고 설교하는 것을 통해서나 심지어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배의 분위기와 질서를 만들어냄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끄집어내기 위하여 예배를 계획하고 설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예식서들의 저자들은 회중의 선호, 특히 설교와 성만찬의 배치에 대한 선호가 예배질서를 결정함에 있어서 다른 고려의 대상들을 억눌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배운동의 심리학은 1953년에 출판된 G. 에드윈 오스본(Edwin Osborn)의 <그리스도인 예배: 예식서>(Christian Worship: A Service Book)에서 최고점에 달하였다. 이 기념비적 업적에서 오스본은 의식의 통일을 위해서 전체 105개인 테마들을 사용할 것을 호소하였다. 예배요소들은 예배자의 의식 속에서 매번 번갈아 반복되는 명확한 주기에 부합한 일반적인 모범을 따랐다. 4개의 주요 운동들, 즉 흠숭행위(an Act of Reverence), 친교행위(an Act of Fellowship), 헌신행위(an Act of Dedication) 및 회복행위(an Act of Renewal)가 확인되었다. 이 주기는 번갈아 사용하는 모범을 반영했다. 예배자의 흠숭태도는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은 예배자에게 친교의식을 가져다주셨다. 번갈아서 이 친교의식은 예배자안에서 헌신의 태도를 일으켰다. 그 뒤에 하나님은 예배자에게 응답하시고 능력주심의식을 가져다주셨다.

오스본의 예식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제자들의 예배생활을 보강하였다. 첫째, 그 예식서는 초대교회, 에큐메니즘교회 및 현대교회의 자료들을 포함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예전의 환경을 넓혀주었다. 둘째, 그 예식서는 예배자의 의식이 따라간 예배를 위한 명확한 모범을 소개하였다.

이 기간에, 에큐메니즘에 대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열정은 지속되었다. 피터 애인즐리(Peter Ainslie), C. C. 모리슨(Morrison) 및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과 같은 지적인 지도자들은 더욱 폭넓은 교회를 포함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 회담들을 확대하였다. 그 결과로써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제자들 예배의 특성과 내용은 에큐메니즘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대부분 영향을 받았다. 비록 W. B. 블레이크모어(Blakemore), 콜버트 카트라이트(Colbert Cartwright), 피터 모르건(Peter Morgan), 로널드 알렌(Ronald Allen)과 같은 여러 (그리스도의) 제자들 지도자들이 예배분야에 출현하였지만, 키스 왓킨즈(Keith Watkins)는 20세기 후반 삼분의 일 기간에 교회의 예배생활에 매우 크게 또 막대하게 공헌하였다. 제자들 유산, 에큐메니즘교회의 예전전통, 동시대 문화를 포함하는 세 겹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는 왓킨즈의 많은 저서들은 주님의 만찬의 매주 거행을 교회신앙의 심장으로 확인하였고, 성서, 설교, 성례전의 전통적인 연속성을 확언하였다.

왓킨즈가 (그리스도) 제자들 예배에 끼친 가장 귀중한 공헌은 제자들의 에큐메니즘 책무를 신중하게 다룬 1987년 예배서, <감사 찬양>(Thankful Praise)을 편집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왓킨즈에게 예배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계시에 대한 응답으로 죄인이면서 구속받은 인간들이 바치는 공동의 감사와 찬양이기 때문에,” 그 책은 예배의 주관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차원들에 대한 오스본(Osborn)의 지나친 강조에 역점을 두고 다룬다. 게다가 그 책은 성례전 예배의 더 광대한 흐름 속에 (그리스도의) 제자들 예배의 위치를 정한다. 주의 만찬의 중요성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강조를 복구한 것은 회중예배를 위한 통합적 원칙을 공급할 뿐 아니라, 일요일 아침 예배에 말씀과 성례전 모두를 포함하는 규범적 그리스도인의 실천과의 연속성을 또한 보존하였다. 예배 자료들을 위한 5개의 주요한 출처들과 회복의 6개의 원리들을 인용한 후, <감사 찬양>은 5개의 표제어들, 즉 “공동체의 집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다,” “공동체가 주의 식탁둘레로 오다,” 그리고 “공동체가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나가다.”를 담은 예배질서를 제안하였다.

21세기 초기에 (그리스도의) 제자들 예배모범들은 다르지만 동일함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들은 그대로다. 비록 주의 만찬의 배치가 예배질서에서 서로 다를지라도, 주의 만찬은 예배를 정착시킨다. 성구집(lectionary)이란 말의 사용과 마찬가지로 “성례전”(sacrament)이란 용어는 이전보다 더 흔하게 사용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설교들은 여전히 이성적이고 교육적이며, 성서에 기초한다. 또 로널드 알렌(Ronald Allen)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여 오신 것을 강조하는 직설법은 행하고 있고 또 행할 것이다.” 장로들은 (주의 만찬)식탁에서 기도하며, 보통은 집례목회자를 동반한다. 다양한 음악종류들과 각가지 악기들은 신실한 예배와 찬양에 도움이 된다. <챌리스 찬송가집>(Chalice Hymnal, 1995)과 <챌리스 예배>(Chalice Worship, 1997) 예식서를 사용하는 회중(교회)들은 공동예배를 부유하게 만드는 시편교독문들, 호칭(呼稱)기도들, 기도들, 모범예식들과 함께 풍부한 찬송가들을 갖는다.

그럼에도 긴장들은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주의 만찬의 중요성 또 각별히 (주의 만찬)식탁에 그리스도께서 임재 하신다는 지속적인 믿음(헌신)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만찬의 체계적인 해석이 결핍되어 있다. 게다가 침례 받은 어린이들과 침례 받지 아니한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주의 만찬에 참여할 자격을 줄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대개의 개신교 주류 교회들처럼, 제자들 회중(교회)들은 “구도자 예배”(seeker service)와 “현대” 예배들(contemporary services)과 같은 대안적 예배의 형식들을 실험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회중예배에 미치는 “전자문화”(electronic culture)의 영향들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반드시 결정해야하는 것이다.

비록 미래 (그리스도의) 제자들 예배의식들의 특별한 모습이 분명치 않게 남아 있을지라도, 캠벨로부터 왓킨즈(Watkins)까지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예배의 구조가 말씀과 성례전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Paul H. Jones

2.2. 그리스도의 교회들

1906년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연방종교통계조사(Federal Religious Census)에서 개별 종교 단체로 등록되었을 때, 대부분의 회중(교회)들은 주변부 주(州)들과 작은 마을들 및 시골지역들에 있었다. 그들이 예배에 접근한 방식들은 스코틀랜드 침례교인들의 관행들을 번갈아 끌어올린 스톤-캠벨 운동 초기의 모범들을 반영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 세기 중반에 대부분의 독특한 스코틀랜드 침례교인들의 특색들은 사라져버렸다. 그 세기가 끝났을 때, 대다수의 회중(교회)들은 그 초기 세기의 특색을 이루는 예배 유형에 머물렀다. 그런데 다른 회중(교회)들은 크고 독립적이며 전도하고 성령운동 하는 교회들의 특색을 이루는 특징들을 통합하였다.

20세기 초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예배가 다섯 개의 행동들로 이뤄진다고 믿었다. 이 견해를 누가 발안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812-1878)이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들 다섯 개의 행동들은 1951년 에빌린 그리스도인 강연회에서 존 밴니스터(John Banister, 1910-1995)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사도교회의 예배는 다섯 가지 별개의 행동들 혹은 주일예배의 항목들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는 (1)주의 만찬, (2)찬양, (3)기도, (4)설교, (5)헌금을 차례대로 나열하였다. “성서적이려면 우리의 주일예배는 이 다섯 가지 필수항목들 모두를 반드시 포함해야한다”고 그는 밝혔다. 1920년 에빌린 크리스천 대학 강좌에서 M. C. 컬피즈(Kurfees, 1856-1931)는 여섯 번째 항목으로 성경봉독을 포함시켰다. 이들 모든 행동들이 아직도 유지되지만, 그 정확한 개수와 형식화는 더 이상 많은 교회들에서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상당수가 모세 라드(Moses E. Lard)가 1863년 그의 <계간>(Quarterly)에서 이상적인 교회로 상설(詳說)한 방식으로 예배를 드렸다. 대부분의 회중(교회)들은 예배당건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작았다. 라드는 개울들에서 침례 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그러므로 그 예배당들에는 침례탕이 없었다. 이 관행은 1940년대까지 대부분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지속되었다. 종종 남성들은 한 쪽에, 여성들과 아이들은 다른 쪽에 앉았다. 이런 관행은 20세기 초반에 하나둘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노래들은 이전 세기의 표준영어 찬송가들이었다. 또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성경이 봉독될 때 일어섰고, 기도들이 드려질 때 무릎을 꿇었다. 설교는 교훈적이었고 단순하였다. 주의 만찬은 종종 전체 예배당을 가로질러 펴놓은 식탁에서 거행되었고, 회중은 둥글게 모였다. 주의 만찬을 먹는 이 방식은 특별히 스코틀랜드의 침례교인의 방식이었다. 회중은 또 일요일 저녁에 다시 모였고, 오전에 다뤘던 장(章)의 성경공부를 복습하였다. 추측컨대 누구나 심지어 여성들조차도 의견을 말하였다.

1920년대에 많은 수의 교회들에서 노래들과 음악작품들의 방식이 바꿨다. 그 세기의 전반에 자주 불렀던 찬양들은 위대한 전도자(부흥사)들인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 1837-1899)와 빌리 선디(Billy Sunday, 1862-1935)가 즐겨 불렀던 찬양들이었고, 아이라 생키(Ira D. Sankey, 1840-1908), 호머 로드히버(Homer A. Rodeheaver, 1880-1955), 패니 크로스비(Fanny J. Crosby, 1820-1915)가 쓴 찬양들이었다. 1920년대 라디오의 인기가 높았을 때 컨트리 뮤직의 인기도 한창이었다. 복음성가 작가들은 행진곡들, 흑인 영가들, 래그타임(ragtime) 및 딕시랜드(Dixieland) 재즈를 목하 만들었다. 새로 쓰인 노래들은 4중창단들에 의해서 라디오 방송에서 불렸고, 권당 25센트 정도에 팔린 종이표지 책들로 인쇄되었다. 4중창단의 노래들은 블랙우드 브라더즈(Blackwood Brothers)와 함께 버질 스탬프스(Virgil O. Stamps, 1892-1940)와 J. O. 백스터(Baxter, 1887-1960)에 의해서 촉진되었으나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몇몇 지도자들 또한 복음성가들을 쓰는데 참여하였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은 앨버트 브럼리(Albert E. Brumley, 1905-1977), 윌 슬래터(Will W. Slater, 1885-1959), 틸리트 테들리(Tillit S. Teddlie, 1885-1987) 및 루터 프레슬리(Luther G. Presley, 1887-1974)이다. 일요일 오후 찬송하기들은 전 지역에 걸쳐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붐이 일었다.

1930년대에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몇몇 회중(교회)들은 교인들이 100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비록 기도 담당자가 “우리가 (주의 만찬)식탁 둘레에 모임으로써 다 같이 참예합시다”라고 선포할는지 몰라도, 예배 참석자들은 더 이상 (주의 만찬)식탁 둘레에 모이지 않았다. (주의 만찬)식탁은 여전히 길었고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떡은 무교병이었고, 납작했으며, 집에서 만든 것이었다. 그것은 쪼개지지 않은 덩어리인 채로 하나의 접시 위에 놓였다. 포도주스는 한 컵 또는 한 성배에 담겨서 배찬 되었다.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소수의 교회들을 제외하고는 다수의 컵 사용이 표준이 되었다. 헌금하는 자들은 여전히 앞으로 걸어 나갔고, 누가 무엇을 드리는지를 알 수 없도록 천 밑으로 돈을 넣었다. 침례를 받거나 죄를 고백하고 싶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매번 예배의식 끝에는 초청송이 불렸다.

1940년대 후반에 도시와 도시주변 회중(교회)들은 예배를 좀 더 정리되고 위엄 있게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회중(교회)들은 예배위원회들을 임명하였고, 이번에는 위원회들이 예배순서를 만들고 예배인도자들을 임명하였다. 곧이어 예배순서들은 교회주보나 별지에 실리기 시작하였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그들이 생각하기를 덜 위엄을 갖춘 스탬프스-백스터 유형의 노래들로부터 회중(교회)들을 떼어놓으려는 노력이 이뤄졌다. E. L. 졸겐슨(Jorgenson)에 의해 편집된 <교회의 뛰어난 찬송들>(Great Songs of the Church)은, 비록 졸겐슨의 전천년설이 몇몇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책을 의심스럽게 만들었지만, 널리 사용된 찬송가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에 교회성장을 장려하는 자들은 더욱 활기 넘치는 곡조들이 요구되고 있고, 그래서 많은 스탬프스-백스터 노래들이 다시금 불리고 있으며, 알톤 하워드(Alton H. Howard, 1925년생)가 편집한 <교회 찬송들>(Songs of the Church, 1971)속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찬송가책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그리스도의 교회들 에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이미 전도와 성령 운동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예배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한 가지 초기 징조는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전도단들의 주제곡인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How Great Thou Art)의 인기였다. 특히 청소년 캠프들과 학원선교들에서는 전도와 성령 운동단체들이 만든 신곡들이 널리 애창되었다. 이것들의 모음집이 출현했고, 몇몇 회중(교회)들은 전자적으로 편곡한 그들 자신의 번안(飜案)들을 발전시켰다. 그 노래들은 종종 성경구절에 기초되었고 찬양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출신들이 만든 훨씬 대중적인 몇 개의 곡들은 에이미 베쉬어(Amy Bessire, 1950년생)에 의한 “주님의 끈질긴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The Steadfast Love of the Lord Never Ceases)와 게리 매브리(Gary Mabry, 1951년생)의 “파란 하늘과 무지개”(Blue Skies and Rainbows)였다. 100곡이 넘는 이들 신곡들은 알톤 하워드(Alton Howard)가 편집한 㰡”믿음과 찬양의 노래집㰡•(Songs of Faith and Praise, 1994)에 담겼고, 20세기말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찬송가집들 중의 하나였다.

현대음악을 소개하려고 회중(교회)들은 노래들을 스크린에 비춰주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슬라이드들이나 오버헤드프로젝터들을 쓰다가 나중에는 디지털프로젝터들을 이용하였다. 많은 수의 대형교회들에서 설교를 뺀 예배부분은 남녀 모두로 혼합된 예배 팀들에 의해서 목하(目下) 꾸며지고 있다. 노래하기는 남녀 동수로 구성된 8-10명의 싱어들에 의해서 이끌어진다. 싱어들은 각기 마이크를 들고 그것으로 볼륨과 에너지와 속도를 향상시킨다. 기본적인 예배모범은 상당부분 시카고 인근에 소재한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복음주의 독립교회의 덕분이다.

이 모든 20세기의 접근들의 흥미로운 혼합을 캘리포니아 주(州) 콤프턴(Compton)에 소재한 흑인이 현저히 많은 모나 블러바드 그리스도의 교회(Mona Boulevard Church of Christ)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교회는 약 400명의 교인들을 갖고 있다. 예배당의 앞 공간은 여전히 흰 천들로 덮인 긴 성만찬 식탁이 차지하고 있다. 1930년대에 회중(교회)의 장로들이 그랬던 것처럼 회중을 이끄는 남성들은 기도 때 무릎 꿇을 자리들을 남겨둔 채 식탁 앞에 앉는다. 그들의 노래들은 스탬프스-백스터의 다양한 곡들과 현대흑인영가의 혼합 찬양들이다. 최근에는 이들 이끄는 모든 남성들에게 마이크가 주어졌고, 이제는 회중을 향해 돌아서서 예배 팀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별도의 어린이 예배의식들이, 특히 큰 회중(교회)들에서, 일반적이지만, 어린이들이 그들만의 예배를 위해서 자리를 뜨기 전에 모든 참석자들이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이 종종 있다. 일부 회중(교회)들은 드라마와 다른 혁신적인 기교들을, 이따금씩 기악을 포함해서, 시도해왔다. 물론 이런 경우가 일요일 아침예배에서는 극히 드물다. 설교와 음악은 쇄신의 대상으로 크게 주목받으면서 또 주의 만찬은 모든 회중(교회)을 위한 절대불변의 것으로 계속 남는다.

Thomas H. Olbricht

2.3.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비록 예배에서 주의 만찬을 언제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배치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그 운동의 시작 때부터 보인 예배 경향들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유급 목회의 발생으로 설교는 초청의 시간과 함께 우세한 위치에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모범은 순회전도자였다. 순회전도자는 초청찬양 또는 결심찬양으로 불린 찬송을 부르는 동안 회심의 공개 고백을 이끌어내는 설교에서 정점에 이르도록 자신의 예배들을 준비하였다. 그래서 일요일 예배는 주의 만찬이 첨가된 작은 전도 모임들이 되었다.

1940년까지는 다수의 예배예식서들과 찬송가집들이 출판되었고, 일요일 아침예배들은 그 길이가 2-3시간에서 1시간까지 짧아졌으며, 일요일(주일) 학교는 흔한 것이 되었고, 등사판은 거의 모든 회중(교회)들에서 인쇄된 예배순서들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런 발전들은 회중(교회)들 사이에서 훨씬 더 많은 합의를 끌어냈다.

세기 중반에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사이에 점증하는 불화는 더 보수적인 회중(교회)들이 초기의 예배관행들을 경화하는 결과를 동반하였다. 119개의 그 같은 중서부 회중(교회)들에 대한 1980년의 연구에서 린 히에로니무스(Lynn Hieronymus)는 85퍼센트가 예배 끝에 설교와 초청시간을 갖고 있고, 회중의 찬양하기로 복음성가들을 현저히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들 교회들은 주의 만찬을 공동예배의 절정 행위로 보았으나 설교는 동등하게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인 예배의 가장 결정적인 행동이다.... 그것 속에 전체 복음이 담겨있고 출발한다”는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의 의견에 동감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로빈슨의 어휘에 유쾌해하지 않을 것이다. 로빈슨이 주의 만찬과 그것의 질서를 기술함에 있어서 “성례전”(sacrament)과 “축하하는 자”(celebrant)와 같은 단어들을 채용하기 때문이다. 그 지도자들은 “고 교회”(high church) 교파들과 결부시켜 생각나게 하는 용어들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성만찬에 접근하는 방법은 어휘와 행동 모두에서 단순하다. 비록 사람들이 성찬을 받도록 초대받는 방법에 있어서 점증하는 다양성이 있지만, 대개의 의식들에서 성만찬 명상(communion meditation, 짧은 설교)은 적절한 본문의 똑바른 봉독이고 성만찬 식탁이 주님의 식탁, 즉 그 식탁에로 우리는 그 누구도 초청하지 않고 또 그 식탁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내쫓지 않는 주님의 식탁이란 것의 설명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의 자기성찰에 따라서 참예하거나 혹은 참예하지 말라는 권함을 받는다. (통례적으로 남자들인) 장로들은 떡과 잔을 위해 기도들을 드리고, 집사들은 이들 요소들을 회중에게 배달한다. 통례적으로 성찬기들에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스를 채운 개인용 컵들이 담겨져 있다.

이런 예배의식들을 채우는 것은 음악, 기도들, 성경봉독들, 설교 그리고 광고들이다. 음악은 20세기 후반에 다시 논쟁점이 되었다. 전자 키보드들과 찬양밴드들의 출현으로 음악의 유형들은 근본적으로 바꿔왔다. 복음성가와 찬송가 대신에 찬양단들의 광범위한 사용은, 변화가 불가피하더라도, 그것이 천천히 일어나길 원하는 자들과 그 유형들을 즉시 최신의 것으로 경신하기를 원하는 자들 사이에 긴장이 많은 회중(교회)들에서 증대되어왔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는 더 두고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옛 것과 새것의 음악유형들뿐 아니라, 옛 예전행위들과 현대 예전행위들의 흥미로운 혼합들에 대한 암시들은 있다.

기도는 회중(교회)의 다양한 교인들에 의해서 인도된다. 담임 목회자(설교자)는 보통 중요한 중재기도를 인도한다. 기도 전에 교인들은 기도 받고 싶은 염려들을 이야기하도록 권면 받는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주의 만찬의 떡과 잔을 위한 기도들은 거의 언제나 장로들에 의해서 인도된다. 개회기도들(Opening prayers)과 폐회기도들(closing prayers)은 설교자나 그 의무에 할당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하게 인도된다. 봉헌기도는 종종 장로나 헌금을 거둔 집사들 중 한 사람이 인도한다. 이들 기도들은 거의 언제나 즉흥적이다.

성경봉독들의 횟수와 길이는 회중(교회)들 사이에 매우 다양하다. 일부 회중들에서 읽혀지는 유일한 성구는 설교본문(들)과 설교 속에 있는 본문(들)뿐이다. 다른 회중(교회)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정식 성구집이나 설교자에 의해서 선택된 구약성서, 복음서 및 서신서 본문들을 듣는 데 익숙하다. 대개는 설교 속에서 인용된 성구들에 더해서 두 개의 본문들을 아마 더 듣게 될 것이다. 성경봉독은 종종 회중의 평신도들이 맡아한다.

설교는 아마 강해식일 것이고 예배의식이 끝날 무렵에 헌신시간에로 안내할 것이다. 광고들은 예배의식의 여러 곳들에 배치된다. 일부 큰 교회들은 그들의 예배의식들에서 여러 가지 혁신적인 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삶의 한 부분”이나 하나의 성서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연극 같은 짧은 희극들이 예배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사용된다. 훨씬 전문적인 음악의 제공들이 예배의 지휘나 (신앙의) 고백으로써 뚜렷해지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한 설교들 혹은 어린이들을 위한 별도의 예배의식들은 또한 평범한 것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사이의 공동예배 관행들은, 예전의 구조와 음악의 유형들과 커뮤니케이션 모두에서 더 많은 다양성을 발전시키면서, 계속해서 주의 만찬에 집중할 것이고, 성서적 설교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회중(교회)들은 더욱 의도적으로 전도적일 것이고, 다른 회중들은 흠숭(欽崇)에 집중할 것이다. 그들의 일치는 예배의 다른 국면들에서 실험할 자유와 더불어 (주의 만찬)식탁과 말씀의 본질들에 있게 될 것이다.

Bruce E. Shields

또한 찬송가(Hymnody), 주의 만찬(Lord's Supper, The), 목회(Ministry), 의식(Ordinance), 기도들(Prayers), 설교(Preaching), 성례전(Sacrament)을 보시오.

참고도서(Bibliography)

Harry B. Adams, “Worship Among Disciples of Christ, 1865-1920,” Mid-Stream 7 (Summer 1968): 33-49 • Ronald J. Allen, “'Worship Among Disciples: Literature and Practice‘ - Some Further Considerations,” Disciples Theological Digest 3 (1988): 23-30 • William S. Banowsky, “Edification Through Worship,” in The Mirror of a Movement (1965), pp. 242-48 • W. B. Blakemore, “Worship Among Disciples of Christ, 1920-1966,” Mid-Stream 7 (Summer 1968): 50-65 • Alexander Campbell, The Christian System (1839) • Alexander Campbell, “A Restoration of the Ancient Order of Things,” no. 5: “Order of Worship,” Christian Baptist 2 (1825): 164-66 • Alexander Campbell, “Being an Extract from the Preface to a Selection of Psalms, Hymns, and Spiritual Songs,” Christian Baptist 5 (1827): 395-97, 406-7 • Fred B. Craddock, “Worship Among Disciples: Literature and Practice,” Disciples Theological Digest 3 (1988): 5-22 • Dan Dozier, Come Let Us Adore Him: Dealing with the Struggle over Style of Worship in 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 (1994) • James O. Duke, “The Disciples and the Lord's Supper: A Historical Perspective,” Encounter 50 (1989): 1-28 • Charles Gresham and Tom Lawson, eds., The Lord's Supper: Historical Writings on Its Meaning to the Body of Christ (1993) • Lynn Hieronymus, What the Bible Says About Worship (1993) • Roderick E. Huron, Christian Minister's Manual (1984) • Judith K. Jones, “Changing Authority and Practice in Disciples Worship: 1880-1989,” Encounter 52 (Spring 1991): 147-82 • Paul H. Jones, “Disciples at Worship: From ’Ancient Order‘ to Thankful Praise,” in Christian Faith Seeking Historical Understanding, ed. James O. Duke and Anthony L. Dunnavant (1997), pp. 227-45 • Moses E. Lard, “My Church,” Lard's Quarterly 1 (December 1863): 141-54 • Johnny Miles, “Origins of Alexander Campbell’s Eclectic Theology of Worship,” Discipliana 55 (1995): 35ff. • Thomas H. Olbricht, “The Invitation: A Historical Survey,” Restoration Quarterly 5 (1961): 6-16 • G. Edwin Osborn, ed., Christian Worship: A Service Book (1953) • William Robinson, A Companion to the Communion Service: A Devotional Manual (1942) • Mike Root, Spilt Grape Juice: Rethinking the Worship Tradition (1994) • Leigh Eric Schmidt, Holy Fairs: Scotland and the Making of American Revivalism (2001) • Walter W. Sikes, “Worship Among Disciples of Christ, 1809-1865,” Mid-Stream 7 (Summer 1968): 5-32 • Barton W. Stone, “A Ramble,” Christian Messenger 13 (1844): 129-33, 166-8, 197-200 • Barton W. Stone and Thomas Adams, eds., The Christian Hymn Book (1829). Dean E. Walker, Adventuring for Christian Unity and Other Essays, ed. Thomas Foust (1992) • Keith Watkins, Celebrate with Thanksgiving: Patterns of Prayer at the communion Table (1991) • Keith Watkins, ed., Thankful Praise (1987) • Earl I. West, et al., compilers, The Pioneers on Worship: Presenting the Views of Alexander Campbell, Dr. Robert Richardson, Moses E. Lard, and a Number of Others (1947) • Douglas A. Wirt, “Liturgy, Evangelism and Local Theology: Worship Practices of Numerically Growing Disciples of Christ Congregations in the Western United States” (D.Min. dissertation,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 1998).

BRUCE E. SHIEL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