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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4-17 09:06
속죄(Atonement)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072  

속죄(Atonement)

번역 조동호 목사
출처: John Mark Hicks, "Atonement," in the The Encyclopedia of the Stone-Campbell Movement.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使役) 교리, 즉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구속적 의미에 전통적으로 집중되고 있는 교리. 스톤-캠벨 운동의 견해들은 속죄론에 이견을 가진 자들 사이에서 펼쳐진 19세기 신학논쟁을 반영한다.

세 가지 주된 견해들이 19세기 미주(美洲)에 존재했었다. (1)캔터베리의 안셈(Anselm)에 의해서 처음 체계화 되고 개신교 신학에서 더 발전된 형벌 대속이론(penal substitution), (2)17세기 네덜란드인 신학자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에 의해 창안된 통치이론(the governmental theory) 및 (3)중세 신학자 피터 아벨라르(Peter Abelard)와 나중에 소치니파 운동(Socinian movement)과 관련된 도덕 감화론(the moral influence theory)이 그것들이다. 형벌 대속 주창자들은 죄인들이 받아야할 법적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아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완고한 정의를 만족시키셨다고 주장하였다. 통치이론 주창자들은 엄격한 정의에 따른 충분한 죗값을 요구하지 않고, 그 대신 공의의 한 형태 즉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경고로써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셨다고 믿었다. 도덕적 감화 주창자들은 은총으로 죄인들을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로써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 가르쳤고, 형벌 만족이나 공의 개념들과의 어떤 관련도 인정하지 않았다.

스톤-캠벨운동의 구성원들은 19세기 내내 이들 세 가지 이론들을 토론하였다. 제1세대인 발톤 W. 스톤(Barton W. Stone)은 도덕 감화론 주창자였다. 캠벨 부자(Campbells)와 월터 스콧(Walter Scott)은 형벌 대속이론과 통치이론 모두의 내용들에 공감하였다. 토론은 1830년대와 1840년대 초기에 간헐적으로 있었다.

스톤은 그의 사역 초기에 형벌 대속이론에 반대하였다. 그의 첫 번째 책은 도적 감화이론을 변호하였다(1804). 그리고 노아 우스터(Noah Worcester)가 <속제제물: 진노가 아닌 사랑의 표현>(The Atoning Sacrifice: A Display of Love - Not of Wrath, 1829)을 출판하자 그는 그것을 <그리스도인 메신저>(Christian Messenger)에서 우호적으로 논평하였다. 그는 그 논문을 승인하였고, 더 깊은 연구를 위해서 자신이 쓴 <그리스도인의 교회에 보내는 제언>(Address to the Christian Church, 1821)을 읽도록 추천하였다. 스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요한 도덕적 감화를 죄인에게 끼치지만, 하나님에게는 어떤 도덕적 효과나 감화도 끼치지 않는다고 믿었다. 십자가의 목적은 인류를 회개시키려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진노가 은혜로 바꿔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인류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셨다. 스톤의 출발점은 신학적 격언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였고, 십자가의 기능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는 죄의 형벌이나 진노의 표지로써 기능하지 않고, 죄인들을 회개에로 이끄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스톤은 그러므로 죄의 전가로 “죄를 짊어짐”이나 법정 정의와 어떻게든 연관 짓는 것에 반대하였다. 죄인의 뻔뻔함을 빼고는 죄 사함을 가로막을 어떤 장애물도 없다.

스톤의 대속신학은 신앙부흥운동의 상황에서 왜곡되었다. 그는 사역 초기에 죄인들을 믿음에로 초청할 때, 형벌 대속교리로 인해 당황스러워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이 선택된 자만을 위해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켰다는) 예정론이나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자를 위해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켰다는) 만인 구원론 가운데 한 가지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스톤은 예정론과 만인 구원론 모두에 반대하였다. 이 당혹감으로부터 세 가지 확신이 명확해졌다. (1)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고, 기꺼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하신다. 하나님은 이 진술에 대한 증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공하셨다. (2)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변화시키는 복음을 전유(專有)할 능력을 갖고 있다. 또 (3)만인 구원론은 마땅히 거부당해야하고 전도의 화급성은 유지되어야 한다.

1832년에 (스톤의) 그리스도인들과 (캠벨의) 개혁가들 사이에 새로운 연합이 이뤄지자 알렉산더 캠벨은 속죄에 관한 토론을 권장하였다. 토마스 캠벨은 우스터의 (따라서 스톤의) 이론이 “근본적인 오류들”을 포함한다고 느꼈다. 캠벨 부자 모두는 도덕 감화이론이 충분한 비중을 하나님의 정의에 두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정의에 상관없이 단지 본보기 혹은 사랑의 표현”으로 설명하려드는 어떤 시도도 “신정(神政)의 기초”를 파괴하고 “죄를 없애고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정의와 자비를 영화롭게 하는 모든 복음을” 유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에 대한 형벌의 효력들” 혹은 “자기 백성을 위한 법적 형벌”을 아들이 감내함으로써 확대된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의롭게 하시는 자 둘 다 이셔야 하고 또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애 때문에 벌을 받으시는 곳에서 형벌 대속을 통하여 달성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죄를 공정하게 제거하시고 죄인이 구원받도록 하신다. 정의는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에서 하나의 작용원리로써 드러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사랑의 한 표현일 뿐 아니라, “죄를 사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심만큼 정의를 표명하시는데 필수적”이다.

알렉산더 캠벨에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셨고, “응분의 보상 혹은 [우리의] 죗값, 즉 슬픔, 고난, 죽음을, 죄과에 대한 충분한 보답이 되는 선까지, [우리의] 보증이신 구세주로서 떠안고 감내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유죄에서 정당하게 무죄가 된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자들을 정당하게 무죄로 선언하시기 위해서는 아주 “막대한 죄과와 죄의 해악”을 짊어질 담보물이나 대속물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단지 죄인의 마음을 다루기보다는 하나의 정언(category)으로써 죄를 다뤄야 한다. 캠벨은 하나님의 불변의 거룩하심이 당신의 정의를 옹호하는 하나님의 어떤 행위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신성과 적법한 대속”을 부인하는 그 어떤 “더 온건한 복음적인 법”을 반대하였다.

1834년 월터 스콧은 속죄가 적어도 부분적으로 정의의 기능이었다는 것을 견지하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정의를 “화목제물”이신 예수님 안에서 표명하셨다. 스콧은 이 정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형벌 대속과 도덕 감화 모두를 반대하였다. 한편 그리스도의 죽음이 죗값으로 하나님께 보답된 “동등한” 혹은 “정확한 양의 복수”는 아니었다. 이 같은 것은 영리나 상업적인 정의감일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죗값을 충분히 지불하셨다면, 빚이 청산되어졌을 것이므로 자비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다른 한편, 도덕 감화이론은 정의를 위한 어떤 역할도 전혀 갖지 않는다. 스콧은 하나님의 정의의 표명이 알렉산더 캠벨도 단언한 직책 곧 속성(屬性)에서 정치적이거나 통치적이라고 믿었다. 정치적 정의는 공공의 안전과 법 존중을 위해 “공동선”을 찾는다. 하나님은 도덕 통치자로서, 죄로 인한 처벌을 무시함으로써 “당신의 정의의 속성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대신에 공무원으로서 당신의 속성을 확고히 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정의를 표명하시고 당신의 자비를 베푸신다.

통치이론은 19세기 중반에 중요성이 커졌고, 스톤-캠벨역사에서 속죄에 관한 가장 긴 논문의 주제였다. <라드의 계간지>(Lard's Quarterly, 1868)에 “클레멘트”란 익명으로 도덕 통치이론가는 성육신의 필요성이 그의 “지위와 개인의 가치”가 충분히 커서 하나님의 통치경륜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자의 필요성에 근거한다고 주장하였다. 논문에 제시된 대속개념은 합법적인 죄의 전가가 아니라, 단순히 “범죄자들을 대신해서 당신의 몸을 주는 대속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들이 형벌을 받는 대신 당신께서 수난을 받는 대속“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경륜“ 정의뿐 아니라, (동등한 지불의) 상업적 정의 혹은 (죄에 대해 충분히 벌점을 주는) ”보복“ 정의를 만족시키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것이 우주의 도덕적 통치자로서 당신의 은혜가 발휘될 올바르고 명예로운 방법을 개방하였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자비로우시게 하였다. 하나님은 적절한 명예가 당신의 통치와 공동선에 과시되었기 때문에 자비로우실 ”타당한 이유“를 가지셨다. 다른 기사들은 이 전례를 따랐다. 도덕 통치이론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한 주창자는 토마스 문널(Thomas Munnell)이었다.

전반적으로 미국신학은 그러나 도덕 감화이론에로 옮겨가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스톤-캠벨운동은 도덕 감화이론에로 기울였고, 특히 새로 생겨난 그리스도의 제자들 안에서 그랬다. 형벌과 통치 이론가들로부터 반복된 반대에 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도덕 감화이론은 몇 분기 이후 점차 우위를 점하였다. 19세기 마지막 분기에서 도덕 감화이론의 중요한 주창자는 J. S. 라머(Lamar)였다. 그는 두 개의 중요한 논문들, 즉 그가 1877년에 쓴 누가복음 주석에 포함시킨 부록과 개리슨(Garrison)이 1891년에 쓴 <옛 신앙 재 진술>(The Old Faith Restated)에 실은 기사에서 그의 견해들을 공포하였다. 개리슨의 <그리스도인 전도자>(Christian-Evangelist)는 형벌 대속이론과 통치이론에 반하는 도덕 감화이론의 장점들을 논의하는 토론장이 되었다. 특히 1895-96년에 통치이론의 문널(Munnell)과 형벌 대속이론의 C. S. 피어스(Pierce)와 활발한 토론을 펼친 피터 보겔(Peter Vogel)이 쓴 기사들에서 그랬다. 도덕 감화이론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서 득세하였다.

19세기에 속죄 토론의 일반적인 경향은 형벌 대속이론에서 통치이론에로 옮겨갔고, 도덕 감화이론이 두드러진 현상이 되었다. 이 경향은 개혁주의와 감리교 전통들 속에서의 전개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19세기 말 10년과 20세기 초 수 십 년 동안 형벌 대속 이론은, 그것이 언제나 <그리스도인 전도자>(Christian-Evangelist)에서 작은 자리를, <그리스도인 표준>(Christian Standard)에서 더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해왔으므로, <복음 주창자>(Gospel Advocate)에서 재개되었다. 형벌 대속이론의 부활은 R. H. 볼(Boll)의 저술에 설명되었듯이, 제임스 하딩(James A. Harding), 데이비드 립스콤(David Lipscomb), 내슈빌성서학교의 영향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벌 대속은, 비록 통치이론이 종종 표현되곤 했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의 두드러진 견해가 되었다. 그것은 신대륙신학의 결과와 근대주의와 근본주의와의 싸움의 결과로써 더 다급해진 캠벨의 시각에로와 스톤의 속죄이론의 거부에로의 복귀였다.

속죄에 대한 토론은 스톤과 캠벨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그것은 종종 토론의 중심 주제였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 계간 평론>(Christian Quarterly Review, 1882.4-1888.1)에 처음 5년 동안 속죄교리에 관한 여섯 개의 주요 논문들(통치이론 2개, 도덕 감화이론 3개, 형벌 대속이론 1개)이 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토론이 공론(空論)에 불과하고 무익하다고 믿었다.

그 논쟁에 반대한 자들의 저술들에는 세 개의 주제들이 상존했다. 첫째, 누구든지 성서언어로만 말하고 속죄에 관한 모든 학술용어들을 삼가야한다. 둘째, 누구든지 그것의 철학을 설명하기보다는 복음의 사실들을 선포하는데 집중해야한다. 셋째, 누구든지 속죄 이론들을 논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밝혀져 있지 않고, 그래서 불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들 주제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이면으로 밀어붙이는 동시에 복음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전면에 내세우려고 하였다. 그것은 토론을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로부터 인간이 무엇을 해야하는가에로 옮겼다. 그것은 토론을 구속의 성취로부터 그것의 적용에로 옮겼다.

예를 들면, J. W. 맥가비(McGarvey)는 이론들에 관한 토론이 무익하고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 같은 이론화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지 아니한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것이고, “인간의 지성은 그 문제에 관한 그의 논구가 무엇인지를 결코 확신할 수 없다.” 대신에 맥가비는 조언하기를, “우리가 인간의 편에서 알고 행동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하였다. C. W. 슈월(Sewell)이 1876년 <복음 주창자>(Gospel Advocate)에 기고한 몇 개의 기사들은 이 경향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슈월은 어떤 이론도 결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설교자들은 사실들에만 집중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사실들을 선포해야하고, 신자들을 권고하여 순종하게 해야 하며, 성서에 없는 언어는 모두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속죄 “이론들”에 관한 토론은 신시내티 성서신학대학원의 잭 카트렐(]ack Cottrell)과 전(前) 맨해튼 크리스천 대학(Manhattan Christian College)의 버질 워렌(Virgil Warren)에 의해서 간략하게 재개되었다. 잭 카트렐은 <성서는 구원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What the Bible Says about Salvation, 1982)와 함께 시리즈로 칼리지 출판사(College Press)에서 출판된 그의 <성서는 구세주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What the Bible Says about God the Redeemer, 1987)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카트렐은 워렌의 “개인 간의” (비법정) 견해를 강경하게 반대하였다. 진짜 대속에 관한 의견들과 무죄한 그리스도께 형벌을, 유죄한 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한다는 의견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이 주로 소원해짐을 극복시키려는 것이고, 죄 사함을 통해서, 신성과 인성을 화목 시키려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대치된데 따른 것이었다. 카트렐은 대속과 화목제물의 원리들을 거듭 주장함으로써 발톤 스톤의 속죄이론을 생각나게 한 워렌의 견해를 비난하였다. 카트렐은 또한 캠벨 부자가 받아드렸던 “통치이론”을 성서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말지었다.

속죄에 관한 그 같은 신학적 토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진정되었다. 스톤-캠벨운동의 더 보수적인 지류들에서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신학적” 해석은 주로 속죄에 관한 성서언어를 되풀이해 말하거나 핵심 성서용어들에 관한 낱말 연구들을 수행하는 범위에서 유지되어왔다.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에서 구 자유주의는 예수님의 순결하고 희생적인 삶을 본받음에 집중하였고, 아직도 그 주장을 옹호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좀 더 많은 수의 최근 제자들의 신학자들과 다른 두 지류들의 신학자들은 더 전통적이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견해들의 보유를 권장해왔다.

참고도서(BIBLIOGRAPHY)

Alexander Campbell and Barton Stone, correspondence on “Atonement,” Millennial Harbinger (1840-41), also available at http://www.mun.ca/rels/restmov/texts/bstone/mh/ATONEoo.HTM • Thomas Campbell, "Worcester on the Atonement," Millennial Harbinger (1833): 256-62 • John Mark Hicks, "What Did Christ's Sacrifice Accomplish? Atonement in Early Stone-Campbell Thought," Lexington Theological Quarterly 30 (1995): 145-70 • John Mark Hicks, "Atonement Theology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The Pattern of Discussion within the Stone-Campbell Movement," Discipliana 56 (1996): 116-27 • J. S. Lamar, "Appendix to Chapter XXIV: 44-47: The Atonement," in New Testament Commentary, vol. 2: Luke (1877), pp. 287-300 • David Lipscomb, "The Blood of Christ" and "Vicarious Suffering of Christ," in Salvation from Sin, ed. J. W. Shepherd (1913), pp. 158-91 • David Lipscomb, "The Object of Christ's Death," Gospel Advocate 25 (1883): 406, 423, 449 • Victor McCracken, "The Unitarian and Orthodox Backgrounds of the Stone-Campbell Atonement Debate," Discipliana 58 (1998): 111-25 • Walter Scott, Hë Nekrõsis, or The Death of Christ, Written for the Recovery of the Church from Sects (1853) • Barton Stone, Atonement: The Substance of Two Letters Written to a Friend (1805) • Barton Stone, An Address to the Christian Churches (2nd ed. 1821) • D. Newell Williams, "The Power of Christ's Sacrifice: Barton W. Stone's Doctrine of Atonement," Discipliana 54 (Spring 1994): 20-31.  JOHN MARK HI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