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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10-12 11:39
교회, 종말론적인 공동체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277  
교회, 종말론적인 공동체
The Church, Eschatological Community
http://kccs.pe.kr/thesis07.htm

1. 敎會의 定意


'교회'란 말을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 한다. 이 말은 '불러냄을 받은 공동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나 건물을 말하지 아니하고 회중을 의미한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 교회를 "(1)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2)거룩하여 지고 (3)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4)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말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시고 또 부르셔서 의롭다고 칭하신 자들의 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른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1)"자기 피로 사신" 소유이며(행 20:28), (2)그리스도의 몸이며, (3)구성원 개개인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다(고전 12:27; 엡 1:23, 4:12, 5: 30).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셨다"고하신 바울의 말씀대로(고전 12: 13), 교회란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요, 성스런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들은 그의 몸의 각 부분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적으로 의도적으로 구조적으로 하나이며 우주적이다(엡 4:3-5). 전 세계의 교회가 하나인 것은 그리스도가 한 분이신 것과 같다. 비록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교단이 있고,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교회는 오직 하나인 것이다.


교회는 분명히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불러냄을 받은 것은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제자의 양육을 받으며,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도모코자 함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세워진 하나님의 신령한 나라이기 때문에 세상과 분리되어 격리될 수 없다. 세상 속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의 일군들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세상 속으로 흩어져 전도하며, 봉사하며, 구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교회는 분명히 우주적 공동체로서의 하나님의 영적 왕국이며, 장차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이다(롬 8:18-25; 계 21:1이하; 사 65: 17; 66:22; 벧후 3:13). 또한 교회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하신 말씀처럼, 제도 또는 조직체로서의 교회 즉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말고도 우리 안에 있는 교회 즉 개인의 심령의 교회 혹은 성전 혹은 하나님의 나라(고전 3:16, 6:19; 고후 6:16)가 있을 수 있고, 가정의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교회란 또는 하나님의 나라는 삼위 하나님을 모신 곳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세론적으로 기다려서 얻는 것이 아니오, 침노하여 빼앗는 것이라고 예수는 말씀하셨다(마 11:12).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평화이다. 평화의 왕, 겸손의 왕,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어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당하신 왕, 그러나 죽음에서 다시 사신 왕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인도자가 되는 개인, 가정, 교회, 직장, 기타 공동체는 생명과 부활과 승리와 권능을 소유한 산 공동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적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과 승리와 권능을 맛보고 경험해야 한다. 이러한 삶이 없는 사람에게는 장래에 도래될 영원한 교회, 완전한 교회를 희망할 수가 없다. 희망한다 하여도 허상을 바라보는 자이다.


교회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영혼의 구원은 미래의 완전한 구원 즉 육체의 구속과 우주의 회복에 대해서 성령으로 보증된 선취적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엡 1:13-14; 고후 1:22).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는 삶 속에서 행함으로 의에 이르고자 한다. 이를 점진적 성화라고 한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아직 완전한 자로 구원을 얻지 못하였고, 그것을 믿음으로 소망하는 자들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함의 의미는 미래의 구원을 약속 받은 자들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우리는 고난 중에 살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장차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롬 8:17-18).

2. 敎會의 構成員


교회의 구성원을 '교인', '기독교인', '크리스천', 혹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기독교인, 크리스천,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같은 말이다. 기독교인은 한자에서 온 말이고, 크리스천은 영어에서 온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헬라어인 '크리스토스'에서 온 말이다. 교인이란 말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 혹은 회원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교인이나 그리스도인이 모두 소속감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교인이라는 말은 특정 공동체를 지칭하는 의미가 희박한 반면, 그리스도인은 소속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말이다.


이 단어가 최초로 쓰인 곳이 수리아 지역의 안디옥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이 말의 중요성은 소속감에 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에게 속한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과 부활과 영생을 쟁취한 자이다. 물론 무엇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며, 생명과 부활과 영생을 쟁취한 것이냐의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우리의 삶 속에 던져질 수 있는 물음이 될 것이다. 나의 삶 속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겼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나의 삶 속에서 생명과 부활과 영생을 얻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무튼 그리스도인의 의미는 계시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인(印)을 맞은 자 즉 하나님의 편에 속한 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그리스도라는 말이 편협적이고 배타적이며 교파적인 특성을 갖는다고 해서 그리스도 대신에 하나님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이란 말은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우산아래 있다는 포괄적이고 폭넓은 뜻을 담고 있지만,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만을 위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말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이다. 바꾸어 말해서, 선택된 자, 뽑힌 자란 뜻이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왕과 대제사장과 예언자의 머리 위에 올리브 기름을 부어 임직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이 세 가지 직책을 모두 수행하는 특별한 사람을 말한다. 구약성서에서는 이 분을 메시아라고 생각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이며, 이 말이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그리스도'가 되었다.


그런데 예수는 이 세 가지 직책을 하나도 실제로 수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그 분을 왕으로서, 대제사장으로서, 예언자 중의 예언자로서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를 어떻게 신앙고백했는가를 보게 된다. 그들이 이해한 그리스도는 그 당시의 유대인들이 이해한 방법과 전혀 달랐다. 유대인들이 문자적으로 이해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이해했다. 그리스도가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사 9:6)이란 말도 문자적인 왕의 주권에 대한 영적 이해였다. 초대교회가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를 왕의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 빌라도의 물음에 예수께서 분명하게 "네 말이 옳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나 십자가 위에 붙인 명패에 분명하게 "유대인의 왕"이란 말을 적고 있는 점도 그리스도가 영적인 왕국 즉 교회의 머리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문자적인 메시아의 직책수행은 복음서나 계시록에서 재림 후의 일로 연기시켜 놓고 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문자적인 제국의 왕으로서가 아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왕으로서, 또 친히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또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심으로서 중보자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화해의 길을 열어 주신 대제사장으로서, 또한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대 예언자로서 이해했다. 그리스도는 또한 교회의 머리로서, 만왕의 왕으로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만유의 주로서(엡 4:6; 골 3:11),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으로서,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신 대제사장으로서(히 4:15), 하나님의 숨은 비밀 혹은 구원의 소망을 친히 드러내신 예언자로서 고백이 된다(히 1:1-3).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이들 세 가지 직책을 위임받은 작은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악과 자아와 유혹을 다스리는 왕적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며,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신앙과 행동으로 고백하는 예언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디딤돌이 되는 헌신적인 제사장적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또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라고 믿어진다.


이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마 16:16), 그 분을 생명의 구세주로 자신의 중심에 모신 사람을 말한다(롬 8:9). 이렇게 마음으로 또는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롬 10:9) 믿는 자들이다.


성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 곧 그리스도의 소유됨을 말하며,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롬 8:1)를 말하기도 한다. 성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 교회와 교인과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을 알게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롬 16:16) 혹은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라는 말은 가장 성서적인 이름이며, 이상적인 이름이다. 여기서 지역의 이름을 앞에 붙여 안디옥 그리스도의 교회, 예루살렘 그리스도의 교회와 같이 교회의 명칭은 통일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교회는 곧 그리스도인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3. 敎會의 基礎


교회는 성부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었고, 성자 하나님에 의해서 창설되었고,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 신성한 공동체이다. 이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 위에 세워졌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고 했다. 예수께서도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라는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 자기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포하셨다(마 16:18). 이러한 말씀들에 근거해서 교회의 기초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인간이 조직하는 모든 공동체에는 그 공동체에 알 맞는 회칙이나 헌법이 있다. 각 나라마다 모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헌법이 있다. 몇몇 사람들만이 모이는 작은 집단에도 회칙이라는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회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교회는 교단별로 총회를 조직하고 총회 헌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상의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성서만이 이 교회의 유일한 헌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성서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그들의 행적,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같은 신앙인들의 고백이 담긴 책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는 기초요, 헌법이다. 이 말씀의 바탕 위에서 교회는 든든히 서야겠고, 우리의 믿음과 실천은 저울질되어야겠다. 그러나 성서에는 언제나 해석상의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성서는 믿음의 조상들의 구체적인 삶과 그들의 현실 속에서 기록된 말씀들이기 때문에, 이 말씀들은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과 현실 속에서 언제나 재해석되어야 하며, 의미 있는 말씀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우리는 성서 속에서 조상들의 신앙을 배우고, 그들의 신앙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은총과 섭리를 터득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된다. 이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의미 있게 소화될 때 우리의 신앙은 성장되고, 교회는 발전될 것이다.

4. 敎會의 머리


그리스도는 교회의 몸 그 자체일 뿐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알 수가 있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를 말하고, 신자는 이 공동체의 구성원 즉 몸의 지체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그리스도의 사람" 곧 그리스도의 소유됨을 말하며,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롬 8:1)를 말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말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행 20:28) 그의 소유됨과, "그리스도의 몸"(엡 4:12) 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공동체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곧 몸이며, 이 몸의 머리 또는 교회 공동체의 대표는 그리스도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공동체이며,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 되시고 머리가 되신다는 이 말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대단한 의미를 준다고 생각된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교회의 범위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교회의 범위를 우리는 반드시 목회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예배 공동체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교회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한다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개인이나 가정에까지 그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 가정의 주인도 그리스도이심을 함께 고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머리로 인정한다면, 이제는 모든 일에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삶의 중심에 놓인다면, 우리는 모든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우선 먼저 그리스도라면 이 일을 어떻게 결정하시겠는 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 분의 뜻과 생각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분이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복음서를 통해서 알 수가 있고, 그 분의 뜻과 생각이 어떤 것인지는 성서 전체를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우리가 만일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우리들의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그 분은 우리들의 예배와 찬양의 대상이 되실 뿐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따름과 실천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모두가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이기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일에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가 내리실 결정으로 결정하고,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린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안에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임의대로 살수가 없고, 우리의 가정은 그리스도가 주인이시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주관하지 못하고, 오직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며,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목사나 장로나 집사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뜻과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서 지극히 상식적이고 순리에 따라서 매사가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의미에는 교회의 모든 것 즉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을 그에게 주셨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입법, 치리, 행정에 관한 모든 내용을 성서 기자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달하셨다고 믿기 때문에 교회와 관련한 법규, 치리, 행정에 관한 모든 내용은 모법이 되는 성서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교단마다 성서에 근거를 두고 법규들을 만들어 교단의 질서를 바로 잡아가려고 힘쓰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법규를 만들어 성문화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법규는 어디까지나 성서적 해석에 근거하거나 일상적 업무에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한번 만들어지면, 그 법규가 성서보다 더 위에 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개 교회별로 지속적인 성서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몇몇 사람들의 성서해석의 결과나 성서에 없는 내용을 도그마(교리) 하지 않고 언제나 개방해 둘 필요가 있다. 문제가 발생될 때마다 성서에 묻고 성서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성서를 해석해서 얻은 결론을 교리적으로 가치가 있고 유용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천의 규범으로 삼는 일을 조심스럽게 결정해야 한다. 성서를 해석한데서 비롯된 견해의 차이를 친교의 시금석으로 삼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의 삶의 주인이어야 한다.

5. 敎會의 始作과 場所, 그리고 그 重要性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된 때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공생애와 관련하여 교회 설립시기를 생각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과 관련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가 시작된 정확한 시기는 예수의 공생애의 출발을 알리는 누가복음의 역사적 진술과 요한복음이 암시하는 예수의 공생애 삼년반을 고려하여 주후 30년 오순절날 아침 9시경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성령강림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정설로 되어 있다.


주후 30년이 정확한 연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서와 역사적 증언들을 고려해 볼 때, 이 보다 정확한 연대 주장은 없다. 장소 문제는 넓은 범위에서 보면 유대 땅의 수도 예루살렘이 확실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장소를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때 모인 사람의 수를 120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령강림의 장소를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모임의 장소를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의 행각이라고 생각한다. 후자의 견해가 정확한 성서적 이해에 근거한 바른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교회가 시작된 장소라든지 시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대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더 없이 중요하다. 이런 점들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겠다.


먼저 교회시대가 성령의 강림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바벨론 포로기를 중심으로 싹트기 시작한 메시아 사상은 나라 잃은 민족에게는 둘도 없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 시대에 사역하였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같은 유명한 예언자들에 의해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메시아의 출현과 성령강림으로 성취될 것이 예언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메시아 출현 그리고 성령강림이라는 이 삼대 예언의 성취는 마지막 시대의 출범을 알리는 사건으로 설명되었다. 그리고 이 예언이 예수의 부활사건과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었다. 그러므로 교회의 출범은 성령의 사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출범하게 됨을 의미하였으며, 종말적 시대의 출범이 되었다. 성령은 모든 믿음의 식구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일 뿐 아니라, 거듭남과 거룩함과 새롭게 하심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빠진 교회가 없고, 성령의 사역이 없는 구원이 없으며, 성령의 내주 하심이 없는 그리스도인을 생각할 수가 없다. 또 성령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수가 없다.


구약의 약속이 처음 성취된 장소는 예루살렘이다. 오순절날 아침에 성령의 강림이 예루살렘에 모인 사도들에게 임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믿는 순례자들의 고향이다. 그리스도가 나귀를 타고 평화의 왕으로서 입성하신 곳이 예루살렘이며, 만왕의 왕, 심판주의 주로서 강림하실 곳도 새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다. 이 성에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 성에 교회가 창립되었다는 점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예루살렘과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성령의 강림 장소는 마가의 다락방이 아니었다. 마가의 다락방은 제자들의 숙식장소였다. 물론 가정에 모여 예배나 기도 모임을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행 5:42, 12:12), 또 초대교회는 주로 가정에서 모였다는 점도 사실이지만(롬 16:5; 골 4:15; 몬2; 고전 16:19), 정작 교회가 처음 시작된 곳은 성전 안에서 였다. 이 주장은 사도행전 1장 12절 이하의 말씀을 잘 읽고 생각해 보면 곧 바로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날, 곧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숙소로 돌아 온 날은 부활 후 4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성령이 강림하신 오순절 날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째와 부활 후 50일째 되는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 이였다. 그리고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맛디아를 뽑고, 열 두 사도의 반열에 포함시킨 날짜와 장소는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 성서는 "그 무렵에"(개역성경에는 이 부분이 누락되었지만,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바로 번역되어 있다.) 라는 말로서 소개함으로서 승천 후 오순절 날까지의 10일 기간 중에 어느 한 날이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이들 120명의 성도들이 모인 장소도 마가의 다락방(윗층방이라는 뜻)이 아니라, 솔론몬 행각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초대교회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이상 일곱 번까지 기도하였다. 이 시간은 아침 9시, 정오, 오후 3시로 정해져 있었다(시 55:17; 119:164; 단 6:10; 행 2:15; 3:1; 10:9). 성령이 강림한 시간은 아침 9시 기도하는 시간이었다(행 2:15). 그 장소는 명절이 되어 수많은 사람이 운집한 성전 안 이였다(눅 24:53; 2:46; 3:11; 5:12; 5:42). 이러한 시간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방언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교회창립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였다. 성서가 말하는 기적은 곧 증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교회와 예루살렘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여기 교회와 성전의 관계는 예배를 드리는 장소라는 관점에서 대조시켜 볼 수가 있다.


우리가 주일 날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교회가 오순절  날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유월절 안식일로부터 50일 째가 되는 일요일에 떨어진다. 이 날에 성령이 오셨고, 교회가 창립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다. 천지 창조와 부활은 흑암에서 생명에로의 전환이라는 점과 새 생명의 출발점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안식일 예배는 구약시대의 예배 형태로서 신약시대의 주일 예배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 유대교가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완성되었듯이, 안식일 예배는 주일 예배 속에서 완성되었다. 우리는 이 날에 모여 주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고 축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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