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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10-12 11:52
말세의 성경적인 의미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02  
말세의 성경적인 의미
A Biblical Meaning on the End of the World
http://kccs.pe.kr/misc11.htm

종말은 세상의 끝을 뜻한다. 성서의 역사관은 인간역사의 시작과 끝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종말이 반드시 말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서가 말하는 종말은 절망적이기보다는 희망적이다. 종말을 향한 시간에 매달려 가기보다는 오히려 종말을 적극적으로 기대하며 맞이한다. 기독교의 종말은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출범의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의 종말은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하나는 영적인 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육적인 종말이다. 영적인 종말을 현재종말, 육적인 종말을 미래종말이라고 부른다. 현재종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영적 구원에 의해서 시작됨을 뜻하고, 미래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을 뜻한다. 아무튼 기독교가 말하는 종말이란 의와 평강의 나라,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출범시기를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교회와 함께 영적으로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몸의 부활과 우주의 회복을 통해서 완성될 것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종말이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바벨론 포로기 전후를 중심으로 활약한 예언자들의 삼대 예언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에스겔, 예레미야,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로서 메시아의 출현, 성령세례(선물로서의 성령),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였다. 물론 이러한 예언들은 시기적으로 유대왕국이 강대국 이집트나 바벨론에 의해서 속박되고 나라의 주권을 상실한 때에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중에게 주신 희망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예언은 이루어져 메시아가 오셨고, 성령의 시대는 도래했으며, 교회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나라는 영적으로 회복되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 처음 하신 설교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느니라"(마 4:17)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시어 영광을 받으신 후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고, 성령의 오심과 더불어 교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출범은 종말의 시대를 지구상에 끌어들이게 되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마지막 시대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 때를 두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마지막 시대인 것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시대를 현재종말이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는 은혜시대, 교회시대, 혹은 메시아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를 종말의 영적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개개인의 현재종말은 침례 안에서 이루어진다. 기독교의 침례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새 생명의 표지이다.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로의 편입과 하나님과 그의 백성사이에 맺어진 새 계약에로의 유입을 뜻한다. 따라서 죄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에 동참한 자는 사죄함을 받고 새로 거듭나며, 성령으로 새로워지고, 그리스도로 옷 입으며,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탈출과 성별, 인종, 사회적 신분의 분단의 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인간성에로 회복된다.1) 이러한 경험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동시에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 치시고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적으로 미리 맛보게 하시며 그 나라를 완전하게 소유할 자로 보증하신다. 이런 뜻에서 기독교인의 종말은 침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침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종말은 영혼의 구원 혹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에 불과하며, 인간의 죄된 본성은 육체와 함께 그대로 살아 남게 된다. 사실 영적인 구원은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한 성화를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침례 안에서 칭의 하심을 통하여 '이미' 그리스도인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신 성령께서 '아직' 이루지 못한 성화의 삶을 이끌어 주신다. 바꾸어 말하면, 영혼구원으로 인해서 이미 우리 안에 종말은 시작되었으며,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미래의 종말을 희망한다. 종말이 시작되었다 함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미래 종말과 함께 도래할 축복의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현세의 삶 속에 끌어내어 미리 경험하고 맛본다는 뜻이다. 이를 선취라고 말한다.

불트만이 주장하는 역사와 종말론도 실존적이며 현재적이다. 그는 성서가 약속하는 미래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인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개인 실존의 삶 속에서 현재적인 사건으로 언제나 다시금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트만은 묵시 문학적인 미래종말을 비신화화 함으로서 종말의 희망을 제거하고 있다. 이는 기복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말세론적 신앙에 빠지기 쉬운 신앙인들에게 복음의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고, 신앙을 개인의 실존과 관련시켜 자기실현을 위한 부단한 노력과 결단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또 미래종말적 인간의 기대를 실존적 삶 속에서 미리 맛보고 누리고 체험할 수 있도록 현재화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말 할 수 있으나, 미래 종말론의 실존론적 비신화화로 인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믿음으로 보고 듣고 해석한 기독교의 신앙고백적인 많은 요소들을 미신화하여 제거시킴으로서 기독교를 공중누각으로 만들고 만다. 불트만의 비신화화가 신화적 진술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재해석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미래종말에 대한 진정한 기대가 없이는 실존론적 현재적 의미란 철학적 인식이상의 신앙적인 큰 힘을 가져올 수 없다. 따라서 가능성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결단은 그 윤리성을 상실하고 만다. 왜냐하면, 그의 종말론은 종말론적 지금 또는 종말론적 현재 속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내면적인 실존적 결단에 불과하며, 또 종말론적 미래란 인간존재의 가능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종말론은 미래에 실현될 역사의 목표가 아니라, 개인의 존재의 목표일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기독교 종말론은 역사적이며 시간적인 차원을 상실하게 되고, 종말론이 가진 세계사적 의미도 간과되고 만다. 이런 맥락에서 침례의 미래성 역시도 비신화화 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2)

여기에 반해서 몰트만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의미와 타당성을 상실한 미래종말이나 불트만의 현재적 종말론을 비판하고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신학의 주제로 삼는다. 성서가 말하는 종말은 개인의 실존적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와 관련된 우주적 사건이며, 침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부활에 동참한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미래가 앞당겨져 시작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 미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것은 미래에 완성될 약속으로서 세계사의 목표로서 남아 있다. 따라서 침례를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갖게된 성도들은 구체적인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었고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 개인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종 자연 모든 영역에서 추구하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비록 현실이 어둡고 암담하지만, 이 세계 속에서 완성될 그 날을 희망한다. 이 희망은 피안의 세계에 대한 희망만이 아니라, 이 현실 속에서 즉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다. 침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이 약속에 동참한 신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역군이며, 하나님의 세계를 지향하여 그 자신을 언제나 새롭게 변화시키고 개혁시켜 나가는 백성이다.3)

범 우주적인 미래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된다. 이 때에 모든 육체는 신령한 몸으로 변하고, 죽은 영혼들이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 만물은 회복이 되어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절한 낙원이 된다. 다시는 눈물이나 슬픔이 없고, 고통이나 수고가 없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영원한 지복이 이루어 질 것이다. 성서는 이것이 역사의 마지막에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이 미래종말은 모든 믿는 이들의 희망이요, 현세의 삶 속에서 행복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의 근원이 된다.

각주

1)World Council of Churches,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Faith and Order Paper No. 111(WCC, Geneva, 1982), 3항; 조동호,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서진출판사, 1994), 134쪽.

2)김균진, {헤겔철학과 현대신학}(대한기독교출판사, 1980), 191-213쪽.

3){헤겔철학과 현대신학} 213-2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