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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6-13 08:28
침례에 관한 설교(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437  
침례에 관한 설교(2)
Sermon on Baptism(2)
http://kccs.pe.kr/Article/article05.htm

침례는 구원을 얻는 공식적인 시간이다(막 16:16)

지난주에 침례의 효능은 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고백된 믿음에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혹시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말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침례는 행위이다. 따라서 침례는 죄 사함이나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이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많은 수의 사람들은 침례는 행위가 아니다. 침례는 믿음에 의한 행위요 믿음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성경이 무엇이라고 했기에 세례나 침례에 대한 입장에 차이를 드러내는 것일까요? 성경말씀 몇 곳을 찾아 읽어드리겠습니다.
[마가복음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요한복음 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도행전 2:38]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2:16]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로마서 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골로새서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상의 성경말씀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세례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 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세례 받으면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세례를 받고 죄를 씻으라.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장사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세례는 구원의 표다 등입니다. 세례나 침례가 죄 사함과 구원과 성령세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이상의 매우 적극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말씀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미 앞에서 세례나 침례의 효능은 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고백된 믿음에 있다는 것을 전제했습니다. 이 전제가 매우 지당하고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상의 언급된 성경말씀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 교리로 하여금 침례를 소홀하게 취급해도 좋다는 단 소절이라도 가능성을 가진 구절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례나 침례의 효능은 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고백된 믿음에 있다는 사실에 굳게 서서 침례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원에 관계가 있든 없든 침례는 교회론에서는 물론이고, 구원론과 종말론에서도 매우 중요한 성례이며, 우리 주님께서 친히 받으셨고, 또 행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명령을 소홀히 취급하겠습니까?
교회는 보이는 지상의 하나님의 나라이다는 것을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완벽하고 완전한 나라가 아니라, 칭의, 곧 믿음으로 의롭다함에서 출발하여 성화 곧 완전을 지향하여 가는 도상의 나라이며,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를 여기 지상에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맛보고 경험하는 나라입니다.
교회는 교인으로 구성되는데 교인은 통상 침례 또는 세례를 받았거나, 유아세례 후 견진례를 거친 자들에게 주어지는 자격입니다. 이 성례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입교준비교육 또는 교리문답교육을 받아야 하는 예비자들인 셈입니다. 3세기 말 히폴리투스의 ꡔ사도전승ꡕ에는 입교준비기간을 통상 3년, 짧게는 1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지체 없이 침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피침례자 대부분이 이미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었거나 유대교에 입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침례를 받아야 입교인의 자격이 주어지고, 또 다른 성례인 성만찬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성만찬은 주님께서 친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부탁하신 성례입니다. 또 침례를 받아야 집사나 장로 또는 목사와 같은 성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인의 자격은 교회론의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나라의 자격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침례의 행위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믿고 그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한 후에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이는 결코 침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수정란이 먼저 만들어져야 출산이 가능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을 수정란에, 침례를 출산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또 믿음을 사랑에, 침례를 혼인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출산보다는 수정 그 자체나 혼인보다는 사랑 그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아무리 중요하고, 수정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혼인이나 출산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부부로써 또는 한 인간으로써 출발할 수가 없습니다. 참고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침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에서 이 침례 때의 서약을 선민서약 즉 신약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하나님과 부부서약을 행함으로써 구약의 선민이 되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침례서약을 통해서 신약의 선민이 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수정란을 생명체로 인정하여 낙태를 금하듯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는 확신은 매우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수정란이 배아가 되고 태아가 되어 출산하기까지의 과정이 무시 될 수 없듯이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는 과정 또한 매우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믿음으로부터 침례까지는 구원에 이르는 한 과정입니다. 수정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듯이 믿음부터 침례까지의 과정 또한 그러합니다. 출산을 통해서 한 나라의 시민이 되어 완전한 인간에로의 성장을 시작하듯이 침례를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며,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를 우리는 시작된 종말 또는 종말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침례를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의 삶이 그리스도인에게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축복의 시작은 믿음으로부터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침례는 별개의 것이거나 어느 것 한 가지만 있어도 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구원의 한 과정 속에 있는 동일하게 중요한 요소들인 것입니다. 침례는 믿음에 의한 행위이자, 믿음의 고백이며, 믿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참고로 구원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는 은총으로 인하여 된 것입니다. 믿음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고 회개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고, 침례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회개와 신앙고백 그리고 침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과정입니다. 믿음을 구원의 완성으로 보려고 한다면, 수정란을 출산한 아기나 성인으로 보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믿음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만, 여기서 우리가 다루는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과 순종의 믿음입니다. 앞서 우리가 말한 고백된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에 포함됩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다시 신뢰의 믿음과 동의의 믿음으로 나눠지는데요, 이 동의의 믿음이 고백된 믿음입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우선적으로 구원을 받는데 필요한 믿음입니다. 따라서 죄인에게 요구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신뢰의 믿음과 고백된 믿음은 말할 나위 없고, 순종의 믿음 또는 신실한 믿음을 강력하게 요구하십니다. 믿음은 영원합니다. 바울은 믿음을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침례는 구원하는 믿음에서 순종의 믿음 또는 신실한 믿음에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입니다. 복중의 태아를 험한 세상에로 내보는 것이 출산이듯이 말입니다.
초신자가 침례를 받기 전에 받는 학습교육이나 사랑하는 남녀가 혼인식을 하기 전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나 출산 전 태아의 성장과정이 실질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씨뿌림이 없이 열매를 거둘 수가 없는 것처럼 결실이 있기까지의 성장과정은 매우 중요하며, 성장과정이 있음으로 결국 결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장과정보다는 결실을 보고 기뻐하고 만족해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믿음을 갖게 된 동기나 과정을 기억하기보다는 세례식이나 침례식 날짜를 쉽게 기억하게 되는데 잊어버리더라도 증서가 남아 있어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결혼한 부부는 처음 만나 사귈 때의 일을 기념하기보다는 결혼식한 날짜를 기념일로 지킵니다. 사람마다 출생일을 기억했다가 생일잔치를 하기도 하고 선물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우리가 구원받은 날짜를 기념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측면에서 세례식이나 침례식은 육체적인 면에서의 출생일과 결혼식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침례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구원이 침례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포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의 보혈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치료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신자의 신앙고백으로 이뤄집니다.
침례는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예식이며 죄와 싸우는 십자군에 입단하는 시간입니다. 침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지만 이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는 죄와 부단히 싸워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침례를 순간적인 구원의 문제로 보지 않고 영구적인 개혁과 변혁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신자가 살아 있는 한 부단히 침례가 의미하는 바를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된 모든 것을 부단히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게 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나라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합하여 부단히 사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침례는 구원이 공식적이고 객관적으로 또 형식적이고 상징적으로 이뤄지는 시간입니다. 침례는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인 지상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시간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상교회의 시민이 되는 시간입니다. 침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는 새 계약, 즉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되는 엄숙한 서약이 이뤄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이 수여되는 예식이 이뤄지는 시간입니다.
침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 동참하는 시간입니다. 침례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새로 거듭나며, 성령으로 새로워지고, 그리스도로 옷 입으며,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성별, 인종, 사회적 신분의 분단의 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인간에로 회복되는 엄숙한 기독교 예식입니다. 침례를 받음으로써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성령을 모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세상에 보냄으로써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지키고 계십니다. 또 침례를 통해서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고,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미리 맛보며, 그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 보증 받습니다. 이런 뜻에서 침례를 받는 시간은 성령을 통해서 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삶의 시작이며, 마지막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부단히 자기 변혁을 꾀하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새로운 힘을 부여받는 시간입니다.
침례는 죄 사함과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 지난 이 천년 동안 교회가 시행해온 오랜 전통을 가진 예식입니다. 물론 침례 때문에 죄 사함이 주어지고, 구원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축복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인하여, 믿음을 통해서, 선행을 위해서, 세례나 침례 가운데서,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중생의 새롭게 하심과 씻음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우리의 구원이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수단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시간적으로 침례 가운데서, 목적으로써 우리의 선행과 성화를 위해서 성령의 역사와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며, 구원의 축복을 맛보고 경험하며 누리기 위해서, 또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 받지 못한 분들은 침례 받기 위해서 기도로써 준비해야 합니다. 이미 세례나 침례를 받으신 분들은 세례나 침례가 갖는 깊은 의미와 축복들을 새롭게 인식하시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