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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1 13:50
[은혜 13강]제5장 이중 문제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021  
   http://kccs.info/gracejc_ch05.htm [256]

13 LESSONS ON GRACE Written by Jack Cottrell
Wipf and Stock Publishers: 150 West Broadway, Eugene OR 97401
1999

Translated by Dong Ho Cho
Christian Church Studies, 2011
℡(042)841-9697

제5장 이중 문제

“도대체 무엇이 죄에게 발생했는가?”고 저명한 심리학자가 쓴 최근의 책제목이 묻는다. 그 대답은 죄가 여전히 현존하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더 추하고 더 득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작 그것을 더 이상 죄로 생각지도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죄의 실재성과 심각성을 기꺼이 인식할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해되거나 수용될 수도 또 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에 대한 해답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 욕구가 인식되지 않는다면, 복음은 불필요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는 로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픈 소망을 밝힌다(1:15). 그는 복음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1:16). 그러나 바울은 그 당시에 로마에 친히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차선책을 행하였다. 그는 편지에 복음을 써서 그들에게 보냈다(로마서).

바울은 복음(“좋은 소식”)을 찬양하고 강조하는 도입부의 촌평에 이어서 성경에서 발견되는 가장 혹독하고 어두운 몇 마디 유죄판결의 말로써 서신의 주요부를 시작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 그리고 이 불의의 비뚤어진 본성은 그 장(章)의 남은 부분에서 상세히 설명된다(1:18-32).

이것이 기쁜 소식처럼 들리는가? 분명히 아니다. 그것은 풀이 죽게 하는 것이고, 겁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에 필요한 전주곡이다. 구원이 수용되기 전에 죄는 반드시 인정되어야만 한다. 사람은 의사의 진찰을 받으러 가는 것에 동의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죄의 사실성과 실제성을 단언한다. 사도가 말한 것처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유죄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롬 3:23).

우리가 우리 죄의 사실성을 인정한 후, 이제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을 또 하나의 문제, 즉 죄성(罪性)과 그것의 결과들에 돌려야 한다. 이것이 또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죄의 성격을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우리 구원의 성격의 진가를 자세히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장(章)에서 우리의 주된 관심은 죄가 우리를 빠뜨리는 곤경을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이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고, 죄는 두 가지의 중요한 결과들을 갖는다. 그것은 우리를 유죄로 만드는 한편, 우리를 병들게도 한다.

1. 죄는 우리를 유죄로 만든다

죄로 인해서 야기되는 첫 번째 문제는 죄가 우리를 유죄로 만든다는 것이다. 유죄는 내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이나 존재에 관련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관계들의 문제이다. 유죄하다는 것은 하나님 및 그분의 율법과 잘못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일서 3장 4절을 보라.)

A. 법적인 문제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 중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를 이룰 때면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거슬릴 때면 불행이 발생한다.

“율법과 불화하는 것”이 왜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왜냐하면 어떤 율법이든 간에 복종 받아야할 명령들뿐 아니라, 만약 그 율법이 깨지면, 받아야할 처벌들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어떤 차별도 없다. 그것은 유죄를 향해 사형을 규정한다(롬 1:32, 6:23). 이것은 가공할 둘째 사망을 포함하는데, 그것은 지옥의 불 못에서 영원히 지내는 것이다(계 21:8).

성경은 이와 관련된 모든 용어들, 즉 심판, 유죄선고, 저주, 처벌, 형벌, 진노를 사용한다. 유죄라는 말에서처럼 이 용어들은 모두가 법적용어들이며, 죄의 법적결과들을 언급한다. 그것들은 율법의 위반에 대한 필연적이고 쓰라린 열매들이다.

B. 하나님의 진노

특별한 강조를 위해 뽑혀야할 한 가지 항목은 하나님의 진노이다. 현대인은 (비록 그가 결국 아직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노의 실재를 부인하거나 그럴싸한 설명으로 회피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친절하시므로 그분은 분명히 진노나 분노처럼 그렇게 저급한 무엇인가를 경험하실 수 없다고 말들을 한다.

그런 사단의 기만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면으로 반대한다. 주님의 진노하심보다 더 무섭게 현실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선지자 나훔은 묻는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나 1:6 KJV). 또 한 분의 예언자가 경고하였다. “.... 백성아 모일지어다....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습 2:1-2 KJV).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진노하셨으며(막 3:5), 지옥에 관하여 경고하셨다(마 10:28). 사람들은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오면, “어린양의 진노”로부터 공포에 떨며 도망칠 것이다(계 6:16-17).

하나님은 변덕스럽지 않으시고, 그분의 진노는 예측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 그분의 진노를 일으키는지 정확히 안다. 그것은 “경건치 않음과 불의”(롬 1:18)를 향하여 맞서고 있다. 마치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듯이,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끌어당긴다. “우리의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9).

그러므로 한 가지 죄의 결과는 그것이 우리를 유죄로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의 정죄와 하나님의 진노의 위협아래 서있다.

2. 죄는 우리를 병들게 한다.

죄의 두 번째 주된 영향은 그것이 우리를 병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아픔이 종종 발병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육체적인 병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영혼의 아픔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의 영의 본성은 약화되고 부패하게 된다.

환언하면, 죄는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바로 그 본성, 바로 그 상태가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죄스럽고, 영적으로 병이 든다.

A. 죄성

행위들만이 죄스러울 뿐이고, 사람들 그 자신들은 죄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사람들은 죄인들(즉, 죄를 범하는 사람들)일 뿐 아니라, 또한 죄스럽다. 죄스러움은 질병처럼 영혼을 전염시킨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배우기에 가장 어려운 교훈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가도 죄이지만, 우리가 어떤 상태인가도 죄란 것이다. 부패의 형태에서 죄는 우리의 바로 그 본성 속에 있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 모든 사람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심지어 그렇게 태어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것도 역시 잘못이다. 우리의 본성들은 타락하지만, 완전히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자신의 죄들의 결과로 타락된다(에베소서 2장 1절을 보라. - 우리는 우리 자신의 허물들과 죄들 가운데서 죽는다).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은 사람과 그의 행실을 나무와 그 열매로 비교하셨다. 썩은 나무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분은 악이 우리의 바로 그 본성에 안주하고 있음을 보여 주신다.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그분은 말씀하신다(마 7:17). 그 분은 이 직유(直喩)를 마태복음 12장 33-35절에서 다시 사용하시고, “....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고 결론을 내리신다.

성경은 종종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질병들의 용어로써 기술한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생생한 그림을 제공한다. “....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5-6 KJV).

죄 많은 상태는 약함의 상태이다(롬 5:6). 우리는 영적으로 소경이다(롬 3:18, 계 3:17). 우리의 입과 혀와 입술은 병들어 있다(롬 3:13-14). 우리는 정신박약이다(롬 3:11, 8:7, 딤후 3:8). 성경에서 인간의 내적 영적 본성을 대표하는 마음은 연약하고 병들어 있다(렘 16:12, 겔 36:26, 엡 4:18, 마 5:19). 예레미야가 말한 것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다”(렘 17:9 KJV).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매우 나빠서 그것은 죽음의 상태로 불린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 있다(엡 2:1,5, 골 2:13). 알렉산더 캠벨이 이 죄악의 상태를 요약한 것처럼 “믿음이 없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천국의 일들에 대하여 영적으로 소경이고 죽어 있다”(Christian Baptism, p. 231).

B. 죄들과 죄 많음

우리가 악한 일 행하는 것을 보는 것은 쉬우나 우리 자신이 죄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 자신들을 한 장의 백지처럼 정상적이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죄들은 백지 위에 검은 점들 같을 것이다.

우리가 봐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 종이 자체가 검다는 것이며, 그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것의 모든 부분이 검다는 것이다. 마음이 부패하면, 자연적으로 그것은 죄스런 행동들을 일으킬 것이다.

세상에 왜 그렇게 많은 악이 있을까라고 우리는 의아해한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죄들을 범할까라고 의아해 한다. 왜 모든 사람들은 그냥 선한 일을 시작할 수 없을까? 무엇이 죄들을 야기하는가?

일단 사람이 유혹에 굴복하여 그 첫 번째 죄를 범했다면, 그는 악순환의 희생물이 된다. 그가 더 많은 죄를 범할수록, 그는 더욱 죄가 많아진다. 그리고 그가 더욱 죄가 많아지면, 그는 더 많이 죄를 짓는다.

우리가 악한 일들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죄성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며, 우리가 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패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범한다. 또 다시 예수님은 이점을 설명하시려고 나무와 그것의 열매에 호소하신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마 7:17).

또 다른 시기에 그분은 말씀하신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3-35).

문제는 악한 마음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 15:18-19).

볼 수 있고 분간할 수 있는 죄들은 무서운 내적인 질병의 증상일 뿐이다. 붉은 점이나 열이나 마른기침처럼 그것들은 보다 더 나쁜 내적인 무엇인가의 존재를 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기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며, 나쁜 말을 하고, 음란한 생각을 하며, 이웃을 속인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그는 이와 같은 행위들을 그냥 그만두고 그래서 그의 삶을 개혁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이것으로 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는 별개로 죄의 습관을 극복하는 것은 증상을 억누르지만, 질병이 내부에서 저지당하지 않고 사납게 날뛰게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분명히 재발할 것이다.

죄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 죄스러움을 치료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 증상들뿐만이 아니라, 그 질병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3. 이중 문제

이렇게 죄는 일종의 “이중 문제”로 우리에게 남겨졌다. 첫째, 우리는 유죄이며,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유죄판결을 받는다. 둘째, 우리는 영적으로 부패하며, 그래서 더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의 이중적 성질이 이런 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기 부인에게 화를 내는 (물론 부당하게) 한 성마른 남편을 상상해보라. 그는 집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차를 타고는 굉음을 내며 도로를 달린다. 교차로에서 그는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고속도로에 급히 진입하다가 이내 트럭과 충돌한다.

이 사람은, 그의 무모한 짓의 결과로써, 이중적인 문제를 갖게 된다. 그는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렸고 교통사고를 일으켰으므로, 위법의 문제를 갖는다. 그 결과로 그는 경찰들과 변호사들과 판사들과 마주해야 하며, 상당한 금액의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 다른 한편, 그는 의료문제를 일으켰다. 사고 때 그의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다른 종류의 문제이며, 다른 방법(응급실, 의사들, 기브스)으로 치료될 것이다.

죄인에게 있어서 나쁜 소식은 그도 역시 위법의 문제와 죄로 인한 건강문제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식은 그 두 가지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 문제에 대해 이중 치료가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두 개의 장(章)들에서는 그 치료의 측면들이 다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