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1-11-11 14:56
[은혜 13강]제7장 이중 치료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171  
   http://kccs.info/gracejc_ch07.htm [254]

13 LESSONS ON GRACE Written by Jack Cottrell
Wipf and Stock Publishers: 150 West Broadway, Eugene OR 97401
1999

Translated by Dong Ho Cho
Christian Church Studies, 2011
℡(042)841-9697

제7장 이중 치료

우리가 보았듯이, 죄는 일종의 “이중 문제,” 즉 유죄와 영적 질병을 낳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죄 문제를 어떤 놀라운 방법으로 해결하시는가를 보았다. 그렇지만 질병에 대해서는 어떤가? 우리의 영혼의 죄악에 대해서는 어떤가?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 역시 해결하셨다. 우리가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히 7:25) 구세주로부터 그밖에 무엇을 기대해야겠는가? 만일에 “이중 문제”가 있다면, 그분은 “이중 치료”를 제공하실 수 있다!

    날 위해 쪼개지신 만세 반석이시여,
    당신께 제 자신을 숨게 하소서.
    당신의 상한 허리에서 흐른 그 물과 피가
    죄에 대한 이중 치료가 되게 하소서.
    죄의 유죄와 권세로부터 저를 구원하소서.
    (새 찬송가 494장 1절, “만세반석 열리니”를 참고하라.)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를 유죄의 결과로부터 구원하실 뿐 아니라, 또한 죄의 권세를 이길 필요한 힘을 주신다. 그분은 우리를 진노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내적으로 새 생명과 새 영적 권세를 주셔서 우리가 사단을 패배시키고 유혹을 이길 수 있게 하신다. 죄와 질병을 회복하는 이 과정은 중생(重生) 또는 신생(新生)으로 시작되며, 그것의 지속은 성화로 불린다.

다른 친숙한 찬송가들은 이런 “이중 치료”를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하고 나를 성화하시려고” 고난 받고 죽으신 그 “낡고 험한 십자가”에 대해서 노래한다. (새 찬송가 150장 3절, “갈보리 산 위에”를 참고하라.) 우리는 “그의 성령으로 태어나고 그의 피로 씻긴 복된 확신”을 갖는다. (씻겼다든지 깨끗케 되었다는 것은 용서받았다, 유죄가 제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를 참고하라.) 목자처럼 우리를 인도하시는, 구세주는 또한 우리에게 “깨끗케 하는 은혜와 자유하게 하는 권세”를 주신다. (새 찬송가 268장 1절,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를 참고하라.) 그러므로 “용서된 죄이고, 회복된 사람이다.” (“오 하나님, 당신의 손이 인도하셨습니다.”)

이중 치료 개념은 성경에 확고히 근거한다. 구원의 이중적인 특성은 에스겔 36장 25-27절에 예언되어 있다. 25절은 죄 씻음을 말한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KJV). 그리고 다음의 두 구절은 성령님을 통한 신생(新生)을 기술한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KJV).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주신 교훈에서 그것을 요약하신다. “....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리라”(요 3:5). 베드로는 오순절 날 행한 그의 이중 약속에서 이중 치료를 반영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8).

본 장(章)에서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어떻게 우리의 죄성(sinfulness)을 치료하시는가를 더 많이 배우는 것이 될 것이다.

1. 새 생명은 무엇인가?

바르게 이해된다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파격적이다. 그것은 죄에 얽매인 우리 마음들이 기대할 것과는 너무 달라서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픈 마음을 가질 수 없다.

반면에 그 개념의 근본적 성격은 일부의 사람들을 완전히 거짓되고 보증이 없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면, 우리의 행위들은 (구원에) 무관하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할까?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죄를 범할 수 있다는 허가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것은 물론 바울이 로마서 6장에서 예상한 반론이다. 이 거짓 논거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이런 결론을 내리는 자들은 구원에 대해 매우 제한적 이해를 갖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구원이 단지 용서(의롭다하심) 그 이상의 것이라는 점을 보지 않는다. 구원은 또한 새 생명, 즉 의로움이 관례이고, 죄가 예외인 생명을 수반한다. 바울은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말한다. 그것은 도덕적 모순이며, 모든 도리에 상반(相反)된다. 옛 사람(self) 즉 죄에 끌리고 죄짓는 것을 즐기는 마음은 죽었다. -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따라서 우리는 노예로 만드는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다(롬 6:6-7).

이 옛 죄성(죄지을 성질)의 죽음은 새로운 본성, 새로운 마음, 새로운 생명의 선물을 수반(隨伴)한다. 예수님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셨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에스겔의 예언을 상기하자. “또 내가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겔 36:26 KJV).

우리의 이 내적 본성의 변화가 신약성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기술된다. 기술된 개개의 표현들은 그 변화의 근본적 본성을 강조한다. 그 표현들은 다음과 같다.

A) 부활(Resurrection)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 개념을 언급하지만, 이 개념은 다른 많은 곳에서도 또한 나타난다. (엡 2:6, 골 2:12, 3:1을 보라.) 대화중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 2:1) 영혼이 죽은 자들로부터 문자적으로 살아난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 시(時)에 있을 몸의 부활에 대한 영적 부활이요, 선구(先驅)이다.

B) 소생(Quickening)

이 어휘는 모든 것을 포괄한 가장 오래된 말이지만, 흠정역(KJV) 시대이후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살아남”을 뜻하며, 가장 최근의 개역들에서 그렇게 번역된다. 이것은 분명히 부활과 동의어이며, 정확히 동일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엡 2:5). 또 요한복음 5:21-25, 요한일서 3:14, 골로새서 2:13을 보라. 부활과 소생 이 두 개의 표현들은 우리 본성들의 변화를 기술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중요한 방법을 형성한다.

C) 중생(Regeneration)

신국제개역(NIV, 딛 3:5)에서 “거듭남”(rebirth)으로 잘못 번역된 이 어휘는 문자적으로 “다시 시작” 혹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이것은 새 생명이 주어진 자비로운 기회를 강조한다.

D) 새로워짐(Renewal)

이 말 또한 새로움(newness)이 주된 개념이다. (딛 3:5, 엡 4:23을 보라.)

E) 새 피조물(New Creation)

이 단어보다 더 새 생명의 근본 본성을 지적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또한 갈 6:15, 엡 2:10을 보라).

F) 거듭남(Rebirth)

이 개념에 사용된 어근은 “낳은”(begotten) 혹은 “태어난”(born)을 의미할 수 있다. 여기서 그 차이점은 중요치 않다. 어느 쪽 말이든 죽음에서 혹은 무생(無生)에서 새로운 혹은 살아있는 존재에로의 전환을 말한다. (출생과 부활 사이의 동일함은 표현, 즉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에서 보일 수 있다. 계시록 1:5. 골로새서 1:18을 보라). 비록 “거듭남”(born again)이란 표현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는 있지만, “부활”이나 “살아나셨다”(made alive)는 표현들만큼 거의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 요한복음 3:3-5, 베드로전서 1:3, 22-23을 보라.

G) 할례(Circumcision)

이 마지막 어휘는 죽음의 부정적인 측면 혹은 옛 죄지을 성질의 제거를 강조한다. 마음이나 영혼에서의 영적 작용을 말하며, 따라서 이미 열거된 어휘들과 유사하다. 그것은 일종의 공통적인 표현이다. 골로새서 2:11-13, 사도행전 7:51, 로마서 2:29, 빌립보서 3:3을 보라.

이 모든 표현들은 단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난 근본적 변화, 즉 그 결과가 새로운 본성, 새로운 마음, 새로운 생명인 변화를 언급하는 다른 방법들일 뿐이다.

2. 언제 새 생명을 받는가?

우리가 상기한 역동적 표현들을 검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기로 약속한 것들에 몹시 감격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들 가운데 몇몇은 “이 모든 것이 정말로 나에게 일어났는가? 만약 그렇다면, 언제 그런 일이?”라고 경탄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는 이것이 내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언제 그것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변화가 그리스도인의 침례 시(時)에 일어난다고 그 대답이 신약성경에 명백히 진술되어 있다. 바울은 말하기를,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4).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침수 세례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침수세례를 성령님의 내적 침례와 분리하려는 이들은 성경말씀에 대항하는 것이다 (엡 4:4 - 오직 하나의 침례만 있다).

모든 것 중의 가장 명확한 진술은 골로새서 2장 12절이다. 그 말씀은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명확하게 말한다. 물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일어난다. (요한복음 3:5, 디도서 3:5, 사도행전 2:38절을 또한 보라.)

그것이, 시간적으로 어떤 다른 시점에서 일어나지 않고, 침례 때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단순히 이것이 명확한 가르침이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안다. 우리는 어떤 따스한 내적 느낌이나 그 약속을 유효하게하기 위하여 우리를 필연적으로 일깨울 정서적 경험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것들을 수용할 때 당신의 약속들을 지키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것들을 받아드릴 때, 그의 약속들을 지키신다.

성경을 믿는 큰 무리의 사람들은 사람이 침례를 받기 이전에, 다시 말하자면, 믿자마자 하나님께서 신생(新生)을 주신다고 진실하게 믿는다. 제발 이 시점을 참말로 분명하게 하길 바란다. 성경은 우리에게 용서와 새로워짐이 믿음을 통하여 주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믿자마자”를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 가르침은 분명히 그렇지 않다. 그것이 믿음을 통하여(through) 일어나지만, 침례 가운데서(in) 일어난다(골 2:12).

일부의 사람들은 침례가 신생(新生)의 시점인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임신 혹은 잉태가 출생이전에 발생했어야만했다는 것을 함축하는 은유를 펼친다. 그러므로 신생은 이미 침례이전에 시작되었다고 언급된다.

이 은유의 펼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화되지 않는다. 또 우리가 출생의 은유가 새로운 시작을 기술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그것은 참으로 제외되고 만다. 그것(출생)과 대등하고 성경말씀에 훨씬 잘 도드라진 개념은 부활이다. 우리가 이 모든 어휘들의 의의(意義)를 함께, 특히 부활소생을 파악할 때, 우리는 두 시기(임신과 출생)속에 있는 변화의 개념이 그것들이 만들고 있는 바로 그 시점을 상반되게 한다는 것을 볼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시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본성에서의 변화는 우리 자신들이 회개를 통해서 성취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왔다.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는 죄를 버리고 의로움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며, 다른 사람이 되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꿀 것을 결심한다. 이 정신과 마음의 변화가 신생(新生)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럴 수가 없다. 우리가 이 변화를 기술하는 표현들의 목록을 검토할 때 우리를 일깨워야 할 한 가지는 그것이 대단히 근본적이어서 단지 우리의 하잘것없는 자기결심으로 결코 성취될 수 없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부활이다. 그것은 창조(creation)의 한 행위이다. 그것은 중생(regeneration)이다. 그 같은 변화는 인간의 힘으로 이뤄질 수 없다 (골 2:11을 보라).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뤄진 무엇이다.

우리의 마음들에서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침례 가운데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다(행 2:38).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난다”(요 3:5). 우리의 침례는 “중생(신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 3:5)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게 하자.

3. 새 생명의 목적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선물로 주시고 그분 앞에서 우리가 의롭게 살 수 있게 하신다.

불신앙으로 사는 동안 우리는 죄에 노예들이었다(롬 6:17-21). 우리는 죄지을 성질들의 연약함 때문에 쉽사리 유혹에 굴복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했던 것처럼) 죄는, 비록 필요치 않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변화가 우리가 새 생명을 받을 때 일어난다. 죄의 권세는 깨지고, 우리는 유혹을 거절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계명들에 순종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분은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해 살아있기 때문에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롬 6:12). 오히려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물론 우리는 이 생명을 아기들처럼 시작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온전한 채로 그것을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목적과 책임은 그의 새 생명에서 성장하는 것이요 점점 더 거룩하여지고 영적으로 되는 것이다(마 5:48, 벧전 1:16). 이 과정이 성화(聖化)로 불린다(살전 5:23). 그것의 가능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