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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05 12:48
오순절의 축복은 성령의 은사들인가?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178  

오순절의 축복은 성령의 은사들인가?

(글: Jack Cottrell, 역: 조동호 목사)
<"Are Miraculous Gifts the Blessing of Pentecost?"
Christian Standard, May 9, 1982, pp. 9-11>

오순절! 성령에 관한한 우리 모두는 오순절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다. 오순절 운동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고, 은사를 주장하는 사람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알렉산더 캠벨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으며, J. W. 맥가비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이 우리 모든 환원운동 동지들도 오순절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아니 정말 알고 있는가?

확실히 우리는 알고 있다. 오순절 날 성령께서 몇몇 사람들에게 권능을 부여하셔서 기적 같은 일을 행하도록 하셨다(이를테면, 방언 말함). 그것이 다다. 이것이 오순절의 축복이다.

아니 정말 그런가?

필자는 오순절 날과 성령과의 관련에 대해서 특별히 말하고 있다. 필자가 쓰고 있는 이 글의 목적은 오순절의 본질에 대해서 재검토를 해보자는 것이다. 오순절 운동가나 전통 보수주의자나 모두가 똑같이 오순절의 축복을 기적의 권능으로 동등시함으로써 오순절의 축복에 대한 핵심을 잡지 못해왔다.

이것이 두 가지 면에서 비극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첫째, 그것은 많은 신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는 모든 시대에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다는 기대감을 갖도록 하였다. 둘째, 그것은 신약시대의 위대한 새 축복인 도덕적 (기적적인 것이 아님) 권능의 근원으로써 성령의 내주 동거의 축복을 간과토록 하였다.

논의의 요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오순절의 축복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며, 성령의 은사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오순절의 축복이 아니었다.

1. 약속

좀 더 이점을 분명히 알아보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성령강림에 대한 두드러진 흐름의 예언들과 약속들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약속은 불투명하거나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오순절 날로 인도되는 강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주요한 예언적 주제이다.

이사야 44장 3절은 이 약속에 대한 최초의 진술이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에스겔 36장 25-27절 또한 주목되어야 한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요엘 2장 28-29절도 놀라운 예언을 말씀하고 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 주제가 신약에서도 계속된다.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막 1:7-8; 눅 3:16 참고).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 37-39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약속을 하셨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의 사적 담화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오심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될 것과 그들이 예수님께 갖는 독특한 관계와 교회에서의 그들의 권위적인 역할의 관점에서 그들을 위한 결과들을 갖게 될 것을 계시하셨다. (요한복음 14장 16,17,26절, 15장 26-27절, 16장 7-15절을 참조하시오. 우리는 이것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의 사적 대화인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계시와 영감에 관한 약속들은 그들에게만 홀로 지적된 것이었다.)

예수님은 승천 바로 직전 성령의 약속을 사도행전 1장 4-8절(눅 24:49 참고)에 기록된 대로 새롭게 하셨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당부하셨다. 예수님과 요한은 이미 이 약속을 성령과 동일시하였다.

2. 성취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대로 이 예언들과 약속들의 흐름은 오순절 날에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순절 운동가들이나 은사 주장자들은 어떻게 이 성취를 이해하고 있는가? 그들은 최우선적으로 이 성취를 기적적인 성령의 은사들, 특별히 방언 말함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이들 성령의 은사들이 (특별히 방언 말함) 모든 시대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다고 보고 있다.

환원 운동사에서 이 성취를 어떻게 전통적으로 이해해왔는가? 역시 기적적인 권능, 특히 방언 말함의 능력이란 의미에서 이 권능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이 언제나 부정된다. 이 권능은 엄격히 오순절에 (12사도 또는 120문도에게) 국한되며, 고넬료와 그의 가정은 예외로 본다. 오순절 축복은 그래서 오순절과 고넬료 가정에 내린 단 한 번의 사건 속에서 소멸된다.

필자의 주장은 이들 해석 모두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모든 사람들이 오순절 약속의 본질을 성령의 은사로 보기 때문이다.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자는 이것을 주로 말한다. 그 반대로 성령의 내주 동거의 임재가 새로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에스겔 요엘 그리고 요한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은 수세기를 걸쳐 계속되어져 온 어떤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분명히 무언가 새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성령의 은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하여 오시는 성령 자신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었다. (에스겔 36장 27절과 요한복음 7장 37-39절을 참고하시오.)

3. 성령을 선물로

구약의 신자들이 누리지 못했던 한 가지 축복은 하나님의 성령의 내주동거 즉 성화의 임재였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백성 중의 특정인들에게 사역 (봉사)에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으로 도구화시키기 위해서 보내지셨다 (출애굽기 31장 1-5절, 민수기 11장 17절, 사사기 3장 10절, 사무엘상 16장 13절을 참고하시오.) 이것은 오직 외적 임재였고 개인의 구원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는 불신자도 성령을 받을 수 있었다. 사무엘상 19장 20-24절을 보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사는 신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은 성령의 내적 임재였다. (내주동거, 생명부여, 죄 말살, 영혼을 강건케 하는 성령의 은사, 고린도전서 6장 19절, 로마서 8장 13절, 에베소서 3장 16절, 빌립보서 2장 13절을 보시오.) 에스겔 36장 27절에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고 하신대로 이것이 약속의 본질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말씀으로 비교하셨다(요 7:38). 이것이 바로 참 오순절 능력, 선하게 하는 능력, 죄를 거절하는 능력, 담대히 말씀을 증거 하는 능력이다(행 1:8).

이것이 어떻게 오순절과 관련이 있는가? 이 날이 최초로 하나님의 백성이 내주 동거의 선물을 받은 날이다. 이 날이 바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날이다(행 2:16이하). 이 날이 바로 예수님께서 약속을 지키셨고, 성령을 물 붓듯 부으신 날이다(행 2:33). 성령이 오셨다. 이 새로운 선물을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침례를 받는 자는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을 확약하였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 5:32).

4. 성령의 은사들이 아님

물론 오순절 날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났다. 방언 말함은 그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이었다. 그러나 수세기를 걸친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구화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있어서 성령께서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기적적인 능력들을 종들에게 부여하셨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는 대표적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도들이 이미 오순절 날 오래 전에 기적적인 능력을 부여받았고 또한 70문도 역시도 성령의 권능의 역사를 이미 체험하였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마 10:1,8; 눅 10:9). 이와 같은 성령의 권능의 역사를 오순절의 본질로 보는 것은 약속의 성취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초대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 성령의 권능의 역사는 크게 감소가 되어왔을 것이며 황금의 보물 상자를 열었을 때 그 안에서 몇 개의 젤리 구슬만 발견하는 것 같은 큰 실망이 되었을 것이다. (약속의 성취가 단지 두 번에만 제한된다면, 이 감소는 더욱 더 큰 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 날 기적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만약 방언의 은사가 그 약속의 본질이 아니라면, 그러면 방언 말함은 (또는 요엘이 그것을 부른 대로, 예언 - 행 2:17-18)의 목적은 무엇인가? 자, 이것은 그다지 어려운 질문일 수 없다. 기적의 목적은 무엇인가? 성서가 분명히 가르치는 대로 계시한 메시지나 진리 또는 확인되고 확정된 주장이 따르는 때는 언제든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에게 기적적인 권능을 부여하셨다. 그래서 기적은 표적이라고 불린다. (마가복음 2장 10절, 요한복음 20장 30-31절, 사도행전 2장 22절, 고린도후서 12장 12절, 히브리서 2장 3-4절을 참조하시오.)

이것이 오순절 날의 방언 은사의 주요한 목적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의 표적이었다. 여기서 방언의 은사는 성령께서 약속대로 오순절 날에 임재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다. 방언의 은사는 보고 듣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표적 또는 증거였다. 이 괄목할만한 방언의 표적으로 아무도 성령께서 결국 임재 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에게 나중에 내린 방언도 성령께서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적인 것이었다. 사도행전 10장 44-46절을 보시오.)

오순절의 방언의 기능과 이 은사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민수기 11장 16-30절에 나타난 중요한 평행을 고려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를 도와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할 70인 장로를 뽑도록 지시하신다. 하나님은 특별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17절).

정한 날에 선택된 사람들이 장막에 모였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25절). 여기서 실제로 (사역을 위해 도구화하시기 위해서) 성령이 내린 것과 행위가 이룬 것을 하나의 표적으로 나타내 주는 기적적 예언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그어지고 있다. (26-27절은 예언의 기적적 성격을 제시한다. 사무엘상 10장 6-10절과 19장 20-24절도 또한 참고하시오.)

이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모든 것이다. 요엘이 약속한대로 (욜 2:28; 행 2:17-18) 예언이 있었다. 이것은 방언의 은사였다. 그러나 방언의 은사는 오순절의 참된 선물인 성령님 자신과 관련해서 부수적인 것이고 증거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사실들에서 본 관점에서 필자는 질문을 던진다. 왜 오순절 날에 나타난 기적적 현시들이 새 시대의 성령충만의 본질로 생각되어지고 있는가? 이들은 전혀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교회시대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의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 영력을 위한 (기적적 권능이 아닌 ) 성령의 내주 동거의 임재가 성령의 사역의 새로운 것이다. 이것이 복음서와 예언서에 나타난 모든 약속들의 요점이다. 기적의 수반은 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표적에 지나지 않는다. 방언의 은사와 같은 기적들이 사도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언제 끝났는지의 문제는 예언들이나 오순절과는 아무런 관련도 갖지 않는다. 이 문제는 다른 신학적 토대에서 다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