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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05 12:56
성령의 인도하심(1/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087  

성령의 인도하심(1)

(글: Lynn Gardner, 역: 조동호 목사)
<"No contradiction with scripture will be found in one who is Led by the Spirit,"
Christian Standard, October 3, 1976, pp. 899-900.>

몇 년 전 작은 교회의 30여명의 교인이 직업을 버리고 미국 Kansas 마을에 있는 그들의 집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200마일 밖으로 이사하였다. 그 집단의 한 사람이 설명하기를, “우리는 성령님의 지도력에 복종하였다. 당신은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심지어 평범한 출석교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신약성경에 나타난 성령에 의하여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의미인가? 우리는 성령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고 무엇을 하실 수 없는지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안에서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연구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 사람들의 보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성령께서도 그가 잘못 오도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다.

신약성경의 두 곳에서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이란 표현을 썼다. 로마서 8장 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비교하면서,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고 하셨다. 이 글의 목적은 이들 성구들의 “성령의 인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자 하는데 있다. 먼저 부적당한 견해에 대해서 논하고 나서 바울이 의미한 “성령의 인도”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부적당한 견해

일부 학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몇몇 선택된 영적인 사람들에게 제한하려고 한다. 그러나 로마서 8장 14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들 즉 그리스도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5장 18절의 문맥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자유 함을 받는 모든 자들임을 지적하고 있다(5:1). 이들 두 구절의 말씀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하나의 특색으로써 언급하고 있으며, 그것이 일부 특정인의 특권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특별한 경우나 위험한 시기 또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의 경우에만 국한하는 것으로 제한하고자 한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 성령께서 여행 중에 휴식을 취하도록 멈추라고 인도하셨다고 했다. 그의 휴식을 위한 멈춤이 그로 하여금 사고를 막도록 도와주었다. 이것이 만일 그가 사고를 만났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었다는 뜻인가?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께서는 여행의 안전과 다른 상황에서의 안전을 비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응답하신다. 그러나 William Hendriksen이 관찰한 바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은 “중대한 요구나 위험의 순간에 그때그때 그들의 삶속에 주입되는” 간혹 가다 한 번씩 일어나는 영향이 아니다(New Testament Commentary: Exposition of Galatians, p. 216). 로마서 8장과 갈라디아서 5장 모두에서 동사의 현제시제로 쓰인 “성령의 인도”하심은 계속적인 활동을 시사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꾸준하고 지속적이다.

오늘날 성령의 인도하심을 요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령께서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들을 인도하심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인도하신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6:13; 마 10:19,20; 요 14:26, 15:26을 비교하시오). Leon Morris는 “온갖 종류의 상황에서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헌장을 이 말씀이 제시한다.”고 주장하면서 요한복음 16장 13절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였다. 그는 설교 장소와 설교 시간에 관한 성령의 인도를 지적하는 몇몇 사례들을 사도행전에서 찾아 제시하였다(2:4, 15:28, 16:6이하). 그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고 이들 경험들은 수세기를 통해서 남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반복되어왔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는 정말 우리가 가야할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신다. 그는 우리가 그의 도움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꼭 주신다(The Sprit of the Living God, Inter Varsity Press, p. 79).

상기한 요한복음 16장 13절과 다른 성구들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실 성령의 영감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사도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통하여 주신 계시를 받기로 되어있었다. 사도행전에서 언급된 사례들에서 볼 때, 성령께서는 정말 사도들에게 직접적인 인도하심을 주셨다. 새 언약의 계시를 받음에 있어서 사도들이 갖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도움에 관하여 그들에게 주신 약속을 취하는 것과 그것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부적당하다.

내적 충동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동일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진실한 젊은이들이 선교사가 되거나 성경이 없는 곳에 가서 번역사역을 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으로 느꼈다가도 그들이 임무수행에 부적당하기 때문에 그만두게 된다. 그러면 그들이 잘못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는가? 교회 프로그램을 맡은 어떤 사람이 성령께서 그것을 포함시키지 말라고 그에게 말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에서 한 가지 순서를 뺐다. 어떻게 그가 성령이 그에게 그렇게 말했는지를 알았는가? Mel Tari는 Like a Mighty Wind에서 말하기를 인도네시아 부흥집회에서 하나님께서 들을 수 있게 개개인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우리는 음성도 듣고 환상도 볼 것이라고 한다(pp. 137-145). 이것이 바울이 말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관한 뜻인가?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J. I. Pack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인도함을 받은 것 같다”는 “나의 감정이 나를 인도하고 있다”는 정도의 의미일는지 모른다. 그리고 감정들은 악명 높게도 그리스도인의 형성에 있어서 가장 최소로 성화되고 믿을만한 요소이다. 감정들의 힘 또는 기대치 못한 점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불확실한 목록이다. 감정의 근원은 심리적이거나 심지어는 마귀의 작태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잔인성과 부정직, 간음, 자살 등에로 인도되는 느낌을 갖는 사례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Led by the Spirit of God," The Life of Faith, May 26, 1966, p. 500).

감정들과 경험들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규범적인 권위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약간의 객관적인 참고적 요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내적 충동들은 우리들을 많은 잘못된 일들에로 인도할지 모른다. 우리는 그것들을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부르면서 우리의 욕망을 성화시키는 위험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주관적인 근거에 의해서만 판단을 내린다면 어떻게 우리가 성령으로부터의 교통과 마귀로부터의 교통 또는 심지어 자기 자신의 사고의 과정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경험에 의해서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들을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광신주의는 우리가 성경표준에 의해서 종교적 경험을 진단하기를 거절할 때 생기는 것이다. Bernard Ramm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무리 인간이 비범한 경험을 했다하더라도, 아무리 그가 영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한다할지라도, 아무리 그가 어떤 권능을 그것에서 빼낸다고 주장한다할지라도, 만약 그것이 성경에 따른 것이 아니면 그것은 성령에 의해서 발생한 체험이 아니다("The Holy Alliance," His. February, 1974, p. 15).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경험들을 성경의 빛에 복종시켜야 한다. 만약 경험이 성경에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경험이 성령으로부터 도래한 것이 아니란 것과 그에 따라서 우리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것을 하기를 원치 않는 자는 그의 경험을 비성경적인 것으로 만든다. 성경은 그의 최고의 권위이다.

참된 체험이 아닌 진짜 체험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환각은 그 사람에게는 진짜이지만 그것은 실제의 것에 대한 참된 기술은 아니다. 종교적인 체험은 그 사람에게는 진짜일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참된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체험은 성경의 빛에서 해석되어야하지, 체험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의 의심스런 입장은 성격에 의한 계속적이고 직접적인 인도하심을 고집하는데 있다. John Scott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과감하게 주장하기를 “주님께서 이것을 하라고 내게 말씀하셨어.” 또는 “주님께서는 그것을 하도록 나를 부르셨어”라고 말하면서 마치 그들이 천국과 직통선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과 계속적인 전화통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나는 그것을 믿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성경 구절들의 가장 그럴싸한 해석들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상세한 지도를 받은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성경 구절들의 자연스러운 의미를 말쌀하며 문맥을 무시하고 건전한 석의나 상식에 근거를 두지 아니한 아전인수 격의 해석을 자유자재로 한다(Your Mind Matters, Inter Varsity Press, p. 43).

하나님의 성령은 성경에서 온갖 종류의 상황에 적용할 일반적 원칙들을 드러내고 계신다. 그러나 그것은 매일 매일의 특정한 사례들에 대한 상세한 목록을 제시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해에 의존하거나 우리 자신의 지혜에 대하여 자만해서는 안 된다. 야고보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대로 우리는 기도로써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1:5). 우리는 또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일부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생물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행동할 수 있기 전에 어떤 심리적 감명의 필요성을 고집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행동이나 행동하기를 꺼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Kenneth Pike는 예수의 달란트의 비유에서 무익한 종에 대한 설명에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가 행한 유일한 잘못 하나는 그가 해야 할 일의 모형으로써 그에게 주어진 일반적인 명령을 받았을 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처럼 행동하기를 거절하였고 그가 알았어야할 일의 세세한 내용을 판단하기를 거절하였다. 그 결과로써 그는 부덕한 사람 또는 사악한 사람으로 등급이 매겨졌다("Man or Robot," Eternity, February, 1964, p. 11).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역사 속에서 활동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섭리적으로 상황들을 명령하신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를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그가 우리를 도우시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상식을 사용하기를 기대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갖지 않은 분야에서는 결정에 있어서 심사숙고할 것을 기대하심으로써 도우신다.

또 하나의 부적당한 견해는 성령을 우리 인간의 영혼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 자신을 말살하거나 제거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자기의 삶을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이다. 갈라디아서 5장 18절과 로마서 8장 14절의 말씀 “성령의 인도”는 “수동적인 무게의 끌어당김이나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 . . 성령에 의해서 결정된 궁극에로 활동적인 대행자의 인도를” 말한다(B. B. Warfield, Biblical and Theological Studies, quoted by John Gilmore, "How God Wants to Guide You," Eternity, January, 1973, p. 26).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영혼을 대치하지 않으신다. 성령은 독재자처럼 우리의 영혼에 군림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을 굴복시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자진하여 우리의 의지를 복종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두 가지의 극단은 회피되어야 한다. 첫째는 신자의 심령에 내주하시는 개인의 내주 동거의 성령을 부정하고 오직 말씀만을 주장하는 견해이다. 성령은 신약성경과 동일시되고 있다. 이것은 차고 생명 없는 정통신학으로 귀착시킨다. 또 다른 극단은 성령께서 오늘날 개개인에게 직접 말씀하신다고 믿는 직접 인도를 주장하는 견해이다. 주관주의, 자만, 그리고 분단이 이 견해의 열매이다. 첫째 주장이 교리적으로 자기 의존에 빠진 반면, 둘째 주장은 경건에서 자기 의에 빠지고 있다.

이들 극단들은 개개의 것이 중요한 진리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유력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개인이나 그룹이 진리의 일부분을 다른 모든 것 위에 수직선상에 놓고 배타적인 주장을 하게 될 때에 생긴다. 만약 우리가 성경적인 성령의 인도하심이 객관적인 성경의 인도와 신자 내면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특성을 개발함에 있어서 주관적인 힘의 북돋음 모두를 포함한다고 고집한다면 우리는 이 두 극단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