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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05 12:57
성령의 인도하심(2/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431  

성령의 인도하심(2)

(글: Lynn Gardner, 역: 조동호 목사)
<"Both external teaching and internal power are made available to one Led by the Spirit,"
Christian Standard, October 10, 1976, pp. 922-924.>

성령께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을 인도하시는가를 고려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반적인 의지와 특별의지 사이를 구분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John Scot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일반” 의지는 모든 시대에 모든 그의 백성들에게 미치는 뜻이기 때문에 일반의지라고 불린다. 한편 “특별” 의지는 특별한 시기에 특정인에게만 미치는 뜻이기 때문에 특별의지라 불린다(Your Mind Matters, Inter Varsity Press, 1972, p. 43).

하나님의 일반의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엇이 진리이고 거짓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리하는데 관여한다. 그것은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일반의지를 발견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씀을 읽고 이해할 것을 기대하신다. 우리는 성경해석상 반드시 필요한 원리원칙을 적용하여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기도하며 의논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이 뜻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다”(Scott, Your Mind Matters, p. 44).

하나님의 특별의지는 그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해야 할 매일 매일의 모든 결정들에 특별한 해답을 주시지 않는다. 시편 32편 8-9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재갈과 굴레에 의해서 인도되어야하는 말이나 당나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식을 사용하기를 바라시며, 현명한 충고를 구하며 성경의 인도하심과 일치되는 선택을 내리려는 성실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Scott는 결혼 문제로 설명을 시도한다. 인간은 성경에서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그것은 전 생애의 헌신이며 일부일처의 관계이며 상호사랑과 나눔의 관계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를 본인이 판단하여야 한다. 약혼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결혼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한다. 어떻게 그와 같은 결정을 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과 상식을 사용함으로써 할 수 있다. 확실히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충고와 존경하는 이들의 상담에 귀를 기울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결정은 자신이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정신작용을 통해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Your Mind Matters, p. 45).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갖지 못한 분야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의 마음을 써야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비 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겸손하게 또 성경말씀에 나타난 가치들, 우선순위들 그리고 표준들에 맞춰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성경

성령께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는 것이 확실하다. “주의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영감으로 된 말씀은 무엇이 옳은가를 가르치고, 어디서 우리가 잘못되었는가를 보여 주며, 올바른 길로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우리를 바로 잡아주며 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훈련하며 훈계하기에 적합하다(딤후 3:16-17). 하나님의 말씀은 깨끗하게 씻으며, 구원하며, 하나님이 우리가 가기를 바라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요 15:3; 17:17; 롬 1:16; 히 4:12; 약 1:18; 벧전 1:23).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되기를 원하셨던 진리가 성경에 쓰이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그의 진리를 계시하셨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성령의 인도하심의 수단이다.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는 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어떠한 가치 있는 주장도 할 수 없다(요 6:63, 12:48).

성령께서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우리들을 인도하시는가? 성령의 말씀의 조명이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성경의 구절들이나 말씀들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와 같은 계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기적에 의해서 거짓 해석과 성령으로 영감 된 해석 사이에 구분이 될 수 있도록 입증되어야 하지 않을까? 원래의 계시가 해석을 필요로 한만큼 영감 된 해석도 해석이 필요치 않겠는가?

성령은 성경에서 그가 성경본문의 오류 없고 참된 의미를 계시하시겠다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하지 않으셨다. 만약 성령께서 약속하셨다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분분한 해석의 차이가 존재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이성적인 동물로 만드셨고 그의 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주셨다. 우리는 저자가 의도한 뜻을 배우기 위해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진리에 복종해야 한다.

메시지에 동감하거나 메신저에게 동감하는 사람은 그 메시지나 그 메신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오십년간 한 남자와 결혼하여 살아온 여자가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 자기 남편이 말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더욱 잘 해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령을 자신의 심령의 성전에 모신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성경 속에서 성령께서 의도하시는 말씀을 더욱 잘 풀어 해석할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진리로 영접하며 성경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려는 동감적인 시도를 한다. 하나님의 가치들과 표준들의 수용과 하나님의 성령에의 복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그리스도 밖에서는 얻을 수 없는 신령한 지혜를 준다(엡 1:17-18; 빌 1:9; 골 1:9; 요일 2:27).

내 아내가 그녀가 쓴 편지 이상의 것인 것처럼 성령도 그와 같아서 신약성경에서 그로부터 우리가 받은 메시지 그 이상이다. 성령으로 영감 된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성령의 내주 동거의 임재를 약속 받고 있다.

2. 성령의 열매

성령은 “육체의 사역에서” 돌아서도록 우리들을 인도하시고,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도우신다. 로마서 8장 14절과 갈라디아서 5장 18절의 두 구절에서 “성령의 인도”란 의미는 성령께서 정보를 실어온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께서 성격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도우신다는 것을 본문의 문맥은 지적한다. 우리는 성령으로부터 어떤 놀라운 한 새로운 계시를 추구하기보다는 육체에 따른 삶에서 성령의 열매에 의해서 특징지어진 삶에로 도덕적인 발전을 위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추구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성화를 의미한다. William Hendriksen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심령 속에 작용하셔서 내주하는 죄의 권세를 더욱 더 깰 수 있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의 계명의 길에서 즐거이 또 기쁘게 걸을 수 있도록 지도하시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이며 또한 유익한 성령의 영향력을 성령의 인도라 한다(New Testament Commentary: Exposition of Galatians, p. 217).

James Stewart는 성령의 인도하심의 참된 의미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조용하고 꾸준하고 평범한 믿음생활 속에서 도덕적 수준들 위에서 작용하는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양자권에 대한 영혼의 비밀과 내적 확신 속에서 예수님께서 소유하셨던 사랑과 기쁨 그리고 평화와 인내와 성품 속에서(A New Man in Christ, London: Hodder and Stoughton Ltd., 1935, pp. 308-309).

갈라디아서 5장 16-25절에서 바울은 육과 성령 사이의 갈등을 취급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인간의 신체적 육신이 아니고 이기적으로 사는 인간의 본성을 뜻하는 “육”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Barclay가 말한 대로 “육은 하나님과 먼 사람이다”(The Mind of St. Paul, Harper and Brothers, 1958, p. 204). 바울은 도전적으로,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 하리라”고 말한다(갈 5:16). 이기적인 삶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한 삶과 갈등을 이룬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신바가 되면 율법아래 있지 아니라”(갈 5:18).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고 즉 육체의 사역을 극복하고(5:19-21)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때(5:22-23),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걷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새 삶이 성령의 은혜라면, 성령에 의한 삶의 모양으로 질서를 잡아가야 한다고 바울은 이 구절의 말씀을 결론짓는다.

J. I. Pack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인도하심을 받는지 아닌지에 대한 참된 테스트는 경험에 의한 테스트가 아니라, 윤리에 의한 테스트이다. 왜냐하면 이 인도하심은 본질적으로 성화를 향한 충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거의 고무적인 것들과 관련이 없으며, 말하자면, 우리의 기질을 죽인다든지,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생각들을 제거한다든지, 자기 탐닉이나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것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말한 것이 옳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는 말씀이 속하고 있는 이들 성구들의 문맥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Led by the Spirit of God," The Life of Faith, May 26, 1966, p. 499).

이것은 갈라디아서 5장 16-25절의 연구와 일치한다.

로마서 8장 13-14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Packer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은 상기한 말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순히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들, 즉 내주하는 죄와 끝없이 투쟁하며 살아가는 자들, 그들이 소유한 죄성을 그들의 삶 밖으로 끌어내려고 분투하는,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고후 7:1) 하려는 자들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의미한 “성령의 인도하심”이다("Led by the Spirit of God," p. 409).

갈라디아서 5장은 물론 로마서 8장에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의 의미는 방향을 제시하는 성령의 비범한 경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신자의 윤리적 성장에 관한 것으로 나타난다.

3. 내주 동거의 임재

신자들에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신약성경의 강조가 연구된 두 본문에서 지적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영광을 받으신 후에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 배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요 7:38) 축복들을 신자들에게 주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요 14:23)라고 하신다. 회개하는 신자가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로 약속 하셨다(행 2:38). 그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요 3:5). 만약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마음속에 거하시지 않으시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롬 8:9).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음바 됨이라”(롬 5:5)고 우리는 약속을 받는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일” 수가 있다(롬 8:13).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속사람 안에서 성령의 증거로 이 사실에 대하여 확증을 받는다(롬 8:16; 갈 4:6과 비교하시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을 도우시며,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롬 8:2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많은 영적 혜택들이 성령의 내주 동거 임재와 연결되어 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성령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역의 실제의 증거와 구속의 보증으로써 주어지셨다(요일 3:24, 4:13). 신자의 죽음에 대해서 바울은 확신하여 말하기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고후 5:5-6)라고 하셨다. 우리 안에 확신은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박고 있다(골 1:27).

바울은 기도하기를,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엡 3:16-17)라고 강구하신다. 내주 동거의 성령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를 구하는 그리스도인을 강건케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너희 안에 사실 것이며(갈 2:20),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빌 2:13)고 말한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령의 사역에 관하여 많은 것을 가르친다. 관심은 “몸의 행실”과 “육체의 소욕”과 “육신의 행실”을 극복하는데 있으며,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의 삶을 살도록 그리스도인을 도우시는 데 있다. 우리 안에서 성령의 사역을 통한 우리 삶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의 온전한 목적은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벧후 1:4).

성령의 인도하심은 (말씀을 통한) 객관적이며, (성령의 내적 역사를 통한) 주관적인 양면적 사역이다. Moses Lard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떠한 정도에까지 내주 동거 임재를 통한 성령의 강건케 하심이 인간의 영혼으로 하여금 육신을 조절할 수 있게 하며, 인도하심이 내적인 정도에까지 미치는가? 어떠한 정도에까지 복음의 동기들은, 심령에 증거 되었을 때, 기록된 말씀 안에서 그 심령을 강건케 하며, 교화하며, 그것이 육신을 복종할 수 있게 하며, 인도하심이 내적인 정도에까지 미치게 하는가?(A Commentary on Romans, Delight, Ark: Gospel Light, 1875, p.264).

J. W. McGarvey와 Pendleton 역시도 같은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성령은 외적으로 내적으로 모두 인도하신다. 외적으로, 성령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복음의 진리를 공급하며, 거기서 발견된 규율과 교훈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지시오 인도하심이다. 내적으로, 성령은 제자들에게 계시된 진리와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힘과 위로로 공급함으로써 도우신다(Commentary on Thessalonians, Corinthians, Galatians, Romans, Cincinnati: Standard Publishing, p. 361).

성경말씀의 연구와 하나님께 우리의 의지를 복종시킴으로써 우리의 심령을 가르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도록 결정하자.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의 내적 사람을 강건케 하실 것이며, 우리는 그 진리에 복종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