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리스도만을 신조로 삼는다(No creed but the Christ).
오직 성경만 믿음과 실천의 규범으로 삼는다( No book but the Bible).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신약의) 명칭만 사용한다(No name but the Divine).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신약의) 규정만 지킨다(No ordinances but the Divine).
오직 복음만 주장한다(No plea but the Gospel).
복음의 본질에는 일치를 주장하고, 비 본질적인 것에는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며,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행한다
(In essential unity, in nonessential liberty, in all thing charity).


 

 

 

첫째,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이름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명칭으로 사용한다.

'그리스도인'(Christian), '제자들'(Disciples), '형제들,'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장로,' '집사' 등 신약성경에 나오는 명칭만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명칭은 성경적인 명칭일 뿐만 아니라(롬 16:16),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교회라 부름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공동체를 '~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성서적이다. 그리고 오직 이 명칭 아래서만 전 세계의 교회가 하나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통일된 국가나 단체나 조직의 명칭이 여러 개일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명칭은 하나이어야 하며,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교회를 '장로 교회'(Presbyterian Church)나 '방법론자 교회'(Methodist Church) 혹은 '침례자 교회'(Baptist Church) 등으로 호칭하는 문제는 재고 될 필요가 있다.

둘째,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떠한 인위적인 신조나 견해를 배제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약성경의 신조를 구원하는 믿음의 조건으로 삼는다. 이 신조는 마태복음 16장 16절과 로마서 10장 9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두 구절의 말씀에는 예수의 신성과 부활하심을 믿는 신앙고백이 나타나 있다. 성경 말씀대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하였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침례를 받기 전에 이 신앙을 고백한다. 구원하는 믿음은 성서해석적인 결론에 의한 장문의 신앙고백서나 특정교리를 이해하고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구원하는 믿음이 아니라 교리로서의 믿음이기 때문이다(딤전 4:1,6; 유 3; 갈 1:23).

셋째,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약성경의 회심을 실천한다.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씀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침례를 회심에 반드시 필요한 성례로 믿고 행한다. 또한 침례와 성만찬의 초대교회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침례의 성경적인 원형은 그 방법에 있어서는 침수이며, 그 대상은 회개한 신자이다. 그리고 침례의 목적이나 의미는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기 위함이다. 오늘의 세례이해는 유아세례의 성례전적 가치를 부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참으로 좋은 현상이다. 한신대학교의 박근원 교수는 {기독교 사상} 1991년 8월호에 기재한 그의 "세례와 견신례의 의식적 가치"라는  글에서 20세기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유아세례야말로 서방교회 전통이 만들어 낸 최대의 과오라고 지적한 바 있고, 에밀 부르너와 위르겐 몰트만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고 적었다. 또 그는 유아세례 제도야말로 서방 기독교가 몰락하는 주요원인이며, 누수의 진원일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런 서구교회의 모순이 그대로 우리 한국교회에도 전수되어 있기 때문에 서구교회의 누수현상의 전철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구원과 침례와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성서가 말하는 구원의 4대 요소를 살펴봄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10절과 골로새서 2장 12절의 말씀을 요약해 보면,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례로," "선한 일을 위하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구원의 바탕으로, 우리의 믿음을 구원의 수단으로, 침례를 구원의 시간으로, 선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원의 목적으로 하고 있다.

넷째,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약성경의 예배의식을 준행한다.

사도행전 2장 42절의 말씀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하였다. 이 말씀 속에 예배의 기본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다. 말씀과 교제와 성만찬과 기도(찬양)가 이들이다. 한 때 천주교회는 말씀이 빠진 성만찬 중심의 미사를 드려왔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개신교회는 성만찬이 없는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림으로서 절름발이 예배를 드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천주교회가 강론을 시작하면서 말씀과 성만찬이 있는 예배로 회복해 가고 있고, 개신교회에서도 몹시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매주 성만찬 운동이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난 200년 동안 주장해왔고 실천해 왔던 말씀과 성만찬 중심의 균형 있는 예배가 참 예배의 모습이었다는 점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는 한 좋은 예이다. 우리가 매주 행해야 하는 성만찬의 신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성만찬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성례이다(고전 11:23-25; 마 26:26-29; 막 14:22-25; 눅 22:14-15). 성만찬의 뿌리는 최후의 만찬에서 뿐만 아니라, 예수의 공생애와 부활 후에 민중들과 함께 나누신 나눔의 식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성만찬은 인류의 구속을 이루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예배이며(Eucharistia),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과 십자가의 정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식이며(Anamnesis), 성령의 임재를 비는 제사이며(Epiklesis), 예배를 통해서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연대하고 수평적으로 이웃과 연대하며, 더 나아가서는 모든 피조물들과 연대하는 교제의 시간(Koinonia)이다. 성만찬은 대신, 대인, 대물관계에서 교제와 친교를 통해서 서로 연대하고, 인간에게 필요한 신뢰를 쌓기 위해 마련된 화해와 나눔의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성만찬은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과 은총을 미리 맛보고 누리는 종말론적 식사(Anticipation)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만찬을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환원운동은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이기 때문에 침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구성원이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식탁에 동참하여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미리 맛보고 누려야 한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약성경의 명령을 준행한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의하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아들 하나님에 의해서 창설되고, 성령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권능이 부여된 신성한 조직이다. 그러므로 이 공동체는 모여 예배하고, 교육하며, 교제하며, 흩어져 전도하며, 봉사하며, 구제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공동체의 목적은

    첫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막 16:15; 행 8:4). 이 복음은 전도자와 개개인의 성도들에 의해서 전파되며, 어느 장소에서나 이루어진다(행 20:20; 5:42; 11:12-15).

    둘째, 제자를 삼는 것이다(마 28:19). 제자 양육은 남녀노소 불신자들에게 접촉하여 교육을 통해서 이들을 신앙인으로 또는 전도자로 육성하는 일이다.

    셋째, 침례를 베푸는 일이다. 침례는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자신의 구세주로서 입으로 고백한 자들에게 베푸는 성례이다(마 28:19).

    넷째, 주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행 5:20); 마 28:20). 이는 그리스도인의 계속적인 성장과 성결의 생활을 위한 것이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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