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제자 교회의 예배신학
A Restoration Theology of Worship

글: 정장복(장로회신학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이 글은 정장복 교수 저, {예배의 신학} 487쪽 이하의 내용이며,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http://www.wpa.or.kr/worship/article/ARestorationTheologyOfWorship.htm>에서 가져온 것임.


11) 그리스도의 제자교회 예배신학(A Restoration Theology of Worship)

예배신학의 회복은 그리스도와 성경만을 위해 과거의 전통과 신조를 거부함으로 일어났다. 결국, 예배에 대한 모든 생각은 이 전제로부터 형성되어진 것이다.

A.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배 회복운동의 신학을 연구하고자 한 예배관련 서적과, 교회의 중심된 행위로서 대두된 예배의 신학을 토론하고자 한 노력들은 오래되었으면서도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남아 있다. 그 동안 사람들은 '신학'이라는 용어로 예배 회복운동의 흐름들을 한정하려 했다. 그들은 '신학'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면서도 만약 그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이야기할 경우 그들은 자신들이 다양한 입장들을 수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고한 역사학자 드고르트(A.T.DeGoort)는 다음의 내용들을 환기시키면서 '신학'적 논쟁을 꺼려하는 "제자회"를 설명했다.

---그들은 그것을 보았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추방당했다. - 중세와 후기종교개혁 시대의 교회는 신학적 논쟁에 지나치게 빠져든 나머지 토론학의 형제요, 정치에 깊숙히 관련된 것처럼 세상에 내 비췄다.(A. T. DeGroot, Disciple Thought: A History [Fort Worth:Texas Christian University, 1965], 23.)

예배 회복운동의 경종을 울렸던 유명한 투쟁은 "교리가 아닌 그리스도!"라는 것이었다. 많은 교회들은 자신들의 공식적인 신앙의 변증들을 신자의 자격과 안수, 혹은 이 둘 모두를 결정하는 시험으로서 사용했다. 건전한 신조를 고백하는 사람은 받아들여졌고, 잘못된 신조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추방되었다. 회복운동의 창시자들은 이러한 신학의 오용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들의 후예들도 '신학'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 단정지었다. 이렇듯 반지성적 경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그들의 신학에 대한 불신을 정당화했다.

제자 교회들은 그들의 회원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회원이 되기 위한 기본적이면서 정통적인 자격 시험인 신학의 사용을 계속해서 거부했지만, 다른 한편 그들은 다른 교파의 기독교인과의 대화를 위해서 자신들의 신앙을 명료화하기 위한 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신학의 목적은 신앙의 내용들을 변호하고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무엇을 믿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교회에 입교하고자 할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으며 그분을 당신의 주님이며 구원자로 믿으십니까?" 이것은 비록 쉽게 풀어서 썼지만, 이 질문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거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마16:16) 위와 같은 신앙고백은 매우 단순한 고백이다. 두번째 물음에서 '당신의'라는 단어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에 따라오는 개인적인 헌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것은 신학적인 중요한 또다른 물음을 대두시킨다. 비록 이 글이 기독론에 관련된 중요한 물음을 연구하는 글은 아니지만, 윌리암 R. 바(William Barr)는 이 주제를 연구한 훌륭한 책인 "제자들의 전통에서의 기독론: 하나의 평가와 제안"이 있는데, 이것은 캐넷 로랜스(Kenneth Lawrence)가 편집한 "Classic Themes of Disciples Theology"(제자회 신학의 전통적 주제:역자 주)에 실려있다. 만약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구원자'라고 한다면, "그는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가?"하는 것이다. 다른 말을 빌리자면, "무엇이 죄인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는가?"하는 것이며, 다시 말하면 "무엇이 우리의 희망이며 인생인가?" 만약 우리가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님"이라고 부른다면, "하나님"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예수는 인간이며, 어떤 방법으로 신이신가? 하는 것이다. M. 유진 보링(M. Eugene Boring)의 마가복음 연구인 'Truly Human/Truly Divine(온전한 인간이며, 온전한 하나님:역자 주)은 위와 같은 물음들을 오늘날의 제자회의 빛 아래서 탐구하고 있다. 우리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토론하는 동안, 우리는 어떤 권위에 호소하게 된다. 스톤 캠벨(Stone-Campbell)의 회복운동으로부터 연유된 모든 분파들 중에, 성서에서 발견된 이 권위, 즉 "책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것은 "신조가 아닌 그리스도"라는 외침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각기 다른 지류들은 성경이 어떻게 연구되고, 이해되고,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차이를 드러낸다.

이러한 질문들을 숙고하는 가운데, 제자회와 예배 회복운동의 또 다른 후예들은 그 운동의 초기 사상가들이 무슨 말을 했는가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로얄 헌벌트(Royal Humbert)는 The Christian Baptist, The Millennial Harbinger(기독교인의 세례와 천년왕국의 예언:역자 주), 그리고 몇몇 다른 자료들에 나타난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의 저작들을 분석하는데 30년을 보냈으며 그의 연구의 산물로는 "Compend of Alexander Campell' Theology"(알렉산더 캠벨 신학 개론:역자 주)였다. 헌벌트는 캠벨의 신학을 "신앙과 이성", "성경", "계시", "하나님", "주님으로서 그리스도", "성령", "은총", "교회", "은총의 수단", "인간", "기독교 윤리", 그리고 "종말론"이라는 12개 주제의 분야로 구성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헌벌트는 알렉산더 캠벨이 결코 조직신학을 편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있는 신학자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알렉산더 캠벨의 풍부한 저작물들은 예배 회복운동의 신학에 다른 어느 저술가들보다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의 오랜 활동 기간동안 알렉산더 캠벨의 관념과 태도들은 진지한 형태로 변화를 겪었다. 초창기 동안 그는 인습 타파적인 사람으로 불렸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세례"라는 책에서는 그의 많은 저작들에 대한 부정적인 지적들이 있었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예언"을 편집하는 동안 그는 좀더 점잖고 긍정적인 어조를 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알렉산더 캠벨이 직접적으로 동일한 주제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주제를 언급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예로, 비록 회복운동시 캠벨과 함께 했던 다른 종교개혁가들이 기독교의 연합을 이루기 위한 기초 단계로서 사도적 교회의 신앙과 실천을 회복하고자 하는 중심된 목적에 접근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캠벨과는 다른 입장에 서있었으며, 그리고 초기 사도적 교회의 신앙과 실천에 대한 신념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신자들의 몸을 지칭하는 호징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여기에 대해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 바통 W.스톤(Barton W. Stone) 그리고 월터 스콧(Walter Scott) 모두는 "그리스도인" 또는 "그리스도 교회"라는 단순한 이름을 선호한 반면, 알렉산더 캠벨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자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예배 회복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가 생각의 자유와 사상의 다양성을 가치있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운동의 신학에 대한 보편화는 항상 지나칠 정도로 단순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와 관련된 네 개의 주제에 대한 이어지는 언급들은 현재 기독교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는 신학적 대화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B. 성경

유진 보링교수는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의 성경에 대한 관점을 "다른 책들과 비슷하면서도 같지 않은"것으로서 묘사했다.

성경이 인간에 의해 인간의 언어로 쓰여졌으며 인간의 단어들과 이념들로 표현되었으며,그렇기에 다른 모든 책들과 같은 문법적-역사적 방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성경은 계시된 계획적인 진리들로 이루어진 책이며, 전체적으로 신적인 영감을 받은 책이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책들과는 다른 범주로 다루어져야 한다.(Eugene Boring, The Formation of a Teadition : Alexander Campbell and the New Testament, "The Disciples Theological Digest 2:1(1987):5-62).

캠벨은 성서학적인 깊이가 전문적인 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도 가능하기를 원했다. 그는 또한 환상적이며, 복잡하며, 유비적인 해석으로부터 성경을 자유롭게 하며, 뿐만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했던 역사 비평적 해석으로부터 성경을 자유롭게 하는 해석의 법칙을 제시했다. 그는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다른 부분들 보다 다 강한 빛을 발한다고 믿었으며, 창조기사와 족장기사는 별빛과 같으며, 모세의 율법과 이스라엘의 역사는 달빛과 같으며, 기독교 교회의 역사와 서신서들은 햇빛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빛은 히브리서로부터 비취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과 학자들은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 역사비평과 문학비평이라는 방법으로 연구하면서, 성경은 경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갈급해 하는 사람이 전 마음과 열의를 가지고 연구해야 하는 장서이다.

C. 교회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의 '선포와 연설'(Declaration and Address)은 신약성서 속에서 하나의 일치된 표준이 되며, 재현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말하기를,

구약성서가 구약성서 시대의 교회의 예배와 훈련, 치리를 위해서,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의무를 위해서 그랬던 것처럼, 신약성서는 신약성서 시대의 교회의 예배와 훈련, 그리고 치리를 위한 하나의 완벽한 법전이었으며, 그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의무를 위한 완벽한 규칙이었다.

캠벨은 그동안 기독교인 사이의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약성서가 가지고 있는 단순하면서 오랜동안 잊고 있던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한 해결책은 토마스 캠벨에 의해서도, 그의 아들 알렉산더에 의해서도, 그리고 그들의 연구 속에서 그들과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에 의해서도 결코 발견되지 못했다.

마크 툴루스(Mark Toulouse) 교수에 의하면 문제점 중 하나가 그들의 역사 읽기가 객관적이었기 보다는 오히려 향수에 젖어 있었다는 것이며, 사도시대의 원시교회는 유일하며 단순한 모델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은 더욱 아니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하나의 법전(a constitution)"으로서 성경을 읽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실수였다. 그들은 정확한 지점에 서 있었지만 그들의 방법은 찾을 수 없는 잘못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배와 삶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인간의 권위 대신에 하나님의 음성을 간절히 간구했으며 이것을 하나의 잣대로 하여 세상이 기대하는 교회의 참된 모습을 끊임없이 이뤄나갈 뿐만 아니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그들의 노력 중 가장 값진 열매는 예배의 중심으로 새롭게 자리잡게 된 주님의 만찬에 있었다.

D. 주님의 만찬

케잇 뚵킨스(Keith Watkins)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주님의 만찬에 관한 한 권의 책을 소개했는데,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독교 예배에 있어서 중심된 행위는 주님께서 주인이시며, 모든 곳에 있는 그의 백성들이 손님이 되는 식탁이며, 이 식탁은 기쁨의 향연인 것이다."(Keith Watkins, The Feast of Joy{St. Louis: Bethany Press, 1977},11). 이 같은 주장은 세 가지의 중요한 신학적인 관점을 담고 있는데,

첫째, 주님의 만찬은 예배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Stone-Campbell 회복운동의 모든 추종자들은 매주일 마다 성만찬을 거행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당시 어떤 이들에 의해 주님의 만찬의 중요성과 그 의미가 더욱 퇴색됨으로 해서 성만찬이 설교 사역 보다 덜 중요한 사역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조차도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성만찬이 없는 주일 예배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점점 수를 더해가는 교회들은 과거의 어느 때 보다도 예배로 부름 받는 이유가 주님의 만찬에 있음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로, 주님의 만찬은 기쁨의 잔치이다. 이것은 또한 감사의 만찬인데, 이 식탁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며 그것을 맘껏 즐거워 하는 것이다. 예배의 열쇠가 되는 이 '기억'(Remembrance)이라는 말은 과거의 재생이 아니라, 신선하고도 현대적인 의미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오늘의 상황속에서 새롭게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의 추세는 개인적인 묵상을 위한 엄숙한 시간으로서의 성찬만에서 벗어나 (비록 개인적인 깊은 변화를 일으키지만) 공동체와 기념적 축제로서의 성만찬으로 그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그렇기에 교회는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케 하는 주님의 식탁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만인에게 선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배(聖配)를 교회의 상징과 로고(logo)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식탁의 보이지 않는 주인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신다. 그분께서 바로 그곳에 오도록 우리를 초청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어떤 사람과 집단도 어느 한 개인도 거부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 주님의 식탁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져 있다. 또한 예배 회복 운동의 대다수 참여자들에게 던져주는 성만찬의 이면적인 의미로는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주님의 식탁에 나아올 때마다 우리의 잊혀지기 쉬운 세례의 참된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조차 "제한 초청"(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으로 침수침례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성찬참여자의 제한을 두어 실행했지만, 항상 "열려진 성찬"이라는 방법도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의 보이지 않는 주님이심을 믿는 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자리에 임재하셨다는 것을 확실이 증거하는 것이다.

E. 세례

여러 교파들 간의 에큐메니칼적 대화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가 갖는 세례 신학은 존경을 받아왔다. 이들은 끊임없이 성경을 통하여 세례의 이상적인 형태나 세례의 정확한 집례 방법들을 찾아내려 한 것이 아니라 세례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를 따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속에서 이들은 성례전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발전시켜 왔다. 일생의 단회적 사건으로, 그렇기에 반복될 수 없는 유일회적인 은총의 사건으로, 그와 동시에 하나님에 의한 직접적인 사건인 이 세례는 또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수반되는 것이다.(Clark M. Williamson, Baptism: Embodiment of the Gospel, The Nature of the Church: Study Series 4[St, Louis: Christian Board of Publication, published for the Council on Christan Unity,1989]).

콜벌트 칼트라이트(Colbert Cartwright)는 "우리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를 믿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Colbert S. Cartwright, People of the Chalice[St, Louisd: CBP Press, 1987], 69.) 이러한 우선적인 물음앞에서 스톤 캠벨(Stone-Campbell)의 예배 회복운동의 세가지 주요 분야들은 하나로서 정립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든지, 고등비평의 방법으로 해석하든지 간에, 또한 우리가 다른 종파들을 외면하거나 교회 연합을 하든지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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